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저항은 자본만큼이나 초국적이다.” 표어에서 말하듯 국제연대의 중요성이 날로 절실해지는 참이라 서울여성노조는 지난 6월 24∼26일 열린 파리 국제회의에 한국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를 결정했다. 개인적으로는 외국어 의사소통문제로 내내 걱정하다가 용기를 내기로 했다. 기대 반, 걱정 반의 심정으로 참가한 만큼 이번 회의는 얼마 간의 성과와 풀어야 할 숙제들을 함께 가지고 돌아왔다.
이번 국제회의는 시민지원 금융거래 과세연합(ATTAC)과 제3세계 외채탕감 위원회, 다자간투자협정 복사판들에 대한 반대 조정위원회, 대안을 위한 세계포럼(WFA), 새로운 시대 여성을 위한 발전대안(DAWN)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자본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80여개 나라에서 1000여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회의였다.
한국대표단은 그동안 한미·한일 투자협정반대를 위해 공동의 행동을 취해온 민주노총, 전국농민회, 사회진보연대,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서울여성노조 등의 파견자들로 구성되었다. 이들 단체들은 사전에 한국에서 한미·한일 투자협정에 대한 반대토론회, 주한미상공회의소 규탄 시위, 6월18일 국제민중행동의 날 행사를 공동주최하였으며 파리회의 참가를 위해 공동으로 자료를 준비하고 토론했다.
회의의 표어는 대규모 국제회의를 위해 새로 설치한 대형막사 단상에 걸려 있었다. ‘시장 지배?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회의 전체일정은 개회식과 폐회식 그리고 그사이에 34개의 주제별 혹은 전문가 워크샵이 진행되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회의에 여성들은 어느 정도 참가하고 있는지, 여성들의 발언 기회는 얼마나 보장되고 있는지, 여성문제가 어느 정도 중요한 과제로 다루어지는지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었다. 성평등의 관점에서 바라 본 회의의 전반적인 진행은 만족스러웠다. 특히 한국에서는 할머니로 불려질 중노년 여성들의 열정적인 활약에 감동했다.
‘성과 세계화’를 주제로 한 워크샵에서 필리핀의 한 여성활동가는 “여성에게 정의로운 정부는 세계에 하나도 없다”고 일갈하였다. 과테말라에서 온 한 여성활동가는 마낄라도라 지역의 가장 큰 변화는 세계화이며 그 결과 성차별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브라질의 여성활동가는 여성의 재생산권리와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는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권리임을 천명하였다.
자유토론에서는 매춘이 빈곤, 경제위기와 관련된 개념임을 확인하였다. 여성 매춘의 세계화는 곧 제3세계 여성이 북반구로 매춘을 위해 이주하는 것이며 실제로 유럽 이주여성 중 15%가 매매춘에 종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여성노조는 세계화, 구조조정 그리고 노동과정의 변화를 주제로 한 워크샵에서 발표자로 참가할 것을 권유받았다. 미리 준비되지는 못했지만 나는 한국에서도 세계화의 가장 큰 희생자는 여성들이며 그것이 서울여성노조가 탄생한 배경중 하나라는 것, 그리고 여성노동에 대한 통제와 차별강화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사례를 들어 설명했고 이번 국제회의가 여성노동자 국제연대의 중요한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는 기대를 표명했다.
이번 회의는 논의결과와 대륙별 대표들이 자국의 상황에 대한 발표, 결의문 채택으로 마무리되었다. 특히 여성대표(필리핀)는 시장독재에 의해 여성들의 빈곤이 심화되고 있으며 남녀 노동자, 농민, 아동들이 국제적인 범죄조직들에 의해 강요된 노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여성들은 초국가적으로 반제국주의투쟁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선 ATTAC에 여성의 참여가 충분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도 요구중 하나였다.
회의과정 중 느낀 것은 참가자들이 서로 같은 얘기를 각각 자기나라 말로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세계화가 미치는 폐해는 각 나라에 거의 같은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폐회식을 마친 참가자들은 파리의 금융가를 행진하며 시위를 했다. 각국의 깃발과 구호가 물결치는 가운데 시민들은 주의깊게 시위대를 바라보았으며 다가와 물어보는 등 적극적인 관심을 표하기도 했다. 행진중에 시위대는 탄성을 지르며 한 건물을 주시했는데 그것은 프랑스 실업자들이 점거해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었다. 누구는 밖에서 노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건물 임대료 더 받겠다고 비워 둔 건물, 그게 바로 자본주의의 모순이 아닌가 하는 것이 점거 이유라고 한다. 그 속에는 자본가의 이윤보다 사람의 삶을 더 중시해야 한다는 절규가 건물에 내걸린 원색의 깃발들과 페인팅, 시위대를 향해 손을 흔드는 실업자들의 얼굴에 흐르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공식회의 이상으로 그곳 사람들의 사는 모습에 관심이 갔다. 우리의 회의장소는 한국으로 말하자면 의정부쯤 되는 파리의 변두리 생드니라는 곳인데 파리 시내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일단 파리시내에서는 프랑스가 백인국가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생드니는 흑인, 황인, 백인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사는 다인종국가라는 인상을 주었다. 파리시내는 맥주 한 잔에 9000원 정도 해서 고물가를 자랑하는 걸 보면 돈 있는 백인들만이 버텨낼 수 있는 곳일 것이다. 인종차이는 여전히 계급적인 차이이기도 하다는 걸 프랑스에서도 실감했다. 더구나 프랑스 사회가 가지고 있다는 관용도 프랑스의 자본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프랑스에 본부를 둔 다국적기업들이 한국이나 제3세계에서 자행하고 있는 노동자 탄압과 탈세, 외화 도피 등의 사례를 보면. 떠날 때는 관용이 넘치는 나라, 예술의 나라 프랑스를 머리에 그리며 찾아갔었다. 그러나 소수의 있는 자와 다수의 없는 자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보편성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사실 환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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