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무고한 피란민에 대한 미군의 대량학살이 있었다는 AP통신의 보도 이후 미 행정부까지 사건을 인정하며 진상이 제대로 밝혀져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침묵을 강요당하던 노근리의 생존자들뿐만 아니라 이와 유사한 여러 사건들을 겪은 이들의 증언이 이제야 관심을 끌게 되었다. 파블로 피카소의 1951년작 “한국에서의 학살”은 이러한 만행들에 대한 너무도 구체적이고 생생한 고발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노근리의 한은 제대로 된 진상규명은 물론이거니아, 이러한 침묵의 세월이 가능하게 했던 문제들이 함께 거론되고 해결되어야만 제대로 풀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한 세기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마땅히 있어야할 정리작업이기도 하다.

우선은 노근리 사건이 일어난 과정과 책임자를 밝혀내고 피해주민에게 적절한 보상을 강구하는 것이 순서다. 그러나 과연 한국전쟁 기간 미군이 저지른 양민학살 사건이 노근리 한 군데에 한정됐을까 하는 점 역시 파헤쳐져야만 한다. 이미 낙동강 교전 당시 마산 등지에서 돌발적인 양민학살이 있었다는 등의 증언들이 속출하고 있다. 또 북한에서는 이보다 큰 규모의 학살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가 있어왔다.

대표적 사례는 황해남도 신천군 양민학살사건이다. 북한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군이 유엔군에 밀려 퇴각하던 시기인 50년 10월17일 미군이 신천 지역을 점령했고 이들은 50여일 동안에 당시 신천군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만5383명의 무고한 주민을 학살했다고 한다. 또 지난달 28일 민민전 방송은 신천학살 사건 외에도 황해남도 은률군에서 1만3천여명, 평안북도 정주군 창도에서 580명의 섬주민 전체를 학살했으며 평양에서도 1만5000명, 황해남도 안악군에서 1만9072명 등 “미군의 발길이 가 닿는 곳마다에서 양민학살 사건이 발생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와 언론은 여전히 이러한 무고한 죽음들에 대하여, 그리고 권력이 저지른 만행들에 대하여 여전히 거리를 두려하는 모습니다. 외국 언론사의 보도가 있고서야, 이제야 안 사실이라는 듯 부산히 움직이는 모습도 우스운 일이다. 이러한 사건들에 대한 해결은 학술적, 법적 문제를 넘어서 국민교육과 민주주의의 문제로 취급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며칠전 김동춘 교수는 <동아일보>의 한 글을 통해, “그러나 우리는 48년 제주도에서 ‘누가 누구를’ 얼마나 죽였는지, 전쟁 직전 30만명의 보도연맹원 중 몇 명이 처형되었는지, 전쟁 발발 직후 한반도 전역에서 어느 정도의 양민이, 누구의 명령으로, 왜 살해되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오늘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코소보와 동티모르의 ‘인종청소’는 잘 알고 있어도 50년 전 한반도의 그 ‘아름다운’ 들판과 골짜기에서 벌어진 ‘양민 학살’은 알지 못하며, 지난 50여년 동안 분단체제의 기득권을 누려온 사람들은 ‘좌익에 의한 우익의 학살이 훨씬 더 많았는데 무슨 소리냐’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빨갱이와 같은 편이다’라는 논리로 거론 자체를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또 일각에서는 한국과 미국의 ‘특수한’ 관계야말로 이러한 끔직한 범죄를 수십년간 묻히게 한 주범이라고 지적한다. 불평등한 조항으로 가득찬 한미행정협정(소파)도 이번 기회에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드높다.

‘국민의 정부’라면 이러한 숙제들을 떠안아야만 한다. 물론 국민이 나서지 않으면서 이를 기대하기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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