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총파업의 이면
주간녹색좌파 9/22
콜롬비아 보고타. 8월 31일부터 9월 2일까지 콜롬비아 노동자, 실업자, 농민, 빈민, 그리고 인디언 소수족들은 국제통화기금(IMF)와 안드레스 파스트라나 보수당 정부의 긴축 정책에 항의하여 전국 파업을 벌였다.
콜롬비아가 전국적인 파업을 벌인 것은 22년 만으로 세 개의 노조연맹(최대 노조인 노동총동맹(CUT), 소규모의 민주노동자총연맹과 콜롬비아노동자연맹)은 다른 노조와 농민, 학생, 그리고 시민조직들과 함께 파업을 조직한 전국파업본부를 건설했다.
콜롬비아의 위기는 극도로 심화되어 있다. 1980년
경기침체기에 적정한 성장을 겨우 유지할 수 있었던 사실상 유일한 라틴아메리카 국가인 콜롬비아는 현재 공식 실업율(1990년의 10%에서 급격히 상승한)이 20%에 달하고, 금리는 28%로 뛰었으며 실질 임금이 하락하고 있다. 그리고 적자 상태에 놓여있는 정부예산은 국내총생산(GDP)의 5%에 이르며 예산의 45%는 부채를 청산하는 데 쓰이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10% 아래로 떨어지고 있지만 이것은 콜롬비아의 산업 능력의 65%만이 가동되고 있고 수요의 감소와 금리 상승으로 인해 개인 투자가 주춤하고 있는 원인이 크다.
콜롬비아가 가장 좋은 상황에서 침체를 경험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 침체의 원인은 공급 과잉과 주요 수출품(커피, 석탄, 니켈, 석유, 설탕, 바나나)의 국제가격이 1997에 57%, 1998년에는 16%씩 각각 하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잡기 우선 정책”과 결합된 나머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경기 침체는 밀어닥친 불경기를 불황의 블랙홀로 전화시켰다.
게다가 파스트라나 정부는 남아있는 국영 부문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통신에서 수도까지 모든 사회 기반시설들을 콜롬비아 국민들이 생각하는 가치 이하로, 그리고 국내 자본이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높은 가격으로 민영화하고 있다. 이 민영화의 최대 수혜자는 제 1세계의 대기업이 될 것이다.
IMF의 요구에 조응하기 위해서도 국가 예산 적자를 삭감시켜야 한다. IMF의 요구는 경제 성장(이나 독재자에 대한 과세 징수는 물론이고)을 통해서는 성취될 수 없기 때문에 지출 삭감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예를 들어 한 달에 두개 꼴로 공공병원이 폐쇄되고 있다).
사회적 위기
이전에는 이 위기의 효과가 전혀 미치지 않았던 콜롬비아 중간계급도 파업에 동참했다. 이들의 현저한 특징은 가계 소비자들의 저축 가치를 보장해주는 제도인 구매력보존은행(UPAC)의 이용자들이라는 것인데 이 담보은행은 가계 대출금 상환의 실질 비용을 평형화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현재 50% 이상의 이자율로 인해 여기에 빚을 지고 있는 가계 소비자들은 가구 내 수입 중 최소한 50% 이상을 대출금 상환에 지출하고 있다.
콜롬비아의 현 체제는 극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후안 마누엘 오스피나 상원의원은 콜롬비아 주요 경제 일간지「레푸블리카(La Republica)」에 “중간계급의 상당수가 자신들의 저축금과 집을 잃었고 일자리와 생활수준이 위협받고 있음을 알고 있다. 빈곤화되고 위협 상태에 놓인 중간계급이 봉기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역사가 보여준다. 하이메 가르손(우익 준군사조직에 의해 살해된 인기 라디오 코메디언)의 장례식이 보여준 가장 의미심장한 지점은 대규모의 인파가 몰렸다는 것과 이는 이른바 “지도층 갉아먹기”에 불을 지른 중산층의 공개적인 분노였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당연하게 이번 파업은 대중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 상황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파업 첫째 날 주요 도시에서는 수많은 주민들이 집에 머물거나 자신들의 작업장 앞에 모여 항의 시위를 벌였다. 경찰과의 충돌로 1천 명 이상이 체포되었다.
항의 행동은 콜롬비아 전역에서 일어났으며 파스트라나 정부의 주요 표적이 되고 있는 보건산업 노동자, 사회보장 정책 대상자와 같은 계층이 특히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보고타 남쪽에 있는 소아차와 같은 빈민가에서 대중 집회가 열려 3만 명의 주민들이 기본 시설의 부족에 항의하면서 경찰과 충돌했다.
콜롬비아의 4개 주요 농민 조직들도 지지 행동을 벌였고 농민들은 수많은 지역에서 도로를 차단했다.
콜롬비아 남부에 있는 수십만 명의 인디안들은 전통적인 토지를 다시 사기 위한 재정 지원을 정부에 요구하며 이피알레스와 투마코시(市)를 봉쇄하고 고립시켰다.
대다수의 고등학생과 대학생도 동맹휴업을 벌였다.
중소기업 부문은 세금 거부라는 시민 불복종 캠페인을 시작하기 위해 파업을 벌였다.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은 안치카야 수력발전소를 점거해 전기 요금의 인하를 요구하고 10월 칼리시에서 열릴 문제에 관한 지역 포럼을 확보했다.
둘째, 셋째 날로 갈 수록 파업은 약화되었지만 콜롬비아 대다수 민중들의 분노를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현재 상황은? 보수 언론은 파업이 실패했다고 선언했지만 정부의 대응은 허위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파업의 막바지에 정부는 행정적 차원에서 전국파업본부의 41가지 요구안에 동의해야만 했다.
협상에서 투쟁에 참여한 모든 대중조직의 대표들은 논쟁 중인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가질 적당한 정부 장관과 마주 앉을 것이다. 만약 한 달 내에 아무런 진척이 없으면 파업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파스트라나 정부와 그의 각료들이 파업의 주요 요구에 응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파업 요구에는 사회적 지출 삭감을 막기 위한 채무 상환의 지불 유예,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시키면서 입안한 정부의 “자유” 무역 정책에 의해 야기된 수입 범람의 종식, 그리고 피터 리스의 콜롬비아판 “제 2의 물결” 노사관계법 제정 중지, 모든 민영화 계획 철회, 공공 교통 요금과 유가 동결, UPAC의 구조조정에 의해 공채에 투자된 공공 주택공급사업에 대한 예산 지출 확대, 사회보장 정책의 재정 삭감 중단, 매일 수없이 위협 당하고 있는 민주적 권리에 대한 보장과 교육에 대한 재정 지원 등등이 포함 되어 있다.
극우파와 대기업은 패스트라나에게 양보하지 말라고 충고했지만 지배계급 대다수의 견해는 정부가 도시 내에서의 계급 전쟁은 물론이거니와 산 속에 있는 FARC나 민족해방군(NLA)와의 투쟁을 지속하기 위한 힘과 정치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는 것이었다. 즉 정부는 전국파업본부를 형성한 세력들을 분열시키 위한 전략에 돌입해야 한다.
최근 보고타에서 파업 평가 회의를 가진 노조와 대중 조직의 모임은 정부가 어디서부터 전략의 불을 당길 지를 보여주었다. 솔직한 토론이었지만 회의에서는 파업은 성공적이었으되 (대부분이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다음 투쟁 국면을 위해 여전히 풀려야만 할 취약한 약점이 존재하다는 것이 제기되었다. 대중 행동을 조직하는데 있어 일반 조합원 구조의 취약함이 이 약점에 포함되어있는데 이는 콜롬비아 노조들 대다수가 보여주고 있는 상명하달식 구조와 관료주의 전통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조직화된 노동자 대다수가 파업을 벌였지만 일부 파업 노동자들은 노조가 계획한 항의 집회에 나타나지 않았다. 일자리를 잃을 수많은 사기업 부문 노조원들은 특히 둘째 날과 셋째 날 고용주의 협박에 물러섰다. 이는 잃은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빈민들의 훨씬 적극적인 참여와 대조되는 것이다.
평조합원 대표들은 또한 많은 경우에 국민들 파업의 요구를 국민들이 알거나 이해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수많은 콜롬비아인들이 신문을 사 볼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주요 일간지에 광고를 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전국파업본부 보고타 지부는 결국 9월 14일 이번 파업과 보고타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 요구안을 설명하는 유인물을 대량 제작할 것을 결정했다.
이번 회의에서 연설자들은 또한 협상회의 참여를 확실히 한 정부의 분할 통치 전술에 대해 강하게 경고했다. 정부의 빈민에게 약간의 빵가루를 줘 회유할 것이라는 명백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또 다른 움직임으로 정부는 하나의 대용으로 IMF와 “부채 재협상”을 조정할 계획이다. 세번 째는 노조간, 농민 연맹 간 갈등을 폭발시키려는 움직임이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폭력과 협박이 정부 비책의 일부가 될 것이다. 최소한 4명(에서 7명)이 파업을 하다 “실종된”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와 같은 파업 기간 중 경찰과 군대의 행동을 조사하기 위해 전국파업본부 인권네트워크 회의가 건설되었다. 소아챠 시위에서는 절정의 시기에 경찰이 준군사조직에게 길을 내주고 철수했었다. 그 이후의 충돌로 12살 짜리 소녀가 사망했다.
과거 10년간 최소한 2천 명의 노조원들이 죽었으며 노조 활동가들에 대한 위협과 공격이 매일 일어났다. 가장 최근의 예는 CUT 지도자이자 교원노조 활동가 도밍고 토바르가 지난 주 보고타에 있는 교원노조 본관 밖에서 총을 맞았으나 경호원의 신속한 조치로 간신히 도망을 간 사건이다.
정부와 IMF의 정책에 대한 투쟁에 있어서 콜롬비아 노조활동가들은 점점 격해지고 중대해지는 상황에 놓여 있으며 계급투쟁의 전선에 서 있다. 그들은 우리 모두의 연대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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