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 재선거를 앞둔 어느 날, 서울 구로을선거구인 구로시장의 한 좌판 앞. 갓 나온 봄나물을 다듬고 있던 노점상 할머니에게 청년진보당 최혁 후보가 손을 내밀었다. 할머니는 화들짝 물러앉았다. 어떻게 흙묻은 손으로 ‘국회의원 후보’의 손을 더럽히느냐 는 것이었다. 최씨가 “일하는 손이
가장 아름다운 손인데 어떻습니까”라며 억지로 악수를 하자 마지못해 손을 맡긴 할머니는 황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최씨는 손자뻘인 자신을 대하는 할머니의 태도를 보며 정치인과 유권자인 서민이 얼마나 다른 세상에 속해 있는지를 실감했다고 한다.
-처음으로 현실 정치에 참여해본 느낌은.
=두터운 장벽을 느꼈다. 기존 정당은 정책이나 이념보다는 돈, 혈연, 지연으로 지역을 장악하고 있다. 이런 풍토가 ‘정치하는 놈은 다 똑같다’는 의식을 조장한다. 우리도 도매금으로 넘어가는게 억울했지만, 한편으로는 기성정치권에 대한 배신감의 표현이 라고 생각한다. 인사차 들른 선술집에서 “선거 끝나고 나서도 한 번 찾아와 소주 한잔 사라”는 말을 들을 때는 기성 정치인에게 매번 느끼는 배반감이 뼛속 깊이 한으로 응고된 듯한 느낌도 받았다.
-선거결과에 만족하나.
=처음에는 1천표 이하를 득표하리란 예상이 많았다. 막상 개표결과가 나오자 ‘이게 뭘 의미할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스스로 놀랐다. 사전 여론조사의 5∼7%보다 낮게 나온 것은 막판 사표방지 심리가 작용한 결과인 것 같다.
-인기투표에서는 1위를 했다는데 실제 표로 이어지지 않은 이유는 .
=젊은 사람이 나와 좋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당선은 안될 것이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우리가 대안세력으로까지 여겨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애들이 열심히 한다’는 말도 들었다. 지역공약을 내지 못한 점을 반성하고 있다. 실업, 정부의 실정, 빈부격차 등 커다란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서민생활과 접점을 찾아야만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진보라고 무조건 지지를 구하는 방식은 잘 못이다.
-이번 선거에서 미래의 가능성을 찾았나.
=유권자들이 신선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번에 당선되지 않더라도 좌절 말고 꾸준히 출마하라는 격려가 많았다. 전 재산이 4천만원이고 서민의 아들이라는 이야기를 하면 친근감을 보였다. 유권자를 출세의 들러리로 여기지 않고 그들의 처지를 대변하려 노력 한다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년 총선에도 출마할 계획인가.
=이번에 지지를 보낸 2천명은 적지만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이다. 다시 출마하겠다고 한 지역민과의 약속을 지키겠다. 평상시에도 선거 때만큼만 하자는 생각이다. 꾸준히 활동하면 내년 이 지역에서 20% 이상 득표할 자신이 있다. 척박한 정치풍토에서 진보적인 정치를 만드는 길은 끈기있는 노력이다. 내년에도 당락에 연연 하지 않고 곧 다시 준비할 것이다.
-앞으로 진보정당이 뿌리내리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언론이 기존정당 중심의 선정적 보도에 치우치는 한 새로운 정치 세력이 성장하기 힘들다. 이번 선거에서도 언론은 우리의 공약이나 정책조차 자세히 소개하지 않았다. 1, 2번 아니면 아예 이야기도 듣지 않겠다는 유권자 태도도 장벽이다. 지역이나 향응 등 잘못된 투표의 잣대를 바로잡으려면 언론을 비롯한 사회전반의 공동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저 자] 박용현 기자
[출 처] 한겨레21
[발 행 일] 199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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