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식
미국의 유력일간지인 워싱턴포스트는 21일자 신문에서 미국 내에서 일고 있는 제국주의 논쟁을 소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제국인가 아닌가, 미국의 역할에 대한 조용한 논쟁”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이 신문은, 이전에는 미국에 제국주의라는 꼬리표를 다는 것을 미국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최근에는 일부 안보전문가들이 미국은 실제로 제국주의적인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고, 또한 이러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섬으로써 논쟁의 불을 지피고 있다고 소개했다.
지금까지 반미성향의 국가들이나 인사들이 미국을 제국주의자로 비난해온 것에 반해, 최근들어 미국 내 ‘미국제일주의자’들 가운데 일부가 미국의 제국주의적 역할을 강조하고 나온 것은 흥미로운 점이다.
물론 미국이 제국주의자이고 또한 제국주의자로서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 “팍스 아메리카나”를 주창해온 대표적인 인물인 ‘새로운 미국의 세기 프로젝트’의 부소장인 토마스 도넬리가 “많은 미국인들이 미국이 제국주의 국가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고 꼬집은 것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제국주의자라고 하는 부정적인 이미지는 줄이면서 실제로 제국주의자로 행세하고 있는 미국에 대해 미국 사람은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도넬리는 한걸음 더나가 미국이 제국주의자로서의 임무를 명확히 하고 이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미국은 영토를 점령하고 식민지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자유의 제국이 되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확고한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지배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또한 21세기 미국의 군사안보전략을 두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에게 “미국이 새로운 제국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빨리 인식할수록, 군사안보 및 외교전략을 제대로 세울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럼스펠드 국방장관과 주요 군수뇌부들 사이에 국방정책 방향을 두고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 럼스펠드 장관은 “미국은 내일의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낡은 무기와 병력을 줄이고 미사일방어체제(MD)를 비롯한 신무기 개발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주요 군지도자들은 “우리는 오늘날의 임무를 수행하기에도 바쁘다”며 병력 감축안에 반대하고 있다.
비판자들의 견해
토마스 도널리를 비롯한 제국주의 주창자들의 견해에 맞서 미국은 제국주의자가 아니며 그렇게 돼서도 안된다는 비판자들의 견해도 흥미롭다.
클린턴 행정부 때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지낸 사뮤엘 샌디 버거는 “우리는 역사상 제국주의가 아니면서도 전지구적인 권력을 갖게 된 유일한 국가”라며 미국의 권력이 제국주의와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일본정책연구소 회장인 찰머스 존슨은 미국이 제국을 경영하는데는 막대한 비용과 다른 국가들의 반발이 뒤따르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며 오히려 중러관계의 밀착, 유럽통합의 가속화로 미국의 단일패권을 약화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1995년 동아시아 전략보고서의 작성자로 잘 알려진 조셉 나이 하바드 케네디 스쿨 학장은 많은 미국인들이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너무 군사력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경제적,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파원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는 내년에 출판 예정인 “부드러운 권력 : 미국 제국의 환상”이라는 책에서 미국이 군사력에 과도한 초점을 맞출 경우 궁극적으로는 다른 권력 기반을 훼손시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자들의 주장에 대한 도넬리의 답변이 흥미롭다. 그는 “미국인들은 이미 세계를 경영하는데 익숙해져 있다”며 “만약 이에 대한 도전이 나타날 경우 미국인들이 세계에 대한 지배력을 포기하는 것은 대단히 껄끄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응수하고 있다.
‘강한 미국’과 ‘힘에 의한 평화’를 주창하고 나선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가열되고 있는 미국 내의 제국주의 논쟁은 21세기 미국의 역할과 위상,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국익에 대한 혼란상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제국주의, 세계 유일 초강대국, 단일 패권 등 다양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역시 미국의 세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정서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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