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 권리 염원하며 추위·허기 견뎌… 사회의 지독한 무관심에 더욱 힘겨운 나날

농성장에 눈이 내렸다. 걸음이 바빠진 한겨울의 해가 벌써 서쪽 하늘 밑으로 얼굴을 감춘 늦은 오후, 사흘째 몰아친 맹추위에 꽁꽁 얼어버린 땅을 덮어줄 솜이불 같은 느낌의 함박눈이었다. 그러나 추위와 허기, 그보다 더한 고립감으로 고통스러운 농성장 사람들에게도 그런 느낌이었을까. 지난 12월10일. 그들은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을 기념하는 날이 저무는 것을 천막 안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최저기온이 영하 4∼7도로 뚝 떨어진 서울 곳곳에 농성용 천막이 늘어가고 있다. 12월10일 6채의 농성용 천막이 하나의 ‘촌락’을 이룬 명동성당 진입로 가장 아래쪽 천막에 새 식구가 들어왔다. 민중의 기본권 보장과 양심수 석방을 위한 공동대책위 상임대표인 홍근수 목사 등 재야원로 20여명이 이날부터 농성을 시작한 것이다. 홍 목사가 말하는 농성의 변은 이렇다.

악법 방치해 농성자 양산하고 있다

“전국의 교도소와 조계사, 명동성당 등지에서 학생들이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데 기성세대에 속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느껴 농성을 하기로 했습니다.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인데, 새 정부는 야당 때 악법이라고 인정한 국가보안법을 방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농성은 정부에 분명한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입니다. 양심수들을 죽음으로 내몰지 말아야 합니다. 단식하다 사고라도 나면 김대중 대통령이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그의 말대로,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석방을 요구하는 단식농성이 최근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전국 교도소에 수감중인 405명 양심수 대부분이 지난 11월29일을 전후해 단식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명동성당과 조계사에서는 물론 각 대학에서도 동조 단식농성이 확산되고 있다. 98년 겨울은 난데없이 단식농성의 계절이 됐다.

이들은 과거 정부에서와 다를 바 없이 민주주의를 위한 악법 철폐와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하고 있지만, 지나치는 사람들은 예전처럼 따뜻한 관심의 눈길을 던지지 않는다. 50년 만의 정권교체, 인권 대통령의 집권, 개혁의 나팔소리 같은 커다란 목소리에 미리 포만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진 탓일까.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이들은 그래서 더 허기가 진다. 전국에서 모여든 한총련 대학생 40여명은 지난 12월5일부터 명동성당에서 ‘공안사범 처우지침 철회와 준법서약제 철폐, 양심수 전원 석방, 국가보안법 철폐’를 내걸고 농성중이다. 물과 소금만 먹으며 지내는 단식농성이다.

농성단장인 이희종(23·부산대 토목공학 4년)씨는 “언론은 저희들이 단식농성하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다”며 “명동성당이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는 생각에 춥고 배고픈 것도 견뎌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겨울 단식농성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한총련 농성자 가운데 2명이 나흘째 되던 날 쓰러졌다. “먹고 기운을 내야지 왜 굶느냐”고 안타까워하는 다른 천막 사람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전국의 교도소와 조계사, 명동성당 등지에서 학생들이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데 기성세대에 속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느껴 농성을 하기로 했습니다.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인데, 새 정부는 야당 때 악법이라고 인정한 국가보안법을 방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농성은 정부에 분명한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입니다. 양심수들을 죽음으로 내몰지 말아야 합니다. 단식하다 사고라도 나면 김대중 대통령이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그의 말대로,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석방을 요구하는 단식농성이 최근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전국 교도소에 수감중인 405명 양심수 대부분이 지난 11월29일을 전후해 단식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명동성당과 조계사에서는 물론 각 대학에서도 동조 단식농성이 확산되고 있다. 98년 겨울은 난데없이 단식농성의 계절이 됐다.

이들은 과거 정부에서와 다를 바 없이 민주주의를 위한 악법 철폐와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하고 있지만, 지나치는 사람들은 예전처럼 따뜻한 관심의 눈길을 던지지 않는다. 50년 만의 정권교체, 인권 대통령의 집권, 개혁의 나팔소리 같은 커다란 목소리에 미리 포만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진 탓일까.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이들은 그래서 더 허기가 진다. 전국에서 모여든 한총련 대학생 40여명은 지난 12월5일부터 명동성당에서 ‘공안사범 처우지침 철회와 준법서약제 철폐, 양심수 전원 석방, 국가보안법 철폐’를 내걸고 농성중이다. 물과 소금만 먹으며 지내는 단식농성이다.

농성단장인 이희종(23·부산대 토목공학 4년)씨는 “언론은 저희들이 단식농성하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다”며 “명동성당이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는 생각에 춥고 배고픈 것도 견뎌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겨울 단식농성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한총련 농성자 가운데 2명이 나흘째 되던 날 쓰러졌다. “먹고 기운을 내야지 왜 굶느냐”고 안타까워하는 다른 천막 사람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수도 한가운데에서 그들은 전기도 없이 살고 있다. 지난 11월27일 명동성당쪽이 천막을 걷어내려 한 사건이 있은 뒤 12월3일 성당 앞 가게에서 끌어쓰던 전기마저 끊겼기 때문이다. 밤이 되면 야외용 부탄가스를 달아 쓰는 가스등이나 촛불로 천막 안을 밝힌다. 전기담요도 무용지물이 됐다. 천막을 둘러친 비닐 한겹과 바닥에 깐 스티로폴, 가스난로가 난방도구의 전부다.

한총련 단식농성… 노동자 ‘이산 가족’

12월12일로 농성 100일째를 맞는 만도기계 수배노동자 3명은 추위가 닥친 뒤 가족들을 자주 볼 수 없어 가슴이 더 시리다. 공장이 있는 대전과 천안에 살고 있는 부인과 아이들이 종종 올라와 천막에서 자고 가기도 했지만, 요즘엔 나이 어린 아이들이 감기라도 걸릴까봐 이들의 힘겨운 ‘가족 상봉’이 그나마 뜸해졌다.

엄마 손에 이끌려 농성장을 찾은 딸 한결(6)이와 성당 경내를 한바퀴 돌아보는 게 낙이던 만도기계 노조 대외협력국장 임두혁(32)씨. 처음 농성장에 왔을 때는 “같이 집에 가자”고 철없이 조르더니 갈수록 아빠의 처지를 알아가는 양 그냥 놀다 돌아가곤 하던 딸아이의 얼굴을 본 지가 어느덧 2주가 넘었다. 요즘 같은 날씨에 공공근로사업에 나가는 아내의 고생스런 일상도 눈에 밟힌다.

따뜻한 물이 없어 몸을 씻기가 힘들다든가, 가끔씩 식수로 쓰는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다든가, 화장실을 사용할 때 눈치를 봐야 하는 따위는 이들에게 못견딜 만한 불편함은 아니다. 몸에 달고 사는 감기야 집에서 편히 지내는 이들에게도 찾아오는 병이다. “새 정부 들어 파업과 관련돼 구속된 사람이 지난 정부 5년 동안보다 많습니다.” 이런 현실이 무엇보다 오한을 일으키는 냉기인 것이다.

총무원장 선거를 둘러싸고 늘 전운이 감도는 조계사에도 농성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8월9일부터 대웅전 앞마당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한 이들은 지난 정권에서 학생운동 활동과 관련해 수배된 휴학·제적생들이다. 조계사에서 빚어진 폭력사태와 이 때문에 경내로 들어오는 경찰을 피해 최근 조계종 교육원 건물 4층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중의 피난생활’인 셈이다. 이후 농성단 9명은 건물 밖으로 한발짝도 나가지 못한 채 갇혀 사는 신세다.

이들은 93년 문민정부 출범을 앞두고 연세대에서 벌어진 ‘5·6공 정치수배자 수배해제 요구 농성’으로 수배자 대부분이 기소유예나 불구속 기소된 전례가 있는 데다, 인권을 강조하는 정부가 들어선 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수배해제를 염원하며 매일 아침 108배(拜)로 용맹정진했고 농성 108일째인 지난 11월24일에는 무릎이 깨지고 허리가 휘어질 듯한 3천배 의식을 치렀다. 그러나 도로아미타불이었다.

“인권법이 제정되는 국면인데 수배자 문제도 합리적으로 풀리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여름에 시작한 농성이 추석을 넘기고, 새해까지 농성장에서 맞아야 하다니….”

인권법 제정 무색… 농성장서 새해 맞을 판

이들도 12월5일부터는 단식에 들어갔다. 농성을 시작한 뒤 수배시절 만나지 못했던 친지·동료를 손님으로 맞는 게 즐거움이었는데, 지금은 단식 때문에 손님맞이가 오히려 힘겹기만 하다. 하루 20분 이상 말하면 안 된다는 단식전문가의 충고는 아예 잊고 지내야 한다.

“단식하기 전에는 부모님들이 통닭이나 붕어빵이라도 사들고 왔는데 이제는 빈손으로 왔다 화를 내며 가십니다. 수척해진 모습이 보기 싫다며 조계사 문 앞에서 뒤돌아서는 어머니도 계시고요.”

단식 6일째날 밤 농성단의 한명인 유병문(26·동국대 불교학과 92년 입학)씨는 힘들어하는 동료를 걱정했다. 그의 목소리도 잦아들어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문안전화를 하면 “너 굶는 모습이 꿈에 나타난다”며 울먹인다는 어머니(53) 생각에 그의 웃음 띤 얼굴에도 설핏 그늘이 졌다.

한겨울을 무색케 하는 농성 대열에는 젊은이들만 있는 게 아니다. 식사 때마다 ‘한주먹씩’ 약을 들어야 하는 60∼70대 노인 30여명도 40여일째 천막생활을 하고 있다.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숨지거나 원인도 모른 채 주검이 돼 돌아온 자식들을 가슴에 묻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원들이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바라다보이는 장기신용은행 앞 인도 한켠에 지은 천막으로 새벽녘 냉기가 파고들 때면 이불 틈으로 신음소리들이 새어나온다.

이들의 요구는 과거정권에서 희생된 민주인사들의 명예회복과 의문사 진상규명이다. 고 이한열씨의 어머니 배은심(60)씨는 “당연한 요구를 들어달라고 우리가 이렇게 고생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목표가 이뤄지더라도 좋기보다는 허망한 마음이 될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의 정부를 만들기 위해 애쓴 사람들이 오히려 가장 밑바닥에서 힘들어해야 하는 현실이 무엇보다 이들의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듯했다.

노쇠한 몸을 채근해 아침 7시30분부터 이어지는 피켓팅과 집회 일정을 좇다보니 이젠 몸도 마음도 허해졌다. 고 전태일씨의 어머니 이소선씨를 비롯해 3∼4명이 병을 얻어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최근 들어 김훈 중위 사망사건 때문에 의문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져, 그동안의 무관심이 불러일으켰던 노여움과 섭섭함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문제가 시원하게 해결된 농성장은 아직 한곳도 없다. 유가협 농성장 옆에서는 12월8일부터 이갑용 민주노총 위원장이 경제파탄 책임자 처벌과 정리해고 중단, 실업자 노조가입 보장, 교원노조 보장, 구속자 석방 등을 내걸고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이런 농성이 계속되는 건 국가적 수치”

농성용 천막이 겨울바람에 들썩이던 12월10일, 김대중 대통령은 세계인권선언 50주년 기념식에서 “과거와 같이 권력의 폭압으로부터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경제·사회적 환경과 제도 및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더욱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인권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인권정책의 방향을 제시했다.

이튿날 여의도 농성장에서 만난 고 박종철씨의 아버지 박정기(71)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농성이 계속되는 건 국가적 수치입니다. 우리도 전부 병들어 농성을 계속할 수가 없어요. 정부가 빨리 해결에 나서 이 천막을 걷어치워야지요.”

일주일째 독감으로 병원치료를 받고 있는 노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어느 천막이건 안에 들어서면 담요 먼지 날리는 건조한 공기가 입 안을 마르게 하게 마련이다. 천막 안 습기는 전부 차가운 바깥 공기와 닿은 비닐 덮개에 물방울로 맺혀버리는 탓이다. 그렇게 우리 사회의 풀리지 않는 매듭으로 남은 곳, 바로 겨울 농성장이다.

박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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