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관료까지 가세

‘밥그릇 챙기기’ 합작

규제개혁 방해

불법 로비 감시·규제 시급

“규제개혁 법안이 국회 심의과정에서 변질될 경우 일곱번이고 여덟번이고 다시 고쳐야 한다.”

이진설 규제개혁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지난해 각 부처가 규제개혁 법안을 국회에 낸 뒤 이렇게 못 박았다. 관련 이익단체와 관료들의 ‘로비’를 사전에 막아 보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이 위원장의 우려는 결국 현실로 드러났다.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려는 변호사·회계사협회 등 사업자단체와 이익단체들의 뿌리깊은 로비관행은 ‘같은 업종’ 출신인 해당 상임위 의원들의 이해와 맞아떨어졌고, 여기에 대규모 규제철폐로 기득권을 잃게 된 부처 관료들까지 가세해 어렵게 만들어진 규제개혁 법안들은 되레 ‘개악’되고 말았다.

“건전한 의견개진을 로비로 왜곡하는 이유가 뭐냐. 의원 개개인이 독립적인 헌법기관인데 법을 만들때 업계의 입장을 참고해 달라는 게 잘못된 거냐.” 그동안 대표적 이익집단으로 지목돼온 변호사협회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로비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재정경제위원회가 세무사·공인회계사 등 전문직 사업자단체의 복수 설립 허용을 유보키로 한 과정을 살펴보면, 의견개진이었다기보다 단체와 의원이 합세한 ‘조직적인 방해공작’이었다는 인상이 짙다.

재경위는 지난해말 관세사·회계사·세무사협회의 복수 설립을 허용키로 한 규개위 원안을 무기한 유보했다. 재경위는 이런 결정에 대해 “협회가 난립할 공산이 크고 서비스 질이 낮아진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이는 이미 규개위의 십수차례 회의와 시민단체들의 공청회에서 ‘근거없다’고 판명난 변명이었다.

유보 결정 직전 관세사회는 개혁법안 상정직후 현재 재경위원이자 관세사회 회장이기도 한 심정구 의원(한나라)을 통해 법개정 반대청원을 냈다. 세무사회도 역시 재경위원이자 전 세무사회장인 나오연 의원(한나라)을 통해 반대청원을 냈다. 사업자단체들이 같은 업종 출신 의원들을 활용해 법 개정에 결정적인 제동을 건 것이다.

이들 단체의 ‘로비’는 지난해 중반 처음 이 문제가 제기됐을 때 부터 시작됐고, 따라서 뒷거래가 있을 수도 있다는 등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한나라당 김아무 의원 보좌관은 “지난해 여름부터 관련단체 관계자들이 재경위원 사무실에 살다시피 했다”며 “임기 뒤 자기 자리를 보전하려는 의원들이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털어놨다. 결국 전문성을 위해 자신의 출신과 관련된 상임위로 간 의원들이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관련 단체들과 손잡고 개혁을 가로막고 있다는 얘기다.

재경위와 마찬가지로 의사·약사단체 복수설립 법안을 유보한 보건복지위는 위원 16명 가운데 14명이 의사·약사나 제약업체 사장 출신이어서 업계의 이익에 반하는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원천봉쇄돼 있는 셈이다.

상임위원들과 사업자단체 사이에 이처럼 ‘혈맹관계’가 맺어진 것 외에, 정부 부처가 자신들이 낸 개혁법안을 다시 고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 재경부는 금융산업에 대한 정부 간섭을 없앤다는 취지에서 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에 대한 재경부 임명 승인권을 폐지키로 했지만, 상임위 심사 과정에서 되살아났다.

이와 관련 재경부 내 기득권을 주장하는 관료들이 해당 상임위에 압력을 가했다는 소문이 끈질기게 나돌고 있다. 법무부는 변호사 징계권 환수 등을 담은 변호사법 개정안을 아예 국회에 내지도 않은 상태.

이밖에도 건설교통·문화관광·교육위 등이 이익단체들의 로비가 집중되는 상임위로 알려져 있다. 이들 상임위도 물론 관련업종 출신 의원이 많긴 하지만 그동안 관행처럼 굳어온 ‘떡값’이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전문성과 함께 의원의 ‘양심’을 감독할 부패방지법 같은 제도가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일반 건설업자의 공사 하도급 의무제를 폐지키로 한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은 대한건설협회 등 관련 단체의 끈질긴 반발에 부닥쳐 이번 국회에서도 유보됐다. 교육부는 단과학원 등 교습소에서 교습과목을 한 과목으로 제한키로 한 조항을 폐지키로 했으나 교육위원회에선 “교육의 품질을 높여야 한다”는 명분으로 존치시켰다. 이 과정에서 학원연합체 등의 로비가 치열했다고 전해진다.

국회 상임위가 이처럼 로비의 각축장으로 변질된 것은 위원회의 전문성을 살린다는 이유로 관련 업종 출신 의원을 적절한 안전장치 없이 무조건 끼워넣었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따라서 관련 단체들의 입김이 센 이른바 ‘노른자위’ 상임위는 너도 나도 들어가려고 애쓰고, 일단 들어가면 여론에 따르는 입법활동보다 단체에 맞장구 치기 바쁜 꼴이 되버린 것.

물론 지난번 국회가 여당 단독으로 열렸다는 점도 이런 규제개혁 법안의 변질에 한 몫 했다. 여야가 본회의 때 충분히 논의과정을 거쳤더라면 수정·변질된 내용을 걸러낼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다.

/ 배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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