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인권연대가 선정한 1999년 국내·외 10대 상처들

지난 백년과 천년을 동시에 마감하는 지금, 각 방송과 매체들은 저마다 다양한 특집을 마련하여 나름대로 풍성한 볼거리와 읽을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주로 지난 천년 동안의 상처들을 반성하고 치유할 길을 모색하며, 좋았던 사건들은 그 의미들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계승하자는 것인데 그 중 가장 흔한 형태가 지난 1000년 동안의 사건들을 분야별로 정리하여 순위를 매기는 특집이 아닌가한다.

그래서 이번 ‘평화연대’ 창간준비 13호에서도 이러한 시대적 조류에 편승(?)하며 주요하게는 1999년의 국내·외적인 평화이슈들을 중심으로 한 해를 평가해 내고자 ‘평화인권연대가 선정한 1999년 국내·외 10대 상처들’이란 기획기사를 마련하게 되었다. 물론 선정된 사건들 이외에도 중요한 많은 상처들이 올 1년 존재했지만 10대 사건이란 미명하에 순위에도 오르지 못하고 퇴출(?)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번 기획은 세계적으로 그리고 우리에게 정말 큰 파문을 던져준 사건들을 중심으로 1999년을 평가해보고자 함이니, 모쪼록 독자들께서 이 점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또 좋았던 일들이나 이후 평화운동에서 이정표가 될 베스트 사건들보다는 상처들, 월스트 사건들을 선정했는데 이는 1999년이 평화운동 진영에게 있어서는 양지보다는 음지쪽에, 밝음 보다는 어두운 전망을 갖게 한 해 였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물론 선정에 참여한 평화인권연대 활동가들이 비판에 좀 더 익숙하다는 것에도 조그마한 원인이 될 수 있겠다.

순위 선정은 평화인권연대 활동가들이 각자 개인적으로 매긴 중요도(?)에 따른 것이다. 모쪼록 올 1년의 상처들이 잘 아물어 새 천년엔 다시 곪아터지는 일이 없도록 바랄 뿐이다.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낀다.

<국내부분>

1999년의 국내 평화이슈의 으뜸은 뭐니뭐니해도 1950년 7월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부대가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일대에서 마을 주민들을 피난시켜 준다며 집결시켜놓고는 집단적으로 학살을 자행한 노근리 사건일 것이다. 전쟁에 처음 파견된 초짜 군인들이 아무 것도 몰라서 벌인 사건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많은 정황증거들로 신빙성이 없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고,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빨갱이를 색출하기 위한 미군과 미국의 치밀한 사전 준비에 의한 살인이었다는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인 것이다.

한국 내에서 반평화적 요소를 꼽는다면 미군에 대한 문제가 아마 매년 최상위에 랭크될 것이라 예상될 정도로 사회 구석구석에서 많은 부분에 그 폐해가 산재해 있다. 10위권에 자랑스럽게 랭크된 사건들 중 미군과 관련이 없는 사건이다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사건은 거의 없다고 보여진다. 이렇듯 미군 범죄 또는 미군과 관련된 사건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특히 제 3세계 국가에서는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고 관련한 사회운동도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올해 6월, 서울에서는 아시아 제 3세계 국가들의 미군기지 관련 사회단체들과 한국의 관련 단체들이 미군에 의한 각 국가에서의 피해사례와 그간의 투쟁의 성과와 오류를 교류하며 앞으로의 대책을 논의하는 국제 전략회의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미군에 의한 문제는 기지 주변의 환경문제, 미군 범죄 그리고 최근 고엽제 문제 등 이루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며 현재 많은 평화, 인권단체들이 연대하여 꾸린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SOFA) 개정을 위한 국민행동’이 미군에 의한 범죄와 피해의 근본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한미행정협정의 전면 개정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실 이번 사건은 AP 통신의 보도에 의해서 이슈화됐지만 이미 운동진영 내에서는 놀랍거나 새롭다고 할 것도 없는 알려진 사건으로서 꾸준히 제기해왔던 문제였다. 몇몇 언론에서도 전쟁시 양민학살에 관한 추측기사들이 실린 적도 있었다. 그 당시 피해자들이 점점 나이가 들어 이제는 증언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후(그래도 방송이 나간 후 10여 곳이 넘는 지역에서 수많은 제보가 쏟아졌다고 한다)에 그것도 외국 신문에 의해서 보도되어서야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이 몹시 씁쓸한 뒷맛을 남기지만 이를 계기로 4·3, 거창 등의 양민학살에 관한 총체적인 진상규명과 피해자 보상에 정부와 미국은 적극 나서야 할 것이고 아울러 베트남 전에서 우리 국군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도 확실한 조사와 관련자 처벌, 피해 보상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두 번째 사건으로 뽑힌 것은 서해교전 사태이다.

당장에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은 정국 속에서 집집마다 사재기 바람이 일고 미운 북한을 다시 한 번 곱씹으면서 경건해야할 6·25에 마이클 잭슨 공연이 “웬 말이냐”며 보수·우익 진영에선 데모를 했다. 지난 서해 5도 지역에서 남북이 충돌을 벌였던 이후 대한민국의 풍경이다.

평화인권연대에서는 평화연대 준비10호를 통에서 특집으로 서해교전 사태가 최근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국제법상에서의 문제들로 크고 작은 공방들이 끊이지 않았던 분쟁지역이었으며, 이 교전이 단지 어려운 정국을 돌파할 ‘반공 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위시한 자본주의 진영의 신자유주의 총공세(페리의 대북 포괄협상안으로 대표되는)에 대한 북한의 첫 반응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을 펼친 바 있다. ☞ 자세한 내용이 알고 싶으시면 평화연대 준비10호를 참조하시라.

서해교전 사태는 다가오는 새 천년에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의 군사적 긴장상태에 있는 남북관계를 평화무드로 시급히 전화시켜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군비축소와 평화무드 정착은 가뜩이나 IMF와 홍수 등으로 어려운 상태에 있는 남북한에게 과도한 군비지출로 인한 어려움을 해소하고 그것을 통한 복지재정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실지로 올해 노동운동 진영과 평화·통일 운동 진영에서는 이 같은 내용으로 함께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였다. 또한 군사적인 힘만이 우리의 안보를 보장해 줄 수 있다는 기존의 안보개념의 해체와 인간 중심의 대안적 안보개념으로의 전화와 구축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상기시켜준 사건이기도 하다.

다음 세 번째로 등장한 상처는 2년만의 국방비 증액이다.

국가경제가 파탄이 나고 저마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시점에서 국방예산은 일시적으로 주춤한 것처럼 보였다. 대통령도 월급을 스스로 깎았던 어려운 시기였으니 만큼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몰랐다. 그런데 최근 정부는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분석과 함께 매년 국방비를 5.5% 증액시키겠다고 발표하였다. 경제사정이 나아졌으니 그 동안 유보되어왔던 전력증강사업을 재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예산조정실에 제출된 국방부 예산안을 살펴보면 전체 15조 4천 1백억 원의 예산 중 6조 1천 5백억 원을 최첨단 신형 무기를 구입하는데 사용하고 나머지 9조 2천 6백억 원을 운영·유지비에 사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앞서 서해교전 사태 때도 밝혔던 것처럼 남북한 상호 군비경쟁으로는 한반도의 평화정착은 이루어질 수 없다.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준비하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가 강해야만, 최첨단 무기들로 무장해야만 평화가 올 것이라는 언명은 이미 구시대적 유물이 되고 말았다. 북한의 무력도발은 용납하지 않으며 미국과의 안보협력은 더욱더 강화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안보관은 남한 군사력의 최첨단화, 초현대화를 꾀하는 과정을 통해 구시대적 유물을 답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IMF로 나라경제가 어려워진 상황 속에서 모처럼 노동운동 진영과 평화, 통일운동 진영이 손잡고 벌였던 군축을 통한 복지재정 확보라는 캠페인은 이로써 소리지르느라 목만 아픈 결과가 되었다.

문제는 국가의 안보라는 부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이다. 우리가 제기하는 인간안보라는 개념은 북한 옹호론자들의 주장도, 뭘 모르는 젊은이들의 철없는 목소리도 아니다.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에 가장 반대했던 정치인인 스웨덴의 전 수상 올로프 팔메는 일찍이 안보문제에 대한 21세기적 대안으로 비군사적 공동안보를 제시한 바 있다. 이것은 군사력을 통한 안보만이 전부가 아니라 환경, 인권, 사회적 평등, 사회보장, 빈곤 퇴치, 불안정한 과학기술에 대한 통제 등을 안보체제에 포함시키는 것을 말한다. 또 ‘누구를 위한 안보인가’ 내지는 인전을 보장받아야 하는 사람은 누구여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21세기 평화를 준비하는 우리는 이제 군사적 대립을 뛰어넘는 평화와 안보를 생각해야 한다.

네 번째 사건은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 실태가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 경종을 일으켜준 지난 6월 26일 일어났던 여아 대인지뢰 피해 사건이다. 이 사건은 충남 청양군 청남면 대흥리 한 가정집에서 M14 대인지뢰(일명 발목지뢰)가 폭발해 9살 짜리 여자아이가 발목을 잘린 것으로 현재 한국의 대인지뢰의 현주소를 알려주는 사건이라 하겠다.

이번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지뢰 매설지역이 아닌 가정집에서 지뢰가 터졌다는 것이다. 이 지뢰는 근처 공원에서 놀던 아이가 지뢰인줄 모르고(발목지뢰는 부피가 우선 부피가 작아서 마치 장난감 같고 지뢰에 대해서 상식이 없는 일반 어른이 보아도 그것이 지뢰일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게다가 사람사는 동네에 지뢰가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가지고 놀다가 집까지 가지고 오게 되었고 그러다가 집 거실에서 터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것은 지난여름 전방지역에서 발생한 홍수 때 유실된 지뢰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의 대인지뢰는 비단 비무장지대뿐만 아니라 부산, 경남, 포항, 충남 홍성, 성남 등 후방지역에도 다량 유실되어 있고 매번 홍수가 나면 지뢰가 떠내려가 큰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지금까지도 전방의 지뢰매설 지역 이외에는 지뢰가 없다는 입장을 계속 고수하고 있고 지뢰매설 지역에 대한 발표도 꺼려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발표가 억지 주장이라는 것은 우선 지뢰 피해자가 군인뿐만 아니라 많은 민간인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대부분 평상시 다니던 길에서나, 산에 약초를 뜯으러 갔다가 변을 당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여름 피서지에서 발목지뢰에 의해 사고를 당한 경우도 있다. 현재 한국에는 비무장지대의 지뢰매설지역에 여의도 면적의 3백 34배에 해당하는 지역에 지뢰가 매설

되어 있으며 한국군의 무기 관리 소홀로 인하여 홍수에 의한 무기 유출은 더욱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한국정부는 아직 대인지뢰금지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이며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도 제대로 실시하지 않고 있다.

하루빨리 한국정부가 대인지뢰에 대한 금지를 선언하고 대인지뢰금지협약에 가입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촉구한다.

다섯 번째는 다시 한 번 미군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워준 기지촌 여성 이정숙씨의 의문의 죽음이다.

9월 7일 오전 동두천시 가정집에 세 들어 살면서 미군과 동거 중이던 이정숙(47세)씨가 자신의 방안에서 숨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이정숙씨는 이전에도 미군에 의해 강도,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으며, 작년 11월경부터는 매춘생활을 정리하고 새움터(기지촌여성 운동단체)의 상근 직원으로서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현재 이 사건은 여타 다른 미군 범죄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의문점들을 남긴 채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미군에 의한 한국 민중들의 죽음은 이미 잘 알려진 윤금이씨 살해사건 이외에도 97년 홍익대 조중필씨 살인 사건, 98년 군산 아메리칸 타운 내 환전소 여주인 박순녀씨 살인사건, 99년 동두천 기지촌 매춘여성 신차금씨 살인사건 등 최근까지 그 잔학성이 이어져오고 있으며 그 사건들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 유족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이렇듯 미군과 관련된 사건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매번 사건을 처리하는 한국경찰들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이정숙씨 사건만 해도 사건 당시 한국 경찰은 무책임한 태도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자살 혹은 자연사 쪽으로 수사 방향을 잡았다. 미군이 관련된 것이 틀림없다는 의혹이 팽배한데도 한국 경찰은 동거했던 미군의 신병을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이기는커녕 수사범위를 애써 한국인에게까지 확대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였고 미군 측의 비협조와 한미행정협정(SOFA) 제22조 형사재판권 문제 등으로 여태까지 진상규명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단 사람의 목숨뿐만이 아니다. 올 한해 태백산 폭격장 사건이라든가, 미군부대 기름 유출 사건 등 크고 작은 사건이 끊이질 않았음에도 미군 측은 한미행정협정의 조항들을 들이밀며 책임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렇듯 미군 관련 사건에 감초처럼 끼어 들어 초를 치는 한미행정협정은 한국 사법부의 형사재판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던지, 미군 기지 사용에 있어서도 한국의 국토를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임대계약기간조차 설정하지 않아 무기한으로 쓸 수 있는 점 등의 독소 조항으로 미군들에 대한 편의 제공의 차원을 넘어 한국의 주권을 상실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다른 나라의 협정들과 비교해서도 지나치게 불평등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여섯 번째는 전국군폭력희생자유가족협회(전군협)의 단식농성 사건이 선정되었다.

지난 5월 27일 군폭력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 13분이 국방부 앞에서 무기한 철야단식농성을 벌였다. 전군협 소속 유가족들은 ‘아들을 두 번 죽일 수는 없다’며 군내 의문사 진상규명과 올바른 국가인권기구 설치를 촉구하였고 유가족들은 단식농성을 시작하기 전 이미 20여일 간 전국 군부대를 돌아다니며 항의시위를 벌여왔었기 때문에 단식을 단행하기엔 건강 상태 등이 나빠져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노동일보에서 집계한 역대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중 의문사 명단을 보면(아래 표 참조) 전체 42명 중에서 군(보안사, 기무사 포함)관련 의문사는 전체의 절반이 넘는 22명에 이르고 있다. 자살 혹은 사고로 위장하면 그만인 군대란 공간에서의 이런 통계치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매해 의문사를 비롯한 군관련 사건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생했다. 올 초 김훈 중위 사건, 이회창씨 아들(혹시 의문사 당할까 무서워 군대를 안보냈나?)을 비롯한 정부 고위 관리들의 군면제, 도피 사건 등 의문사 뿐만이 아닌 군관련 여러 상처들은 1999년을 기억하게 하는 아주 기분 나쁜 아이콘 중의 하나이다. 우리 주위에 아직도 어딘가에서 이런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과연 이들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지 않고,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주지 않으면서 새 천년 평화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 임기윤(59세) 80.7.26

75년 결성된 ‘사회정의구현 부산 기독인회’의 회장을 지냈던 그는 국군 보안사령부 부산분실(속칭 삼일공사)에 연행되어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 정성희(21세) 82.7.23

연세대 학생으로 학교에서 있었던 시위 과정에서 연행되어 강제징 집된 뒤 철책초소 야간 근무 중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 허원근(23세) 83.4.2

부산수산대생으로 군 복무 중 유류고 뒤에서 세 발의 총을 맞고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다음 날이 첫 휴가였으며 한꺼번에 세 발을 쏘아 자살을 할 수는 없다는 점등으로 미루어 타살임이 확실하다.

▣ 이윤성(20세) 83.4.30

성균관대생으로 인문과학 연구회 회장직을 맡기도 한 그는 가두시위에서 연행된 뒤 강제 징집되어 당시 군 강제 징집자에 대한 보안대의 녹화사업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 김두황(24세) 83.6.18

고대 학생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다 성북서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강제 징집된 뒤 보안대의 녹화사업 과정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 한영현(22세) 83.7.2

한양대 학생으로 부천의 야학활동을 한 선배의 조사과정 중 그의 이름이 나와 조사를 받고 강제 징집된 직후 보안대에 끌려가 조사를 받다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 최온순 83.8.14

동국대생으로 시위예비음모로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 받은 뒤 강제 징집되어 보안대의 녹화사업 과정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 한희철(23세) 83.12.11

군 입대 후 시위주동자로 수배중인 친구에게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게 하기 위해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편지를 써 주었는데 이후 편지가 들통나고 보안대에 끌려가 조사를 받은 뒤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 김용권(24세) 87.2.20

서울대생으로 카튜사에 입대 후 보안부대로 호출된 뒤 프락치 행위를 강요받고 구타당한 뒤부터 정신불안에 시달려 병원치료를 받다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 노철승(23세) 87.3.1

광주상고를 졸업하고 수도방위사에 근무하다 당시 복역 중이던 형과 편지를 주고받은 것이 문제가 되어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 이승삼(22세) 87.3.3

부산대 생으로 36사단에 입대 후 가족과 면회하고 나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부대에서 고참들의 심한 구타로 실신까지 하게 되자 구타 혐의를 모면하기 위해 사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 박필호(22세) 87.3.19

부산대 의대생으로 육군에 입대 후 화장실에서 목이 매인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 박상구(21세) 87.5.11

군복무 중 평소 상관의 미움을 받다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 이이동(22세) 87.6.15

전남대 학생으로 입대 후 6월 항쟁이 진행되던 당시 충정교육을 받을 때 그가 광주 항쟁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자 심한 구타를 당해 실신한 뒤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 최우혁(22세) 87.9.8

서울대 학생으로 학생운동에 헌신하여 수 차례의 구류를 살기도 했던 그는 군복무 중 사회과학서적을 읽다 보안대에 적발된 뒤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 정연관(22세) 87.12.4

군 입대 후 대통령선거 군 부재자 투표를 한 뒤 야당을 찍었다는 이유로 집단구타 당하여 운명하였다.

▣ 우인수 88.6.24

성균관대생으로 군에 입대하여 포병연대에 근무 중 외박을 끝내고 귀대한 직후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 박종근(26세) 88.8.1

동국대 경주분교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방위병으로 입대하여 근무 중 녹용이든 보약을 상납할 것을 요구받고 이를 거부한 뒤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 박성은(22세) 90.5.24

방위병으로 근무 중 부대 내에서 발생한 구타사건과 군부대 내의 비인간적이고 비민주적인 행태를 고발하는 문건을 작성한 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부대 내에서 조사를 받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 남현진(22세) 91.2.3

한국외국어대생으로 학생회 간부로 활동 중 군 입대. 상관이 “통일이 되면 우리의 적은 누구인가?” 라는 물음에 “미제국주의다.”라는 대답을 한 뒤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 송종호(24세) 91.2.20

서울대생으로 학생회에서 활동하다 군에 입대한 뒤 포병부대에서 훈련 중 이동상황실 안에서 벽면 합판에 목이 매인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 김영환(27세) 91.4.27

고려대를 졸업하고 한겨레 사회연구소 연구원으로 한미군사관계, 평화, 군축문제, 남북관계, 통일문제 등을 연구하던 그는 보안사의 추적을 받다 강경대 학생이 운명한 다음날 자취방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일곱번째 사건은 거부당한 국방의회 감시가 차지했다.

올해 국감은 하반기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시민단체들이 ‘국정감사모니터 시민연대’를 결성해 의원들의 의정활동에 대한 시민참여를 표방하며 활동을 벌이자 대부분의 위원회에서 그 방청을 불허한 것이다. 평화인권연대도 시민연대에 참여하며 국방위 모니터를 진행하려 하였으나 국회 국방위원회 3당 간사회의와 국방부 장관이 “국방부 자체가 민간인 통제 시설이며, 국감장에 나오는 장성급 인사들이 그 자체로 이미 보안사항이므로 국가안보기밀사항의 보안유지를 위해 국감시민연대의 방청을 불허한다”는 입장을 밝혀 사실상 그 활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대한민국 비리 온상의 둘째 가라면 서러울 군대와 국방행정의 개혁은 시급한 여러 개혁과제 중 가장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다.

나라 살림이라는 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이 되는 것이다. 또 군대와 군행정의 문제는 앞서 지적했었던 것처럼 직접적으로 국민의 인권침해와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기에 우리 모두가 이 문제에 대해 최소한의 알 권리가 있다는 것이며 개혁이 된다면 그것의 주체는 정부 고위층이나 군 고위층 인사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 국민이어야 하는 것인데 이번 국감에서 보여준 이러한 모습은 개혁이라는 과제를 정부가 그리고 군 스스로가 부정한 것이며 이것은 개혁의 의지가 과연 이 정부에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던지기 충분한 사건인 것이다.

현재 국방위 감시 시민연대는 국정감사 기간 중 제대로 방청을 할 수 없어서 국방위 속기록에 근거한 가운데 각 의원들 질의에 관한 평가작업을 진행중이다. 국민의 알 권리가 철저히 무시되는 가운데 무엇에 근거한 것인지 국방예산을 다시 올라가고 있고 군 관련 비리들은 끊이질 않고 있다. 과연 속이 터지고 울화가 치밀어 잠을 제대로 못 이루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어덟번째 상처는 불타는 동티모르에 한국군 전투병력 파병 결정이 선정되었다.

지난 9월 28일 베트남전 파병 이후 34년만에 전투부대를 포함한 ‘국군부대의 동티모르 다국적군 파병동의안’이 많은 논란끝에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고 현재 ‘동티모르 상록수 부대’가 통티모르에 주둔해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문제를 가지고 여·야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내부에서도 찬, 반 논쟁이 일었었고 결과적으로 파병반대(야당의 말도 안되는 논리가 아닌)의 목소리는 정부의 인권국가 생색내기와 군대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처음 파병문제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평화인권연대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은 이랬다. ☞ 자세한 내용은 평화연대 창간준비 11호를 참고하시라.

코소보의 평화를 목적으로 한 나토의 개입과 겹쳐지며 과연 국제사회에서 이러한 식의 무력개입이 온당한 것인가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실상 겉으로는 인권을 내세우고 있지만 동티모르의 평화보다는 이 지역에 얽혀있는 자국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앞다투어 파병을 서두르는 강대국들의 모습속에서 우리는 다국적군의 파병만이 대안이 될 수 있는가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었다. 또한 한국정부의 모습에서 보여지는 생색내기식 외교와 군사만능주의, 전투부대가 포함되어 있는 한국 파병부대, 이런 부대가 아무런 사전 교육 없이 글자 그대로 평화를 유지하고 수호할 능력이 있는 것인가의 문제 등등이 파병에 대한 우리의 심각한 우려와 의구심을 더욱 가중시켰다.

냉전 이후 전세계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제사회의 역할은 과연 어떤 것인가에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군사력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식의 논리를 당장 벗어던지고 진정한 평화를 위한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또한 표면적인 사태 해결의 수준을 넘어서는 분쟁이 일어나는 구조적인 모순을 파헤치고 그 구조적 고리를 끊어내고자 노력해야 한다.

아홉번째는 국가보안법 완전철폐를 위한 투쟁이 차지했다.

51년이다. 국가보안법이 제정된지 반세기가 넘게 지난 것이다. 이젠 정말 지겨운 얘기 중의 하나가 국가보안법 철폐라는 구호가 아닐까 한다. 그 자신이 이미 양심수였던 경험이 있는 대통령이고, 임기 중 국가보안법 개정의 공약을 내걸었던 바여서 시민사회에서 거는 기대는 대단했다. 하지만 지금도 서명 중이고, 삭발·단식 중이고, 농성 중인 사안이 되어 버렸다. 이미 사상전향제의 준법서약제로의 전환이 무슨 대단한 인권의 신장인양 떠들어댈 때부터 사실 볼짱 다 본 것은 아닌가. 준법서약서의 허구성은 얼마전 있었던 송계호씨 사건(가석방 이후 준법서약서 철폐 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재수감)으로 이미 만천하에 드어났다. 이처럼 국가보안법의 문제점은 국민회의 안에서 제시하고 있는 몇 군데의 수정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원래 국가보안법 자체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악용될 수 있는 소지가 많은 법이다. 약간의 수정을 통해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미 유엔에서도 국가보안법 제 7조에 의한 완전 철폐와 점진적인 법 자체의 전면 철폐를 한국 정부에 여러 차례 권고한 바 있다. 국가보안법에 의한 희생자는 국회에서 말 몇 마디 참견하는 그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모든 국민이다.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은 단순히 우리의 의지는 이러하니 당신네 정부 인사들은 우리의 의견을 받아들여주시오라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국가보안법은 이렇게 오랜기간 우리 속에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아왔다. 정권이 불리할 때 악용하는 법으로서, 이것에 익숙한 우리들은 알아서 기는 하나의 내부검열 기준으로서… 우리의 투쟁은 악법 철폐의 투쟁인 동시에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기준을 부수고 국가주의와 권위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인 것이다.

대망의 열번째 상처는 NGO없는 서울 NGO대회가 자치했다.

이번 WTO각료회의에서 전세계 NGO의 위상은 급격히 격상되었다. 이제 시민사회의 목소리는 단순한 목소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커다한 회의를 무려 5시간 이상이나 지연시킬 수 있는 물리적인 힘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가오는 21세기는 시민의 세기가 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세계화 추세에 발 맞추어 올해 떠들석하게 서울에서는 국제 NGO대회가 열렸다. 대부분의 시민·사회 단체들이 불참 혹은 관망을 선언한 가운데 열린 이번 대회에서는 회의 내용과 성과를 차치하고 정말 웃기지도 않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회의를 구경(?)하러 갔던 평화인권연대 한 회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완전 개판’이라는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평화포럼 끄적끄적 방에 사진과 함께 올라와 있습니다). 행사장에 검은 양복 입은 떡대들이 설치고 주민등록증에 가방 검사까지, 조금만 항의를 하여도 심한 욕설이 튀어나오는 이 대회. 월스트 중의 월스트라 아니할 수 없다. 대회 기간 중 시민단체들과 국외의 운동가들이 따로 만나는 자리가 있었는데, 참석한 국외의 운동가들은 첫날 이 대회는 많은 문제가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하며 고개를 내젓기도 했다.

사건은 이것만이 아니다. ’99 제2회 서울국제노동미디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김포공항으로 들어온 스티브 젤쩌(미국 노동운동가) 씨는 한국 당국에 의해 입국을 금지당하기도 했으며 10월 대구라운드 때 한국을 방문하려 했던 홀거 하이데 교수(독일)와 크리스토프 아기통(프랑스 실업자운동가)씨도 입국금지조치 되었었다. 정부에서 주도하는 NGO대회와 국외의 진보인사에 대한 입국금지 조치를 하면서 노벨평화상을 노리는 김대중이라… 지나가는 개도 웃을 노릇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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