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가려진 자유
가디언 7/17 재키 라이든
지난 20년 동안 이란의 종교 지도자들은 철권 통치를 해왔다. 그러나 지금 혁명의 자식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고 이란은 결코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30살쯤 되어 보이는 한 젊은 여성이 최루탄 가스에 질식당하면서 테헤란 거리를 달리고 있고 그녀의 몸을 감싼 검은색 차도르가 펄럭이고 있다. 그녀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단상들은 지난 20여 년간 쌓여온 모든 분노의 조각들(버스에서 누군가 차도르 밑으로 슬며시 더듬었던 날, 이슬람 정권 하의 삶의 관해 가슴 속 얘기를 털어놓은 영문 비밀노트 등)이다. 그녀가 보았왔던 폭행들, 최루탄, 그리고 온갖 난투들 모두가 그녀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이란에서는 한 주 동안 이란 정권의 개혁과 민주화 이행을 요구하며 정부에 대항하는 학생들의 공개적인 항의의 물결이 솟구쳐오르고 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20년이 지나 혁명의 자식들(국민의 65%가 25세 이하이다)은 혁명에 대한 집착과 근본주의적 사고와 더불어 끊임없이 성장해왔다. 나메 제트(Nahmeh Z)는 그 나머지 사람들과 함께 소리쳤다. “전제정치 끝장내자.” “이건 우리의 억눌린 감정의 분출이었어요.” 나메 제트는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숨겨야했던 모든 억압된 긍지와 감정들의 표출이었다고 생각해요. 지난 20년간의 정치적, 사회적 억압 말이에요”라고 말했다.
영어교사인 나메 제트는 이번 주 테헤란 중심가와 다른 18개의 도시로 쏟아져 나와 표현의 자유를 만끽한 수만 명의 젊은이들 중 한명이다. 젊은이들의 분노가 매우 대중화되고 있고 공개적으로 폭발하고 있는 지금, 점증하고 있는 시민사회의 요구를 묵살하고 있는 신정(神政)의 절대적 권력과 함께 이슬람 혁명이 존속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워지고 있다.
내가 나메 제트를 처음 만난 것은 4년 전인 1995년, 그녀를 가르치고 있는 영어교수의 자택에서였다. 나메는 조용하고 강직한 이슬람교도였고 기혼자였지만 거리에서 반드시 베일을 써야한다고 믿는 여성은 아니였다. 1995년만 해도 이란 정부는 그녀같은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다. “나는 미국이 끔찍하고 사악한 나라라고 생각했어요”라고 그녀는 나에게 얘기했다. “왜
냐면 그것이 우리가 들었던 모든 것이었기 때문이죠. 그 후 난 「뉴요커(New Yorker」를 읽게됐어요.「뉴요커」를 통해서 당신네 나라에 대해서 차차 알게된 거죠. 그리고 당신도 알다시피 제인 오스틴이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같은 작가의 글들을 통해 당국에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어요.”
이는 그녀가 영어교수로부터 배운 너무나 명확한 지점이었다. 그녀의 영어 교수는 현재 미국에서 이민 생활을 하고 있다. 혼자 남겨진 나메는 자신의 느낌을 포착해, 그것들을 귀중한 일기장에 기록했으며 이란에서 사상의 자유로운 유통을 억압하는 것에 숨이 막혀 했다. 그녀만이 아니다. 2년 전인 1997년 선거에서 모하메 하타미를 권좌에 앉힌 것은 청년들과 여성들이었다. 이 온거파 후보는 거의 70%의 지지율을 얻어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고 스스로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들 대부분(신문 발행, 내각 내 진보적 인사 배치, 서방과의 대화 개시)이 그를 자리에 앉힌 (강경파 아야톨라 하메네이가 이끌고 있는) 최고지도위원회에 의해 저지되었다.
1989년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사망하기 전에 임명한 최초이자 유일한 최고 지도자인 하메네이는 위험스럽게도 이란의 개혁 세력들과 어떠한 관계도 갖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혁명의 자식들은 또한 혁명의 이탈자이기도 하다. 7천만 명의 인구를 가진 이란의 촌락에서부터 도시까지 표현의 자유와 인권에 대한 요구가 열정적으로 분출되고 있고 제정신을 잃은 정부를 위협하고 있다.
신정이 최고의 세력이며 법도 그 손 안에 있다. 또한 신정은 사법부와 경찰, 혁명보위군과 다른 보안군을 지배하고 있으며 훨씬 은폐되어 있고 위험스러운 요소들(변화를 싫어하고 반체제 인사들을 마음대로 처형하는 바시지즈(Basijis)로 알려진 소위 종교 처벌 자경단)을 묵인하고 있다. 그들은 다름아닌 정보부에서 이탈한 자들로 이들은 지난 해 민주화운동의 지도자였던 파르바네와 다리우쉬 포루하르를 살해하기도 했다. 지난 11월 두 민주화 운동 지도자의 장례식에는 십만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정부는 인기있는 신문들을 계속해서 폐간했고 반체제적 문화인사들을 처벌했다. 또한 좌파성향의 신문「살라암(Salaam)」을 정간시킴으로써 10일 전에 있었던 첫 학생 시위를 촉발시켰다. 또한 테헤란 대학에 자경단원들을 보내 기숙사에서 자고 있던 학생들을 공격하게 했다. 몇몇 학생들은 2, 3층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최소한 2명이 사망했고 수십 명이 수감됐다. 이것은 지배 엘리트의 일원이면서 그것의 변화를 약속했었던 하타미 대통령의 모순된 행동들이다.
1997년 나는 나메와 함께 테헤란에서 있었던 하타미 선거 운동에 여러번 참여했었다. 그에 대한 환호와 지지가 거리 곳곳에서 흘러넘쳤다. 정부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후보이자 다크호스였으며 젊은이들은 늦은 밤, 그의 포스터를 벽에 붙였다. 그러나 현재, 나메는 그가 나쁜 짓을 한 벌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시위자들은 최소한 심정적이나마 하타미가 논쟁의 장에 있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그와 하메네이는 시위자들을 비난하는 세력의 편에 서있으며 최고지도위원회는 반체제자들을 기소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건 참으로 역설적인 일이에요”라고 나메는 말했다. “우리는 하타미 대통령이 약속한 바를 알고 있지만, 그의 행동이 가로막혀 있거나 말만 앞설뿐 행동하지 않는 사람일꺼에요. 그는 우리에 대한 공격을 중지시키거나 일련의 사건에서 공격을 막을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에 정간된 신문을 재발행하고 정치범을 석방하고 사망한 학생들의 명단을 공개하라는 학생들의 요구에 아무런 화답이 없어요. 결국 학생들은 “하타미는 당신은 어디에 있나?, 하타미 당신의 대응은 무엇인가?”라고 외칠 수 밖에 없죠.”
20년 동안 이슬람 공화국은 도덕적 신앙과 종교적 믿음은 물론, 사회불안을 통제하는 능력을 지닌 내각을 통해 권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혁명의 자식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대마왕 미국을 비난하듯이 민주화, 표현의 자유, 그리고 인권에 대한 이념이 없다는 이유로 조국을 비난하고 있다. 이슬람 혁명은 그 자식들의 대부분을 교육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했고 그 결과 그들은 자신들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또한 테헤란, 이스파한, 쉬라즈와 같은 복잡한 도시에서는 물론 촌락 지역에서 조차 인공위성에 길들여진 세대이다. 정부는 위성방송과 신문을 금지시키는 것으로 보복을 했다. 지난해「옵저버(Observer)」를 모델로 삼은 「자마에(Jama Eh)」(‘사회’를 의미)라는 저명한 매체가 정부에 의해 폐간당했다.
정부는 또한 여성의 생명을 말그대로 남성 생명의 반 정도의 가치로 부여한(여성이 살해될 경우 보상금이 남성의 반이다) 엄격한 법을 변화시키라는 요구를 거부했다. 이러한 법률은 외부 세계를 끌어안거나 외부 세계에 받아들여지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열망을 끊어버리는, 심지어 비이슬람적인 퇴행적인 사회 변천으로 이해되고 있다.
하타미 대통령은 이러한 열망의 가치를 위한 안전판을 약속했었다. 이제 그 압력이 폭발하고 있다. 1979년 혁명과 다르게 최소한 아직까지는 조직된 지도부가 없다. 수십만 명이 일어서긴 했지만 이슬람 정부체제를 뒤엎을 만한 강력한 힘으로 모아지지는 않고 있다. 그리고 충격적이면서도 뭔가 기대하는 정서가 널리 퍼져있다. 마귀가 병에서 나갔고 누구나 모든 것이 예전같이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거리를 달리고 있을 때 난 다른 생각을 갖게 됐었요”라고 나메는 말했다. “눈에 최루탄 가루가 들어갔고 모든 것이 흐릿해졌어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지 거의 볼 수가 없었어요. 나는 이것이 정치고 우리의 삶이 여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회적 변화가 시작됐지만 모든 것이 불투명한 상태이다. 지금까지 1979년 수천 명이 죽어나간 유혈 혁명과 같은 열기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보수주의자들에게 완전한 선택권이 있다. 젊은이들의 목을 조르다는 비난이 꼬리를 물고있기 때문에 정부는 하타미 대통령에 의해 자유로워진 개혁세력들을 봉쇄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란 정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다원적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강경파들의 눈에는 아직 다원화될 수 없고 여전히 이슬람 공화국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이것이 지금 분명한 지점이다. 테헤란 최고위원회가 청년 시위자들의 요구를 묵살한다면 또다른 반발이 일어날 것이다. 청년들은 그 다음에 어떻게 하겠는가? 이란에서 법적으로 선거권을 갖는 나이는 15세이다. 하타미 대통령이 내년 봄까지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면, 내년 의회 선거는 그가 약속했던 개혁을 가져올 것이다.
민주화를 위한 도전들은 또한 샤(Shah)에 맞서고 있다. 시위자들은 지금 1906년에 제정된 이란 헌법의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 파라왕비는 나에게 정권이 반체제자들을 너무 가혹하게 다뤘던 것은 문제가 있으며 민주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좀더 현명해야 했었다고 말했다. 역사의 뒤안길을 되돌아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란 지도자들의 향우 전망은 거리에서 최루탄을 마시고 있는 시위자들의 그것처럼 암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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