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일입니다

이렇게 편안하게 아침을 맞는 일

인터넷 없는 또 다른 천국에서

오랜만에 볼펜을 굴려 편지를 씁니다

햇살 한 줌 비치지 않는 철창 안이지만

싸늘한 새벽 공기는

희미한 불빛 아래서도

너무도 신선합니다

이틀만 곡기를 끊어도

이렇게 속이 편안한 것을

우리는 그동안 너무 복잡하게, 요란하게 산 것 같습니다

좀 덜 먹고 좀 덜 마시고

좀 덜 말하고 좀 덜 뛰어 다닐 수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세상일이 그런 것 같습니다

하루라도 안보면 미칠 것 같던 연속 드라마도

며칠 뒤에 봐도 줄거리 따라잡는데 아무 문제가 없고

내가 한번 빠지면 돌아가지도 유지되지도 않을 것 같은

조직도 직장도

일주일이나 몇 달 쯤

아니 어쩔 수 없는 일로 내가 아주 못나가도

끄떡없이 잘 돌아가니까요

병인 것 같습니다

아니면 중독이거나

중독도 병이니 결국 그렇군요

우린 뭔가에 중독된 중증 환자들입니다

결국 인류의 진보는

각종 병의 진보인 것 같습니다

그 진보병의 숙주 노릇을 하고 있는 내가

한심하고 불쌍할 따름 입니다

내 속에 병을 키우며 살면서도

그것이 병인지조차 모르고

딴에는 최고로 잘산다고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지요

오늘 아침 철창 안에서

아침을 맞으며

오랜만에 또 다른 평안을 맛보는 것은

그 또한 진화된 인류의 또 다른 병 인가요

눈 감으니

자작나무 노란 잎을 흔드는 바람소리

깊은 계곡 물소리도 들립니다

*광진경찰서 유치장에서 맞는 이틀째 아침이다. 우리 잡혀간 다음날 범대위 실무자 여덟 명을 또 잡아가두었다니 오늘은 또 누구를 잡아 가둘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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