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세계화 시대에 평화의 세계화는?

임종철(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공동대표)

이제 20세기가 저물어가고 있다. 이즈음 사람들은 입을 열면 밀레니엄과 찬란한

21세기를 말하곤 한다. 그리고 대개 그 화두는 ‘세계화’이다. 그 길만이 인류의 길

인 것처럼.

한데 돌아보면 20세기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전자전쟁을 통해 이미 전쟁의 세

계화를 거대하게 전진시킨 세기이다. 뿐만 아니라 경제의 세계화도 이미 금세기

중반에 세계금융경제체제가 굳어지면서 이미 이루어져 버렸다. 문화는 어떠한가.

그것도 이미 코카콜라, 햄버거, 할리우드, 그리고 올림픽을 통해 상업주의 문화의

세계화가 전면화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세계화’가 강조되는가? 세계(Globe)란 말에서 세계적(Global)이란 말

로 발전시키고도 모자라 세계화(Globalisation)라는 언술을 구사하는 것은 모든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되었지만 그것은 현상으로 그렇게 된 것이지 진정한 세계화

는 아니라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뜻이 아닐까. 세계화를 낱말풀이 해보면 “세

계적인 것으로 만든다”는 것일텐데 이미 세계적인 것을 다시 세계적인 것으로 만

든다면 단순한 의미중첩인가. 아닐 터이다. 굳이 세계화한다는 것은 목적의식적으

로 세계적인 것을 재편성한다는 의미일 터이다.

그렇다면 누가, 왜, 어떻게 세계화한다는 것인가? 그것은 이 지상에 형성된지 200

년 남짓한 미국이라는 국가가 세계적인 국가로 부상한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지

금까지 이루어진 것을 향후에도 더욱더 공고히 하여 명실공히 세계의 지배자로

군림하기 위한 세계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국은 군사적으로, 경제적

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세계의 유일 패권국으로서의 위세를 굳히기 위해 ‘세계

화’를 정착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가 정착되면? 미국은 앞으로 그 나라

의 역사보다 더 길게 세계를 지배할른지도 모른다. 미국 아닌 나라로서는 끔찍한

일이지만 말이다.

소련이 몰락한 것을 두고 “사회주의의 몰락”이라고 환치시키는 논리가 횡행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본주의의 승리”라고까지 밀어부치고 있다. 아니다. 그

렇지 않다. 이는 단지 강자의 편향이거나 해석과장일 뿐이다. 새로운 밀레니엄은

몰라도 지난 밀레니엄을 돌아보면 흔히 군사력과 경제력이 강한 측은 자기 논리

를 밀어부쳐 왔었다. 따라서 동구권의 몰락은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 또는 사회주

의 권력의 실패일 뿐이다.

이제 양극체제 해체라고 말할 수도 있는 군사력의 적대적 균형이 무너진 세계 군

사판도에서 여전히 일극인 미국은 군사력의 ‘세계화’를 공고히 굳히기에 나서고

이를 견제하려는 하위 4대 핵강국과 핵능력보유국들 간의 판짜기가 다시 진행되

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뉴라운드가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진행되고 있다. 새로

운 세기가 이런 패권경쟁으로만 치닫는다면 세계는 더욱더 심각한 ‘전쟁의 세계

화’로 나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길이 아니다. 길은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약화되어 의례화되어

버린 ‘비동맹운동’이나 멕시코 사파티스타, 이슬람근본주의, 코리아반도 북부 항미

정권 등등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주권 수호와 민주주의 인권 신장을 위

한 제3세계 민중운동이 어떻게 세력을 형성하고 패권주의 경쟁에서 살아 남느냐

에서 시사점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여기서 “평화란 무엇인가?” 다시 묻는 것이 새로운 세기의 화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세계 패권주의의 횡행에 맞서서 찾아야 할 평화란 과연 무엇일까? 구

도의 길로서의 비폭력 불복종인가? 아니면 개구리가 소와 경쟁하는 몸집 부풀리

기일까? 이것은 나 개인으로서의 화두이지만 누구나 이 화두를 잡고 답을 찾는

길에 함께 나섰으면 하는 바램을 이 세기말 우울한 저녁에 가져본다. “전쟁의 세

계화 시대에 평화의 세계화를 이루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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