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경쟁자가 아닙니다”

필리핀 사회운동가와의 인터뷰

조이 S. 드 구즈만(Joy S. de Guzman)은 아시아태평양 필리핀이민노동자 사업단

(Asia Pacific Mission for Migrant Filipinos, 이하 아태사업단)에서 일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에 있는 필리핀 이민노동자들을 조직화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

중이다.

국제연대 반갑습니다. 우선 당신과 아태사업단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오.

조 이 제 이름은 조이입니다. 현재는 홍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속해있는 아태사업단은 일종의 비정부기구입니다. 홍콩에 본부

를 두고 있으며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중동에 진출한 필리핀 출신 이민

노동자들의 권리와 복지를 위해 일하는 조직입니다.

우리는 많은 필리핀 혹은 다른나라 출신 이민노동자들을 돕고 있습

니다. 노동문제, 상담, (해고당하거나 도움이 필요할 경우) 임시거처

마련, 기타 업무대행 등입니다. 우리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은 교

육과 조직화입니다. 우리는 비록 외국에 있지만 필리핀 사회의 일부입

니다. 필리핀 사람들이 외국으로 일하러 가는 것은 필리핀 내부의 문제

에 기인한 것입니다. 전세계 168개국에 8백만의 필리핀 이민노동자들

이 있습니다. 미국에 4백만, 중동에 백만, 유럽에 50만,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2백만명이 일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등 다른 곳에도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필리핀 국내 사회문제로 인해 이주한 사람들입니다. 일종

의 강제이주라고 할 수 있죠.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

가 없어서 나가기 때문입니다. 필리핀에서는 일자리를 찾을 수 없습니

다. 일자리가 있다 하더라도 임금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민은 강요된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리핀 이민노동자들은 용기를

갖고 교육을 받고, 의식화, 조직화 되어야 합니다. 이들도 필리핀 사회

의 변화를 위한 투쟁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민의 근원이 그것이기 때문

입니다.

국제연대 아태사업단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죠.

조 이 아태사업단은 1984년에 건설되었습니다. 그 목표는 이민노동자들을 돕

고 그들을 의식화, 조직화하며 종국적으로는 필리핀 사회운동을 발전

시키는 것입니다. 아태사업단은 전세계 필리핀 이민노동자들의 국제적

동맹체의 아시아 지부입니다. 이민자인터내셔널(MIGRANTE- Inter

national)이 그것이며 캐나다, 중동, 유럽, 이탈리아, 영국, 네덜란

드, 홍콩 등에 지부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재한필리핀노동자단결을

위한 연합(KASAMMA-KO)이 97년에 만들어졌습니다. 10여개 조직의 연합

체로 출범했지만 한국의 경제위기로 인한 외국인노동자 추방으로 현재

는 다섯 개 조직만이 남았습니다.

국제연대 이민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조 이 스페인의 식민지였을 때부터 강제노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스페인

은 포르투갈을 제압하기 위해 해상무역을 확대했습니다. 그들은 경제

적 목적을 위해 식민지를 획득해 나갔습니다. 당시는 자본주의의 태동

기였습니다. 우선 교역이 필요했습니다. 물론 화폐교환이 아니라 물물

교환을 통한 중상주의였죠.

필리핀은 자연자원이 풍부했고 이러한 자원의 약탈은 강제노동을

수반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해외로 이주했던 수백만의 사람들은 모두

다시 돌아왔습니다. 1차 이민물결은 1899년 미국식민지로 편입된 시기

였고 이 또한 자연자원을 수탈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는 제국주

의의 시대였고 미국은 독점자본주의였습니다. 미국은 생산확대를 원했

고 농장노동력을 충원하기 위해 필리핀 민중을 동원했습니다. 이러한

노예노동을 1차 이민물결이라고 부릅니다.

1900년에서 40년대까지 이러한 이민물결이 있었습니다. 2차 이민물

결은 2차대전 이후에 진행되었습니다. 이 때는 전문직종, 즉 교사, 의

사, 기술자들이 유럽으로 향했습니다. 이들이 이민노동력으로 차출된

이유는 그들의 전문적 능력 때문이 아니라 언어구사 능력 때문이었습

니다. 물론 이들은 유럽에서 전문직이 아니라 육체노동에 이용되었죠.

3차 이민물결은 70년대 중동의 석유호황 시기에 이루어졌습니다.

한국도 그렇겠지만 많은 가난한 나라에서 노동자들이 중동으로 향했

죠. 당시 필리핀은 마르코스가 집권하고 있었습니다. 3차 이민물결이

앞선 것과 다른 점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점입니다. 70년대

전에는 독립국이라 하더라도 제국주의의 꼭두각시 공화국에 불과했습

니다. 반식민지 상태였으므로 제국주의 국가들이 직접적으로 노동력을

끌어간 것입니다. 그러나 마르코스는 달랐습니다. 필리핀 국내 생산을

위해 필리핀 민중을 착취하도록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고 정부가 앞장서

서 노동력을 해외에 판매했습니다. 마르코스 집권당시 세 개의 정부청

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필리핀 노동력을 외국에 마케팅하고 중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정부 입장에서는 큰 사업이었습니다. 출국

세, 경찰심사료, 의료진단료 등이 계속 신설되었고, 서류비용, 소개

료, 공항세, 여행세 등등을 대행하는 업체와 정부가 결탁해서 이민노

동자들을 이중, 삼중으로 착취했습니다. 외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국내로 송달하는 임금을 검사해서 세금을 부과하는 일을 전담하는 은

행도 새로 설립되었습니다.

많은 필리핀 여성이 가정부로 일하기 위해 홍콩이나 싱가포르로 나

가는데, 이를 위해서도 정부로부터 인증서를 받아야 합니다. 관청에

가서 세탁기 작동, 진공청소기 이용법 등을 시험보고 인증서를 받는데

이를 위해서 돈을 내야 합니다. 심지어 일본의 가라오케에 취직하는

가수도 돈을 내고 시험을 봐야 출국을 허락합니다. 결국 정부는 이민

노동자들의 품질을 관리하면서 생산물처럼 대합니다. 이들은 정부에게

이윤을 보장하는 상품이기 때문이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필리핀 정부는 독립 백주년 카드를 만들

어서 각국 주재 대사관을 통해 이민노동자들에게 강제로 판매했습니

다. 한국에서는 5천원에 팔았죠. 결국 외국에 나가서 일하는 이민노동

자들은 이중으로 착취받고 있습니다. 해당국 정부에 의해, 그리고 필

리핀 정부에 의해. 이는 가혹한 현실입니다.

국제연대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셨군요. 다시 아태사업단으로 돌아가 봅시다.

외국에서 일하는 이민노동자들을 필리핀 사회운동에 결합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는데, 어떤 경로를 통해서입니까?

조 이 그건 최종적인 거죠. 우리는 이러한 목표를 통해 교육, 조직하는 것입

니다. 타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필리핀 현실을 잊지 않고 사회적

변화를 위한 운동을 지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국제연대 신애국동맹(BAYAN)이라든가 필리핀노총(KMU)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조 이 아태사업단을 비롯한 이민자인터내셔날은 신애국동맹에 속해 있습니다.

재정적으로 많은 후원을 받지는 못하지만, 필리핀 사회의 변화를 위해

외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일조하고자 합니다.

국제연대 그러면 재정문제는 어떻게 해결합니까?

조 이 주로 현지에서 후원을 받습니다. 교회들이 많이 도와주지만 많이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아태사업단의 경우도 상근자는 저 하나입니다.

국제연대 신애국동맹에 대해서 좀더 말씀해 주십시오. 86년의 피플파워에서 주

도적 역할을 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도 전국연합과 같은

통일전선 실험이 있습니다. 현재 신애국동맹의 상황과 몇주전 대선에

서의 활동이 궁금합니다.

조 이 신애국동맹은 민족해방과 민주주의를 위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기

에는 필리핀노총(KMU), 농민총동맹(KMP), 학생조직, 여성조직

(Gabriela) 등 모든 민중운동 조직이 속해 있습니다. 점점더 많은 사

람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공동의 목표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주로

민중들의 교육과 조직화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기반해서

합법적인 민주화투쟁을 벌여나가지요. 신애국동맹은 항상 투쟁의 최선

두에 섭니다.

국제연대 이번 대선에 80여명의 후보가 난립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신애국동맹

은 선거에서 어떤 입장을 취했습니까?

조 이 대통령선거에서 우리의 목표는 민중의 의식화였습니다. 현재 필리핀

체제는 파산했음을 알리고 민중들이 이를 깨닫고 자신의 권리와 민주

주의를 위해 나서도록 하는 것이었죠. 대선에 나온 모든 후보는 친제

국주의, 반민중적이었습니다. 그들은 IMF가 유지되기를 원합니다. 결

국 필리핀과 국제적 거대자본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려 한 거죠. 에스

트라다[신임 대통령]도 민영화, 탈규제, 자유화를 주창합니다. 과거

정부와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그는 필리핀이 2000년 안에 신흥공업국

(NICs), 즉 아시아의 호랑이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어림도 없

는 말입니다.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

과한 것이지요.

국제연대 한국에서도 IMF 상황 때문에 민주노총이 파업을 철회했습니다. 필리핀

에서는 IMF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조 이 IMF 구제금융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마르코스 시기인 1986년에 210억

불의 외채가 있었고 아키노 시기인 1986년부터 92년까지는 280억불,

라모스 집권기인 올해는 440억불에 달합니다. 점점 증가하고 있지요.

이는 단지 IMF 때문이 아니라 세계은행을 비롯한 국제금융기관들 때문

입니다.

국제연대 필리핀의 경우 반외채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외채문제에 대한 조직도 활발히 활동하고요.

조 이 신애국동맹이 물론 앞장서고 있지요. ‘외채로부터의 자유(FDC)’라는

조직은 이전에는 신애국동맹 산하에 있었는데 견해 차이로 탈퇴했습니

다. 그들은 반제국주의적 입장은 아니었습니다.

국제연대 구체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지요?

조 이 신애국동맹은 철저한 반제국주의적 입장입니다. 우리는 독점, IMF, 세

계은행에 경제가 통제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IMF를 완전히

몰아내고자 합니다. 반면 ‘외채로부터의 자유’그룹은 중간적 입장이지

요. 현금상환이 아니라 다른 식으로 갚겠다는 등입니다. 그러나 우리

는 외채상환에 철저히 반대합니다.

국제연대 잠시 얘기가 다른 데로 흘렀는데요. 대선에서 진보진영 후보는 없었는

지요?

조 이 지방선거의 경우에는 그런 후보가 있습니다. 물론 아주 소수이지요.

이와 같은 후보일 경우에 신애국동맹은 이들을 지지하고 선택합니다.

선거에서 우리의 기준은 반제국주의, 친민중입니다. 그러나 대선에는

그런 후보가 없습니다.

국제연대 신애국동맹이 출마시키면 되지 않습니까?

조 이 선거는 지배계급의 게임입니다. 후보를 내더라도 이길 수 없습니다.

통치계급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승리를 추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다수 민중들은 선거에 기대를 걸고 있고, 그것이 신애국동맹이 민중

의 의식을 각성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이유입니다. 또한 신애국동

맹은 정치정당이 아닙니다.

국제연대 좀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문제인데 시간이 별로 없군요. 주제를 한국

에 있는 필리핀 이민노동자들로 돌려봅시다.

조 이 한국에 약 2만2천명의 필리핀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그중 80%가 서류

없는 사람들입니다.[편집자주 : 외국의 경우 ‘불법’이민자라는 말 대

신에 정식 ‘서류가 없는’ 이민자라는 말을 쓴다.] 96년만해도 5만명의

사람이 있었지만 지난번 추방조치로 많이 줄었지요. 서울에 대부분 있

고 대구, 부산, 인천, 의정부, 동두천 등에 주로 있습니다.

국제연대 한국에 있는 연합체는 어떤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까?

조 이 필리핀 이민노동자들의 권리와 복지를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지요. 교

육과 조직에도 주력하고요. 약 3-400명의 회원이 있습니다.

국제연대 다른 외국인노동자들이나 한국단체들과도 연대하고 있습니까?

조 이 물론입니다. 노동상담소나 교회와 많은 협력활동을 벌이고 있고 이를

통해 다른 나라에서 온 이민노동자들과도 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진보적 단체와도 연대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외국인노동자

대책협의회 등을 통해 많은 활동을 벌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국제연대 주요한 투쟁을 소개해 주시죠.

조 이 얼마전 필리핀 대사관이 일방적으로 여권재발급 비용을 인상했습니다.

5만천원이던 것을 12만원으로 기습적으로 인상한 것이지요. 이에 반대

하는 운동을 벌인 결과 9만원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원래 비용으로 복

귀하는 것을 요구했지만 어쨌든 최초의 대중적 투쟁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제연대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습니까?

조 이 보안문제를 이유로 외노협이 신중하게 하자고 제안해서 대사관 앞 시

위는 안했습니다. 물론 더욱 대담한 투쟁을 벌여야 합니다만, 이를 위

해서는 한국 운동진영의 지지와 지원이 필요합니다. 한국에 있는 우리

조직은 아직 시작단계입니다. 높은 수준의 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있지

만 더욱 많은 이민노동자들을 조직해야 합니다.

국제연대 마지막으로 한국 노동자와 활동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조 이 한국사람들이 우리를 이해할 수 있길 바랍니다. 이민노동자들의 문제

말입니다. 이민노동자는 희생자입니다. 필리핀정부나 자본가뿐만 아니

라 한국정부와 자본가들의 희생자입니다. 물론 한국 노동자들도 희생

자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국 자본가와 정권에 의해 착취받고 있으며

우리는 경쟁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경쟁자라는 생각은 자본가들이 주

입한 것입니다. 한국 노동자, 민중과 우리 필리핀 노동자들이 이를 이

해하고 함께 문제해결을 위해 연대하길 바랍니다. 물론 우리도 한국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에 적극 결합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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