분단된 이들의 영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1/1 아드리앙 곰보
김호선 감독이 1975년에 만든 다소 낙관적인 제목의 화려한 멜로드라마인 <영자
의 전성시대>에서 영자는 영화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맡았다. 영자는 타고난 순교
자이다. 그녀는 고향집을 떠나 서울로 향하고 가정부 일자리를 얻지만 주인집 아
들에게 강간당한다. 그후 버스 안내양이 되지만 교통사고로 한쪽 팔을 잃는다. 살
아남기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춘부가 되는 것뿐이었다. 이 영화의 원작
인 조선작의 소설은 사창가에 화재가 나서 영자가 죽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김
호선 감독은 영화를 전형적인 한국식 해피엔드로 마무리했다. 영자는 한쪽 다리를
잃은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
영자는 한국 영화의 장애인 계보에 속한다. <꼬방동네 사람들>은 이러한 강박관
념의 또 다른 사례이다. 1981년 배창호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애인이 좀도둑질로
잡혀가면서 이별하게 된 한 여인의 이야기이다. 경찰차가 떠나가는 순간 그녀는
발을 헛디디면서 가마솥의 끓는 물에 손을 데인다. 그때부터 그녀는 흉터를 감추
기 위해 항상 한 손에 검은 장갑을 끼고 살아간다. 10년이 지난 후 우리는 다른
남자와 빈민굴에서 살고 있는 그녀를 발견하게 된다. 결혼한 남자는 그녀를 학대
한다. 그녀는 자기 아들에게 누가 진짜 아버지인지 결코 말해주지 않지만 사고로
팔이 부러지면서 아들은 진실을 알게 된다.
한국에서 육체는 민족과 단일한 실체를 표상한다. 느슨한 전통 의상으로 이를
입은 사람에게 일괴암적인 외양을 부여하는 한복이 좋은 예이다. 국제결혼 가정의
아이들은 국적에 관계없이 군입대를 하지 못한다. 1988년 올림픽 동안 서울시는
장애인 전원을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내버렸다. 사람들은 민족에 유기적
으로 접합되어 있으며 불구는 사회의 눈에 결함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러한 상
은 역설을 내포하고 있다. 팔이나 다리가 없는 사람들은 또한 분단된 나라의 현실
과 인정하길 꺼리는 허약성을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힘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지만 이 나라의 영화는 일련의 손상된 존재들-절름발이,
수족절단자, 화상 피해자, 귀머거리, 장님, 난쟁이 등-과 함께 해왔다.
그러나 지난 10월에 열린 부산영화제에는 외다리나 외팔이가 한 명도 없었다.
거의 모든 영화에서 통일과 분단이라는 테마가 보여졌으며 특히 (종종 불가능한)
육체적 결합이라는 형태로 변주되었다.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의 개봉 이래 성은
한국 영화
에서 사회 문제를 상징하는 주요한 방식 중 하나가 되었다.
분단의 이미지들
여균동 감독의 우아하기 그지 없는 영화 <미인>은 매일 눈물 속에 애인을 찾아
가는 한 여인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사랑을 나누지만 그녀는 매번 수수께끼 같은
남자의 전화를 받고 남자를 떠난다. 마지막으로 절망적인 포옹을 하면서 남자는
여인을 목졸라 죽이고 그녀의 시체를 해변으로 들고가서 그 위에 눕는다. 두 육체
와 바다, 모래사장, 그리고 지평선이 하나로 융합된다. 육체적 결합은 불가능할지
도 모르지만 그 때문에 분리된 존재가 소통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미인>에서 두
주인공은 종종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대화를 나눈다. 그들은 그저 서로를 바라볼
뿐 화면 바깥의 목소리가 그들의 말을 대신한다.
박기형 감독의 판타지영화 <비밀>에서도 이와 똑같은 접근이 시도된다. 폭풍우
가 몰아치는 밤 보험회사에서 일하는 한 남자가 차를 몰고 집에 가다가 한 소녀를
친다. 그는 그녀를 자기 아파트로 데리고 간다. 그녀는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마침내 텔레파시로 소통하게 된다. 서로 상대방의
고독감을 메워주면서 이상한 우정이 생겨난다. 그녀는 아마도 영혼에 불과할 것이
다. 심지어 이미 죽은 자일 수도 있다. 그녀는 다리 위에서 몸을 던진다. 그가 강
물로 뛰어들어 그녀를 잡지만 강가로 끌어내지는 못한다. 영화는 두 육체가 물속
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끝난다. 그녀는 심연으로 가라앉고 그는 빛을 향해 올라간
다.
한국의 영화감독들은 투명함에 매혹되어 있다. 최신 유행의 실내에 있는 수족관
을 사이에 두고 등장인물들은 서로를 만지지는 못하면서 바라보기만 한다. 그들은
유리창에 손을 얹고 쏟아지는 비를 바라볼 뿐 피부로 비를 느끼지는 않는다. 그들
은 자기 모습을 잡으려 애쓰는 아이들처럼 거울을 응시한다. 이 영화들은 적대적
이고 상호 보완적인 두 부분으로 이 나라를 갈라놓은 삼팔선만큼이나 {주역(周
易)}, 특히 음양이라는 대립적인 힘에 빚지고 있다.
판문점의 의식(儀式)
이와 대조적으로, (부산에서는 뽑히지 않았지만) 지난해 가장 성공한 영화는 정
치적 내용을 매우 뚜렷하게 표방하고 있다. 이전 영화들과는 달리 <공동경비구역
>(비무장지대를 뜻한다)은 북한과 남한의 분단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스릴러이
다. 영화는 판문점 비무장지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총격전 와중에 북한 병사
한 명이 숨지고 남한 병사 둘이 부상을 입는다. 한국계 혈통의 스위스 젊은 여성
이 살인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UN에 의해 파견된다. 그녀는 양측 병사들 사이에
불법적인 관계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밤에 만나 맥주를 마시고 대화를 나
누면서 우정을 쌓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퉁명스러운 움직임이 있고 급작스럽게 문
이 열리는 것으로 무기를 뽑아들기에 충분했다. 총알이 한발 발사되어 북한 병사
의 손가락을 방 구석으로 날려버리고 허약하기 그지 없던 유기적 통일은 깨져버린
다.
이 영화의 성공은 영화 관객들의 태도 변화를 시사한다. 재작년에만 해도 모든
사람들이 한국에서 <타이타닉>을 앞지른 <쉬리>의 성공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
다. <쉬리>는 남한 정보원과 북한에서 온 간첩 사이의 불가능한 사랑 이야기를 다
룬 영화였다. 둘 모두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포기할 생각이 없으며 결국 서로를
죽이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감독은 남한의 군중 사이에서 익명의 북한 간첩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영화 관객들에게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의 차이점은 무
엇일까? 이 경우 단순한 해결책은 북한 사람을 고정된 시선으로 뻣뻣하게 걸어 다
니는, 핏기 없고 로봇 같은 좀비로 묘사하는 것이었다.
<공동경비구역>은 매우 다른 접근법을 택한다. 북한군 장교는 우정이나 고통 같
은 감정의 영향을 받으며 유머감각이 있는 인간으로 그려진다. 촬영하는 방식을
빼고는 양편 병사들은 동등하게 다루어진다. 감독은 병사들이 서로를 마주보는 장
면에서 반복해서 고정 프레임 샷을 사용하지만 선이나 기둥으로 나누어 놓는다.
비무장지대 자체는 과시용에 불과하다. 한 유엔 옵저버가 여주인공에게 설명하듯
이, “당신은 판문점의 요점을 완전히 놓치고 있소. 여기서 우리는 진실을 가림으
로써 평화를 지킵니다.” 비무장지대는 외국인들이 정한 의식의 장소이다. 과잉훈
련되고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인간들은 어떠한 주저도 없이 상대편을 죽일 수 있
는 꼭두각시가 되었다. 박찬욱 감독이 만든 <공동경비구역>은 2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였다. 김정일 위원장은 영화 테입을 주문했고 한 놀이공원에는 실제 비무장
지대를 그대로 복제한 곳이 곧 마련될 예정이다.
<미인>이나 <비밀>에서처럼 <공동경비구역>에서 또한 통일은 한편의 파괴라는
결과를 낳는다. 불구자들에서 초점이 이동되긴 했지만 한국 영화는 여전히 이 나
라의 상처를 보듬고 있다.
* 한국 영화 전문가로 현재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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