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 아일랜드 ┃ 74분 ┃ 킴 바틀리/돈챠 오브리에인

[mainlogo]혁명. 책을 펴들고 치열한 토론을 할 때면 불쑥불쑥 등장하는 말이지만, 투사가 될 수 없는 숱한 이들의 빡빡하고 고단한 삶과는 동떨어진 화석화되어 버린 꿈은 아닐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뻔한 외피를 두르고 있던 정권은 이내 잔인한 밑바닥을 드러내기에 바쁘고, 체제가 던지는 악수에 대응하기에 여념이 없어 새로운 꿈을 생각할 겨를도 없을 때, 다른 세상을 만들어 가는 생경한 공간과의 만남은, 빛바랜 꿈을 윤색시키는 활력을 준다. ‘부패한 부르주아 정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민중적 심판’으로부터 등장한 베네주엘라의 차베스 정권. 보수 세력이 연합하여 이를 전복하기 위한 쿠데타를 일으키지만, 결국 민중의 혁명으로 복귀하게 된 차베스 정권의 숨가쁜 하루하루를 쫓는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는 잊혀진 듯한 꿈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드라마틱한 다큐멘터리이다.

세계 3위의 석유 생산국임에도 불구하고 ‘경제활동인구의 1/4이 실업자이며, 직업이 있는 사람의 1/3이 밤에 부업을 해서 먹고살고 또 20만 명이 넘는 어린이가 구걸로 생계를 잇고 있는’ 베네주엘라에서 구태의연한 정치 세력에 대한 염증, 정치 자체에 대한 불신과 무관심은 으레 당연한 것이었다.
새로운 정권에 대한 갈망이 생겨나는 건 필연적이었고, 그 몫은 1998년 대선에서 승리하고 2000년 개헌과 대통령 당선을 통해 집권하게 된 차베스 정권에게 돌아갔다. ‘볼리바르 혁명’을 주창하는 차베스 정권은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 정책을 통해 일정 수준의 성과를 거두면서 민중들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신자유주의 노선을 일부 수용하는 행보와 취약한 조직적 기반 등 때문에 그 한계 역시 분명하다고 지적되어 왔다. 원래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의 감독, 두 명의 아일랜드 제작자들은 신화에 휩싸인 차베스 정권의 공과 실을 면밀하게 목도하고자, 2001년 9월 베네주엘라에 발을 내딛었지만, 2002년 4월 갑작스러운(?) 쿠데타의 발생을 계기로, 충만하고 정직한 민중의 열정이 만들어낸 역사의 결절점을 포착하는‘행운’을 잡는다.
‘우리, 쿠데타 세력은 결정적인 무기를 갖고 있다. 바로 미디어다’
2002년 4월 11일, 반동적인 군부, 자본가 계급과 썩을 대로 썩은 관료적 노동조합이 힘을 합쳐 일으킨 쿠데타가 이틀간의 희극으로 마감될지 몰랐던 당시, 사영방송에 등장하여 쿠데타의 핵심세력이 내뱉은 말이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했던 차베스 정권 하에서는 5개의 사영 방송을 위시로, 우익들과 충실히 결탁한 거대 미디어 자본들의 세력이 막강하다. 중립적인 논조를 견지한 신문이 하나, 친차베스적인 방송은 국영 채널 뿐이다.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는 베네주엘라에서 주류 미디어가 우익들과 맺고 있는 공생 관계를 주류 미디어 프로그램 내용의 면면을 살피면서 보여준다.

차베스에게 ‘미쳤다’는 발언까지 퍼부으면서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색깔을 드러내고, 베네주엘라 보수 세력의 든든한 배후자인 백악관의 검은 말들을 주워 담기에 바빴던 미디어 세력들이 쿠데타에 세운 공은 혁혁하다. 사기업처럼 운영되고 있던 국영 석유 회사를 개편하고자 하는 차베스 정권의 의지가 가시화 될 무렵, 좀더 야심적인 쿠데타 세력에 의해 조종당한, 불안에 떨고 있던(?) 자본가 계급은 거리로 나섰고, 이들은 대통령 관저 밖에서 평화적으로 시위를 벌이고 있던 차베스 정권의 지지자들과 고의적으로 충돌한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갑작스레 총소리가 터지고, 피를 흘리던 차베스 정권의 지지자들은 자세를 낮추고 총을 꺼내 들어 보이지 않는 저격수를 찾아 총을 겨눈다. 옳다구나 사영 방송들은 사건 자체를 조망할 수 있는 숏들은 의도적으로 잘라내고, 총을 겨눈 차베스 정권의 지지자들만이 보이게 분할하여 촬영한 장면을 거듭 방영한다. 촬영과 편집에 이데올로기적 개입이 ‘폭넓게’ 허용될 수 있다는 점은 쉽사리 잊혀지고, 현장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한 또렷이 새겨진 영상 이미지는 하나의 권력이 되어버린다.
조작된 이미지를 들이대며 차베스를 학살극의 주범으로 몰고 가는 세력들은 예정되어 있었던 대로 쿠데타의 수순을 밟는다. 끝까지 대통령 사임을 거부했던 차베스는 관저의 폭격을 저지시키기 위해 쿠데타 세력에게 체포, 구금당한다. 더욱이 차베스 정권의 유일한 소통 창구였던 국영 방송을 쿠데타 세력이 장악한다. 순간 <칠레전투>의 화염에 휩싸인 모네다궁이 떠오르지만, 의회와 대법원의 해산을 선포하며 기쁨에 들떠 있는 쿠데타 주역들, 이들과 끈끈한 관계임을 유감없이 드러낸 미디어 세력의 섣부른 백일몽은, 총부리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민중들의 힘 앞에서 무너진다.

국영 방송이 차단된 가운데, 해외 방송을 통해 차베스가 대통령 사임을 거부한 채 갇혀있다는 사실이 입에서 입으로, 핸드폰의 문자 메시지로 전달되자, 대통령 관저 앞에는 10만 명의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모인다. 군부 세력 내부의 적잖은 균열이 작용한 때문인지, 애초 차베스 정권을 지지하던 경호대는 민중들의 연호에 연대감을 표명하며 관저를 탈환한다. 혁명이 진행되고 있던 이 몇 시간 동안 사영 방송은 쇼와 영화를 틀어대는 등 현상과 본질을 왜곡하려 든다. 역전된 정국을 알릴 길이 없던 다급한 상황에서, 때마침 국영 방송은 재개하고, 이를 통해 대통령 관저에서 벌어진 새로운 소식을 접한 지지자들의 결집으로 차베스는 무사히 복권한다.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는 베네주엘라의 혼미한 정국을 흔들리는 카메라에 담아내며 혁명적 이행기에 미디어가 사회 변화에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성찰하는 ‘미디어’이다. 특히 소통을 추구하며 매개체로 기능하는 미디어 자체에 대해 사고할 수 있는 여백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주류 미디어에 대한 비평적 작업을 수행하며 작품의 존재 자체로 대안 미디어의 필요성을 절실히 부각시킨다. 다만 좀더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맥락에서 베네주엘라의 상황을 분석적으로 접근하지 못한 점은 한계로 남는다. 또한 애초 기획 취지대로 차베스 정권의 공과 실을 입체적으로 검증하지 못한 채, 체제 이행기에 민중들의 힘이 어떻게 발산되었는지가 다소 소홀히 여겨져 아쉽다.
국내에서는 제7회 노동영화제에서 소개된 바 있었던 이 작품은 유럽의 공영 방송에서 방영되었고 해외 영화제에 잇따라 진출하며 적잖은 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최근 베네주엘라 사영 방송국의 핵심 간부를 포함하여 우익 입장을 따르는 일부 베네주엘라인들이 이 작품의 상영을 저지하기 위한 집단행동에 들어갔다. 또한 뱅쿠버에서 열린 엠네스티 인터내셔널 영화제에서 갑작스럽게 작품의 상영이 취소되는 사태가 발생하여 제작자들은 성명서를 발표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적인 검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은 여전히 체제 전복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베네주엘라의 현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반차베스 세력들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이 작품의 존재 가치를 반증한다.
혁명적 상황을 상정하기조차 쉽지 않은 이 곳에서, 보수 언론의 공작에 치일만큼 치인 이 곳에서 ‘혁명’과 ‘미디어’의 조합은 사실 어색하다. 무어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직 놓치고 싶지 않은 내일과 그 옆에선 영화의 조화를 꿈꾸도록 자극하는 작품이다.
이진영 기자(fit79@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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