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한겨레통일문화상을 받은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은 95년 11월4일 독일 베를린에서 만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뜰 때까지 `행동하는 예술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는 동백림사건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면서 폭력과 불평등에 대한 저항, 세계평화와 인류에 대한 사랑을 음표에 담기 시작했으며, 음악을 매개로 남북화해에 앞장섰다.

그의 작품 <오보에와 하프를 위한 이중협주곡 `견우와 직녀’>나 <칸타타 `나의 땅 나의 조국’>에는 민족의 하나됨을 바라는 열정이 녹아 있다. “이데올로기는 활엽수처럼 계절에 따라 무성하게 착색되고 낙엽지지만, 민족은 창공처럼 영원하다”는 믿음으로 남북 사이의 철조망을 음악으로 녹이자고 처음 제안한 이도 바로 윤이상이다.

지난 11월3~5일 평양에서 `작은 통일’을 이뤘던 제1회 윤이상통일음악회의 원류를 찾아가다보면 그가 제안했던 `민족합동음악축전’에 다다른다. 윤이상은 88년 7월1일 일본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8월15일 비무장지대에서 남북 음악인들이 합동연주회를 열자고 남북 정부에 제안했고, 이는 부족하나마 90년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열렸던 `범민족통일음악회’ `송년통일음악회’로 꽃피었다. 남쪽에 내려오기를 주저하던 북한 쪽을 설득하는 데도 그의 공이 컸다.

윤이상이 피운 불씨는 오랜 잠복기를 거쳐 올해 다시 피어올랐다. 굳게 닫혀 있던 남북 정부와 음악인들의 마음을 연 그의 부인 이수자씨 뒤에는 윤이상의 후광이 있었던 것이다.

평양에서 만난 이씨는 “여러 고비가 많았지만 힘들 때마다 남편을 떠올렸다”면서 “민족의 문화 자산인 윤이상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회를 지속적으로 열면서 남북 사이의 긴장이 눈 녹듯이 녹아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 음악원에서는 최근 바흐, 헨델, 모차르트 등 역사상 최고의 음악가 44명을 꼽으면서 윤이상을 그 반열에 나란히 올려놓았다. 정작 그의 조국에서는 그를 외면했지만 “동양의 사상과 음악기법을 서양 음악어법과 결합시켜 완벽하게 표현한 최초의 작곡가”로 세계 음악계는 그를 칭송하고 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