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튼우즈 체제의 두가지 실패
무역포커스(Focus on Trade), 1월호, 카말 말호트라1)
‘무역포커스’는 태국, 방콕 있는 남반구 포커스(Focus on the Global South) 연구소에서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전자 매체로 지역적, 지구적 차원의 무역과 금융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초기에는 주로 APEC 문제에 중점을 두었으나 현재는 세계무역기구(WTO), 아세안자유무역지대(AFTA), 다자간투자협정(MAI), 국제통화기금(IMF)등을 포괄적으로 다루며 비판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 -편집자 주-
동아시아 경제 위기와 향후 정책 조정 과정에서 제기된 사회적 이슈들에 관한 세계은행의 회의가, 세계 각처에서 온 200명 이상의 정부 관계자들과 다자간 기구의 대표자들, 그리고 일단의 시민 사회 단체와 대표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1월 21일과 22일 방콕에서 열렸다. 이 회의는 1997년 7월 2일의 태국 바트화의 붕괴가 촉발한 동아시아, 동남 아시아 경제 위기를 통해 야기되거나 중심적 의제로 떠오른 중장기 사회적 정책적 쟁점들에 대해 토론하기 위한 첫 번째의 공식적인 주요 회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의 한 중앙이라는 그 지리적 위치와는 별도로, 방콕이 회담 장소가 된 것은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태국이 위기의 진앙지였기 때문이다. 이 일련의 위기의 마지막 희생자인 브라질 헤알화 붕괴의 반향이 막 감지되고 중국 위안화의 평가 절하에 대한 두려움이 다시 새롭게 고개를 드는 이 시점에 이번 회의가 열린 것 또한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이다.
최근 몇 달간 동아시아 통화들이 상대적인 안정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나라의 경제 회복은 사실상 시작조차 되지 않았음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다. 물론 국제통화기금 측에서는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브라질의 통화 붕괴에서 보여지듯이 지구적 위기는 아직까지 그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방콕의 유엔 콘벤션 센터 복도에서는 미국과 브라질 두 나라 경제의 밀접한 연관으로 인해 이번 브라질 위기가 세계 대공황이라는 유령을 다시 한번 깨울지도 모른다는 은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세계은행의 동아시아 담당 부총재인 장-미셸 세베리노는 이번 회합에 참석한 최고위의 은행측 인사였으며 추안 릭-파이 태국 총리와 아드리아누스 무이 UNESCAP 총재와 함께 이 회의를 개막했다.
세계은행의 동아시아 사회정책 담당관인 캐서린 마샬이 이번 회의의 실질적인 의제 선정과 진행의 책임을 맡고 있었다. 회의가 열리기 전날 밤 세계은행이 마련한 파티에서 캐서린은 이 회의가 세계은행 혁신의 출발점이 될 것이며, 또한 그녀는 회의의 내용보다 오히려 이 회의의 진행 자체와 그 산출 결과들에 더 흥미를 느끼고 있다고 열광과 흥분에 가득 찬 어조로 내게 말했다. 그 이틀 동안 나는 정말 열린 마음으로, 이 회의 진행에 있어서 과연 무엇이 내가 참여했던 과거 여러 차례의 세계은행 주관 회의들과 이번 회의
를 실제적으로 다르게 해주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내 생각에 그것은 여러 시민사회 단체의 대표자들이 이번과 같은 고위급 공식 회의에 초대된 것이 아닌가 한다. 말레이시아의 제3세계네트워크의 마틴 코어와 남반구 포커스가 아시아 위기의 인간학적 측면(Human Dimensions of the Asian Crisis)이라고 명명된 두 번의 총토론회에서 발언하도록 초청된 것이다. 이 회의는 거시 정책과 사회적 결과의 연결 고리를 찾고,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과 정부간 기구 측의 고위 인사들도 참여하여 지역적인 수준에서의 중장기 목표들을 찾고자 하는 자리로서 국제통화기금의 아시아 국장으로 악명높은 휴버트 나이스는 첫 번째 토론회에, 일본 외무성의 경제 협력 담당 부국장 히데아키 도미치, USAID의 부행정관인 로버트 랜달, 필리핀 정부의 예산 관리 담당 장관인 벤쟈민 디오크노 등은 두 번째 토론회의 주요 참석자였다. 이런 것들이 종래의 관행과 구별되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이번 회의의 긍정적인 성과는 세계은행이 세베리노를 통해 자신들이 아시아 위기의 많은 국면에서 오류를 범했었고, 위기의 복합적인 충격들과 그 내포하는 의미들을 아직도 상당 부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 그리고 그 공식 대응책이 다른 모든 것들을 감수한 채 환율을 안정시키려는 데에만 너무 협소하고 배타적으로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고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세계은행은 또한 지역의 시민 사회 단체들과 함께 6개월에 한번씩 이와 같은 회의를 갖자는 제안을 과거로부터의 자신의 단절 이행과 함께 새로운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사실 조금 솔직히 이야기한다면 그런 회의는 아직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인 것이다.
새로운 방향 설정인가, 아니면 여전한 되풀이인가?
하지만 이러한 혁신은 여전히 몇 가지 근본적인 질문거리를 남기고 있다. 특히, 실제 회의의 대부분이 지금까지 그랬던 것과 똑같이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사실상 위에서 언급한 혁신이 앞으로의 거시적, 사회적 정책 결정에 얼마나 실제적 영향을 줄 것인지, 과연 이 혁신이 좀더 많은 사람들과 인간 개발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작용할 것인지는 오직 시간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방콕 회의의 진행과 성과들에 대해 고찰하면서 그 결론과 함께 몇 가지 근본적인 이슈들을 지금 여기서 제기할 필요가 있다.
세베리노는 아시아 위기에 직면하여 세계은행이 그 핵심적인 국면의 많은 부분에서 잘못 대응했다고 자책하는 표현으로 회의를 개막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이것은 초점을 약간 빗나간 것이다. 자책해야할 것은 국제통화기금이며 세계은행은 사실 다른 측면, 즉 국제통화기금이 위기의 모든 경제적 대응을 주도하도록 만들고 자신은 단역만을 맡은 데에 대해서 사과했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껏 세계은행의 주된 역할은 국제통화기금의 악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판이 나은 것이었으며, 국제통화기금의 정책 진단의 결과로 야기된 사회적 혼란의 정지 작업이었던 것이다.
사실상 국제통화기금은 1월 19일 공개된 인도네시아와 한국 그리고 태국에 관한 지원 프로그램에 관한 내부 평가 문건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회개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휴버트 나이스 아시아 담당 국장은 기금의 거시 정책 진단이 시의 적절했는지에 관해 몇 가지 원칙적인 질문들이 제기될 수 있다고 마지못해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기금 측의
반응은 유연하고 즉각적이었으며, 처음부터 그 정책 진단이 상황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그는 비록 그 실행 과정이 완벽하지 못하고 몇 가지 판단의 오류가 있기는 했지만, 국제통화기금의 기본적인 정책과 전략은 올바른 것이었다고 까지 주장했다. 이런 정도의 말조차 나이스에게는 말하기 어려운 것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확실히 인간과 사회 정책적 이슈보다는 숫자와 도표에 좀더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그는 도대체 미안하다는 말을 모르는 사람인 것이다.
그가 방콕에서 발표한 유일한 성명은 그가 2000년 1월에 사임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제통화기금의 아시아 구제 계획에서 그가 가진 지도력이 기금 내부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 암시해주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소식은 태국의 영자 신문들의 제1면과 사설에 동시에 실렸다. 국제통화기금의 내부 평가 결과에 기반한 구제 계획의 비판과 태국 총리의 마지못한 인정, 1월 마지막주의 태국 총리에 대한 의회의 임박한 불신임 논의 등이 함께 보도되었다. 또한 태국 의회가 지금 처리해야하는 논란 많은 파산과 저당에 관한 법률에 관련하여 통화기금이 제시한 몇몇 조건들에 대한 반대 의견을 표시하기 위해 상원 대표단이 미국과 기금 측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것들은 국제통화기금이 자신의 가장 훌륭한 학생인 태국에 대해서마저도 실질적으로 잘못된 처방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의 피터 헬러 재정 정책 담당 부국장과 이 회의에서 그가 주장한 기금의 소위 인간적 면모는 오히려 국제통화기금을 더 곤경에 빠뜨리고 말았다. 먼저 그는 다수 참석자들의 동의도 얻지 못한 채, 국제통화기금이 과거 십여 년 동안 많은 비정부기구들과 거시 경제 조정의 사회적 측면에 관해 대화를 진행해 왔으며 기금의 정책 진단에 있어서 인간학적 측면을 고려해 왔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공공연한 성명은 많은 참석자들에게 불성실하고 부정직한 것으로 비춰졌을 뿐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는 통화기금이 처음에 요구했던 긴축 예산의 목표를 지역내 정부들이 실행하지 않았으며, 이런 까닭에 뒤이은 경기 침체는 국제통화기금의 탓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만약 헬러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인다면(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적어도 태국의 경우, 국제통화기금의 초기 처방이었던 예산 1% 흑자 기조의 달성을 위해 상당한 정도의 예산 삭감이 있었던 것이다) 최소한 두 가지의 질문이 제기된다: 첫째, 설사 이런 목표들이 실행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각종 시장 그리고 종종 부정적인 투자와 그에 기반한 다른 결정들을 이끄는 경제 주체들에 어떤 신호를 주기에 충분하였다. 둘째로, 이들 나라에서 경제 불황이, 최초 요구되었던 예산 목표가 실행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까지 상당한 정도였다면, 그것은 국제통화기금의 아시아 위기에 대한 파악이 오히려 가장 심한 비판자들이 염려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실제적인 면에서 잘못되었음에 틀림없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제는 진부해지긴 했지만 동아시아 위기에 대한 국제통화기금의 대응에 대한 비판이 회의에 참석한 패널리스트들과 일반 참가자들 양측에서 빈번히 제기되었다. 실지로 이런 비판들은 심지어는 USAID의 부행정관인 로버트 랜달과 같이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인사 측에서도 제기되었던 것이다. 그는 통화기금의 아시아 위기 대응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을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둘째 날 패널 토론자인 인도네시아 BAPPENAS의 지역 개발 부국장, 헤르만 하이루만이 아시아 위기와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사태에 대해 국제통화기금에 30%의 책임을 묻고 싶다고 말했을 때, 랜달은 공식 연설의 서두에서 하이루만이 국제통화기금에 너무 관용적인 것 같다고 언급하기까지 했다.
한편 세계은행은 만약 정말로 이번 회의의 잠재적이지만 혁신적인 면들을 그 발판으로 삼고자 한다면 일련의 중대한 이슈들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그 분석과 대응이 많은 지역에서 잘못되었었고, 위기의 복합성과 그 사회적 영향들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거시 경제 정책과 사회 정책의 분명한 연관을 깨닫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면, 이제 세계은행은 다음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그 최소한일 뿐이다.
세계은행은 의식적으로 경제 정책 문제들에 대한 시민 사회 단체들의 참여를 보장해야할 것이며, 지난주 회의에서 보여졌듯이 비정부기구들의 참여를 사회 정책상의 쟁점들로 제한하려는 유혹에 굴복해서는 안될 것이다.
국제통화기금의 거시 경제 정책 대응들에 대해 좀더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뿐 만 아니라, 그것들이 사회 정책상의 쟁점들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이고, 그 영향들을 분석해야 한다.
거시 및 다른 경제 정책들이 사회 정책상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그 목표를 재규정해야 한다.
세계은행이 제안한 사회 정책에 관한 반년간 회의의 목적이 무엇인지 훨씬 더 명확히 해야 한다. 그러기 전까지는, 그리고 세계은행이 이번 위기로부터 배운 올바른 교훈에 기반하여 그 경제, 사회 정책 결정에 있어 좀더 실질적인 변화를 주기 전까지는 시민 사회 단체들은 이런 테이블에 임하지 않을 것이며, 특히 세계은행의 회의를 함께 여는 주체로는 나서기는 힘들 것이다.
1> 카말 말호트라는 남반구포커스의 공동 집행위원이며, 시민 사회와 정부 그리고 세계은행의 구조 조정 프로그램 평가단(SAPRI)의 삼자로 구성된 국제 조정 위원회의 멤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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