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부는 한-미간의 대북정책 조율문제에 있어 좀 더 정직할필요가 있다. 정부당국자들은 윌리엄 페리 미 대북정책 조정관의방한을 전후해 한-미간에 이견이 없다는 것을 열심히 역설하고한국의 포용정책은 이미 미국 정부와 합의된 것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간에는 대북정책에 있어 분명히 차이가 있다. 페리는 한국에 도착하는 날 공항에서 {미국의 대북정책재검토에는 두가지 중요한 고려사항이 있다}면서 하나는 포용정책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의 핵-미사일이라는 [심각하고현실적인]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문제는 미국의 주안점이 포용정책(engagement policy)에 있지않고 핵-미사일 해결이라는 후자에 있다는 점이다. 포용정책은애당초 클린턴의 대북정책 기조였다. 그 포용정책의 클라이막스가 바로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키로 한 94년의 [제네바 합의]였다. 그러나 클린턴의 포용정책은 서서히 그 포용력을 잃어왔다. 북한이 미사일과 핵의혹 시설등으로 미국의 불신을 사게 되자야당인 공화당과 보수진영에서는 포용정책의 무용론을 들고 나왔고 클린턴은 마침내 공화당 사람인 페리를 조정관에 임명하고 대북정책의 전면 재검토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런 과정을 볼 때 클린턴의 대북정책은 몸체는 아직 [포용]쪽에 남아있는 듯이 보이지만 마음은 이미 [포용이 받아들여지지않을 때]와 [핵-미사일의 투명성 확보]라는 쪽으로 옮겨간 것으로 봐야 한다. 그렇다고 [포용]쪽을 아주 포기한 것은 아니다.미국은 한국정부가 주장하는 [일괄타결안]이 성사되면 기꺼이 따를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경험으로 보건대 북한이 변하리라는징후는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안이하고 희망적인 가정에만 매달려서 북한에 언제까지 이끌려다녀야 한다는 것은 미국식 합리주의로서는 용납하기 어렵다. 페리 조정관과 만난 한 인사가 {페리는 [포괄적 접근]으로 한국의 체면은 세워주고 그 대신 핵-미사일 문제는 미국방식으로 끌고 갈 것}이라고 한 것은 현상황을 잘설명해 주고 있다.
따라서 한국정부가 {포괄적 접근에 합의했다}는 전자만 강조하고 견해가 다른 후자의 부분은 계속 덮어두는 것은 사실을 호도하고 국민의 인식을 흐트러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한-미간에 이견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북정책은 어느 한 나라의 주장대로 이끌려가서는 안된다. 그러기에 이견은 조정돼야 한다. 그리고 그 주장과 이견의조정과정은 정직하고 솔직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북한이한-미의 의도와 의지를 분명히 인식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클린턴 행정부는 이제 포용정책이 한계에왔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버리려는 마지막 단계에 있고 한국정부는 포용정책을 햇볕정책으로 가미해서 새출발하려는 시작의단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두 정부가 형식상 포용정책을 공유하는 부분은 있지만 그 농도와 의욕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있고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서 공유부분도 퇴색될 것이 예상된다. 만약 내년말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이 집권하게 된다면 어쩌면 한국의 포용정책은 들판에 외롭게 혼자 남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김대중 정부가 {클린턴과 이미 합의됐다}는 부분에만 집착해 포용 또는 햇볕정책을 외곬로 고집하는 경직성에서 벗어나주기를 바란다. 정부당국자들이 {대북협상이 실패할 경우 군사적 또는 다른 강경책을 굳이 내세워 북을 자극할 필요가있느냐}며 인내심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런 낭만적 접근으로는북을 결코 협상테이블에 불러내올 수 없다는 인식도 함께 가져주어야 한다. 어느 정책도 융통성과 유연성을 잃으면 그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 배수의 진은 언제나 필요하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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