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개석이 이시영 임시정부 전부통령에게 한 질문
“역사는 제대로 아시고 독립운동하시는가요?”
중경(重慶)으로 후퇴한 장개석(蔣介石)총통이 함께 피난 온 상해임시정부일행을 위로한 초대만찬에서 자기 고향(양자강남쪽 절강성)이 옛 백제 땅이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우의를 다졌다는 일화…
대륙백제를 인정한 큰 중국인들 :임어당과 서량지, 장개석 등등
이시영도 김구도 몰랐던 대륙조선사의 정체와 왜곡
박민우
“우리나라 초대 문교부장관을 역임한 안호상(1902-1999)박사가 문교부장관 재직시에 중국의 저명한 문학자이며 평론가인 림어당(1895-1976) 선생을 만나 여담으로 “중국이 한자를 만들어 놓아서 한자를 사용하는 우리 나라까지 문제가 많다”고 하자 림어당 선생은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한자는 당신네들 東夷族 조상이 만든 문자인데 그것도 모르고 있소?“라고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한글재단 이사장인 한갑수 박사가 미국 공군지휘참모대학에 입교했을 당시 같은 입학생인 중국 학자 서량지(徐亮之)가 한박사를 찾아와 말하기를 “귀국 한민족은 우리 중국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위대한 민족인데 우리 중국인이 한민족의 역사가 기록된 포박자(抱朴子)를 감추고 중국역사를 조작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으므로 본인(서량지)이 학자적 양심으로 중국인으로서 사죄하는 의미로 절을 하겠으니 받아달라며 큰 절을 올렸다.”
1930년대 장려화와 그 문하생들의 노력으로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이 편찬되면서 우리 조선의 역사가 완전히 중국인의 입맛에 맞게 조작되었으며 해방후 백화사기의 편찬으로 다시한번 조선의 역사는 지나인들에 의하여 삭제 왜곡 조작이 되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위에 림어당, 서량지 같은 학자들은 그나마 양심이 있어서 자기들이 역사를 수정하였노라고 실토하고 있지 않습니까? 서량지 같은 사람은 그의 저서 중국사전사화를 통하여 모든 중국의 역사를 동이족의 것으로 인정하였던 사람입니다. 그 말이 사실 이라면 1930년대 미국에서 출세한 중국인 학자들과 해방후 홍콩 대만 등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조선역사말살작업이 진행되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장개석 총통과 대륙 백제 이야기
김현태
일찍이 단재 신채호 선생은 중국의 역사왜곡과 날조를 통렬하게 비판한 바 있거니와 이러한 비판은 오늘날에도 고스란히 유효하다고 강조되어야 마땅하다.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해서는 주은래(周恩來) 전수상도 지적한 바 있다.
주 전수상은 동북 지역의 역사가 조선인에게 귀속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인식 또한 시대상황에 따른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중국 지도층의 역사인식과 관련해서 백범 김구 선생의 일화가 문득 머리에 떠오른다.
일제의 대륙침략에 따라 중경(重慶)으로 후퇴한 장개석(蔣介石) 총통은 함께 피난 온 상해임시정부의 김구 주석 일행을 위로하기 위해 만찬에 초대했었다고 한다.
이때 장 총통은 자기 고향이 옛 백제 땅이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우의를 다졌다고 한다. 장 총통은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는 동지적 입장에서 이런 역사인식을 말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들은 김구 주석은 충격과 함께 자괴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고 뒷날 술회한 바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백제가 중국 땅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김구 주석은 전혀 알지 못했었다고 한다.
장개석의 고향은 양자강(揚子江) 남쪽 절강성(浙江省)이므로 옛 백제는 양자강 이남지역까지 지배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서량지나 임혜상 같은 양심있는 중국사학자들은 중국역사의 상고사는 한민족의 역사라 말한다.
그리하여 가시마 노보루같은 일인학자는 한(漢)족은 기껏해야 한(韓)을 흉내내어 이름붙인 것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상고사는 밝혀져야 한다. 중국의 식자층은 양자강 유역이 전통적으로 동이 9족의 것임을 너무도 잘 안다.
장개석은 이 사실을 너무 잘알고 있어서 임정의 이시영 전 부통령에게 역사는 제대로 알고 독립운동하시는가 하고 물었던 것이다. 한데 오늘날의 우리나라 역사교과서에는 어느 한구석에도 이런 기록이 없다. 오늘날의 역사교과서 뿐만 아니라 김구 주석이 듣고 배웠던 당시의 역사책에도 이런 기록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 기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하게 왜곡되었음을 반증해 주는 하나의 예증에 불과하다.
[지은이/옮긴이] 박민우, 시대소리 역사연구가
[출전 : 시대소리웹진 역사방 www.sidaesori.co.kr ]

[고조선 초기 중기 지도]
점점이 찍여져 있는 부분이 고조선의 중심지역으로 추정되는 지역 – 진한(辰韓)
남한지역 즉 마한(馬韓)은 역시 [고조선 연방]의 일원이었으나 남방식 고인돌을 주로 만드는 등 독자적인 지방자치지역의 성격도 강했다. 단군왕검께서는 삼한(三韓-마한 진한 변한)의 지도자로 추대되신 것.)
약 4천 2백년전에 쓰여진 책이라하는 산해경(山海經)이라는 중국 고대 책이 있다.
후대에 학자들이 원문에 해설을 붙여놓았다.(약 1천 7백년전 인물인 중국 진(晋)나라의 학자 곽박(郭璞) 등) 그 산해경(山海經)에 보면 고조선에 대한 글들이 나온다.
[산해경(山海經) 해내북경(海內北經)]
조선(朝鮮)은 열양(列陽)의 동쪽에 있는데 바다의 북쪽이고 산의 남쪽이다. 열양은 연나라 땅이다.
[원문 – 朝鮮在列陽東 海北山南 列陽屬燕]
[산해경(山海經) 해내경(海內經)]
동해의 안쪽, 북해의 주변에 나라가 있으니 조선천독(朝鮮天毒)이라 한다. 그 사람들은 물가에 살고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한다. [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 名曰 朝鮮天毒 其人 水居 ?人愛之]
(여기서 [동해]란 [중국의 동해] 즉 우리가 말하는 [서해(황해)]이고 여기서 [북해]란 [발해] 즉
[서해 위 바다]를 말한다.) 위 글에 대하여 중국 진(晋)나라의 학자인 곽박[郭璞, 276~324]이 해설을 했다.
(郭璞云:「 天毒?天竺國 貴道德 ,有 文書 金銀 錢貨 浮屠出此國中也 。晉大興四年 天竺胡王獻珍寶 。 」)
[해석]
곽박이 말한다.[ (조선천독(朝鮮天毒))의 천독(天毒)이라는 말은 천축국(天竺國)이라는 얘기다.(天毒?天竺國) 도덕(道德)을 귀하게 여겼고 문자, 금은(金銀), 돈(錢貨)이 있었다.( 貴道德 有 文書 金銀 錢貨)]
곽박의 말은 고조선에 대한 극찬이다. 천축국(天竺國)의 竺 자는 [독 (두터울 독)]으로도 읽힌다.
그러므로 [천축국(天竺國)]은 [천독국]으로도 읽힌다.천축국이라는 말은 [이상적인 나라] 즉 [낙원]을 뜻한다. 그러므로 곽박의 말은 산해경 원문에 그냥 [조선]이라 쓰지 않고 [조선천독(朝鮮天毒)]이라 쓴 것은 고조선이 [낙원]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
곽박이 계속 말한다.
[浮 屠 出 此 國 中 也 。 晉 大 興 四年 , 天 竺 胡 王 獻 珍 寶 。]
[해석]
[부도(浮屠)가 이 나라(조선)에서 나왔다. (浮屠出此國中也)
진(晉)나라 대흥4년(大興四年)에 천독(天竺=천축)국의 호왕(胡王)이 진귀한 보물은 선물했다.(天竺胡王獻珍寶)]
곽박이 [호왕(胡王)]이라는 표현을 쓴 것을 보면 곽박은 고조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호(胡)]라는 지명은 [중국의 동북부]이기 때문. (요동,요서 지방 등) 그런데 곽박은 [천축호왕(天竺胡王)]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는 곽박이 고조선을 천축국이라 확실히 보고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곽박은 [부도(浮屠)가 이 나라(조선)에서 나왔다.]고 했는데 부도(浮屠)란 원래 부다(붓다=부처), 불교를 뜻하는 말이다.
곽박은 고조선에서 붓다(부처)가 나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고조선에 대해서 단정적으로
1. 천독(天毒)이라는 말은 천축국(天竺國)이라는 얘기다.
2. 도덕(道德)을 귀하게 여겼다. (貴道德) (여기서 도덕(道德)은 진리(眞理)를 뜻한다.)
3. 부도(浮屠 – 붓다)가 이 나라(조선)에서 나왔다.
4. 천축호왕(天竺胡王 – 천축국 호왕(胡王 – 중국 동북부 즉 요동,요서, 만주를 다스리는 왕 )
곽박은 당대의 유명한 학자다. 그러한 학자가 고조선이 천축국이라고 하고 있다. 도대체 곽박은 왜 그랬을까. 곽박 뿐만이 아니다. 왕념손(王念孫)도 덧붙여 말한다.
” 홍명집(弘明集 – 불교 서적)에 보면 [ 옛말의 천독(天毒)이라는 말은 천축(天竺)을 말한다.(古謂天毒?天竺) 부처(불도)가 흥한 곳이다.(浮屠所興)]라고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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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王念孫云 :「 宗炳明佛論(弘明集 卷二??珂)引注文:『 古謂天毒?天竺 ,浮屠所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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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왕념손(王念孫)도 곽박의 말이 맞다고 하면서 홍명집(弘明集)이라는 약 1천5백년전 중국 양나라때의 유명한 불교서적을 인용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4천2백년전 [산해경 원문]에서도 불교가 [만주 배달문명]에서 나왔다고 [조선천독(朝鮮天毒)]이라는 말을 쓰고 있으며 1천5백년전 중국의 불교인들도 역시 [불교가 원래는 [만주 배달문명]에서 나왔다.]고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다들 아시듯이 대강 수십년전부터 요녕(요동,요서) 지역에서 황하문명보다 천년이상 빠른 문명이 발굴되었다. 이른바 [범 홍산문화] ( 약 6천년전 ~ 4천2백년전)
이 [범 홍산문화]의 발굴은 중국 역사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고 이들은 이러한 사실이 알려질까봐 쉬쉬하면서 고민고민하다가 결국 소위 [동북꽁정]이라는 것을 감행하게된다.
[동북문명] 즉 [홍산문명] 즉 [환웅(한웅) 배달문명]의 발굴은 그 유물들이 한민족의 전통유물 즉 빗살무늬토기, 돌무덤, 돌관, 비파형청동검이 쏟아져 나옴으로 해서 사실은 이 문명이 전해져서 생겨난 것이 황하문명이라는 사실로 드러나고 그러므로 사실은 고대에 한민족이 원시중국에 문명을 전해줬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어
중국 지식계를 실로 심각한 충격에 빠뜨렸던 것. 그리고 이러한 발굴은 일부 중국 찌식인들이 [동북꽁정] 즉 [만주역사가 중국꺼라고 결사적으로 왜곡하기]라는 [최후의 바락]을 하게 만들었다.^^
약 6천년전 [환웅 배달국] 시작, 약 4천3백여년전 단군왕검께서 고조선 건국
그런데 이 [동북문명] 즉 [배달문명]에서 발굴된 유물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홍산문화]지역에서 출토된 여신상. ( 5천년전 것)
삼국유사에 [웅녀]로 표현된 [곰 토템(상징)족 여성 지도자]의 인물상.
가부좌를 튼 채 두손을 다소곳이 모은 이러한 형상은 중국 다른 지역에서는 출토되지 않는 것인데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다. 바로 불교의 수도법 중 하나인 [가부좌]와 [손모으기]!
석가모니께서는 3천년전 분인데 이 여신상은 그보다 2천년 더 전인 5천년전 것이다.
즉 석가모니께서 불교를 일으키기 수천년전에 고대한국(환웅 배달국)에서는 이미 불교가 있었다는 얘기.
흔히 전해오는 [전불(前佛)시대] 즉 한국에 인도불교가 전해지기 이전에 있었다는 [전불(前佛)시대]이야기는 이렇게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할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 당대의 유명한 학자였던 곽박이 그토록 단정적으로 ” 고조선(배달국 포함)은 천축국이다. 불교(붓다=부처)는 고조선에서 나왔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즉 [해동공자 최치원]이 [난랑비서문]에서 ” 우리나라에는 고대에 신교(神敎)가 있었는데 이는 유불선(儒佛仙)의 뿌리이다.” 라 했던 것이 다 그 이유가 있다 하겠다.
<삼국유사:아도기라(阿道基羅)>를 보면, 고구려의 아도화상(阿道和尙)의 어머니 고도령(高道寧)이 그의 아들 아도를 신라에 보내면서 말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이 곳 고구려는 불법을 알지 못하나, 그 나라(신라)의 경도(京都) 안에는 절터 일곱 처가 있으니, 이는 모두 전불시(前佛時)의 절터니라”인데, 여기서 일곱 처는 흥륜사(興輪寺), 영흥사(永興寺), 황룡사(黃龍寺), 분황사(芬皇寺), 영묘사(靈妙寺), 천왕사(天王寺), 담엄사(曇嚴寺)를 가리킵니다.
또 고려 충숙왕 15년에 인도의 108대 조사(祖師)인 지공선사(指空禪師)가 양주(楊州) 천보산(天寶山) 회암사(檜巖寺)에 와서 그 절터를 둘러보고 말하기를, “상세7불(上世七佛) 시절의 대가람(大伽藍) 터이다”라고 얘기를 한 것이 있습니다.

알타이 파지릭 고분에서 발굴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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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고인돌의 종주국]이다. 세계 고인돌의 반 이상(2/3)이 한반도에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인돌도 한국에 있다. (전남 화순) 그러므로 위지도에서 보이듯이 한국의 고인돌이 주로 바닷길로 일본, 동남아, 인도 등지로 퍼져나갔다고 볼 수 있으며 고인돌과 함께 난생신화(훌륭한 인물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신화)가 퍼져 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인돌 지역과 난생신화 지역이 일치)

신교(神敎)는 7500년동안 우리민족의 국교였고 지금까지도 면면히 흘러 내려오고 있는데, 그 맥을 얘기해 보겠습니다. 유 불 선의 모체가 된다는 사실이 최치원(崔致遠) 선생이 쓴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에 있습니다. 난랑이라는 화랑에게 지은 글인데 그 내용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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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崔致遠)의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 중에서>
國有玄妙之道 曰風流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말하기를 풍류라 한다. 說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 三敎 接化群生 이 종교를 일으킨 연원은 선사[仙家史書]에 상세히 실려 있거니와, 근본적으로 유 불 선 삼교를 이미 자체 내에 지니어 모든 생명을 가까이 하면 저절로 감화한다. 且如 入則孝於家 出則忠於國 魯司寇之旨也 집에 들어온 즉 효도하고 나아간 즉 나라에 충성하니, 그것은 노사구(공자)의 교지(敎旨)와 같다.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하염없는 일에 머무르고 말없이 가르침을 실행하는 것은 주주사(노자)의 교지와 같다. 諸惡莫作 衆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모든 악한 일을 짓지 않고 모든 선한 일을 받들어 실행함은 축건태자(석가)의 교화(敎化)와 같다. |
공자가 노나라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냈습니다. 당시 그것을 사구라고 했기 때문에 노사구는 공자를 얘기하는 겁니다. 공자가 우리 신교의 사상 중에서 입즉효어가하고 출측충어국하는 사상을 자기의 종지로 삼았습니다.
주나라에 주사라는 벼슬이 있었습니다. 주사는 도서관 직원을 가리킵니다. 노자가 주나라에서 도서관 직원을 했어요. 그래서 주주사는 노자를 얘기하는 겁니다. 노자도 역시 신교의 사상 중에서 하나를 절췌해서 자기의 사상으로 삼았습니다.
석가모니 역시 우리 신교사상에서 하나를 가져가 자기의 종지로 삼았던 것입니다.




유교에 대해서 먼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공자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기술을 한 것이지 창작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공자는 누구의 사상을 기술했느냐, 중용 30장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仲尼 祖述堯舜 憲章文武 ‘, 즉 중니(공자)는 요순의 가르침을 기술했으며 문무의 도를 법으로 삼아서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자가 요순의 도를 이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여기서 말하는 요임금은 황제헌원의 고손자로서, 황제헌원이 현효를 낳고 현효가 제곡고신을 낳습니다. 이 제곡고신의 아들이 바로 요임금입니다.
황제헌원은 사기 13권을 보면, ‘黃帝生於白民 自屬東夷’라 해서 동방의 백민에서 출생을 했다고 되어있습니다. 환단고기에 보면, 황제헌원은 배달국 8대 안부련 환웅 때 이복형인 신농씨와 함께 동이족에서 분파해 오늘날 중화족의 정신적 시조가 됩니다.
순임금인 경우 맹자가 말하기를 ‘舜生於諸風 遊於負夏 卒於鳴條 東夷之人也’, 즉 순은 제풍에서 태어나 부하에서 살다 명조에서 죽었으니 동이인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나오는 지명인 제풍, 부하, 명조는 모두 동이족의 땅이었습니다.
참고로, 요임금과 순임금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서경에 ‘東巡望秩 肆覲東后’라 해서, 순임금이 동쪽으로 순행하여 산천에 제사지내고 ‘동방의 임금을 뵈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사근동후에서 근(覲)은 {강희자전}에 하현상(下見上), 즉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뵙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동후(東后)는 단군왕검을 말합니다. 즉 고조선의 제후 순은 동방의 천자인 단군왕검을 찾아뵈었다는 뜻입니다.
공자 자신도 사실은 동이족입니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상(上)]을 보면, “나(공자)는 은(殷)나라 사람이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공자가 태어난 곡부(曲阜)지역의 산동성 일대에서 살던, 흰옷을 입고 백색을 숭상한 은족(殷族)이 전형적인 동방조선족 계열의 동이족이라는 사실은, 현대의 중국학자 서량지나 임혜상이 인정한다는 것을 아까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이처럼 유교의 뿌리는 따지고 보면 전부 우리나라입니다.




다음은 불교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가 인도에서 만든 불교를 최초의 불교라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석가모니 부처 이전에 초대 구류손 부처, 2대 구나함모니 부처, 3대 가섭 부처가 있었습니다. 석가 부처는 네번째 부처입니다.
그런데 이 전불(前佛)시대의 유적이 우리나라에 굉장히 많습니다. <삼국유사:아도기라(阿道基羅)>를 보면, 고구려의 아도화상(阿道和尙)의 어머니 고도령(高道寧)이 그의 아들 아도를 신라에 보내면서 말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이 곳 고구려는 불법을 알지 못하나, 그 나라(신라)의 경도(京都) 안에는 절터 일곱 처가 있으니, 이는 모두 전불시(前佛時)의 절터니라”인데, 여기서 일곱 처는 흥륜사(興輪寺), 영흥사(永興寺), 황룡사(黃龍寺), 분황사(芬皇寺), 영묘사(靈妙寺), 천왕사(天王寺), 담엄사(曇嚴寺)를 가리킵니다.
또 고려 충숙왕 15년에 인도의 108대 조사(祖師)인 지공선사(指空禪師)가 양주(楊州) 천보산(天寶山) 회암사(檜巖寺)에 와서 그 절터를 둘러보고 말하기를, “상세7불(上世七佛) 시절의 대가람(大伽藍) 터이다”라고 얘기를 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 더 든다면 화엄경에 바다 건너의 동방나라가 불교의 종주국임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화엄경> “해중(海中)에 금강산(金剛山)이 있는데 옛적부터 모든 보살들이 그 산 중에 살고 있다. 현재도 법기(法起)라는 보살이 1,200명의 보살의 무리를 거느리고 금강산에서 상주하며 불법을 강설하고 있다.” |
법기는 중국 동진(東晉)시대(317-419) 사람으로서 ‘옛적부터’는 동진시대 이전, 즉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기(372) 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도교에 대해서도 말해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중국도교는 황노교(黃老敎)라고 합니다. 황제는 아까도 얘기했듯이 그 혈통이 우리 배달국에서 갈라져 나갔습니다. 갈홍(葛弘) {포박자(抱朴子)}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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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박자(抱朴子)>
昔有黃帝 東到靑丘 過風山 見紫府先生 受三皇內文 以劾召萬神 황제가 청구에 와서 풍산을 지나다가 자부선생을 만나 삼황내문을 받아 만신을 부렸다 |

부연하자면 일찍이 황제는 14대 자오지 천황(치우천황;서기전 2707-2599) 때, 배달국의 수도인 청구(靑邱: 오늘날의 요령성)에 이르러 풍산(風山)을 지나다가 삼청궁(三淸宮)에 들러 치우천황의 국사(國師)인 자부선사(紫府仙師)를 뵙고 가르침을 받았으며, {음부경}이라 불리우는 {삼황내문}을 전수받습니다.
이것은 황제 학문의 맥 자체가 우리 동방에 뿌리를 두고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노자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겠습니다. {환단고기} [태백일사(太白逸史)]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계미(B.C. 518년)에 노인(魯人) 공구(孔丘)가 주(周)에 가서 노자(老子) 이이(李耳)에게 예(禮)를 물었다.
이(耳)의 아버지의 성(姓)은 한(韓)이요, 이름은 건(乾)이며, 그 선조(先祖)는 풍인(風人)인데 서쪽으로 관문(關門)을 나가 내몽고를 경유하여 아유타에 이르러 그 백성을 교화하였다.’




기독교도 그 뿌리가 있습니다. 슈메르 연구학자인 S.N 크래머 교수가 자신의 저서인 ‘역사는 슈메르에서 시작되었다(History Begins At Sumer)’에서 지적했듯이, 서양에 있어서 최고(最古)의 문명은 슈메르 문명입니다.
사실 서양 역사가들에게 이 슈메르 문명은 최대의 의문사(疑問史)입니다. 슈메르 문명을 건설한 민족이 어디서 왔는가, 원래 원주민인가 아니면 아프리카에서 왔는가, 유럽에서 왔는가 인도에서 왔는가 등등. 지금은 동방에서 왔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졌습니다.
환단고기 삼성기전 하편을 보면 환국에는 12환국이 있었는데, 그 중 바이칼호 서쪽에 위치한 나라가 수밀이국(須密爾國, Sumer)과 우루국(虞婁國, Ur)이었습니다. 수밀이국과 우루국 사람들이 알타이 산맥을 넘어 중앙아시아를 지나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가서 문명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슈메르 민족이 사용하던 설형문자는 태호복희씨가 사용했던 8괘와 흡사하며, 언어도 한국어와 같은 교착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서양 기독교(유대교)문화의 뿌리되는 아브라함의 고향은 바로 슈메르 문명이 자리잡고 있던 갈대아 우르(Ur)입니다. 그가 아버지 데라를 따라 서기전 1950년경 우르를 떠나 유프라테스 강의 줄기를 타고 북쪽으로 하란을 거쳐 가나안에 이주하는 과정에서, ‘강을 넘어온 사람’의 뜻으로 헤브루인이라 불리우게 된 것입니다.
또 유대족이 황인종, 그 중에서도 몽골인과 근접한 유전자를 가지고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기독교의 모체 문명의 뿌리는 바로 우리 환국문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삼일신고(三一神誥), 천부경(天符經), 참전계경(參佺戒經)이란 책이 있습니다. 그런데 삼일신고의 제2장을 보면 ‘신은 위 없는 첫자리에 계시사 큰 덕과 큰 슬기와 큰 힘을 가지사 하늘을 내시며…’라 해서, 이것은 기독교의 신관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관에 영향을 준 슈메르의 종교신앙이 앞서 설명한 것처럼 신교에 뿌리를 두고있기 때문입니다.

초가잠빌의 지구라트, 에람, B.C.3000년경
슈메르의 종교신앙 가운데 ‘하나님의 산’ 혹은 ‘하늘 언덕’이라 불린 지구랏(Ziggurat)이라는 제천단 유적들은, 신교의 삼신신앙과 제천문화가 여전히 환국의 후예인 슈메르인들의 삶과 신앙의식 속에서 뿌리깊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은 바로 슈메르의 지구랏입니다. 이처럼 기독교도 그 원뿌리를 신교에 두고있는 것입니다.
| 오행 | 木: 유(儒) | 金: 불(佛) | 선(仙) | |
| 水: 동선(東仙) | 火: 서선(西仙) | |||
| 도의 전공분야 | 유지범절(凡節) | 불지형체(形體) | 선지조화(仙之造化) | |
| 우주 주재자 | 상제님 | 미륵 천주님 | 옥황 상제님 | 백보좌 하느님 |
| 목적(目的) | 대동(對同) | 극락(極樂) | 태청(泰淸) | 천국(天國) |
| 교리강령 |
충서(忠恕) 존심양성 (尊心養性) 집중관일 (執中貫一) |
자비(慈悲) 명심견성 (明心見性) 만법귀일 (萬法歸一) |
감음(感應) 수심연성 (修心練性) 포원수일 (抱元守一) |
박애(博愛) 성령감화 (聖靈感化) 삼계유일 (三界唯一) |
| 삼극 |
오황극 (五皇極) |
일태극(공) (一太極(空)) |
십무극(十無極) | |
| (三位一體) | 무극/태극/황극 | 법신/보신/화신 | 옥청/상청/태청 | 성부/성자/성신 |

미륵(彌勒)의 어원은 범어로‘마이트레야’(Maitreya, 자비로운 어머니)이며, 마이트레야는 미트라(Mitra)에서 유래되었다. 미트라는 인도, 페르시아 등지에서 섬기던 고대의 태양신이다. 또 기독교의 메시아(Messiah)도 미트라에서 유래되었다. 즉 불교에서 인류를 구원하실 분으로 수천년 동안 고대해왔던‘미륵부처님’과 기독교에서 수천년 동안 외쳐왔던 구원의‘메시아’는 모두 우주의 통치자 하느님을가리키는 같은 의미의 단어인 것이다.
각 종교마다 상제님, 옥황상제님, 하느님, 하나님, 천주님…등으로 달리 부르는데 그것은 마치 어머니, 아버지라는 의미는 같은데 각 나라마다 언어가 다르면 다르게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엄마, 아빠” 를 각 나라의 언어로 예를 들어보면
불어 Merci, papa, maman. 메흐씨, 빠빠, 마멍
스페인어 Gracias pap?, mama 그라씨아스 파빠, 마마
이탈리아어 Grazie padre, madre 그라찌에 빠드레, 마드레
포르투갈어 Obrigado m?e do pai 오브리가도 마에 도 빠이
독일어 danke papa mama 당케 파파 마마
일본어 お父さん お母さん ありがとう 오또오상 오까아상 아리가또오.
첫째, 불교의 목적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공(空)의 항존처(恒存處: 대아, 주인공, 우주심, 태극)를 찾고 공(空)에서 항존할 수 있는 지고지명한 인간을 창조하려는 데 있는 것이다. 이 경지에 달하는 것을 성불(成佛)이라고 한다. 불교의 목적을 종합하여 보면 세속적인 육체생활을 초월하고 대각(大覺)에 이름으로써 공(空)으로 돌아가서 명(明)을 찾으려는 것이다.
둘째, 선교(仙敎: 신선도나 도교는 동선, 기독교는 서선으로 불리움: 서선의 핵심은 ‘초인들의 삶과 가르침을 찾아서’를 참고 )는 무(無)를 목적으로 하는 것인 바 무(無)라는 것은 영원불멸하는 진기(眞氣)를 말하는 것이다. 이와같은 진기는 변화작용을 계속하는 본원이므로 만물의 생명정신의 발현여부는 여기에 달려있는 것이다.
신(神)이 성화(性化)하게 되면 성(性)은 만물로 발전하였다가 또다시 무화(無化)하게 됨으로써 유무합도(有無合道: 戊己合道)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바로 생명과 정신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상(象)은 역(易)의 천산둔괘(天山遯卦)의 상과 같으므로 이것을 선도라고 했던 것이다.
선교(仙敎)는 중을 지킴으로써 1을 포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므로 이것을 수중포일(水中包一)이라고 한 것이다. 이는 불교가 말하는 바의 공(空)에 도달하려는 중점, 즉 무(無)의 작용을 중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와 선교의 차이점은 다만 하나는 창조의 완결점을 중시하고 하나는 창조의 시발점을 중시한 것일 뿐 도통의 연원은 모두 1의 이치에 있는 것이다. 셋째, 유교의 목적은 인(仁)을 행하려는 것이다.
유교는 정(精)을 위주로 하는 것이니 정이란 것은 신(神)을 1의 위치에 통일시키려는 것인 바 그것은 유위에 얽매어 줌으로써만이 가능한 것이다. 이는 우주가 사물을 생하기 위하여 즉 인(仁)하기 위하여 자기 이해를 초월한 공도만을 행하는 법칙을 그냥 본받은 것이다.
토금수(土金水)의 기(氣)로 신(神)을 감(坎) 속에 축장(蓄藏)하게 함으로써 안신(安身)의 바탕이 이루어지게 된 즉 거기에서 정과 1이 합일되었다가 다시 축장한 것을 뚫고 중에서 움트게 된다는 말이다. 이는 수천수괘(水天需卦)의 상을 취한 것이다. 이것은 윤집궐중(允執厥中)하는 장소, 즉 만물이 생하는 뜻을 나타내는 방위의 상(象)이 유교의 상인 것이다.
이상에서 삼교정신을 요약한 바 그것을 재고하여 보면 불교는 정신의 완전통일점인 공(空)에 기본을 두었고, 선교는 통일의 출발점인 무(無)에 기본을 두었고, 유교는 통일에서 다시 생을 발하는 곳에 기본을 두었다고 하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동일한 원리와 동일한 법칙이 운행하는 본중말(本中末)운동의 한 점씩을 각각 대표한 가르침인 것뿐이요 결코 서로 무관한 가르침을 의미한 것은 아니다.
이것을 종합하여 동양철학의 원리라고 하는 것이니, 그 원리는 모두 집중관일(執中貫一: 중에 모아 하나를 꿰뚫는 것 )에 있다. 도란 것은 변화의 길이고 변화의 길은 하나뿐인즉 그 길에 서로 상이한 원리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가 머지 않은 장래에 통일 될 것은 물론이거니와 인간의 지혜가 이 정도까지 보편화될 때면 인간이 철학의 최고 목표인 명(明)을 가지는 것도 용이할 것이며 또한 신비의 문호도 개방될 것이다.
<최치원(崔致遠)의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 중에서>
國有玄妙之道 曰風流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말하기를 풍류라 한다.
說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 三敎 接化群生
이 종교를 일으킨 연원은 선사[仙家史書]에 상세히 실려 있거니와, 근본적으로 유 불 선 삼교를 이미 자체 내에 지니어 모든 생명을 가까이 하면 저절로 감화한다.
且如 入則孝於家 出則忠於國 魯司寇之旨也
집에 들어온 즉 효도하고 나아간 즉 나라에 충성하니, 그것은 노사구(공자)의 교지(敎旨)와 같다.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하염없는 일에 머무르고 말없이 가르침을 실행하는 것은 주주사(노자)의 교지와 같다.
諸惡莫作 衆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모든 악한 일을 짓지 않고 모든 선한 일을 받들어 실행함은 축건태자(석가)의 교화(敎化)와 같다.


<화엄경>
“해중(海中)에 금강산(金剛山)이 있는데 옛적부터 모든 보살들이 그 산 중에 살고 있다. 현재도 법기(法起)라는 보살이 1,200명의 보살의 무리를 거느리고 금강산에서 상주하며 불법을 강설하고 있다.”
<포박자(抱朴子)>
昔有黃帝 東到靑丘 過風山 見紫府先生 受三皇內文 以劾召萬神
황제가 청구에 와서 풍산을 지나다가 자부선생을 만나 삼황내문을 받아 만신을 부렸다



초가잠빌의 지구라트, 에람, B.C.3000년경
오행
木: 유(儒)
金: 불(佛)
선(仙)
水: 동선(東仙)
火: 서선(西仙)
도의 전공분야
유지범절(凡節)
불지형체(形體)
선지조화(仙之造化)
우주 주재자
상제님
미륵 천주님
옥황 상제님
백보좌 하느님
목적(目的)
대동(對同)
극락(極樂)
태청(泰淸)
천국(天國)
교리강령
충서(忠恕)
존심양성
(尊心養性)
집중관일
(執中貫一)
자비(慈悲)
명심견성
(明心見性)
만법귀일
(萬法歸一)
감음(感應)
수심연성
(修心練性)
포원수일
(抱元守一)
박애(博愛)
성령감화
(聖靈感化)
삼계유일
(三界唯一)
삼극
오황극
(五皇極)
일태극(공)
(一太極(空))
십무극(十無極)
(三位一體)
무극/태극/황극
법신/보신/화신
옥청/상청/태청
성부/성자/성신

여호와 신의 기원설
고대의 신화와 종교에 나오는 신들의 세계에 대해서 생각해 볼때, “인간들은 그들 자신을 닮게 신을 만든다” 라고 말한, 문명비평가이며 소설가로 유명한 올더스 헉슬리(1894~1963년)의 말을 상기해 볼필요가 있다. 유일신 신앙의 원뿌리는 유대교의 여호와 하나님이라 불리우는 신이다.
여호와 신에 대한 기원설중에 몇가지에 대해 알아보자 약 4천년전 아브라함족은 씨족단계, 약 3300년전 모세당시 족속은 부족단계로 약3000년전 사무엘-다윗-솔로몬왕이 통치한 이스라엘 왕국시대는 국가단계로 본다.
1. 수메르인의 서방개척사로 생긴 메소포타미아 문명사에서의 기원 수메르국 사람들중 일부는 급작스런 기후변동으로 살기에 최적기후인 지역을 찾아서,서방(현재 중동)으로 3차에 걸친 수메르인의 개척 역사를 이뤄낸다. 이 개척사는 단순한 정복사가 아니라, 수메르의 선진문명(수학,천문학,교육,법률등)을 전수 해주는 과정이었다.
예수는 2천년전, 아브라함은 4천년전, 아담-이브는 6천년전 사건으로 성서기록을 하고 있는데, 그건 2차 수메르 개척때가 5500년전이라 500년 차이가 있지만, 1977년 중국학자 당란이 산동반도 일대에서 발굴한 소호국 문명(대문구문명)유적속에서 ‘소호’라는 통치자 이름도 나오고, 방사성탄소 측정으로, 이문명이 BC 4000년, 즉 6천년전임이 증명되었다.
이 소호국은 아담족의 뿌리이며, 태호복희-여와의 후예들이 세운 제후국이고, 이것이 후대 성서기록에서 여와를 자기민족의 창조신으로 신격화 된것이다.

숙대영인본 표지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 환단고기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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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경 왈 복희 출어신시이작우사 大辯經에 曰 ?伏羲는 出於神市而作雨師하여 관신룡지변 이조괘도 개신시계해 이위수갑자 觀神龍之變 而造卦圖하고 改神市癸亥 而爲首甲子하시고 여와 승복희제도 女?는 承伏羲制度하시고 주양 잉구문자 이시전육서 朱襄은 仍舊文字 而始傳六書하시니라 복희능 금재산동 어대현 부산지남 伏羲陵은 今在山東 魚臺縣 鳧山之南하니라? 여와는 태호복희의 여동생. 강감금단(綱鑑金丹)에는 “태호복희가 죽은 뒤에 여동생인 여와가 무진년(B.C.3407)에 임금이 되었다” 하였다. 사마천 사기에도 “태호복희가 죽은 뒤에 여러 신하들이 여와를 임금으로 받들었다. 그 때 안휘성 형산(衡山)의 앞쪽에 있던 막배를 신하로 삼아 정치를 잘하였고, 후에 하남성 유성(柳城)에 도읍하였으며, 생황(笙簧)이라는 악기를 만들었다. 15년간 통치하다가 죽으니 나이는 143세였다” 하였다. 대변경(大辯經)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복희는 신시에서 출생하여 우사의 관직을 맡았다. 신룡(神龍, 도마뱀)의 변화를 관찰하여 괘도(卦圖)를 만들고, 신시시대의 계해를 고쳐 갑자로 머리를 삼으셨다. 여와(女?) 복희의 여동생)미12는 복희의 제도를 계승하였고, 주양(朱襄)은 옛 문자를 기본으로 하여 처음으로 육서(六書)를 세상에 전하였다. 복희씨의 능이 지금의 산동(山東) 어대현(魚臺縣) 부산(鳧山) 남쪽에 있다.” |
* 여와는 구약창세에 나오는 야훼와 같은 유음을 일으킨다
참전계경- 구약에 창세기와 유사한 기록이 나온다
여와님이 흙을 이겨 사람 형상을 불어넣어 7일만에 이루어 마쳤다.
풍속통의- 천지가 개벽되어 사람이 있지 아니 하였는데 여와님이 황토를 다져 진흙중에 사람을 건져냈었다
삽팔사략- 흙으로 사람을 빚었다
흙탕물- 무수한 인간들이 많이 나왔다.
봉신연의- 여와 신앙에 대한 은나라 말기- 은나라 말기 주왕 폭군이 여와 사당에가서 술취해서 희롱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과연 동양의 태호복희씨( 5세 배달 태우의환웅 아들인 태호복희씨는 인류문명의 뿌리이자 한민족의 문화의 상징인 태극팔괘 를 그었다 ) 여동생 여와 와 구약에서 창세 야훼는 과연 동일한 인물일까?
서양문명의 뿌리- 수메르문명은 바로 동양에서 왔다는 여러가지 증거가 있다
수메르 문명
1) 메소포타미아 원주민이 아닌 동방 이주민–> 한민족과 연관
2) 슈메르인 창세신화 : 평평한 검은 머리인종 . 메뚜기형상과 같았다 머리는 검고
뒷통수는 탄탄한 원유대족 모습이 었다
3)은.는.이.가 조사사용/ 조사 + 목적어 + 서술어 –> 동일한 문법체계
4)슈메르인 고유의 문자사용 –> 복희 팔괘와 비슷 (태호복희씨: 배달국시대 5대
태우의 환웅 12번째아들. 여동생이 여와 ) -> 일본학자 우노에 주장
5) 슈메르인들은 동방에서 왔다 – smauel kramer
슈메르인은 중앙아시아에서 왔다 – M burms
6) 결혼하기 전 함지는 모습
7) 60진법 태음력
8) 지구랏트 : 하늘에서 제사를 지냄
한민족처럼 제천 문화와 천자사상을 가짐
9) 정교 일치사회 : 신의 권한을 대항하는 최고통치자 (환국-환인)
동양에서 서양으로 넘어간 종족중에 아담족이 있다
아담족— 태호복희 여동생 여와 모계제 씨족사회 였다
아담족 20대 후손이 아부라함이다 — 갈대아 우르(수메르문명)->하란 -> 가나안 (현재 팔레스타인으로 이동) 아부라함 7대손이 모세이다 —- 노예로 지내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킨 지도자 사막에서 40년간 백성들을 이끌면서 강력한 신의 존재가 필요 광야에서 10계명을 받음 ”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 유일신 신앙선포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바로 아부라함은 아담족 여와 후손인데 여와는 바로 동양에서 왔다는 사실 바로 서양문명이 뿌리 수메르문명이 동양에서 왔듯이 바로 그런 역사석인 사실을 가지고 있다.
수메르인들의 3차에 걸친, 개척사 과정에서 그곳 원주민(백인종족)과 수메르인들간의 계속적인 부족간 전쟁, 동화등에 의한 혼혈과정으로 생긴 수메르민족이 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이브족과 그 후예인 아브라함족(뒤에 유대민족과 이슬람족으로 분열)과 유라시안 백인종족이다.
이 백인혼혈족은 유럽-아시아지역 경계에 살면서, 수메르족 문명과는 더욱 이질화된 종족들이다. 그 개척과정을 잠깐 요약해보면, 수메르국 사람들의 1차 개척은, 그곳 원주민(백인)을 정복하며 혼혈되는 과정에서, 백인종족으로 변한, 혼혈수메르족인 악카드족은 상형문자를 개발, 에덴동산을 끼고 상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으킨다.
2차는 BC 3500년경(5500년전)에 태호복희와 여와씨 족의 후예들이 서방을 개척하러 가서, 에덴동산(현재,이라크 남부)에 정착해 살아가는데, 선 이주민(先移住民)인 백인종족인 악카드족의 위협을 받아, 에덴에서 추방된다.
[이 역사과정을 후대에, 성서편찬을 할때에, 아담족을 하나님 백성으로, 악카드족은 사람의 아들로 표현하고 , 악카드족에게 아담족 일부는 동화 · 흡수되고 에덴을 빼앗긴 사건을 하나님 백성들이 원죄를 지어서 사람의 아들로 타락한 후 에덴동산에서 추방된걸로, 유대신앙적 관점에서 기록함- 아담의 20대손 아브라함 후손인 히브리족의 제사장들이 후대의 성서기록에서 아담족을 선택민족, 즉 하늘백성인 천손민족의 정통이라 주장함]
소호금천씨국의 소호제후 얹날(후에 수메르신화의 엔릴이 됨)은 정통 수메르 제1왕조를 처음 건설되었다가, 노아의 홍수에 거치면서, 약해진틈에 악카드족에 밀려나서 멸망한다. 그 이후에 제2왕조를 다시 세우고 망한후에, 우루-남무(=우루국 통치자)가 수메르를 통합하여 세운, 제3왕조를 끝으로 수메르 왕조는 역사속에서 사라진다.
BC 약 2천년경에 수메르 왕조가 멸망한 이후, BC 1880년경에 수메르 후예인 아브라함족은 가나안으로 이주 정착하는 과정에서도, 그들의 먼 씨족 조상신인, 여와 신을 숭배하는 신앙문화를 그대로 지켜나간다.
아브라함 족속(씨족)은 멸망한 수메르의 땅인 갈대아 우루(즉 에덴동산 일대)를 떠나서 제2의 에덴동산이라 할수있는, 젖과 꿀이 흐른다는 땅(농경지역을 표현)인, 가나안을 정복해 들어간다. 이로써 이스라엘 민족사의 뿌리가 내려지게 된다. [가나안은 현재는 팔레스타인땅 일대지역으로 이스라엘의 영토]
가나안에 흉년이 들어, 애굽(=이집트)에 가서 나일 강가의 농경에 의존하여 식민백성으로 살게되는데, 애굽 탈출 몇해전에 유대족의 지도자가 될 모세는 장인 이드로의 족속(미디안족)과 함께 호렙산에 올라가서 그들 족속이 섬기는 씨족신 여와에 관한, 오랜 전승(傳承) 얘기를 듣게된다.
애굽의 노예가 된,수십만의 자기부족을 데리고 애굽을 탈출할때에 그들 유대족의 정신통합과 단결을 위해, 시나이산에서 여호와에게서 십계를 받고, 일개 씨족 조상신이었던 여와(=여호와)를 자기부족만을 선택한, 창조적 유일신으로 믿게 만든다.
탈출한 후에 유목민의 천막국가속(BC 1279년-약3300년전)에서, 모세는 여호와를 이스라엘 민족(함족)의 공식적인 하나님으로 선언하여, 여호와 신앙이 자리잡게 만든다.
그후 BC 1050년에 대제사장 사무엘이 흩어져 살던 이스라엘 12지파를 민족통일 하는데에 신앙과 사상의 통일의 기반을 닦고, 다윗-솔로몬왕으로 이어지는 400년간의 이스라엘 왕국시대 동안, 여호와는 세계를 창조한 유일신으로, 그들 민족의 절대적 신앙이 되어버린다. 이것이 유대교-기독교 구약성서에 기록된, 여호와 신앙이 뿌리내리게 된,역사적 과정이다.
[아브라함 씨족은 히브리족인데, 그들중 상당수가 애굽에서 700년의 세월 속에서 수 십만명(수천명 설도 있음)숫자로 증가한 부족이 되어서, 탈애굽 하게된다- 성경상의 탈애굽기]
역사상식으로 여와가 여자인걸 아는 분들은 의문점이 들것이다. 왜 6000~5800여년전에 생존했던, 태호복희씨와 여와씨(남매이며 부부)씨족의 후예들이,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여신인 여와를 남성적(아버지)신으로 신앙하게 되었는가?
[모계제 사회에서는, 어머니와 아버지 성씨중에 선택할수있다. 그래서 태호복희와 여와는 동부이모의 남매인데, 모계제에서 동부이모(同父異母)자매간은 다른 씨족이기에 결혼이 가능했다. 고대사 관점을 그당시 가치관으로 봐야만 제대로 이해된다]
2. 문명제도의 주도권변화에 따른 여호와 신의 변천(추후에는 여와 => 여호와로 표기함 @ 참고문헌: 가나출판사 간행- 만화로보는 중국신화/ 살림 간행- 위대한 어머니 여신)
고대 동양신화는 주로 중원대륙을 무대로 많은 신들이 활약하는데, 그들은 모두 역사적 실존인물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런 신들을 역사적 존재가 아니라, 상상적 가공의 존재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유대민족이든 그리스든 어느민족이나 그들 민족신화를 들여다보면 현대인들이 생각하기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도술 기적이나 괴상한 형태의 신, 거인족, 인간종족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리스의 비극신화인 오딧세이에 나오는 ‘트로이의 목마’를 거의 대다수가 신화로 생각했다. 그런데, 독일 고고학자 슐레이만(1822~1890년)에 의해 유적이 발굴되면서 지어낸 신화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 존재했음이 증명되었다. 신화가 사실로 증명 되는경우는, 19세기 이후 계속된 탐험 고고학자들에 의해 많이 발굴되면서, 거의 모든 동.서양 고대신화에 나오는 인물들이 실존인물이며 사실임이 밝혀지고 있다.
신화속에서 과장된듯한 기적, 도술, 괴상한 형태등은 고대 위인들이 실제로 신인(神人=신선과 비슷함)의 경지에서 도술 조화기적을 부린경우도 적지않게 있었고, 또 고대인들의 우주관 인생관등의 사고관념이 철학적 상징화와 문학적 픽션과정으로 기록된것이라 보면 된다.
동양의 창세신인 여와에 대해서, 동이족의 고대경전인 참전계경에 보면, “여와연토조상(女?鍊土造像) 이주지혼(以注之魂)/ 칠일이성언(七日而成焉) 개용어전(皆用於戰)” 이란 구절이 나온다. [창세신이란 태초에 세계문명을 열은 최초신이란 뜻-서양에선 천지창조신, 동양에선 천지개벽을 열은 신이라 함]
해석을 하면, “여와가 흙으로서 인간모양(상)을 만들고, 그속에 혼을 불어넣었다/ 7일이 걸려 완성했는데, 이 모두를 전쟁에 사용하였다” 라는 뜻이다. 놀랄만큼 성경 창세기의 여호와의 인간창조설과 같고, 또한 여호와는 ‘이방인들을 갓난아기까지 죽이라’는, 잔혹한 전쟁의 명령을 내리는 이스라엘의 하나님(민족신)인것을 볼때, 여호와는 전쟁의 신이다.
그런 창세신이며,전쟁의 여신인 여호와가 왜 아담족-히브리족의 남신이 되었을까? 이것은 바로 1만년전 마지막 소빙하기 이후, 구석기-신석기 시대를 거치면서, 농경문명의 모계제중심 시대(여신이 중심)가 열리는데, 그후 청동기 후반기에 가서는 부계제중심(남신이 중심) 사회로 변천하게 된다.
청동기 시작은 지구촌 지역마다 다 달랐지만,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떠돌이 민족인 히브리 민족은 모계제 풍습이 남은상태이나, 4천여년전 아브라함시대 때에 태양신(후에,아버지하느님 신격화)적인 남성신을 섬기는 부계제(일부다처제)로 남성중심적사회로 점차 바뀌어 나간다. 지금도 아브라함족,즉 히브리족의 또 한갈래인 이슬람 아랍족의 풍습은 일부다처제의 강력한 가부장제 이다.
모계제에서 부계제로 변천하는 과정에서 여자신인 여호와가 남자신(아버지 하나님)으로 바뀌어 나간것으로 생각해 볼 수있다. 올더스 헉슬리의 말, “인간은 그들자신을 닮게 신을 만든다”는 말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여와신의 변천과정이다.
서방 메소포타미아를 개척한 소호금천씨족인 수메르족은 원래는 약 5500년전~4000년전까지, 모계제+반유목+반농경적 특성의 사회로서 여신과 남신이 조화된, 최고유일신적 다신관 (=유일신+다신관)신앙을 갖고 있었다. 아브라함의 조상들은 반유목+반농경의 여유로운 에덴 동산에서 풍족하게 잘 살고 있다가, 백인족 악카드족과 기타 족속들의 침입을 받다가, 수메르 제3왕조를 끝으로 4천년 전 멸망하게 된다.
아브라함 씨족은 바로 멸망한 수메르족(아담족 후예)으로서의 역사를 끝내고, 에덴에서 쫓겨나 유랑과 천막생활을 반복하는 고달픈 유목민족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서, 씨족조상신 여호와를 “다른족속의 신들보다 더 지배적인 유일최고신이다”라고 하는,강력한 유일신적 신앙율법을 자기씨족들에게 교육했으리라~ [ 후일 모세의 십계명중에 “나 이외의 다른신을 섬기지 말라”고 한것은 이런 역사사실을 충분히 입증해준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천막속에서 근친(현대관점에서)적 성생활도 무분별하게 일어나는 천막생활의 불륜(가부장제적 관점)과 고달픔을 극복해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즈음에 바로 하늘 태양신,하늘 아버지(남성신) 신적인 유일신 사상을 씨족(=아브라함족)들에게 세뇌하면서, 과거 자기 조상들이 믿던 유일신적 다신관신앙과는 완전히 다른 남성신 중심의 유목민족의 삶을 살면서 선조와는 이질적인 민족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4천년전 아브라함 씨족들은, 그들 조상들(수메르족)의 다신신앙(신교)전통을 버리고, 유일신만을 믿는 다른민족, 히브리(=헤브류)족이란 이름의 유목민족으로 역사적 새출발을 하게된다. [수메르-히브리 언어에서, 아브라함에서, “아바~아브”가 우리나라말 “아버지”와 발음과 뜻이 같으며, 아브라함은 “히브리민족의 언약과 믿음의 아버지”로서, 유대족과 아랍족이 모두 시조로 모시게 된다
– 참고로, 아브라함의 선조인 노아의 아들 야벳,셈,함에게서 유럽(유라시안), 아시아(주류는 아브라함씨족), 아프리카 인들이 갈려져 퍼져나갔다고 주장한다. 중동지역은 유럽,아시아,아프리카 3대륙의 접경지역에 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자기민족인지를 선별할 때, 모계제를 기준으로 혈통을 판단한다.즉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아버지가 비유대인이라도 유대인이 될 수있다. 그 반대이면 원칙적으론 안된다. 또한 모세가 장인(처가)의 혈족(히브리족 일파인 미디안족)에서 받들던 처가쪽 조상신인 여신 여와를 숭배한것도 여권적 모계제 때의 유습으로 볼수있다.
처(여자)와 여신을 중요시 여김. 실은 모세의 처도 모세와 같은 족속인데, 사막에서 갈라져서 흩어졌다가 다시 부부 맺은것이기에 본질은 같은 족속임. 즉 미디안족은 또다른 유대족에서 갈라져나간 씨족이다]
이후에 최고유일신과 다신(多神)신앙을 가지며, 35개 민족의 민족신들을 모두 포용한 정책을 편, 로마 제국시대에는 유일신과 선택민족(유대교) 신앙정신으로 교만했던 유대민족이 로마제국에서 1년내내 여러번 열리는, 다신신앙의 국가적 축제에도 늘 불참하면서, 로마의 신앙풍습에 반기를 들고 비위를 거스리다가,마침내 탄압을 받는다.
유대교가 낳은 유일신 종교인 기독교도 역시 300여년간의 종교탄압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자를 확보하여 3~4세기에 로마제국의 종교가 되고, 이어 로마제국 내 전유럽영토에 퍼져서 서양의 대표종교가 되고, 여호와 신은 마치 전인류의 하나님인양 되어 버린다.
크레이머가 소개한 최초의 욥(Job)이야기는 성서의 욥기와 거의 완벽하게 동일한 주제, 동일한 구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욥기가 기록된 후 천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 이것에서 영감을 얻은 독일의 괴테가 파우스트를 썼지만, 성서의 욥이야기는 그보다 천여년 이상 전에 나온 수메르인들의 이야기에서 그 소재와 구성을 따왔다고 보아도 틀림없을 것이다.
성서와의 관련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길가메쉬 서사시”에 나오는 홍수 이야기이다.
수메르의 영웅 길가메쉬가 삶의 무상함을 느끼고 영생을 얻는 방법을 찾아 헤매다가 대홍수에서 살아 남은 지우수드라(Ziusudra)라는 노인을 만나 영생의 비결을 듣게 되는데, 이 때 이 노인이 들려주는 홍수 이야기가 바로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의 원전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당시에 이미 여러 민족의 언어로 번역되어 그 사본들이 최근 발견되었고, 바빌론인들이 지우수드라를 우트나피슈팀(Utnapishutim)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더욱 발전시킨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이 우트나피슈팀의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 번역했다고 볼 정도로 유사한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 기록된 인류 최초의 법률 역시 수메르인들이 만든 것이다. 우르남무라는 수메르왕이 반포한 이 법률은 유명한 바빌론의 함무라비법전에 큰 영향을 남겼으며, 먼 훗날 모세의 법률을 특징짓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유명한 표현이 이 함무라비 법전에 정확히 들어있는 말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이밖에 수메르인들의 종교적 관념과 의식 등도 주위 민족들에게 큰 영향을 남겼다. 마치 로마가 그리스의 신들을 수입해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듯이 바빌론과 아시리아제국의 신들은 수메르 신들이 그대로 들어와 이름만 바꾼 것들이 많았다.
수메르인들의 종교의식이나 기도문, 찬송 등도 후대의 제국들에 차용되었고 먼 훗날 유태인들의 종교에도 분명히 반영되었다.
# 결론:
결론적으로 위의 두가지 역사적 기원설을 참고해보면, 결국 고대 한민족인 동이족 환웅의배달국시대 때에, 5대 환웅의 자녀인 태호복희-여와씨 후예 족속들이 여와신을 신앙한 유대교 신앙이 발전하여 기독교의 여호와 신앙이 된 것임을 알수있다. 그 여호와 신은 고대때는 우리 동이족의 황족(천자의 일족)이며, 황태자 황녀인 태호복희-여와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수있다.
유대민족은 또한 수메르 환국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에 가서 미개한 원주민을 선진문명으로 개화시킨, 약간 혼혈화된 또 다른 동이족 후예들임을 알수있다.(정통후예는 아님)
여기서,서양의 종교인 기독교와 동양의 정신문명의 뿌리인 동이족의 신교문명과 합일될수있는 정신적 귀결점을 찾을수 있지는 않을까? 종교란것은 역사속에서 생겨나는 것이기에, 문명사(文明史)의 단계마다의 역사변천 과정을 상세히 모른다면, 그 종교의 뿌리문명을 못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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