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ㅅ간호대학을 졸업한 정모씨(22)는 간호사다. 그녀는 지금 종 합병원 수술실에서 근무 중이다. 신분은 인턴사원. 지난해까지만 해도 정씨는 중고등학교 동창생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고 한다. 졸업만 하면 안정된 직장을 잡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 정씨가 다닌 대학교 선배들은 졸업 후 자리잡는데 그다지 어려 움을 겪지 않았다. 일단 간호사 자격증만 따면 학교재단이 운영하는 종합병원에 어렵잖게 취직할 수 있었고 성적과 외모가 뒷받침되는(?) 일부 학생들은 삼성병원 등 보수가 좋은 대형 사립병원에 스카우트되 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정씨가 간호사 자격증 시험에 무난히 합격하고 졸업한 올해는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재단이 운영하는 종합병원에 합격했지 만 몇 달씩이 지나도 발령이 나지 않았다. 다른 사립병원에 합격했던 동창생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집에서 발령을 기다리는 동안 지방에서 열리는 어린이 놀이캠프 양호 교사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녀는 졸업 후 반 년이 지나서야 겨우 인 턴사원 신분으로 일을 시작했다. IMF로 경영난을 겪고 있던 병원측이 임금을 줄이기 위해 편법을 동원한 것이다. 일요일 대신 평일에 대휴 를 받고 2~3일에 한번씩 새벽 5시에 출근하는 정씨가 받는 월급은 약 50만원 정도. 야근이 잦은 근무 행태를 감안하면 택시비·점심값을 대 기에도 빠듯한 수준이다.
그나마 아직도 집에서 빈둥거리는 다른 친구들을 생각하면 자신의 처 지가 나은 편에 속한다는 간호사 정씨는 “처음 하는 수술실 근무가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그보다 언제 정식 간호사로 임용될지 모르는 신 분 불안 상태가 더 괴롭다”고 호소했다.
ㄱ대 응용통계학과 출신인 양모씨(26)도 2주 전부터 인턴사원으로 일 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10개월 간 어학연수를 받을 때만 해도 양씨는 자신이 지금 일하고 있는 ㅍ사 인턴사원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 지 못했다고 한다.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을 만큼 성적이 우수했던 그는 과 수석 졸업생 이지만 4.0에 가까운 고학점과 870점이나 받은 토익점수도 입사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금융권이나 대기업은커녕 이름 있는 중소기업 입 사도 생각처럼 쉽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학점 3.0도 안되는 동기들이 정사원으로 입사하던 ㅍ사에 인턴사원 지원서를 냈다. 매일 8시까지 출근하는 양 씨는 한 달에 60만원을 받고 있다. 이름은 인턴사원이지만 막상 교육 기간은 며칠뿐이었고 곧바로 현장에 투입됐다.
요즘 경리보조로 일하느라 눈코 뜰새 없다는 그는 “하숙비 30여만원 을 내고 나면 용돈은커녕 점심값도 모자란다”며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해 일단 들어왔지만 앞으로 1년이나 남은 인턴사원 기간 동안 어떻게 버틸지 모르겠다”고 막막한 심정을 토로했다.
명문대 인기학과 졸업예정자 위주 선발로 한때 ‘입도선매’라는 사 회의 비난이 일자 자취를 감췄던 인턴사원제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인턴사원 100명을 모집한 동원산업에는 1만4천 명의 지원자가 몰려왔을 정도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11월 13일 발표한 ‘인턴사원제 활용 방안’ 보 고서에 따르면 6월 이후 현대·대우 등 12개 그룹이 뽑은 인턴사원은 모두 1,600명. 그룹별로 보면 현대 244명, 대우 164명, LG 265명 등 대 기업 중심으로 200명 이상을 채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도에 따르면 노동부가 목표로 생각하는 인턴사원 수는 약 3만 명에 달한다. 지난해부터 늘어난 취업 재수생과 졸업예정자 30만 명 중 적 어도 10%를 인턴사원으로 ‘취업’시킨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그동안 IMF 구조조정 몸살을 않던 재계가 정리해고다 명예퇴직이다 해서 몸집 줄이기로 일관하자 대졸자 취업률은 예년에 비해 절반 이 하로 떨어졌다. 올 순수취업률은 20% 내외, 졸업생 다섯 명 중 한 명 정도만 직장 구하기에 성공한 셈이다. 이처럼 대졸자의 취업률이 낮음 에도 불구하고 은행 합병을 주도하고 대기업에 빅딜을 요구하는 입장 에서 일방적으로 기업 쪽에만 책임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 정부가 안 고 있는 딜레마.
인턴사원제는 이런 현실을 반영한 정부의 고육지책이라 할 수 있다. 국민에게 부담이 돌아오는 세금을 재원으로 취업률을 높여 사회 불안 을 해소한다는 목적에서 도입한 인턴사원제는 나름의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하지만 짚어야 할 부작용 또한 적지 않다.
정부 훈련비 지원을 악용한 일부 기업들로 인해 일정 기간 업무 능력 을 평가해 본 다음 정사원으로 채용한다는 인턴사원제(Intern)의 본래 취지는 퇴색하고 입사했다가 바로 다시 돌아나가는 ‘인턴사원제 (In-turn)’로 변질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리쿠르트 등 취업 전문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일부 기업의 경우 인턴사원에 대해 근로가 아닌 직무훈련을 시켜준다는 명목을 내세워 노동력 착취에만 관심을 쏟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보조금을 제하고 나면 겨우 10만~30만원만 부담하는 호조건 때문이다.
모 제조업체의 경우 작년에 선발한 신입사원을 퇴사시킨 뒤 올해 다 시 인턴사원으로 선발해 반발을 샀고 일부 제약업체도 인턴사원 교육 은 도외시한 채 영업 일선에 배치해 물의를 빚고 있다. 실제 지속적으 로 인턴사원을 모집하는 업종이 바로 제약업계이기도 하다.
이런 현상은 유통업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ㄴ사의 경우 매장 관리 업무라는 그럴듯한 명목을 내세워 인턴사원을 모집하지만 결국 매장 에서 잡일을 시키는 것으로 일관했다. 열심히 일하면 정사원으로 임용 하겠다는 회사 측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절반 이상의 인턴사원이 몇 달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는 사례가 반복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 8월 인턴사원을 뽑았던 LG유통도 지금 남아 있는 인턴사원은 약 70% 정도뿐이다. 익명을 요구한 회사 관계자는 “실제 교육 기간은 3 일 정도에 불과했다”면서 “인턴사원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해보니 매장 근무가 육체노동이라서 힘들었다는 응답이 많이 나왔다”고 전 했다. LG가 인기 있는 대기업이고 인턴 기간을 마치면 정사원으로 뽑 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는 회사 관계자의 주장을 감안하면 30%에 달하 는 탈락률은 결코 낮지 않은 수치다.
올들어 인턴사원제를 처음 도입한 금융권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달 일간지에는 ㅅ증권사의 공격적 경영이 기사화됐다. 증권가의 내로라하는 거물급 경력직 사원을 잇따라 스카우트하고 자연계 출신 으로 인턴사원을 대거 모집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긍정적 내용 이었다. 하지만 기사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조금 다르다. 경력사 원 케이스는 평가를 유보하더라도 인턴으로 모집한 신입사원의 경우 선물딜러 직종만 모집했기 때문이다.
서울대 자연계와 상경계에만 원서를 돌려 지원자 90명 중 15명을 뽑 았다고 밝힌 ㅅ증권 인사관계자는 합격자 전부가 취업이 약속된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교육 기간이 끝나는 즉시 현장에 투입해 직무 소 질을 파악한 후 최종 결정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실습 기간 동안 회사운영 자금을 맡겨 이중 일정 기준 이상으로 손실을 입힌 사람은 솎아내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ㅅ증권에 근무하는 모 대리 역시 “현직에 있는 선물딜러들도 손해를 내는 일이 적지 않다”며 “전혀 경험도 없는 이들을 현장에 투입해 당장 회사에 수익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단 견”이라고 꼬집었다.
보통 6개월이 넘는 인턴 기간도 많은 이의 불만을 야기하고 있다. 입 맛에 맞는 사람을 골라 쓰겠다는 기업의 입장을 십분 이해한다고 해 도 어차피 공채가 없어지고 상시 모집이나 인턴사원제로 대체되고 있 는 현실에서 수습 기간을 6개월 이상 유지한다는 것은 너무하다는 주 장이다.
노동부 훈련정책과 관계자에 따르면 인턴사원의 신분은 훈련생이다. 근로자가 아니므로 당연히 산재보험의 피보험자가 되지 못한다. 현장 실습생이건 훈련생이건 산업재해 보장보험은 OJT 기간에만 가입하도 록 지시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1년 가까이 실무를 담당한다고 해도 의료, 고용, 국민연금 등 3대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처지다.
정부도 인턴 기간이 끝난 뒤의 채용 문제에 대해선 간섭하지 못하고 단지 권고하는 정도라고 분명히 못박고 있다. 그만큼 인턴사원의 신분 은 불안하다. 지원생 사이에 기간이 길다는 불만이 나오는 것도 인지 상정.
그렇다면 기업 쪽에서는 인턴사원제를 환영할까. 반드시 그런 것도 아 니다. 기업은 인턴사원제가 무엇보다 법에서 규정한 근로자 해고 회 피 노력과 상충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경련 최정기 차장은 “정부는 단순한 직무훈련생으로 규정한다지만 기존의 대법원 판례를 참조하면 인턴사원제 도입은 해고 회피 노력을 다하지 않은 것으로 판정될 수 있다”며 “이미 해고를 실시한 경우에도 해고자 우선 재고용 의무 노력을 둘러싸고 노조와 갈등을 빚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실제 지원 금액이 미비해 인센티브가 없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얼마전까지 인턴사원 채용업체는 현장 훈련과 집체 훈련에 대해 각각 37만원, 8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었지만 실제 지원 금액은 이에 훨 씬 못미쳤다.
이에 대해 효성 그룹 손모 부장은 “정부가 말로는 30만원 지원을 약 속했지만 노동부에 서류를 접수하고 막상 훈련을 시작하려니 이제 와 서 훈련비를 대학 쪽에 직접 지원하겠다고 말을 바꾸는 등 우왕좌왕 하고 있다”고 거들었다.
적어도 인턴사원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정리해고 등의 문제가 없는 기업이어야 한다. 인턴 기간이 끝난 뒤 그들을 채용할 만한 여력이 있 는 기업이라면 더욱 좋다. 우수인력이 인턴사원으로 몰려들자 회장이 직접 면접에 참가하는 등 성의를 보였던 대상그룹이 그 예다.
IMF 이전 인력구조 조정을 마쳐 직원 사이에 감원에 대한 위기의식이 없는 상태라고 밝힌 대상 관계자는 “커다란 결격 사유가 없으면 모 두 채용한다는 회사 방침에 고무된 때문인지 인턴사원들 역시 교육에 열의를 보이고 있다”며 “인턴사원제를 도입하면서 정부 보조금까지 받을 수 있어 회사 입장에선 일석이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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