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을 통해 본 한국 노동운동의 국제연대
원영수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국제연대실장>
작년의 메이데이 투쟁이 최악의 경제위기 상황 속에서 새로운 민주노총 지도부와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시작을 상징―물론 이후의 투쟁과정은 실망스러운 것이지만―했다면, 올해의 메이데이 투쟁은 지하철투쟁의 갑작스런 후퇴가 가져온 공백과 충격을 메우는 또다른 반격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근로자의 날”에서 “노동절―메이데이”로 다시 쟁취한 한국 노동자계급의 기념일은 이제 연례적 임단투를 앞둔 결의투쟁으로서, 11월의 노동자대회와 더불어 지난 87년 이후 10여년에 걸친 노동자투쟁의 역사적 성과이자, 노동해방을 향한 노동자들의 의지를 과시하는 주요한 계기로 정착되었다.
계급투쟁의 부활, “신자유주의에 대한 노동의 대반격”
90년대초를 풍미했던 “역사의 종말”, “계급투쟁의 종언”의 담론과는 반대로, 20세기 마지막 10여년의 역사는 새로운 계급투쟁의 역사가 되었다.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로 “자본주의적 시장의 전일적 승리”의 노래가 채 후렴도 불리기 전에, 세계 도처에서 계급투쟁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족쇄풀린 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는 유럽과 미국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을 가하고 나머지 주변부의 노동자·민중들의 생존을 벼랑끝까지 밀어붙임으로써, 전지구적 차원에서 계급투쟁의 지형을 강고하게 구축하였다.
더욱이, 97년 태국과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한국으로 확산된 경제위기는 “지구화된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으며, IMF와 세계은행의 주도로 진행된 구사회주의의 자본주의로의 재이행과정은 이 지역에서 국민경제의 완벽한 해체와 형해화로 이끌어, 러시아와 동유럽이 전지구적으로 확산되는 경제위기의 한 축을 형성하도록 하였다.
이런 구조화된 위기상황 속에서, 지난 20여년간의 끝없는 퇴각 속에서 새로운 저항투쟁의 물결이 지구상의 각지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프랑스 노동자들의 1995~97년 총파업과 1998년의 실업자투쟁, 실업에 저항하는 전유럽적 동원이었던 유로마치, 미국 노동운동 내에서 새로운 조직화의 움직임과, UPS, GM, 및 War Zone 등에서의 일련의 파업투쟁, 캐나다 노동운동의 급진화와 대규모 동원, 멕시코에서 국가코포라티즘과 신자유주의에 저항한 UNT를 비롯한 새로운 노동운동의 흐름, 1997년과 98년 푸에르토리코에서 민영화에 반대하는 전국적 총파업투쟁, 그리고 1996~97년 신자유주의적 노동법개정에 맞선 한국 노동자들의 총파업투쟁―이 모든 투쟁들은 구조조정, 규제완화, 자유화, 민영화 등으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공세에 대한 전지구적 노동자·민중저항의 맥락 속에서 전개된 것이다.
새로운 무기로서의 국제연대
이런 새로운 투쟁의 물결 속에서 다시 강조되는 것이 바로 새로운 무기로서의 국제연대이다. 19세기의 노동운동에서, “모든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여, 단결하라!”는 슬로건이 이미 보편화되었지만, 그 의미는 오늘날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이는 작년 『공산당 선언』출판 15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적 행사들에서 논의되고 확인되고 있다. 더욱이, 가속화되는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전일화 경향과 이를 위한 신경망으로써의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인터넷과 이메일)은 그 동안 분산적으로 존재하던 전세계의 노동자·민중운동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물적 토대를 제공하였다.
그 결과, 과거의 인터내셔널 운동과는 구별되는 아래로부터의 국제연대운동, 풀뿌리(grassroots)차원의 국제연대운동이 새로운 투쟁의 영역으로서 개척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유로마치의 경우도, 물론 유럽이라는 상대적으로 특수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전유럽적 행동의 조직화가 가능했던 사례이며, 이는 올해 유럽 및 G8 정상회담에 대항하는 새로운 투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우도 거의 매년 APEC에 반대하는 아시아-태평양 민중회의(APPA)를 통해, 자본주의적 지구화에 저항하는 노동자·민중투쟁의 지역내 공유와 확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새로운 움직임은 아직 첫걸음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흐름은 한편에서 운동 속에서 지속적 동원의 동력을 추구함과 동시에, 이를 가로막는 장애물과 투쟁해야 하는데, 후자의 면에서는 아직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국제적 노동운동진영 내에서, 특히 국제자유노련(ICFTU)과 국제 산별노련들(ITSs)을 중심으로 한 공식 노동조합의 경우, 지난 반세기 동안 굳어진 관료주의와 계급협조주의의 강고한 틀 안에 갇혀 있어 아래로부터의 새로운 투쟁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남아있는 형편이다. 더욱이 NGO라는 이름 아래, 노동자·민중을 기만하는 사이비 운동세력과 분별·정립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한국노동운동과 국제연대―평가와 가능성
한국 노동운동에서 국제연대에 대한 각성과 관심이 고조된 것은 지난 1996~97년 총파업이었다. 전국적으로 펼쳐진 노동자들의 강력한 투쟁대오에 전세계의 활동가들이 동참하고 끝없는 연대와 지원의 메시지가 답지한 것은 총파업투쟁을 강화하는 하나의 자극제였다. 특히 총파업 통신지원단의 활동을 통해 국내의 투쟁속보를 전세계적으로 알려낸 것은 매우 귀중한 경험이었고, 이는 1997년 Seoul Labor Media를 경과하면서 지난해 진보네트워크/노동네트워크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지난 총파업은 1970~80년대 기독교운동이나 시민운동 영역에서 나이브(naive)한 국제적 교류 또는 지원의 형태가 주를 이루었던 국제연대와 구별되게, 노동자와 활동가 중심의 국제연대가 구체화되는 계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행하게도, 전반적인 의식과 관심의 고양에도 불구하고 일회적 에피소드로 끝나고, 아래로부터의 국제연대와 공동투쟁보다는 노동조합 상층간부들의 일상적인 실무(?!)로 귀착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이는 멕시코 마킬라도라 내의 현대정공 계열사인 (주)한영의 노동조합 탄압에 대해 국내 노동운동진영의 전반적인 무관심과 무대응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현재의 노동조합운동의 지도부들이 노동자 국제연대의 상과 방향, 목적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결여하고 있고, 따라서 그것을 구체적인 정책과 대안으로 생산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가장 강력하고 전투적인 노동조합운동을 대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활동가들의 국제적 교류에서 단순히 자리를 채우는 정도에서 머물고 있을 뿐, 현재 국제자유노련을 비롯한 국제조직을 지배하는 노사협조주의에 맞서 자주적·전투적 노동운동의 국제적 경향을 강화·확대하기 위한 의식적·조직적 노력은 거의 해내지 못하는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경과하고 있는 현시대는 기본적으로 전지구적 경제위기가 일상화·구조화되고, 따라서 아래로부터의 노동자·민중의 저항과 투쟁이 격화될 수밖에 없는 시대이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투쟁과 저항은 앞으로 다가올 전지구적 계급투쟁의 서곡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1997년 이후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생존권사수와 노동시간 단축의 깃발아래, 어렵고 힘들지만 단결·투쟁을 계속하고 있으며, 비록 신자유주의에 투항한 김대중정권의 강력한 탄압 때문에 아직은 결정적 승리를 쟁취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자본의 위기를 노동의 희망으로” 전화시키기 위한 투쟁의 모범이 되고 있다. 이 투쟁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적 지구화에 대항하는 전지구적 노동자·민중투쟁전선에서 한 축을 이루는 것이며, 동일한 착취와 억압에 직면한 전세계 노동자·민중의 국제연대와 공동투쟁으로 발전할 때에야, 일국적 한계를 넘어선 대안사회의 전망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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