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평화대회 참관기: “평화를 행동하자”
김석,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PICIS)
필자는 지난 5월 11일부터 15일까지 열린 헤이그평화대회(Hague Appeal for Peace)에 참석했다. 전 세계 100여개국 이상에서 1만여명이 참석한 이번 대회는 전쟁과 폭력의 20세기를 되돌아보고 ‘평화와 정의의 21세기’를 가름하는 큰 축제였다. 약 400여 차례의 토론 및 갖가지 행동들이 조직되었으며, 평화운동 단체들, 활동가들 간의 연대망 형성을 위한 활발한 노력들이 있었다.
조디 윌리암스, 데스몬드 투투 주교, 호세 라모스 호르타 등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의 면면도 볼 수 있었고, 넬슨 만델라, 달라이 라마, 지미 카터 등은 서신을 보내왔다. 아웅산 수키 또한 비디오 성명을 통해 버마의 상황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그러나 제삼세계의 일부 활동가들은 네덜란드 정부의 비자 발급 거부로 입국 자체가 좌절되기도 했다. 이것은 아무런 제한없이 입국이 가능했던 미국 등 1세계 국가의 경우와 극명한 대조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참가자들의 다섯명 중 한명은 미국인이라
는 이야기가 나오기까지 했다. 국제평화사무국(International Peace Bureau) 의장 프레데릭 헤퍼말은 이번 대회에서의 제삼세계 목소리 위축을 우려하기도 했다.
이번 대회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일본 평화운동 단체들의 활동이었다. 피스보트(Peace Boat), 원폭피해자 단체 등에서 약 400여명이 참가했으며, 조직적인 활동을 통해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몇몇 한국 참가자들은 이것을 일본 평화운동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로 받아들이기도 했으며, 동북아 평화 구축을 위한 일본 시민사회의 역할을 기대하기도 했다. 특히 피스보트에서는 동북아 비핵지대화를 주제로 남북한 및 일본 평화운동 단체 간의 토론 조직화를 시도했었다. 그러나 몇가지 오해와 견해 차이, 기저에 흐르는 서로에 대한 불신은 여전히 그 성사를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 반핵평화옹호위원회 등에서 온 북한 참가자들은 한국 측 참가자들과 무리없이 곧잘 어울리기도 하였지만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기지촌 여성문제 등 한국 관련 여러 세션들이 있었으며 특히 동아시아의 대안적 안보에 관한 밀도있는 토론이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다. 남반구포커스의 월든 벨로는 지역내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되는 것은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략에서처럼 중국의 팽창이
아니며, 오히려 이 지역에 미국이 개입하는 방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자간의 안보 협력체제를 통한 신뢰 구축 보다는 미국과의 양자간 관계를 역내 각국에 강요한다는 것이다. 즉 미국과 미군의 역할을 통한 질서, 안보를 중심축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이것은 아시아 경제 위기가 자유화와 시장 개방을 절대 명제로 삼는 소위 미국화(Americanization)를 강제해내는 역할을 하는 것과 맞물려 지역내 미국의 패권적 위치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벨로는 그래서 아시아 지역 포럼(ARF) 등의 강화와 지역내 미군 기지의 철수가 다자간 안보협력 구도 구축의 중심 과제라고 결론지었다. 자주평화통일 민족회의의 김창수씨는 무기거래가 안보는 물론 인권에도 중대한 위협이 된다는 내용의 발제에서 군수박람회 등에서의 항의 시위를 전개할 것을 구체적 전술로 제안하기도 했다. 참여연대의 이대훈씨는 군비 문제와 경제 위기의 관련성을 지적하며 올 8월의 통일 행사에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군축과 평화를 내년 서울에서 있을 아셈(ASEM) 민간단체 포럼에 하나의 중심 의제로 설정할 것을 요청했다.
‘평화와 인권에 대한 세계화의 영향’이란 주제의 토론에서는 사회자가 발표자들을 ‘체제 자체와 맞서 싸우는 전사들(paradigm warriors)’이라 명명하기도 했다. 작년 다자간투자협정 반대 투쟁의 한 축을 이끈 바 있는 수잔 조지는 세계화를 초국적기업들의
세계지배 전략의 한 방편으로 파악하며 현재 대다수 인류에게 제기되고 있는 문제는 바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지난 50년간의 정치의 성격 변화를 세 가지 중심 질문들로 압축했다.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가(Who rules over who?)’에서 ‘누가 파이의 얼마를 차지할 것인가(Who’s going to have what share of pie?)’로, 그리고 마침내 ‘누가 살아남을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고 누가 갖고 있지 않은가(Who has the right to survive, who does not?)’로 변화해왔다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중대한 시기라고, 이 체제 속의 어느 것도 결코 필연적이지는 않으며, 행동이, 행동의 결집이 필요한 때라고 역설했다.
또 하나, 대회 전반을 뜨겁게 달군 문제는 나토의 유고슬라비아 공습과 코소보였다. 물론 이에 대한 논란 자체에 문제를 제기한 참가자들도 있었다. 즉 아프리카에는 지금까지 수십번의 코소보가 있었지만 이렇게 소위 세계 평화운동 진영의 열띤 관심을 받
아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양비론적 시각이 지배적이었으나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입장이 갈려서 어떤 통일된 행동을 취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대회 기간 중 이탈리아에서 수만명이 나토 공습 반대 시위를 벌일 동안 수천의 평화운동가들이 모인 이곳 헤이그에서는 이렇다 할 눈에 띠는 움직임을 보이지 못한 것이다. 또한 나토 공습의 피해상을 담은 사진을 전시하려던 일단의 세르비아 여성 그룹은 조직위측으로부터 참석을 허락받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 공습이 냉전 종식 이후, 미국 주도의 나토 신전략의 시험장이었다는 점에서 진지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국제 여론의 합의(형식적이나마 유엔을 통해서라도)를 무시한 채, 그것도 나토 역외로 취해진 첫번째의 중대한 무력 시위라는 것이다.
이번 행사는 한마디로 제일세계의 한복판에서 열리는 평화대회였다. 대다수의 제삼세계 평화운동가들은 비행기표도 구하기 힘들며, 심지어는 입국조차 거부되기도 한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누구의 평화냐 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재 평화
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소위 세계화일 것이며, 자본주의적 자유시장 경제체제의 전 지구적 관철 경향일진대, 그 가장 큰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나 제삼세계 민중의 목소리는 도대체 찾아보기 힘들었다.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만
을 뜻하는 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언어 또한 큰 문제였다. 영어의 횡포였다. 평화를 이야기하려면 영어를 말할 수 있어야 하는가? 조직위 측에서는 아무런 대응도 없었다. 말할게 있으면 스스로 통역을 준비하라는 식이었다. 물론 일본 참가단은 대견하게도 스스로 준비를 했다. 대부분이
준비한 소형 근접지역용 라디오를 통해 스스로 조직한 일본어 통역을 송출받은 것이다. 자, 이제 대안은 일본처럼 충분한 돈과 전자기기들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평화를 이야기하자.
평화.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에 어쩌면 너무나 비싼 것일 수도 있다. 제일세계 중산층의 값 비싸고 폼나는 장식품으로서 사랑과 평화, 지극히 어울리지 않는가? 평화는 가장 포괄적이고 추상적이면서도, 또한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이다. 우리 생존의 절대 조건인 평화를 담론의 창살안에 가두지 말자. 박제된 장식품으로서의 평화는 그들의 평화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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