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국제적 통제를 위한 국제연대운동의 출발점에서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이 창근
필자는 지난 12월 11일 – 12일까지 파리에서 개최되었던 ‘금융시장 및 기구들의 민주적 통제를 위한 국제회의’에 참석하였다. 이 회의는 ‘시민 지원을 위한 금융거래 과세 연합'(ATTAC – Association for a Taxation of financial Transactions in Assistance to the Citizens)에서 주최한 것이었다. ATTAC은 98년 6월 건설되었는데, 핵심적으로 금융 지배적 축적체계에 의해 상실된 민주주의적 공간을 되찾기 위해 금융시장의 독재 및 국제 금융의 통제를 위한 공동의 캠페인 및 긴급한 행동을 제안하고 있다. ATTAC은 처음에 프랑스의 진보적 저널인 ‘르몽드 디쁠로마띠끄’의 제안에 의해 출발하였지만, 현재는 노동조합, 농민운동단체, 실업반대운동단체, 비정부기구(NGO) 등 다양한 노동, 사회운동그룹을 포괄하고 있다. 또한 출범한지 몇 개월이 안됐지만, 약 5,000명의 시민들이 회원으로 가입하겠다는 편지를 보내오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의 출발을 계기로, ATTAC은 전세계 민중 및 시민부문들간의 연대운동으로 ‘금융지배에 대한 반대-잃어버린 민주주의의 회복’을 주창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이번 국제회의는 개최되었다.
이번 국제회의에는 4개대륙 11개국에서 약 45명의 활동가들이 참여하였다. 그리 큰 규모의 국제회의는 아니었지만, 다양한 풀뿌리 단체들 및 국제행동네트워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메히꼬의 사빠띠스따민족해방전선(FZLN), 브라질의 노동자당(PT), 땅없는 사람들의 운동(MST), 프랑스의 노동총동맹(CGT), 연대/단결/민주주의(SUD), 실업반대행동(AC!), 르몽드디쁠로마띠끄, 필리핀의 사회운동그룹인 ‘알 파티하 파운데이션'(AL FATIHAH FOUNDATION) 등과 국제적인 행동네트워크로는 ‘대안을 위한 세계포럼(World Forum on Alternatives)’, ‘자유무역과 세계무역기구에 반대하는 지구적민중행동(PGA)’, ‘유럽 99(Europe 99)’ 및 다수의 MAI반대행동네트워크들도 참여했다. 이번 국제회의의 주요한 목적은 두 가지 차원의 결정을 위한 것이었다. 하나는 ‘금융시장 및 기구들의 민주적 통제를 위한 국제연대운동’의 강령을 논의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1999년의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강령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숱한 쟁점들이 제시되었다. 그것들을 열거하면, 자본운동에 대한 과세(Taxtation)의 의미, 사회적부채(Social Debt)국제금융기구의 개혁, 중앙은행의 역할, 국가의 역할, 산업자본/금융자본/초국적자본간의 관계, 진정한 발전(real development)의 의미, 고객과 은행의 관계, 공정무역(Fair Trade), 다자간투자협정(MAI)/세계무역기구(WTO) 등간의 관계, 남북간 불평등 심화, UN의 민주화 등이었다.
이상의 쟁점들이 모두 논의되기에는 관점 차이, 시간상의 제한 등으로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다만 최소한의 수준에서 합의된 것은 현단계 ‘금융의 세계화’가 경제적 불안정 및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것, 그로 인해 민중 개개인이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민주주의적 공간이 상실되고 있으며, 공공선을 위한 국가의 주권 역시 무시되고 있다는 점 등이었다. 따라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금융 지배적 축적체제에 대한 민중들의 개입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시기라는 점이 동의되었다. 금융의 세계화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WTO/MAI를 비롯해, IMF구조조정 프로그램, 유럽연합(EU)/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북미자유무역지대(NAFTA) 등 다양한 지역경제협정 등이 그것이다. 한편 구체적인 민중 및 민족국가의 금융지배에 대한 개입 수단으로 제기된 것은 ‘자본거래에 대한 과세’-토빈세(Tobin Tax)를 포함하여-였다. 그것이 과연 자본통제를 위한 효과적인 수단인가?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가? 누가 과세의 주체가 될 것인가? 거둬들인 세금을 누가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 등의 쟁점들이 도출되었다. 그 과정에서 참석자들 사이에서 합의된 것은 첫째, 자본거래에 대한 과세라는 개입수단은 자본통제를 위한 첫 출발점-즉 다양한 가능성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둘째, 과세에 의한 소득은 사회적 공공프로젝트(실업, 교육기금, 제3세계 빈곤퇴치기금 등)를 위해 활용하며, 마지막으로 거둬들인 이익은 ‘부패한 국가들’로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 빈국에서의 교육 및 공공의료의 증진, 식량안보,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조직들에 직접적으로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자본가들 스스로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금융적 불안정성에 대해 초국적투기자본 및 헤지펀드(Hedge Funds)의 활동에 대한 감독 및 정보공개의 강화 등 일정한 대응책을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전세계 민중 및 NGO들이 토빈세를 비롯한 ‘자본거래에 대한 과세’라는 정책수단을 제기하는 것이 과연 얼마만큼 자본주의 국가들의 이해를 공격하고, 민중의 이해에 복무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의문점은 여전히 남아있다.
금융지배에 반대하고 민중들의 구체적인 개입을 위한 행동계획의 수립에 있어서, 주요하게 논의되었던 것은 99년 6월에 진행될 G-7회의에 대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다른 대륙 및 국가들의 활동가들은 지난 시기 전개된 MAI반대투쟁에서 상당히 고무받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즉 97년 MAI초안의 공개를 계기로 촉발된 전세계적인 MAI반대운동은 결국 OECD내에서 95년부터 전개된 MAI의 논의를 중단시키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이들은 초국적자본의 권리만을 전적으로 보장하는 ‘국제적인 강제규범 및 체제’에 대한 반대를 넘어, 민중들의 직접적인 이해로 귀속될 수 있는 정책적 개입 및 국제적인 연대 행동 계획의 성공에 대해서도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구체적인 행동계획으로 제출된 것은 99년 1월 31일-2월 1일까지 스위스 다보스에서 전개될 ‘다보스포럼’에 대한 반대투쟁과, 다른 하나는 99년 6월 하순경에 전개될 G-7회의 반대투쟁이었다.
다보스포럼은 전세계 초국적기업가들 및 정치가들이 참여하는 사교포럼이며, G-7회의 역시 제국주의 국가들간의 정책조율을 위한 정상회담이다. 이러한 두 가지 계기에 국제적인 연대행동을 기획하게 된 이유는 그 형식이 비록 비공식적인 모임에 불과하더라도, 그 모임들이 전세계질서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력은 막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본거래에 대한 과세’라는 대안, 궁극적으로는 ‘초국적자본에 대한 통제’는 현실적으로 전세계적인 수준에서의 파워블럭(Power Bloc)에 맞서 강한 투쟁을 전개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자본이동 및 해외직접투자의 대부분이(1980년대에는 약 80%) 아직도 삼극-유럽, 미국, 일본-을 중심으로 한 북반구 내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다보스포럼에 맞서서는 비록 소규모이지만 ‘다른 다보스 포럼(Another Davos)’을 조직하여, 전세계 민중들의 자본통제를 위한 연대행동 계획을 전세계에 천명하기로 했으며, 보다 큰 규모로 99년 6월에 G-7정상회의를 계기로 거대한 국제결집시위(프랑스 파리에서 독일 쾰른까지)를 조직하기로 했다.
강령과 행동계획들이 논의되면서, 필자는 전세계 활동가들의 진지함과 열정들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다양한 국제적인 행동 네트워크들-지구적민중행동, 대안을 위한 세계포럼, 유럽99, MAI반대네트워크 등-이 함께 모여, 더 큰 규모의 행동계획을 논의하고 합의하는 것 자체가 필자에게는 신선했다. 강력한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것이 아님에도, 공동의 요구와 행동계획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전지구적인 괴물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세계 민중운동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회의의 과정에서 한국민중운동이 숱하게 강조되었다. 그만큼 한국 민중운동은 국제적인 연대운동에서 남북반구 민중들간의 연대를 매개하고 조직적 동원력, 정치적 영향력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에 존재한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논의들을 한국에 곧이곧대로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민중운동이 세계적 차원의 금융지배와 IMF통제체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우리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초국적금융자본 및 다기한 무역 및 투자자유화 협정들이 한국사회에 미치는 영향, 해외직접투자의 현황 및 역할, 자본거래에 대한 과세를 포함한 구체적인 정책적 개입수단의 마련 등 우리가 해명해야 할 문제는 많다.
그럼에도 필자는 가깝게는 ATTAC의 출범과 더불어, 멀리는 타국 민중들의 MAI반대투쟁의 경험에 기초하여, 한국 민중들도 국제적인 연대운동의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스크린쿼터제를 둘러싼 논쟁’, ‘국산잎담배사용의무 철폐’ 등 한미투자협정의 문제점들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는 현 상황을 반추해 볼 때, 한국 역시 전세계적인 수준의 자본운동의 직접적이고 파괴적인 영향들이 하나 둘씩 감지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국제적인 수준의 자본 자유화 및 그것의 제도화된 표현으로써 무역 및 투자자유화 협정에 대한 대응을 더 이상 늦출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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