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원만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던 스위스 제네바 4자회담이 돌출변수로 동요하고 있다. 북한이 20일 독일 주재 북한 외교관 김 경필씨 부부가 “남한과 미국에 의해 납치됐다”고 주장하며 해명을 요구하는 바람에 `긴장완화분과위’ 회의가 사실상 공전된 것이다.
북한이 이날 지난 13일 발생한 김씨 사건을 뒤늦게 들고 나온 것 은 판문점을 통해 남한당국에 `원상회복’을 요구했으나 우리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이와 관련해 북한이 지난 16일 오후 늦게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김씨 사건을 납치사건이라고 주장하는 서신을 보내왔으며, 안기부는 답신을 보내 `전혀 사실무근’임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남한쪽 답신을 받은 뒤 나흘이나 지난 시점에 제네바 회담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북한 대표단은 19일 밤 자신들이 주최한 리셉션이 끝날 때까지 김씨 사건에 대해선 일체 언급하지 않고 의장국으로서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던 것이다. 또 같은날 열린 전체회의에서 김계관 북한 수석대표는 참가자들을 소개할 때 박건우 남한쪽 수석대표를 지칭하면서 처음으로 `대한민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북한이 대한민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남북대화나 국제회의 등에서도 유례가 없었다. 따라서 북한당국은 모종의 신중한 정치적 판단을 거쳐 19일 밤 늦게 제네바 대표단에 긴급훈령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북한이 왜 `미국’을 공모자로 지목했는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정부 당국자는 “망명과 관련해 북쪽이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항의서한을 보낸 적이 없다”며 “황장엽 사건 때도 방송으로 `갈테면 가라’고 했을 뿐이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아무튼 북한이 김씨 사건을 제기함에 따라 4자회담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97년 8월 장성길 주이집트 북한 대사 망명사건 때 진행중이던 미국과의 미사일 협상을 중단시킨 적이 있다.
그러나 북한이 이번 4자회담 협상을 당장 박차고 나갈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바라지 않을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리근 북한쪽 차석대표가 남한과 미국을 비난하 면서도 “남한과 미국이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기를 원하는지 악화되기를 원하는지 이 자리를 통해 명백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다소 유예적인 주장을 편 대목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
이에 따라 북한은 앞으로 사흘 남은 회담기간 동안 납치 주장과 해명을 되풀이 요구하면서 북-미 지하시설 협상에서 이를 유용한 카드로 최대한 활용하려 들 것으로 보인다. 남한과 미국쪽도 별도의 쌍무접촉을 통해 사태해결의 돌파구를 모색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제네바/이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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