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길 전쟁 : 하나의 사후 평가
주간녹색좌파 8/18 싯다르타
델리 —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서 벌어진) 카르길 전쟁은 인도에 강요된 것이었다. 인
도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는 카르길 위기에 관한 인도 지도층의 합의이다. 한 번 이
주장을 조금 더 확장시켜 보자.
만약 국경 침범이 재발하고 둘, 셋, 혹은 더 많은 카르길 사태가 인도에 강요된다면 우리
는 전면전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우리에게 강요된다면 인도 아
대륙에서의 핵전쟁의 발발 또한 불가피하다. 우리에게는 핵 재앙에 우리를 맡기는 것 외에
는 다른 선택 수단이 없게 될 것이다. 이 또한 동일한 논리적 결과가 아닌가?
문명 국가의 대외 정책의 핵심은 전쟁과 침범을 피한다는 목표 아래 전개되어야 한다.
자, 대차대조표를 그려보자.
실질적 승자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수상이 이끄는 인민당(BJP)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 강대국이 카르길
사태에 있어 인도편을 들고 파키스탄을 고립시킴으로써 상당한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제삼자의 중재를 피했다는 점도 덧붙였다.
미국은 중재가 아니라 단지 “사적 이해”만을 추구한다는,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미국측 대
변인의 발언 또한 인도가 중재에 대해 느끼는 민감함에 대한 미국의 배려로 해석되었다. 그
러나 삼각 전화 외교의 의미는 자명한 것이었다.
한편, 친미국적인 언론인들은 우리에게 유리하기만 하다면 중재의 수용이 무슨 문제가 있
느냐며 미덥지 않은 충고를 퍼뜨렸다. 이와 같은 환호의 시기에 다음과 같은 불편한 질문을
묻는 것은 부적절할지도 모른다. “남아시아에 대한 어떤 기도나 모략이 없는 ‘정직한 중개
인’이 과연 있는가?” 혹은 “중동 등지의 ‘중재’는 무엇을 남겼는가?”
미 국무성 고위 관료들이 남아시아에서 상당한 외교적 성과를 얻었다고 주장하고는 있지
만, 인민당의 극우 민족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비참한 상황을 감추기 위해 용감한 모습을 보
이고 있다. 극우 민족주의자들은 이제 자신들이 미 제국주의자들의 수중에 놓여 있다는 사
실을 알아차렸다.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수상과 미국 대통령의 회담 이후 카르길의 상황 전개는 양국이
미국이 미리 마련한 시나리오를 따르기로 했음을 보여주었다. 인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10월에 권좌에 오를 정부가 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CTBT)에 서명할 것을
요구받을 때만 분명하게 될 것이다.
양국의 쌍무적 관계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아마도 카르길 분쟁이 낳은 가장 교란적인 결
과일 것이다. 이는 또한 인도-파키스탄 관계의 복잡한 성격에 새로운 차원을 덧붙이는 결과
를 낳았다.
가속화된 군비 경쟁
(인도의) 포크란Ⅱ 핵실험 이후 가속화된 군비 경쟁이 카르길 위기에 직접적으로 공헌했
다면, 영토 침범은 이 경쟁의 새로운 라운드를 촉발시켰다.
카르길 분쟁이 장기적인 군사 교전으로 확대되면서 인도 정부는 60억 루피의 긴급 예산을
국방성에 할당하여 카슈미르에서 교전하는 군대를 위한 무기와 고지(高地) 군복을 지급하였
다.
군은 90대의 러시아산 탱크를 수입하였고 이스라엘의 솔탐(Soltam)사와 35기의 소련제 야
전포를 개량하는 데 각각 1천만 루피를 들였다.아울러, 포크란Ⅱ 이후 무기 판매에 가해진
제재조치에서 금지되지 않은 미국제 비살상 장비를 구입하려 하고 있다.
4월 11일의 아그니Ⅱ 중거리탄도미사일 시험 발사가 진행된 지 3일 만에 파키스탄은 가우
리Ⅱ 탄도미사일과 샤힌 지대지미사일을 시험 발사하였다. 시험 발사가 파키스탄과의 미사
일 경쟁을 새롭게 할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고자 하면서 인도 당국은 “군비 경쟁은 없다. 아
무런 위험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샤리프 수상은 파키스탄의 실험이 “최소한의 전쟁 억제
능력”을 시험해보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언급하였다.
아그니Ⅱ 미사일 실험은 인도측이 자국 핵 전력(戰力)의 감축과 발사대의 생산 포기에 관
한 포크란 실험 이후의 요구를 분명히 거부했음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미사일에는 미사일
로, 핵폭탄에는 핵폭탄으로, 라는 식의 새로운 군비 경쟁이 아대륙에서 시작되었음을 가리
킨다.
양국 사이의 이러한 경쟁의 결과 이 지역 군비 지출의 80% 이상을 인도와 파키스탄이 차
지하고 있다. 100억 달러라는 인도의 군비 지출은 자국 국내총생산의 2.5%로 정해져 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지역의 군사비 지출은 중동을 제외하고는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이
다.
파키스탄의 경우 불안정한 재정 상황 속에서 국내총생산의 6%를 차지하는 군비 지출에 대
해 삭감 압력을 받고 있다. 그러나 최근 정부는 올해 예산에서 군사비가 10%를 상회할 것이
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군사비의 절대적 증대는 인도의 9차계획 시기에 예정된 50% 증가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80년대 후반 국민회의당의 라지브 간디 수상 시절 국방장관을 지내
면서 양당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1조 2천 5백억 루피에 이르는 군 현대화 계획을 주도했
던 아룬 싱이 무덤에서 불려나왔다.
인민당만이 대규모 무기 구매를 주장하고 있지는 않다. 카르길 사태는 인도의 화력 증강
을 정치적 스펙트럼에 관계 없이 합의되는 문제로 만들어버렸다. 국민회의당 또한 최근 발
표한 선거강령 초안을 통해 국방비의 단계적 증대를 약속한 바 있다.
대규모적인 비용
ICICI 증권금융사의 추산에 따르면, 카르길에서 소비된 일일 비용이, 아무리 어림잡더라
도, 4억-5억 루피에 이른다고 한다. 이러한 엄청난 전쟁 비용은 앞으로 있을 국경 경계와
재래식무기 구입에 드는 추가 비용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카르길-바탈릭 국경지대에서
의 일상적인 경계를 유지하는 데만도 하루에 1억 루피의 비용이 소비된다.
전체 “국경통제선” 경계에 드는 비용은 훨씬 큰데, 현재의 3백억 루피에서 연간 천억에서
천 2백억 루피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이는 국방예산의 4분의 1 수준이다).
강경한 어조로 말한다고 인도의 문제가 풀리지는 않는다. 카르길에서의 승리는 인도 군에
커다란 문제를 남겨주었을 뿐이다. 향후의 또다른 국경 침범은 인도의 체면에 먹칠을 할
것인데, 인도는 오직 확전을 통해서만 이를 피할 수 있다. 인도는 카슈미르에 군대가 존재
하는 한 어떠한 대화도 배제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위험한 경로를 피하기 위해서는 국경
선 전체에 항구적으로 경계를 유지해야만 한다.
인도군은 850킬로미터에 이르는 국경선에 200미터마다 경계초소를 세우는 대규모 계획을
입안하고 있다. 또다른 침범을 막기 위해 일년 내내 군대가 국경선에 주둔하게 될 것이다.
“카르길은 인도 경제에 큰 압박이 아니다”라고 야쉬반트 신하 재무장관은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내각은 최근 (카르길에서의) 비자이 작전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개인소득세
와 기업세, 소비세, 관세 등에 세금(일명 ‘카르길세’)을 부과하여 4천만에서 5천만 루피를
거둬들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했다. 재무장관은 “전국적으로 애국심이 고조”된다면 이 새로
운 과세가 목표로 하는 기반이 보다 확대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다가오는 선거에서 190-200억 루피가 필요하기 때문에 정부 재정의 부담은 확대될 것이
다. 애국심에도 가격표가 달려 있다.
인도에는 파키스탄 경제에 엄청난 짐을 지우기 위해 군비 경쟁의 가속화를 주장하는 매파
와 자칭 전략전문가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핵폭탄과 미사일, 전투기, 신세대 고성능 무기
들만이 군비지출을 촉발시키는 것은 아니다. 수백명의 아프간인들, 즉 어느 때고 소집될 수
있는 병사들 또한 인도의 방위비 지출을 급격히 증대시킬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세계공동체가 분쟁지역으로 인정한 카슈미르와 인도에 의해 소외된 국민
들은 파키스탄의 수중에 있는 가장 치명적인 전쟁억제력임이 입증되었다.
민주주의의 침식
카르길은 양측 모두에 민주주의의 대가를 치렀다. 관리인에 불과한 바지파이 수상은 카르
길 위기를 논의하기 위한 상원 특별회의의 소집을 단호히 거부하였다. 인도 정부는 어느 누
구에게도 책임성을 보이지 않았고 독재 쿠데타를 위한 (적어도 일시적인) 힌두 근본주의의
기도는 일부 근본주의 언론인들이 바지파이 지도 하의 국민적 정부를 요구하면서 상세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인도의 민주주의는 극우 민족주의의 고조 속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새벽
(Dawn)]이나 [뉴스] 같은 파키스탄 언론이 자국 군 지도부의 모험주의를 비난하는 동안, 민
주주의의 파수꾼이라는 인도의 신문들은 자기검열을 하고 있었다.
국가 전체가 전쟁 같은 상황으로 내몰린 두 달에 가까운 기간 동안 다른 모든 이슈들은
가리워졌다. 분쟁 사태가 끝나고 선거가 다가오면서 카르길은 주요 정당들의 선거 쟁점이
될 것이다.
인민당 연정이 카르길에서의 영웅적 승리를 찬미하는 만큼, 야당 세력들은 인민당을 “정
보전 실패”와 시기적절한 행동의 부재라는 피고석으로 몰어넣기 위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
다. 전쟁의 불길에 기름을 부으려고 경쟁하는 이 매한가지의 정당들은 애국주의에서 한 점
이라도 더 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카르길의 성과를 누가 가져갈지는 아직 분명치 않지만, 선거운동이 판에 박은 극우 민족
주의적 광분으로 채워진다면 평화와 정상화를 향한 길에는 재앙만이 있을 것이다. 카르길에
서 쓰인 총이 실업, 물가앙등, 부패 등과 같은 다른 이슈에 이용된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파키스탄의 허약한 민주주의에 카르길 분쟁이 미친 영향은 훨씬 거대하다. 잠시만 생각해
봐도 파키스탄 장성들의 군사적 모험주의의 원인이 민간 지도세력에 대해 자신들의 지위를
다시금 확보하려는 절망적인 노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보다 나쁜 징조는 이슬람 근본주의가 점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도는 서구 국가들의 여
론을 움직이기 위해 파키스탄이 탈레반화되고 있다고 과장하고 있지만, 인도의 대(對)파키
스탄 정책 자체가 바로 이러한 결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카르길 분쟁은 양측의 강경파들이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힌두 근
본주의 전쟁광들은 인도가 항구적인 분쟁상황으로 내몰리거나 심지어 주기적인 국지전(戰)
을 벌이기를 바라고 있다. 파키스탄의 고위 군장교나 근본주의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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