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전쟁을 시작했는가

크리스 하먼(Chris Harman)

노동당 의원 켄 리빙스턴은 지난 주 폭격을 지지하면서 “서구와 양키 제국주의적” 목표는 이번 전쟁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은 80년대에 자행된 그라나다와 파나마에 대한 침공에서부터 수단과 이라크에 감행했던 최근의 폭격에 이르기까지 지난 20년간 자행된 수많은 무력도발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해왔다. 미국의 정보국과 군대의 입장은 매우 잘 조율되어 있다. 한쪽은 매우 잔인한 행위들을 수행하고 다른 한쪽은 자비와 평화에 관련된 행동을 수행하고 있다.

제 3세계에 무역 정책을 강요하는 동시에 몬산토나 치키타(유나이티드 푸르트)의 선율에 맞춰 춤추고 있는 정부가 바로 이번 폭격을 주도하고 있는 클린턴 행정부이다. 모건 스탠리사의 금융가인 바튼 브릭스의 다음과 같은 표현은 클린턴 행정부의 외채관련 정책을 여실히 보여준다. “시티코퍼레이션(미국 제 1위의 은행으로서 시티뱅크를 소유하고 있는 지주회사임)이 그들의 배당금을 매년 두배로 올리기 위해서는 앞으로 10년간 2억 명의 불쌍한 라틴아메리카인들이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땀을 흘려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유고슬라비아에 대해 전쟁을 감행하는 미국의 동기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무엇보다 이라크가 가지고 있는 석유는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낡은 동유럽 블록의 붕괴 이후, 미국은 10년 전부터 그들만이 보유하고 있는 힘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들의 전략적 목적은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어떤 사소한 불일치 상황에 대해서도 미국의 전세계적 “헤게모니”를 관철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힘있는 국가들이 항상 미국의 계획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클린턴, 미국 지배 과시

현재 진행중인 “바나나 전쟁”처럼 서유럽 국가들 및 일본과 미국 사이에는 끊임없는 무역 분쟁이 발생한다. 미국은 전선에서 이탈하는 상대적으로 약한 “악당” 국가에게 힘센 국가들의 공동 요구조건을 부과하면서 서유럽 국가들을 전선으로 끌어들임으로서 미국만이 세계 경찰로서 행동할 수 있는 군사적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미국은 자신들의 왜곡된 시각을 바탕으로 1991년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이러한 사실을 증명했다. 미국은 중동의 석유 공급이 서구인들의 손에 유지될 수 있도록 확실히 했다. 그리고 미국은 일본과 유럽, 사우디 아라비아가 미국의 전쟁비용 대부분을 지불토록 만들었다.

미국은 1990년대 중반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에서 또다른 승리를 쟁취했다. 독일 정부는 우스타쉬(Ustashe)의 전시 파시스트 체제를 옹호했던 지도자 아래에서만 크로아티아에 대한 독립을 인정함으로서 유고슬라비아 화약고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미국만이 이들 분리된 국가들에 질서를 가져올 수 있었다. 미국은 크로아티아 군대를 훈련시켰으며 보스니아 이슬람인들을 무장시켰고 세르비아를 폭격했으며 마지막으로는 크로아티아인들이 자국에서 세르비아인들을 “인종청소”하는 것에 협조했다.

그때부터 미국은 과거 러시아 우방국들이었던 헝가리, 폴란드, 체코를 나토에 포함시킴으로서 유럽에 대한 미국의 영향을 훨씬 더 확장하고자 했다. 코소보 위기는 미국만이 유럽 연합의 뒷마당에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킴으로써 미국에게 또다른 기회를 주고 있다. 미국은 유고슬라비아 공습에 있어서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하고 있는 유럽 정부들이 무역과 외채, 중동 석유 및 그 밖의 사안들을 협의하는데 있어서 훨씬 순종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사실을 계산에 넣고 있다. “나토는 새로운 옷차림으로 점검될 필요가 있으며 이번 분쟁은 어느 다른 분쟁만큼이나 제 역할을 할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전쟁 찬성 입장의 가디언지는 경기를 포기해 버렸다.

사악한 두 집단이 이번 전쟁을 자행하고 있다. 한 축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제한된 영토내에서 끔찍한 정책들을 실행하고 있다. 다른 축인 미 제국주의는 전지구적 차원에서 사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코소보에서 죽은 수천명이 밀로셰비치의 범죄에 대한 증인이듯이 중앙 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 인도네시아에서 죽은 수십만의 희생자들은 미국의 범죄에 대한 증인이다. 커먼스지(commons)에서 캔 리빙스턴은 토니 벤의 전쟁에 대한 반대 논리는 한 무리의 흉악범들이 한 여성을 폭행하는 것을 목격하고 돌아서 버리는 어떤 사람의 태도와 동일하다고 말했다. 리빙스턴의 입장은 흉악범을 다루는데 있어서 요크셔의 살인마인 피터 서트클리프의 방식에 의지하는 어떤 사람의 입장과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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