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체제와 대결하는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
「J의 좌파페이지(http://www.neravt.com/left)」 10/7 스티브 엘너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현명한 전술가로 후세 역사에 남아 마땅하다. 자신의 정치적 적수들을 위협하고 나서 그는 매번 뒤로 물러서서 타협의 의지가 있다고 발표하곤 한다. 반대파들은 보통 안도의 한숨을 쉬거나 대통령이 내미는 화해의 손길을 받아들이는 식으로 반응하였다. 그러나 차베스는 한번도 자신의 목표를 시야에서 놓친 적이 없다. 베네수엘라 정치체제의 혁명적 변혁이라는 목표를.
차베스는 1958년 민주화 이래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를 특징지워온 소수의 특권과 부패를 기존 정당들에 책임지우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공직사회의 무능과 정당의 후원관계가 산업 발전에 앞장서는 국가의 계획을 운명지웠다는 점이다. 1970년대 석유 호황 자금으로 지어진 국영 제철과 알루미늄 산업단지는 당시 제3세계 국가들이 본받아야 할 길로 극찬되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의 위상은 곤두박질했다. 지난 2년간 베네수엘라는 이들을 헐값에 팔아치우려고 했지만, 과중한 채무와 부풀린 피고용인 수, 미해결된 환경 의무규정 등을 알고 있던 다국적기업들은 극히 적은 액수를 제시했을 뿐이다.
1992년 2월 실패한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그리고 작년 12월 56%의 지지율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을 때, 차베스는 화석화된 조국의 민주주의를 혁신하기 위해 최초로 새로운 헌법이라는 깃발을 치켜들었다(1999년 3월 21일자 “국민의 인물(Man of the People)”을 보라). 기존 정당들에 맞선 그의 맹렬한 공격은 특히 사회, 경제적 권리를 박탈당한 이들로부터 민감한 반응을 얻었다. 대통령직에 오르자마자 차베스는 정당들에 특권을 부여하는 1961년 헌법을 개정하기 위한 제헌의회 선거를 포고하였다. 7월 25일 차베스의 ‘애국의 돛대(Patriotic Pole)’ 동맹은 제헌의회 의석 131석 거의 전부를 차지하였다.
제헌의회에 대한 절대적 장악을 통해 차베스 지지자들은 기존 정당들의 보루인 의회를 해산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첫 달 동안 제헌의회는 국회와 주의회들의 권한을 제한하였다. 제헌의회는 또한 오랜 동안 내버려져왔던, 3130건의 미결 소송에 대한 재심을 감독하였다. 이들은 8명의 판사를 해임함으로써 활동을 시작했으며 앞으로 진행될 수십여 명의 추가 면직을 약속하였다.
8월 27일, 최대 야당인 민주행동당의 수백 당원들은 일군의 국회의원들과 함께 차베스 지지자들의 기대에 어긋나게 임시국회를 개원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당가를 부르고 “민주행동당이 거리에 나왔다. 우리는 두렵지 않다”는 구호를 외치면서 수도 근교에서 차베스 추종자들과 충돌하였다.
당시 「뉴욕타임즈」는 미국의 언론보도 전반을 반영하면서 제헌의회가 “정부 기능을 접수하려 시도”하고 있다는 사설을 실었다. 신문은 결론내리기를, “차베스 선생과 제헌의회의 자코뱅주의적 결정이 베네수엘라에 어떤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선거 이후 차베스에 대한 비난을 삼가온 국무성 대변인 또한 베네수엘라의 권력 분립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고 경고하였다. 차베스는 「뉴욕타임즈」기사가 “거대한 기만”에 불과하다고 답하는 것으로 반응하는 한편, 당 주요 지도자 중 한 명은, 이는 베네수엘라로 하여금 미국에 비굴한 태도를 취하도록 압력을 넣기 위한 의도라고 주장하였다. 제헌의회는 베네수엘라의 민주적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국제적 움직임을 조사하기로 결정하였다.
차베스는 결국 한발 후퇴하였다. 9월 초에 접어들어 그는 제헌의회 내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국회와 협상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 과정에서 제헌의회는 의회의 권한을 인정하고 부패 혐의로 고발된 주지사와 시장들에 대한 해임을 삼갈 것에 동의하였다. 9월 21∼22일간 차베스는 뉴욕에서 클린턴 대통령과 회동하고 유엔, 미주기구(OAS) 등에서 연설하면서 “국민적 합의”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이는 온건노선으로 전환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1992년 11월 2차 쿠데타 시도에서 차베스를 지지했던 전직 군반란자들을 비롯한) 제헌의회의 많은 강경파들은 대통령의 방향선회를 비난하였다. 차베스는 최근 선거에서 기존 정당들이 받은 타격을 감안한다면 더 이상의 공세는 불필요하다고 응답하였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헌법의 골격을 만드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참여민주주의의 새시대로 베네수엘라를 인도하는 것이었다.
차베스는 이러한 새로운 방침의 일환으로 제헌의회 내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기존 체제를 격렬히 공격하는 고상한 성명서만을 남발하기 쉬운 본회의보다는 각 부문 위원회들에 노력을 집중할 것을 주문하였다. 제헌의회 의원들은 몇 가지 정부 모델을 고려하고 있다. 제헌의회가 어떤 모델을 선택하고 이후 국민투표에서 인준될 것인가하는 문제와는 상관없이 이들 모델은 소수 당 우두머리들에 의한 지배라는 낡은 체제와 분명한 단절을 표상하는 것이다.
그중 한 모델은 강력한 행정부를 설립하는 것이다. 다양한 제안들이 이러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대통령 선거의 즉각적인 재실시와 5년 내지 6년으로의 임기 연장, 부통령직이나 대통령 직속의 국무총리직 신설, 선거 감독을 책임지는 전국위원회의 다수를 행정부가 장악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은 이제까지 국민의 요구에 무감했던 관료적 정당들의 횡포에 대한 반작용이다. 솔직하고 국민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차베스의 스타일, 그리고 자주, 긴 시간 동안 방송에 나오는 그의 모습은 대통령제 모델에 대해 신뢰성을 부여하고 있다. 차베스를 지지하는 제헌의원인 알레한드로 실바는 “베네수엘라는 한번도 이같은 대통령을 가져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국민들은 이제 대통령궁(Miraflores)에 찾아갈 수 있으며, 비록 매번 차베스를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자신들의 고충을 접수할 수 있다… 국민들이 가장 인상깊게 느끼는 점은 후속조치가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 휘하의 누군가가 실제로 이러한 조치를 보내준다.”
‘국민주권’이라는 개념에 입각한 두 번째 모델은 판사와 검찰총장, 그리고 부패를 척결하고 인권을 지켜내는 일을 담당하는 다른 인사들을 국민이 선출, 해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민투표의 제도화를 지지하는 제헌의원들 사이에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는 것뿐 아니라 선출된 관리를 소환하는 것까지 국민투표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차베스의 ‘제5공화국(Fifth Republic)’당의 최고 지도자인 루이스 디아스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과거의 민주주의 아래서는 10명 내지 15명의 시의원이나 국회의원이 시장이나 주지사를 해임시킬 수 있었다. 이제는 국민이 최종권한을 가져야만 한다.”
집권연정 정당들이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지지하고 있는 세 번째 모델은 중앙정부 및 주정부로부터 자치시로 권력을 이전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과 모든 문제에 대해 선거를 실시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친(親)차베스적인 사회주의운동당(Movement Toward Socialism Party)의 주요 지도자인 넬손 람페르사드는 말하고 있다. “이제는 분권화가 지역적 차원으로 확대되어 시민사회가 국가와 항구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있다.” 가령, 그는 대법원 판사를 선출할 때 정당에 의한 선출이나 지명보다는 법과대학이나 변호사협회 등이 선출한 국민협의회에서 실력으로 뽑혀야 한다고 지적한다.
많은 국민 부문들이 제헌의회를 자극하여 자신들의 권리와 혜택을 헌법에 삽입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가령, 노점상을 비롯한 “비공식 경제” 부문 종사자들은 제헌의회가 열리는 국회 앞에 모여 사회안전망과 여타 노동정책에 자신들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요구하였다. 마찬가지로, 특별선거를 통해 세 명의 제헌의원을 선출한 인디오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고유 언어와, 콜롬비아나 브라질 국경에 거주하는 이들에 대한 이중(二重) 시민권 등을 공식적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론상 차베스의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상표라 할만한 것은 동원과 참여가 전부이다. 그러나 차베스의 변화가 만들어내고 있는 기대와 요구들은 양날의 칼이라 할 수 있다. 현실적 위험은 차베스를 지지하는 상대적으로 미약한 정당들이 아래로부터 분출되는 거대한 압력을 담아낼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 결과 생기는 정치적 격동은 무수히 많은 바람직스럽지 못한 방향들로 귀결될 수도 있다.
차베스의 카리스마는 그로 하여금 정당정치의 룰을 바꾸게끔 만들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시간을 거슬러올라가고 있다. 새로운 정치체제와 규칙들은 야당이 재조직화되고 차베스의 매력이 소진되기 전에 만들어져야만 한다. 아울러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미래에 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민간투자가 위축되면서 희생양이 되어왔다. 이러한 요구에 직면하여 차베스는 올해가 가기 전에 새로운 헌법을 비준하기 위해 맹렬히 노력하고 있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새로운 민주주의라는 형식을 통해 과거와 분명히 단절하면서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 스티브 엘너는 {라틴아메리카의 좌파: 아옌데의 몰락에서 페레스트로이카까지(The Latin American Left: From the Fall of Allende to Perestroika, Westview)}를 공편했으며 베네수엘라의 역사와 정치에 관한 세 권을 저서를 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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