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따뜻하고 정답고 안타깝네요. 잘 봤습니다.” “마음이 씻긴 것 같아요.” “좋은 사진, 나풀대는 아이들… 예쁘지만 슬퍼요.” 전시 방명록에 담긴 글들을 읽는 것만으로 우리는 강재훈의 사진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금세 알 수 있다. 10월28일에서 11월9일까지 예정된 전시기간을 닷새 더 넘겨 14일까지 계속된 그의 전시는 그만큼 따뜻한 발길들로 충만했다.

강재훈이 사라져가는 분교들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91년부터. 경남 밀양 천황산 사자평(해발 1천m)에 있는 하늘 아래 첫 학교, 고사리학교를 시작으로 소청도의 소청분교와 노화분교, 시화간척지 우음도의 우음분교, 충남 당진 서해바다의 풍도분교, 태안 앞바다의 마도분교, 경기도 양평 중미산의 명달분교, 강원도 동강의 연포분교, 인제 점봉산의 진동분교, 현리 방태산의 조경분교와 오대산의 갈천분교를 두루 답사했다. 왜 하고많은 소재 가운데 강재훈은 굳이 두메 분교들만을 카메라 앵글에 담아왔을까? 그의 사진은 말한다. 분교들이 거기 있으니까. 그리고 사라져가니까.

60년대 이래 분교가 첩첩산중 후미진 곳에까지 세워진 배경에는 산업화·근대화의 인력자원개발 요구가 강력히 관통된 측면이 있다. 그 분교들이 요즘 계속 폐교되는 것은 그러니까 그 필요가 웬만큼 충족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와 같은 정부의 정책 시행을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라고 한다면 좀 심한 말일까? 하지만 분교들이 사라져가는 데 대한 섭섭함과 아쉬움이 일반 국민들 사이에 적지 않게 남아 있는 만큼 정부가 어느 정도 원망을 듣는 것은 불가피한 일임에 틀림없다.

이렇듯 시대의 안타까움이 담겨 있지만, 강재훈의 사진이 추구하는 바는 그러나 이같은 문제를 노골적으로 폭로하는 데 있지 않다. 그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아이들, 그리고 그들을 축복하는 우리의 산과 들, 그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포착하는 데 일차적인 관심을 두었다. 배움의 터로 학교는 다른 무엇보다 자연을 가르쳐야 한다. 자연을 배우는 아이들은 모든 것을 배운다. 우리나라의 분교는 바로 그 진실을 가장 바람직한 형태로 구현해왔다. 그로 인한 제일 큰 소득이 강재훈의 사진 위에서 환한 웃음꽃으로 피어난 자연의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의 건강한 영혼은 보는 이의 영혼까지 맑게 한다. 자연히 강재훈 역시 인위적인 연출이나 계산된 형식을 삼갔다. 담담하면 담담할수록, 소박하면 소박할수록 더 진하게 다가오는 진실과 인정의 표정을 담은 것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전교생이 다 뛰어도 축구팀 하나 만들기 어려운 아이들, 내에 돌을 내리치는 돌꽝으로 물고기를 잡는 아이들, 기저귀를 찬 조카를 데리고 등교해 어른들의 수고를 덜어주는 아이들, 교실 난로에 고구마를 구워먹는 아이들, 그리고 등하교길이 매일 동창회날 혹은 친목회날인 아이들. 그 아이들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어느날 저 산자락 아래로 완전히 잦아들면 그때 우리는 이제 한 시대가 온전히 저물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쉬워하게 될 것이다. 강재훈은 마지막 앵글에까지 그 음조를 담았다. 물레재를 넘어나오며 뒤돌아본 강변, 조약돌만한 아이들이 커다란 산그림자를 떠받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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