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19일 서울 수유리 4·19묘역에는 보랏빛 물결이 출렁였다. 이곳을 찾은 김대중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모여든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회원들의 머리에 얹힌 보라색 스카프 때문이었다. 그날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회원들도 소녀처럼 들뜬 박수를 쳤다. 그들은 감격어린 표정으로, ‘양심수’ 출신의 새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감옥문이 열리고 뚜벅뚜벅 걸어나오는 자식들의 모습이 겹쳐졌는지도 모른다.

목요집회를 끝내고 싶다

그러나 그뒤 1년이 다된 지금까지도 매주 목요일이면 탑골공원 앞에는 보라색 물결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 11월26일 오후 2시 양심수 석방을 위한 목요집회가 어김없이 시작됐다. 이날로 256회째. ‘아빠, 보고 싶어요’라는 피켓 아래 10여명의 민가협 회원이 고난과 희망의 상징이라는 보랏빛 머릿수건을 쓰고 서 있었다. 그 대열에 조순선(72)씨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가슴엔 14년을 헤어져 살아온 넷째아들 강용주(36)씨가 들어 있었다.

“용주야, 의사가 되면 첫째로 없는 사람 치료해주고 둘째로 밤에 문 두드리면 열어줘야 한다.” “어머니, 저는 무의촌에 갈래요.”

그때 조씨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들을 말리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전남대 의대를 다니던 아들은 운동권 학생이 됐다. 군사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80년대 초였다. 그때도 조씨는 아들을 말리지 못했다. 5·18 광주학살이 고교 3년생이던 아들의 마음에 새겨놓은 멍자국을 이미 보았기 때문이다.

아들은 시민군에 가담했다. 어머니는 광주 시내의 시체란 시체는 모두 들춰보고 다녔다. 그해 5월26일 오후 집에 들어온 아들은 저녁상을 받아 먹은 뒤 교련복을 갈아입고는 어머니에게 큰절을 올렸다. 어머니의 만류를 물리치고 “광주는 누가 지키느냐”며 나간 아들은 전남도청이 계엄군에 진압된 뒤 용케도 살아 돌아왔다. 하지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아들은 학교도 자퇴하고 방황의 세월을 보냈다.

아들은 85년 7월1일 안기부에 연행됐다. 36일 동안의 조사를 거치자 그는 ‘간첩’이 됐고 변호사도 선임하지 못한 채 진행된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안기부 조사과정에 대한 그의 증언은 이렇다. “안기부에 도착하자마자 군복으로 갈아입힌 뒤… 옷을 벗은 상태에서 몽둥이로 허벅지 때리기, 성기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몽둥이로 내려치기… 자술서를 수도 없이 베끼고 시도때도 없이 맞으면서 외우다보니 나중엔 어느 것이 조작된 내용인지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지경….”

‘국민의 정부’에서 행해지는 공안사건 조사과정은 어떤가. 물론 독재정권 시절과는 크게 달라졌다. 10년 전 강씨가 당했던 당시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은 많이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권이 충실히 지켜진다고는 말할 수 없다. 여전히 억지와 강압이 끼어들고, 연행과정에서도 미란다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등 불법행위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 11월 초 경찰청 대공분실로 연행됐던 민족통일애국청년회(민애청) 회원들이 전하는 조사과정을 들어보자.

“11월3일 연행된 뒤 다음날 변호사를 만날 때까지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미리 준비한 자료를 베껴 자술서를 쓰도록 했다. 이런 일을 한 적이 없다고 하자 ‘X 같은 년’ 등 폭언을 퍼붓고 조서를 얼굴에 집어던졌다.”(서아무개씨·28·여)

“미리 상세히 적어놓은 질문내용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하게 하면서 사실 여부를 다그쳐 물었다. 작성된 조서도 제대로 읽어볼 시간을 주지 않았다.”(홍아무개씨·32)

“공작금을 주겠다며 프락치 활동을 권유했다.”(이아무개씨·28·여)

이들은 “경찰이 우리 모임의 규약에 들어 있는 자주·민주·통일이라는 문구를 북한의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과 연결시키려 하는 등 끼워맞추기식 수사를 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구속영장이 신청된 9명 가운데 6명의 영장을 기각하는 이례적인 결정을 내렸다.

강용주와 차명숙의 만남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을 맞는 지금, 우리나라의 인권 현실은 이렇듯 여전한 회색빛이다. 경북 안동에서 전해지는 두사람의 이야기는 현실의 슬픔을 잔잔히 말해준다.

차명숙(38)씨. 그는 5·18 광주항쟁에서 전옥주(49)씨와 함께 활동했던 가두방송 요원이었다. 80년 5월22일 전씨와 함께 체포된 차씨는 혹독한 고문 끝에 간첩죄를 쓰고 15년형을 선고받았다. 이듬해 성탄절 특사로 풀려난 뒤 평범한 생활을 하다 결혼해 86년 안동에 왔다. 성당에 다니며 결손가정 아이들을 돌보는 게 그의 일이다.

그는 3년 전 강용주란 이름을 들었다. 고교 3년생으로 시민군에 참여했던 젊은인데 학생운동을 하다 간첩 혐의로 붙잡혀 11년째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도 내 방송을 들었겠거니…’하는 생각에 모른 체할 수가 없었다. 이들은 어느새 ‘동생’ ‘누나’로 부르는 사이가 됐다.

“어제 면회를 했는데 예전하고 달리 우울한 빛이 보이더라고요. 성탄절에도 (사면될) 희망을 안 갖는 것 같아요. 그래도 준법서약서 안 쓴 것에 미련은 없어 보여요. 평소에 만기(강씨는 93년 20년형으로 감형됐다) 채우고 나오면 인권문제를 공부하고 싶어하던데, 어제는 요즘 사회가 어려우니까 그런지 노숙자나 결손가정처럼 밑에서 뭔가 하고 싶은가봐요. 용주가 지난 여름에는 영치금으로 들어온 얼마를 모아 수재민돕기 성금도 냈거든요.”

강씨의 만기는 2006년이다. 어머니 조순선씨가 그때까지 건강히 생존하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자기 한몸 돌보지 않고 군사독재에 저항했던 두사람이 안동교도소 접견실에서 서로의 불행한 삶을 쓰다듬고 있을 때, 독재정권의 혀와 수족이 됐던 정치인 언론인 관료 검·경찰 관계자들은 과거와 다름없는 권한과 지위를 누리며 살고 있다. 이것이 저물어가는 1998년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이다.

지금도 강씨를 포함한 수인 249명(10월21일 현재 민가협 집계)의 자유를 옥죄고 있는 국가보안법은 국제사회로부터 수도 없이 개폐를 권고받은 ‘악법’이다. 국민의 78%가 개폐해야 한다고 여기는 법이기도 하다(11월26일 <한겨레> 여론조사). 50년 전 유엔총회가 선포한 세계인권선언은 “‘법의 지배’에 의해 인간의 권리가 단단히 보장돼야 한다”고 천명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법이 인권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꽃이 더 아름답다’

세계인권선언은 “사람은 누구나 사상·양심 및 종교의 자유를 누리며… 강론·행사·예배 및 의식의 형태로 자기의 종교 또는 신념을 밝힐 자유가 있다”(18조)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모든 민주주의 국가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가치다. 조용환 변호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다수가 선택한 정치 질서를 평화적으로 유지하고 다음 선거에서 새로운 다수가 역시 평화적인 방법으로 그들이 원하는 정치 질서를 수립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구실을 할 뿐이다. 어떤 진리, 어떤 가치를 믿느냐는 것은 개인의 자유에 속한 문제이며 국가가 어떤 정치 질서나 사상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권력이 가치판단을 독점한다면 국민 모두가 ‘국가가 공인하는 생각’만 가져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고 자연스럽게 국민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제도화한다. 이는 분명 자유민주주의 원칙과 어긋나는 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거나 잊고 지낸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국가가 개인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이 뿌리깊게 우리 의식 속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가가 공인하는 가치란 사실상 몇몇 권력층의 이익을 위한 것일 때가 많다. 국가보안법이 과거 독재정권의 민주화운동 탄압도구로 사용됐다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최근에는 민주화 분위기에 위협을 느낀 옛 공안세력이 존립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낀 나머지 공안사건을 무리하게 엮어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개인에 대한 국가권력의 횡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무차별한 불심검문과 총기사용 등 공권력 남용, 최근 사회문제화한 불법도청, 안기부의 고문논란 등이 그 몇가지 예다. 법원이 감청영장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겠다고 나서자 검찰이 수사에 지장이 있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국가기관은 국민의 위에서 지배하는 것이라는 뒤떨어진 인권의식을 단적으로 드러낸 일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권력의 배려는 지나치리만큼 적다.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우리 인권 현실의 또다른 단면을 보여준다. 술집 접대부 생활로 간질환을 얻은 10대 소녀 사망, 생활고에 시달린 50대 가장이 자녀 3명을 목졸라 숨지게 하고 자살, 출입국관리소 직원들 불법체류 조선족 형제 집단구타, 공원에서 잠자던 50대 노숙자 동사…. 이들은 모두 세계인권선언 첫머리가 말하듯 “타고난 존엄성과 남에게 넘겨줄 수 없는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존엄성과 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이었다.

256회 목요집회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로 막을 내렸다. 함부로 꺾을 수 없는 생명과 짓밟을 수 없는 고귀함으로 인해 사람은 지구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노래가 흐르는 동안 수많은 노인과 청년,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신사와 노숙자, 정상인과 장애인 들이 무심한 표정으로 탑골공원 앞을 지나쳤다. 아직은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꽃이 더 아름답다’고 가르친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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