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단체 ‘간섭말라’ … 자치단체 ‘지원일 뿐’
지역문화 진흥 도울 평가시스템 마련 시급
지역 문화예술축제가 관료주의에 멍들고 있다. 지방자치 시대를 맞아 활성화한 국제규모의 문화행사들에 공무원들이 지나치게 개입·간섭해 예술제 취지가 크게 훼손되고 있는 것. 전문성 없는 공무원들이 자리를 차지한 채 행사의 기획·집행을 관여하고, 예술인들의 충고와 지적을 무시하고 있다.
문예인들이 반발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다. 행정가들이 문화제를 기획·집행하는 건 주객이 전도됐다는 지적.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현 정부의 문화정책 기조를 지키라는 충고다. 그것만이 문화의 시대인 21세기를 제대로 맞이하는 자세라는 것.
예산 주는데 간섭은 당연?
관 주도의 불합리를 바로잡고 민간전문가의 권한 강화를 요구한 전시총감독을 전격 해임·교체해 미술계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는 광주비엔날레와, 민간연극인들이 성공적으로 개최해온 행사를 관이 가로채려해 진통을 겪고 있는 과천세계마당극큰잔치가 대표적 사례.
두 행사 모두 지자체가 예산 지원을 근거로 예술행사를 쥐락펴락하려 한다는 점에서 예술인들의 창의성·자율성을 심각하게 해친다는 우려를 사고 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고 △집행기능을 민간으로 이양한다는 현 정부의 문화정책 방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박인배 민예총 기획실장은 “문화예술행사를 이해하고 지원하기 보다는 행정편의를 위해 집행하려는 관행이 문제”라며 “그동안 별 무리없이 민간이 치뤄온 행사에 문제를 제기하며 운영을 독점하려는 건 행정관료들의 생색내기”라고 지적했다.
시 공무원이 주요 조직을 독점하려는 이유에 대해서도 “최근 진행되는 구조조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이기우 교수(인하대 사회교육과)는 “퇴출돼야 할 공무원의 피난처를 광주비엔날에에서 찾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고, 임진택 과천마당극큰잔치 집행위원장도 “과천시가 구상하는 관 주도 운영방침은 퇴출공무원의 자리 마련과 연결된 것 아니냐”는 강한 의구심을 표명했다.
대규모 문화예술행사를 치룰 때마다 문화재단 또는 조직위원회가 결성된다. 이러한 외곽단체에 퇴출 공무원들이 자리를 차지해 정작 전문가가 들어가 활동할 수 있는 기회는 막혀버리는 악순환이 계속돼 왔다.
정책평가·차등지원 도입해야
광주시의 경우, 공무원이 재단직원이 될 수 없는 현행법을 비켜가기 위해 지난해 7월 1백여명의 공무원을 광주시립미술관 사무국 직원으로 배치시키고 이들이 비엔날레재단의 주요 직책을 겸임케 하는 기발한(?) 정책을 구사해왔다.
재단 정관에 따르면 재단 산하 사무처의 사무총장은 부시장, 사무차장은 시립미술관장, 사무국장과 학예연구실장은 미술관 공무원이 겸임한다. 주요 결정 권한이 모두 시 공무원에게 돌아간 것. 문화예술제의 독립성·탄력성·창의성이 공공부문의 경직성과 관료주의의 폐단으로 멍들수 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민간예술인들의 거센 반발로 지자체가 빈축을 사고 있지만 중앙 정부 차원의 대책마련은 뚜렷한 게 없는 실정. 문화부 공연예술과 관계자는 “지자체에 예산을 지원할 때 방향지침 등을 내려보내기는 하지만 지자체 예산으로 진행하는 경우에는 간섭할 권한이 없다”며 “공무원과 민간인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화해를 종용하는 정도”라고 밝혔다.
지자체 공무원들은 “간섭을 하려는 게 아니라 지원을 하려는 것”이라는 입장으로 일관했다. 과천시 예술진흥계 관계자는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였다, 오해를 산 것이지 광주시처럼 간섭하려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말로만 남발하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문화정책 원칙이 곳곳에 뿌리내리려면 중앙 정부 차원의 노력이 시급하다. 전문가들은 지역문화진흥을 도모할 평가시스템을 강화하고 그에 따른 예산의 차등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문화관광부는 지난해 처음으로 공공문화기관에 대한 평가작업을 벌였다. 그 결과 문예회관 관장은 거의 대부분 전문성 없는 공무원이었고, 전문인력의 배치도 미진했다. 운영위원회나 이사회가 실질적으로 운영되는 곳도 드문 것으로 밝혀졌다.
문화관광부는 또 지자체의 문화예술행사에 예산을 지원하고 있지만 정산 수준의 감사만 하고 있다. 효율성 있는 집행이었는지에 관한 총체적인 평가는 부재한 실정. 양현미 한국문화정책개발원 연구원은 “문화부가 공공문화기관 평가를 본격화해 개선방향을 제시하고, 지역 문화행사에 대해서도 정책적인 평가를 통해 예산을 차등지원하면 변화와 개혁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화제 투명성 시민이 감시해라
전문인력의 수는 어느 정도인지, 기관 대표는 전문성이 있는지, 운영위원회·이사회 등이 실질적으로 활동하는지 등 조직인력에 비중을 두고 평가하면 관료주의로의 퇴행을 막는데 기여할 것이란 지적.
시민사회단체가 지자체 문화예술행사를 감시·통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기우 교수는 “회계·업무집행 등과 관련해 시민·문화단체들이 자료 공개를 청구할 수 있도록 정관에 명시하고, 시민 모니터제도 등을 통해 운영의 투명성·효율성을 감시해야 한다”며 “시민·예술단체가 연대해 관료주의를 막아낼 법률개정운동도 활발히 벌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예술행사는 문예인이 주도하고 지역주민이 문화적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공공성을 확보하면서도 관 주도·독점이 아닌 민간의 참여폭을 넓혀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방향과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관료적 문화행정을 개혁해 나갈 기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 서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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