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7월 ‘이 달의 좋은 사설(칼럼)·나쁜 사설(칼럼)’
* 대상 : 각 일간지 사설 및 내부필자 칼럼
1. 좋은 사설(칼럼) – <청결과 순수, 무서운 신세계>
한국일보 7월 12일 목요일 칼럼<이런 생각> (고종석 편집위원)
수려한 문체로 사회적 편견에 맞선 칼럼
지난 6월 법무부와 경찰, 국가정보원은 외국인 이주 노동자를 대상으로 단속을 벌였다.열흘 동안 벌인 단속에서 1700여 명에 이르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연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 노동자 협의회의 성명에 따르면 실제로 30만 명이 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 중에서 불법체류 미등록 노동자가 70%에 이른다고 한다. 산업연수생으로 정식으로 입국한 외국인의 경우에도 고용주의 폭행과 사기, 임금체불 등으로 인해 출국이 불가능해지면 자동적으로 불법 체류자로 분류된다. 결국 이들을 불법체류자로 만든 일차적 원인은 정부의 불합리한 제도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에 있다. 이 달의 좋은 사설은 청결과 순수라는 명목으로 소수의 약자를 탄압하고 부정하는 우리사회의 병폐를 다룬 한국일보의 <청결과 순수, 무서운 신세계>가 선정되었다.
고종석 편집위원의 칼럼 <청결과 순수, 무서운 신세계>는 이번 외국인 노동자 집중 단속 사례를 통해 ‘법과 제도에 스며있는 우리들의 닫힌 마음’ 을 날카롭게 지적했다는 점에서 후보작 중 단연 돋보였다. 탄압 받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단순한 동정심이나 감상적 어조를 배제하고 차분하고 분석적으로 문제의 본질을 짚어 주었다는 점도 높이 평가되었다. 또 정치, 경제 현안에 묻혀 지나치기 쉬운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기사와 함께 칼럼으로 다시 한번 다루었다는 점도 선정 이유에 포함되었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에 대한 이번 집중 단속은 쓸모가 없어진 물건을 쓰레기통에 치워 버리겠다는 식의 잔인하고 이기적인 발상이나 다름없다. 여기에서 고 위원은 청결과 순수를 표방하는 억압의 징표를 읽었다. 이 같은 지적은 외국인 이주 노동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걸인과 장애인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이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다수의 폭력적 무관심과 억압 때문이라는 해석은 매우 설득력 있다. 우리사회에는 반듯반듯한 것을 좋아하는 ‘자유의 적들’이 너무나 많다. 이들은 다양성을 혼란으로 치부하고 그에 대한 불편함을 감추지 않는다. 심지어 이들이 다수의 동의마저 얻는다면 이는 바로 다양성에 대한 억압으로 발전하기 쉽다.
우리가 외국인에 대해 가지는 편견과 냉대 또한 이러한 논리와 무관하지 않다. ‘살색’이 하나뿐인 사회에서 다른 색깔의 사람들은 버텨낼 수 없다. 그래서 본 칼럼은 법과 제도를 비판하기에 앞서 우리들 마음속에 뿌리내린 외국인에 대한 이질감과 편견을 꼬집었다.
다시 외국인 이주 노동자의 문제로 돌아가 칼럼은 불법 체류자라는 명분 하에 이들에 대한 착취와 탄압을 합리화시켜서는 안된 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설사 불법체류자라 하더라도 차별적 근로 조건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법 조항을 사례로 들어 “실상 우리들은 그들을 법대로도 대접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범죄와 내국인의 실업을 핑계로 외국인 노동자를 내쫓는 것은 그들의 수치가 아닌 우리의 수치라고 덧붙이고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조직적 탄압을 외면해온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뼈아픈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담배꽁초에서 혼혈인에 이르는 이물질들을 완전히 솎아내 우리 거리가 마침내 청결과 순수를 이뤄냈을 때 우리의 몸은 전체주의라는 끔찍한 신세계에 갇힐 것”이라는 마지막 문장은 섬뜩하지만 확고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나된 우리’에 대한 맹목적 집착을 버릴 때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다.
2. 나쁜 사설(칼럼) – <또 하나의 권언유착> 중앙일보 7월 3일자 [김영배 칼럼]
역사에 대한 거짓증언, 용기인가? 오만인가?
언론사 세무 조사 결과 발표 이후 수구·족벌언론들은 언론탄압론을 더욱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들 신문의 수많은 지면이 언론탄압론으로 채워지고 있는데 특히 내외필자들의 기명 칼럼은 근거없는 논리로 사실을 호도하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분위기다. 이들 칼럼 모두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굳이 우열을 가리자면 중앙일보 7월 3일자 김영배 칼럼은 사실 왜곡면에 있어서 다른 칼럼보다 월등히 앞선 경우에 해당한다. 시민 단체의 언론 개혁 요구를 정부의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와 맞물려 근거 없는 유착설을 들먹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칼럼은 역사적 사실조차 왜곡하며 족벌언론의 이익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는 비판이다. 민언련 신문모니터위원회가 7월의 나쁜 칼럼으로 선정한 결정적 이유다.
– 근거 없는 유착설로 시민단체 흠집내기
이 칼럼은 시민 단체가 ‘(세무조사 결과) 발표 내용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의혹을 제시했다. 그리고는 세무 조사 결과가 발표되던 날 ‘정부와 시민 단체가 같은 시각에 짜 맞춘 듯’ 언론 개혁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시민 단체와 정부의 유착설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시민 단체의 언론 개혁 요구는 그 동안 꾸준히 제기되어 왔으며 족벌언론들이 자행해온 반역사적, 반민족적 행위에 대한 반성과 변화의 요구이다. 아무런 근거 없이 시민단체가 발표내용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주장을 기명칼럼에서 주장하는 것은 용기도 비판정신도 아니다. 자사이기주의에 함몰되어 냉철한 판단력을 상실한 한 언론인의 슬픈 자화상일 뿐이다.
실제로 김영배 칼럼을 비롯 최근 족벌언론에 게재된 칼럼 다수는 표면적으로 언론자유를 주장하고 있을 뿐 실제로는 사주와 족벌언론의 이익에 봉사하는 허울뿐인 자유를 위한 노력일 뿐이다. 이러한 칼럼의 인식은 언론 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과 지지를 무시하고 여론을 호도하며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김영배 칼럼은 또한 “권력을 불러들이고 권력에 의한 언론 장악을 찬양하는” 시민 단체가 있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음모론이라 하지만 이건 너무 지나치다. 그가 주장하는 권언 유착의 시민 단체는 대체 어디인가. 정말 권언 유착을 주장하고 싶다면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정확하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근거 없는 음모설로 개혁적인 성향의 단체들을 한꺼번에 무조건 좌파라고 몰아붙이고 또 한번의 색깔론을 시도하려는 복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 이렇게 뻔뻔해도 되나?
이 칼럼이 나쁜 칼럼으로서 뽑힌 결정적 배경은 바로 역사에 대한 거짓된 증언이다. 김영배 논설위원은 지금의 ‘언론 권력’이 “언론이 과거의 군부 독재에 맞서 싸운 데 대한 독자들의 지지와 성원’에 바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언론은 과거 군부독재에 맞서 싸우기는커녕 독재자를 찬양하고 독재체제를 옹호하기 바빴다. 이는 과거 신문지면을 통해 생생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김영배 논설위원은 역사공부를 다시 해야 될 듯 싶다. 87년 민주화 이후 얻어진 언론자유가 군부독재에 맞서 싸운 투쟁의 결과가 아니라 시민사회와 민중들의 투쟁으로 얻어낸 민주화 과정에서 언론이 ‘무임승차’ 했다는 분석은 이미 양심있는 언론인들이 인정한 바이기도 하다. 행여 김영배 의원이 70년대 중반 자유언론수호투쟁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 또한 중앙일보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일부 족벌언론들이 과거 독재에 저항하고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싸웠던 기자들을 내몰거나 대부분의 족벌언론이 권력에 영합하여 얻은 지금의 ‘언론 권력’이 마치 독자들의 지지인양 우겨대는 것은 독자들에 대한 기만이자 뻔뻔함의 극치다 “이상한 언어로나마 표현하려 했고 은유와 행간으로 군부독재에 맞섰던 노력”의 결과가 지금의 ‘언론 권력’이라는 부분에서는 측은함 마저 느껴진다. 결국 군부독재에 맞서 싸웠다는 전제자체가 거짓인 이상 위의 논리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조차 호도하는 거짓증언에 불과한 것이다.
김영배 의원은 또 시민 단체들이 ‘자기와 다르다는 이유로 수구로 몰아 붙이고’ 있으며 ‘사회주의적 언론관’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이는 적반하장의 극치다. 오히려 언론자유라는 미명하에 ‘자기와 다른 의견을 가졌다는 이유로 빨갱이로 몰아붙이며’ 마녀 사냥을 해왔던 것은 바로 중앙일보를 포함한 족벌언론 아닌가.
-틈만 나면 홍석현 사장 구속 사례 들먹여 여론호도
중앙일보는 틈만 나면 2년전 홍석현 사장의 얘기를 들먹인다. 이번 칼럼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칼럼은 또 다시 중앙일보가 2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다며 2년 전 중앙 사태도 언론 탄압이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2년 전 사주의 비리에 대한 조처를 언론 탄압이라 외치며 억지를 펴고 심지어는 구속당하는 사주에게 힘내라고 외치는 것이 언론자유인가?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이 칼럼은 “신종 권언 유착의 종착지가 어디일지 우리는 독자들과 함께 주시할 것이다.”라는 말로 맺었다. 김영배 논설위원은 결국 음모론도 모자라 ‘신종 권언 유착’이라는 말을 확신에 찬 어투로 외쳤다. 이 배려가 지금의 상황을 잘못 인식하고 있는 일부 독자들을 배려한 것일지는 모르지만, 또 하나의 민심 왜곡일 뿐임을 김 논설위원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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