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균(30·사당동)씨의 ‘백수시대’는 대학을 졸업하던 지난 98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졸업 후 곧장 직장을 잡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학내에 아직 못다한 일이 있어” 취직을 잠시 유보했던 박씨는 하릴없이 몇 개월을 더 보내다가 1년 반을 그냥 흘려 보냈다. 학교선배의 제안으로 시작한 어느 중앙일간지의 광주지국 근무도 석달이 채 안돼 그만두게 됐다.
“내가 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겁니다. 대학시절부터 꾸준히 그려온 만화를 더 잘 그리고 싶었거든요. 회사를 그만두고 컴퓨터학원에 등록을 했죠. 지난해 3월까지는 계속 그래픽을 배웠어요. IT관련 업체에 취직하려면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해서요.”
고향인 광주를 벗어나자고 작정했던 건 바로 그 즈음. “청운의 뜻을 품고” 2000년 5월 무작정 상경한 박씨는 20만원짜리 월셋방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으로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딱히 벌어먹을 길 없던” 그에게 서울은 광폭했다. 틈틈히 노보에 만화를 그리거나 인터넷 사이트 만화연재로 충당하는 용돈으로는 한 달을 버티기 힘들었다. 마냥 집에다 생활비를 보내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럴수록 박씨는 취업에 매달렸다. IT관련 업체에 취직하기 위해 눈에 띄는 구인사이트마다 이력서를 내밀었다. ‘고용안정센터’에서 주최하는 프로그램은 한번도 빠지지 않았다. 면접을 보고 연락을 기다리는 시간이 계속되자 박씨는 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이력서를 넣었냐구요? 한 ‘백번’은 넘을껄요? 면접도 스무차례는 더 봤죠. 컴퓨터 전공자가 아니니까 취업이 결코 쉽지 않더라구요. 조건이 맞으면 나이가 많아 원서를 못냈던 일도 많았구요. 그래서 다시 결심한 게 공부를 조금 더해보자, 였죠. 집에다 학원비로 2백50만원 달라고 말할 때는 부모님께 정말 죄송했어요. 어쨌든 12월까지는 계속 공부만 한 셈이죠.”
지난한 과정을 거친 끝에 박씨는 올해 4월 드디어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 원하던 IT관련업체는 아니지만 어느 중견여행사의 온라인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그 일도 잠시. “온라인을 보는 마인드가 달라” 박씨는 또 석 달을 못 채우고 회사를 나왔다.
“또 언제까지 취업전선에 매달려야 하는지” 한동안 고민했다는 박씨는 이제 조금 지친 표정이다. 올해 10월까지도 관련업체에 원서를 넣고 면접을 보러 다니긴 했지만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하는 식이다. 생계를 위해서도 안정적인 취업은 절박하지만 최근 한 달 동안은 취업 걱정 없이 평온하게 지내는 편이라고.
박씨에게는 오늘도 느긋한 하루였다. “뭐, 할 일도 없잖아요. 늘어지게 잔 다음 오전 나절엔 인터넷에 들려요. 자주 다니는 사이트가 30개 정도 되거든요. 거기 다 둘러보면 두 세시간은 금방 지나가고, 그렇게 점심시간 되면 라면 끓여먹고, 뭐 그렇죠.”
오후 시간엔 산책도 할 겸 정독도서관에 들린다. 책상에 책을 가득 쌓아 놓고 한꺼번에 해치우는 게 요즘 그의 유일한 ‘낙’. 집에 돌아가는 길, 사당역 근처의 야구연습장에서 5백원짜리 동전을 집어넣고 홈런치는 재미도 쏠쏠하다. 후배와 내기바둑을 두는 취미는 요즘 돈이 궁해 잠시 접었지만, 그래도 술자리는 이틀에 한 번씩 여전하다고.
“가끔씩 후배들이 먹을 것을 챙겨오기 때문에 끼니 걱정은 없다”며 너스레를 떠는 박씨의 ‘백수수칙 1조’는 바로 ‘인간관계’. 백수의 행복과 ‘뿌려놓은’ 인간관계는 정비례한다는 주장. 수칙 2조는 ‘취미생활’이다. “취미가 없으면 곧장 폐인이 돼버리기 때문”에.
생계만 해결된다면 백수도 좋은 ‘직업’이라고 넉살좋게 말하는 박씨도 취직은 결코 피해갈 수 없다.
“취직은 하긴 해야겠죠. 넉 달동안 카드 4개를 돌려가며 생활비 해결하는 것도 죽을 맛이구요. 전망이요? 나중에 돈 벌면 자그마한 만화가게 하나 차리고 싶어요. 그게 제 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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