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재벌 뱅상 볼로레와 프랑스 극우파의 부상

처음으로 국회에서 과반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극우파의 부상을 이해하려면 이 이데올로기가 공적 영역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특히 프랑스의 한 인물을 살펴봐야 하는데바로 자신의 미디어 제국을 통해 이 이데올로기를 홍보한 뱅상 볼로레(Vincent Bolloré)미디어 역사학자 알렉시스 레브리는 인터뷰에서 프랑스에서 전례가 없는 이 부상을 되돌아본다.

신문 르몽드에 따르면극우로 분류되는 다른 미디어 중에서도 CNews와 JDD의 소유주인 뱅상 볼로레의 프로젝트였던 에릭 시오티 전 LR 대표의 RN 합류는 처음에는 극우로 분류되는 다른 미디어의 프로젝트였다브르타뉴의 억만장자가 어떻게 정치의 중심에 서게 되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디어 업계에서 뱅상 볼로레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초 디지털 지상파 텔레비전(DTT) 채널의 창설로 거슬러 올라간다뱅상 볼로레는 2002년 Direct 8의 주파수를 무상으로 확보한 후 Virgin 17을 인수하여 Direct Star로 변경했다놀라운 것은 그가 2012년에 이를 다시 Canal+에 매각하여 국가 소유 자산에 대한 미디어 역사상 가장 큰 투기적 거래 중 하나인 엄청난 자본 이득(4억 6,500만 유로)을 얻었다는 것이다그의 제국의 토대는 공공 기관이 무상으로 할당해 준 주파수를 기반으로 구축되었다사실, 2015~2016년에 Canal+를 인수할 수 있었던 것은 부분적으로 이 돈(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수 당시 협상된 주식)이 있었기 때문이다조심스럽게 비벤디의 자본에 들어간 후그는 점차 그룹 전체를 조금씩 갉아먹었다.

그의 제국은 로베르 에르상(Robert Hersant, 프랑스 언론 재벌이자 정치인)이 건설한 제국과 비교되지만그것이 만족스러운 비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에르상은 극우파가 아닌 자유주의 우파를 위해 자신의 제국을 건설했다또한 에르상이 라가르데르(Lagardère, 프랑스 대형 그룹)와 마찬가지로 텔레비전에서도 실패한 반면볼로레는 방송에서 성공을 거둔 후 지면 언론으로 영역을 확장했다한편볼로레와 또 다른 부유한 프랑스 사업가인 조향사 프랑수아 코티 사이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

전쟁 사이에 코티는 언론의 후원자가 되어 르 피가로(Le Figaro)와 르 가울루아(Le Gaulois) 같은 보수적인 신문을 자신의 대놓고 극우적인 사상을 알리는 매체로 만들었다.

코르시카 출신으로 무솔리니의 사상을 지지한 이 사업가는 개인 재산을 바탕으로 1930년 100만 부까지 팔린 인기 일간지 라미 뒤 피플을 창간하고 신문사에 자금을 지원했다그의 사상에는 외국인 혐오반유대주의공화국 전복 등이 포함되었다그는 또한 시조 운동과 관련된 라 액션 프랑세즈와 같이 자신의 소유가 아닌 제목에 재정적지적으로 기여했다.

대중은 결국 이러한 신문에 싫증을 느끼고 점차 신문을 버렸다코티는 1934년 파산한 채 세상을 떠났다하지만 그의 사상은 남았고파시스트의 영향을 받은 일반 대중의 담론을 정상화하는 데 기여했다.

볼로레의 아이디어는 무엇인가?

한 세기가 지난 지금시대는 분명히 다르지만 어떤 면에서 볼로레는 코티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다그 역시 정치적문화적문명적 프로젝트를 위해 미디어 제국을 건설한 사업가다그러나 그의 제국은 훨씬 더 일관성이 있고 훨씬 더 뛰어난 기술로 구축했다.

그는 모레의 영향을 받은 우익 운동의 일원으로전통적인 가톨릭과 동화할 수 없는 외국인의 존재로 인해 위협받는 국가로서의 프랑스에 대한 비전에 전념하고 있다.

뱅상 볼로레의 일부 미디어는 벨 에포크 시대(19세기~1차 세계대전 이전 유럽)와 협력주의 시대 사이에 승리했던 극우주의와 오늘날 외국인 혐오 담론의 부활을 연결하는 연결고리로 볼 수 있다이들이 사용하는 어휘 자체가 극우 저널리즘의 역사를 떠올리게 할 때도 있다예를 들어지난 6월 15, <르헤르 데 프로>의 발표자들은 프랑스를 위협할 '반프랑스'의 귀환에 대해 이야기했다전날 필립 드 빌리에는 주간 프로그램에서 프랑스 국민에게 "외국인들의 파티"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고 촉구했다.

한 시대에서 다음 시대로 넘어오면서 내부의 적은 그 정체성만 바뀌었을 뿐이다. CN뉴스나 JDD의 많은 편집자들은 백인 기독교 국가를 옹호하는 데 집착하지만그들의 상상 속에서 무슬림에 대한 증오가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대체했다.

Canal+는 어떻게 방향을 바꾸고 있나뱅상 볼로레의 구체적인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어떤 면에서 볼 때 뱅상 볼로레는 코티가 실패한 곳에서 성공했다그는 2016년 Canal+ 그룹을 인수하면서 가장 싫어하는 두 가지즉 부식성 유머와 탐사 저널리즘을 우선적으로 없앴다그 결과 레 기뇰(Les Guignols de l'info, 프랑스의 유명한 풍자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공중파에서 사라졌고재핑(Le Zapping, TV 프로그램)과 탐사 프로그램도 사라졌다.

레 기뇰이 출발을 기념하기 위해 볼로레를 긁는 모습, 2018.

볼로레는 또한 SLAPP(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 소송의 전문가로서자신의 회사와 관련된 조사에 대해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사소한 기회도 주저하지 않는다.

Canal+의 인수 이후이제 I-Télé의 미래가 위태로워질 차례이다한 달 이상 지속된 파업과 편집진의 4분의 3이 떠난 후, 24시간 뉴스 채널은 CNews로 이름을 바꾸고 보도와 현장 취재보다 저렴한 무대 해설을 선호하는 저비용 매체로 변모했다그러나 채널의 편집 라인은 곧 바뀌었고, 2019년부터 일일 프로그램을 맡게 된 에릭 젬모어와 같은 극우적 사상가와 편집자를 점점 더 많이 영입했다처음에는 비밀에 부쳐졌던 시청자는 편집 노선이 더욱 급진적으로 바뀌면서 꾸준히 증가했다. 2024년에는 CNews가 BMF-TV를 제치고 가장 많이 시청하는 뉴스 채널이 되기도 했다.

볼로레는 불과 몇 년 만에 반기득권좌파비판 정신을 표방하는 채널로 알려진 Canal+ 그룹의 가치와 정체성을 전복하는 데 성공했다.

그 후 그는 유럽 1과 더 나아가 저널 뒤 디망슈(JDD)를 인수했다이 주간지와 파리 매치(Paris Match), 프리즈마 그룹의 잡지를 인수하기 위해 그는 코로나 위기를 악용하여 베르텔스만(독일 기반 다국적 미디어 기업미디어를 철수시키고 라가르데르와 같은 그룹을 상당히 약화시킬 수 있었다.

CN뉴스와 유럽 1보다 더 완벽한 볼로레 방식의 사례는 JDD이다정부와 가깝기로 정평이 난 온건한 매체에서 제프로이 르쥔의 등장으로 편집 노선이 즉각적으로 반전되었다.

10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프랑스 미디어 업계에서 일어난 지각변동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볼로레는 서면 언론라디오텔레비전뿐만 아니라 출판커뮤니케이션음악영화 등 다양한 미디어에서 극우라는 주제를 이렇게 다양하고 상호보완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프랑스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다.

공개적인 무대에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열쇠는 무엇인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사라지지 않고 공론장의 변방에 머물러 있던 극우 세력이 미디어에서 부활한 배후에는 뱅상 볼로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2012보수적인 발뢰르 악튀엘르(Valeurs actuelles) 미디어 매체가 공개적으로 외국인 혐오를 조장하는 매체로 변모했다그날부터 이 주간지는 해외에서 온 야만인, '이슬람의 위험또는 '로마의 침략'이라는 낙인을 찍는 화려한 1면을 늘리기 시작했다벨 에포크 시대와 마찬가지로 외국인 혐오적 상상력이 대중에게 대규모로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헤드라인인종 차별적 삽화도발적인 슬로건을 통해서였다.

19세기 말 언론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사례는 에두아르 드루몽의 주간지 '라 리브레 파롤'의 주간 보충 자료인 '라 리브레 파롤 일러스트레이'드레퓌스 사건 당시 유대인을 동물화하는 이 만평은 반유대주의적 상상력이 널리 퍼지는 데 기여했으며이는 오늘날까지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 삽화는 인종 차별적 편견을 계속해서 사소화한다이러한 아이디어를 구독하지 않거나 이러한 유형의 출판물을 구매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첫 페이지가 표시된다오늘날에도 비슷한 메커니즘이 사용되고 있다가상의 소설(1면에 광고)을 통해 다니엘 오보노 의원이 노예가 되는 것을 재미있게 상상한 발레르 악투엘레의 소설을 생각해 보라(이 신문은 인종 차별적 모욕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비벤디가 라가르데르 그룹의 주요 브랜드이자 하쉐트 그룹의 역사적 유산이었던 릴레이 매장을 인수한 것은 이런 점에서 그 중요성을 강조할 수 있다기차역과 공항에 대규모로 입점해 있는 이 매장들을 통해 뱅상 볼로레는 자신의 이념을 일상생활에 더욱 깊이 뿌리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볼로레의 경력은 종종 폭스 뉴스의 설립자인 루퍼트 머독의 경력과 비교되기도 하는데같은 현상일까?

볼로레는 프랑스의 머독을 꿈꾸며 머독처럼 모든 종류의 미디어와 현재 전 세계 여러 지역에 진출한 다양성의 제국을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볼로레는 정치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세상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지키고자 하며 신중함과 비밀을 중시한다는 점에서도 머독과 비슷하다.

프랑수아 코티와 최근에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개인적인 정치적 야망을 위해 미디어를 이용했다면머독은 자신이 지지하지도 않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평생을 보냈다.

최근 에릭 시오티(보수 정당 LR에서 제명, RN과 동맹 시도가 발단)와의 만남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뱅상 볼로레의 계획도 비슷해 보인다그는 자신의 경력을 쌓기 위해 자신과 미디어에 크게 의존할 부하들에게 의존하여 정치 세계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바꾸려고 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 외의 시간 동안 뱅상 볼로레는 전기 작가인 뱅상 보필이 회고하듯 드물게 공개적으로 자신을 표현해야 할 때면 피하거나 숨는 것을 선택하며 배경에 머물렀다예를 들어, 2022년 상원 청문회와 2024년 국회 청문회에서 그는 자신이 소유한 미디어에 영향력이 거의 없는 온건한 기독교 민주당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2024년 3월 13일, DTT 주파수의 통제와 할당을 조사하기 위해 LFI 그룹의 요청으로 구성된 의회 조사위원회에서 볼로레가 발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행선에는 한계가 있으며 볼로레 제국에는 몇 가지 약점이 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머독과 달리 그는 언론인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특정 제목과 대사의 잔인함과 같은 전술적 오류를 초래했다(그의 가족 재산은 OCB 담배 종이 산업에서 나왔다는 점을 기억하라). 예를 들어제프로이 르준의 JDD는 원래의 제작 형태를 충실히 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신문사의 편집 노선에 동조하지 않는 독자를 꾸준히 잃고 있다반면 머독은 더 타임즈(The Times)나 월스트리트 저널(The Wall Street Journal)과 같은 권위 있는 기관의 편집팀을 인수할 때 더 큰 존중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그는 또한 이 가벼운 타이틀이 정치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파리 매치를 베르나르 아르노(LVMH)에 매각했다하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아르노가 옳고 볼로레가 틀렸다고 생각한다5공화국은 사실 권력이 중앙집권화되고 개인화되고 구체화된 체제였다. '국민차원의 정치 주간지인 파리 매치는 드골 이후 모든 대통령과 거의 모든 대통령 후보가 이해했듯이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비할 데 없는 도구였다.

파리 매치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볼로레는 2024년 9전 발뤼르 악투엘의 전직 편집장이자 현재 유럽 1의 정치 담당 책임자인 루이 드 라게넬이 편집하는 주간지 JDNews를 창간할 계획이다최근 몇 년 동안 이미 포화 상태인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한 주간지가 없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는 매우 위험한 시도인 것 같다.

요즘 미디어와 정신의 '볼로리제이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그 내용은 무엇인가?

뱅상 볼로레의 이데올로기적 영향력은 이제 그가 소유한 미디어를 훨씬 넘어서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표현은 적절하다그가 소유하지 않은 많은 신문이 CNews와 C8에 소개되고 있으며, Causeur, L'Incorrect, Boulevard Voltaire, Livre Noir와 같은 타이틀은 독자 수가 상당히 적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노출을 누리고 있다.

리브르 누아르와 같은 미디어 매체는 V. 볼로레 그룹이 소유한 미디어가 제공하는 플랫폼과의 연계 가능성을 통해 악명을 얻었다

이 '볼로리제이션'에는 어휘 싸움이자 상상력의 싸움인 문화적 싸움도 포함된다뱅상 볼로레의 미디어에서 생성된 루프 효과(CNews에서 유럽 1까지또는 TPMP에서 JDD까지 같은 용어가 무한정 사용될 수 있음덕분에 극우의 어휘는 사소화되고 정상화된다가장 좋은 예는 의심할 여지 없이 2021년 10월 31일 CN뉴스에 르노 카뮈가 초대된 후 언론에 다시 등장한 "대체 이론(Grand remplacement)"라는 표현이다이 음모 개념은 최근 몇 년 동안특히 범인 중 한 명이 프랑스 작가를 참고 자료로 사용한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테러 이후 주류 언론에서 거부당했다르노 카뮈가 이반 리우폴의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후이 표현은 극우 미디어의 영역을 넘어 발레리 페크레스가 자신의 선거 유세에서 직접 사용할 정도로 널리 사용되었다.

"극우"라는 용어 자체는 이 어휘 싸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리베라시옹에 따르면제롬 베글레가 JDD 편집장으로 재직하던 시절(2022년 1월부터 2023년 6월까지)의 사례는 이러한 측면에서 상당히 상징적인데그는 주간지 기자들에게 '극우'라는 표현이 부적절하다며 국민회의(RN)를 지칭하는 데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정치권 일각에서도 이러한 혼란에 대한 책임이 있다대통령 자신은 이념적 고수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적과 대면 대결을 펼치기 위해 이데올로기적 미디어와 삼각관계를 형성해 왔다예를 들어, 2017년 4월과 12월에 시릴 하누나 쇼에 두 차례 출연한 것을 생각해 보라무엇보다도 우리는 마크롱이 2019년 10특권적인 조건에서 발뢰르 악튀엘르와 돌풍 인터뷰를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저널리스트 루이 드 라구에넬은 대통령 전용기 에어버스에서 그와 단둘이 있었고인터뷰는 원래 교정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동시에 그는 자신과 가까워야 할 편집국과의 관계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2017년 이후 르몽드와의 인터뷰는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해산 이후 우리가 겪고 있는 정치적 위기의 시기에 이러한 볼로화 현상은 유독 더 심해지고 있다르 피가로와 같은 온건한 신문들도 비벤디의 상사가 취한 노선을 따르고 싶은 유혹을 받는 듯하다뱅상 볼로레와 에릭 치오티가 만난 다음 날이 신문의 편집국장 알렉시스 브레제는 유럽 1의 일간 칼럼에서 우파 통합 계획을 옹호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볼로레 그룹이 다른 언론사나 정치계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가 속한 미디어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현재로서는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지속적인 현상인지 알기 어렵다하지만 우리가 겪고 있는 정치적 위기는 그 자체로 뱅상 볼로레가 벌이고 있는 문명사적 전투가 성공했다는 증거이다.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행히도 프랑스에는 정기적으로 공격을 받더라도 견제와 균형이 여전히 존재한다여기에는 헌법위원회국무원, Arcom(구 CSA) 등의 기관이 포함된다안타깝게도 다른 미디어 규제 기관과 마찬가지로 Arcom은 현재 그 임무를 수행할 인적 자원이 부족하다.

최근 사망한 크리스토프 들루아르가 옹호했던 1986년 미디어 다원주의에 관한 법률과 같은 기초 법안이 이를 약화시키려는 좌파 상원의원들에 의해 훼손되고 있다.

그러나 독립 언론이나 편집진의 작업을 존중하는 재벌 소유의 신문사에서는 여전히 저항의 영역이 존재한다지금은 특히 걱정스러운 시기이지만 프랑스 언론이 회복력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80년 전인 1944년에 그랬던 것처럼 더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La crise politique que nous vivons prouve la réussite du combat civilisationnel mené par Vincent Bolloré » (theconversation.com)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알렉시스 레브리(Alexis Lévrier)는 언론사학자로 랭스 샴페인 아르덴 대학교 강사, 소르본 대학교 GRIPIC 부연구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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