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 주] 이 글은 지난 9월 29일 오스트리아 총선의 결과,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나치 부역자들이 세웠다고 알려진 극우파 자유당(FPÖ)이 승리한 결과에 대한 논평이다.
"FPÖ를 저지하자"는 구호로 오스트리아의 좌파와 자유주의 정당들은 수십 년간 선거운동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 총선 결과는 이런 방식으로는 우파 세력을 이길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극우 오스트리아 FPÖ 지도자 헤르베르트 키클(Herbert Kickl). 출처: FPÖ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극우 정당인 FPÖ가 1위를 차지했다. 28.8%의 득표율로, 1955년에 구 나치 세력을 모으기 위해 창당된 FPÖ는 사상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선거 이틀 전, 주요 FPÖ 정치인들이 SS 충성가가 불린 장례식에 참석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FPÖ와 관련된 여러 스캔들 중 하나에 불과했으며, 이제는 이런 행위가 더 이상 당에 해를 끼치지 못하는 분위기다. 당 내부에서도 이와 관련된 뚜렷한 선 긋기조차 없었다.
오스트리아 좌파에게 이번 선거 결과는 재앙이다. FPÖ의 압도적 승리뿐만 아니라, 좌파 정당들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점도 문제다. SPÖ(사회민주당)는 안드레아스 바블러(Andreas Babler) 하에 몇십 년 만에 가장 좌파적인 공약을 내세웠지만, 21.1% 득표로 3위에 그쳤다. KPÖ(공산당)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1962년 이후 최고의 성적을 냈지만, 2.4% 득표로 의회 진출에는 실패했다. 1945년 이후로 오스트리아 좌파는 이처럼 약했던 적이 없었다.
좌파 정당들에게 유리할 만한 주제는 분명히 존재했다. 전체 유권자의 44%가 생활비 상승을 가장 중요한 이슈로 꼽았고, 그다음은 이민 문제였으며, 건강과 간병이 3위로 뒤를 이었다. 하지만 지난 몇 달간의 선거운동을 보면, 오스트리아 유권자들이 오직 망명과 이민 문제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선거운동에서는 이민자 청소년 간의 거리 폭력이나, 취소된 테일러 스위프트 콘서트를 빌미로 한 테러 대책 논란 같은 주제가 부각되었다. 국민당(ÖVP) 대표 네하머(Nehammer)와 FPÖ 대표 키클(Kickl)은 누가 더 열렬한 인종차별적 이민 규제자로 보일 수 있는지 경쟁하는 듯했다. 좌파 정당들은 이런 주제의 장악력을 깨뜨리는 데 실패했다.
지역 정당에서 전국 정당으로 발돋움한 KPÖ
지난 몇 달간 많은 좌파,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이 KPÖ에 큰 희망을 걸었다. 슈타이어마르크, 잘츠부르크, 인스브루크에서 성공적인 선거운동을 펼친 후, 수십 년 만에 SPÖ를 왼쪽에서 넘는 정당이 의회에 진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당이 여전히 전략적 과제들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3월에 열린 잘츠부르크 시의회 선거에서 KPÖ는 23%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는 '감당할 수 있는 주거'라는 핵심 의제를 선거의 결정적 이슈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FPÖ조차 이 주제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인스브루크에서도 주거 문제가 당의 시의회 진출을 이끄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는 잘츠부르크와 인스브루크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비싼 도시로, 다른 지역보다 주택 문제가 더 심각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국적인 '세입자 정당'이 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2023년 기준으로 오스트리아 국민의 43.7%만이 임대 주택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는 국민의 절반 이상에게 주거 문제가 큰 의미를 가지지 않거나 부차적인 사안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시 외 지역에서는 KPÖ가 다른 사회적 주제를 통해 주민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요컨대, 당은 효과적인 도시 및 주 정책뿐만 아니라 연방 차원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좌파 세력임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현재로서는 이 목표가 아직 달성되지 않았음을 지역 선거에서의 KPÖ 성적이 증명한다. 그라츠와 잘츠부르크 도심에서는 약 6%의 득표율로 평균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주의회 및 시의회 선거 결과에 비해 크게 미치지 못했다. KPÖ가 지역에서의 성공적인 모델을 전국적으로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 몇 년간 당이 직면할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SPÖ가 필요한 사람은 없다
SPÖ는 현재 안드레아스 바블러 프로젝트가 실패했다는 비판을 사방에서 받고 있다. 하지만 핵심 문제는 여전히 SPÖ 내부 구조에 있다. 이 구조는 좌파 후보를 내부에서부터 방해하고 있다. 바블러는 당내 반대파에 강력히 맞서지 못했고, 오스트리아 최대 난민 수용소가 있는 트라이스키르헨 시장으로서 결코 양보해서는 안 되는 이민 문제에서 물러섰다. 그는 지난 6월,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으로 '중범죄자'들을 추방하는 데 동의하며, 그의 정체성의 일부였던 다른 이민 정책에 대한 약속을 저버렸다.
동시에 그는 독자적인 의제를 설정하는 데 실패했다. 이는 부분적으로 오스트리아 언론 구조 때문인데, 이들은 정책 논쟁보다 당내 갈등을 보도하는 데 더 집중한다. 이 때문에 부르겐란트의 한스 페터 도스코칠(Hans Peter Doskozil)이나 티롤의 게오르크 도르나우어(Georg Dornauer) 같은 내부 비판자들이 더 많은 주목을 받는다. 선거운동 중에도 당내 갈등은 공개적으로 드러났다. SPÖ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도리스 부레스(Doris Bures) 제2국회의장이 선거 4주 전 바블러의 공약을 비판하는 이메일을 보냈을 때, 그는 그 이메일이 공개될 것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는 SPÖ가 공약보다 내부 갈등으로 주목받게 만들 것임을 분명히 인지한 행동이었다.
결국 SPÖ에게 남은 유일한 공통된 주제는 "우리는 우파에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제로 SPÖ는 수십 년 동안 선거마다 지지율을 잃어왔다. 민주주의의 종말을 경고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는 한때 거대 정당이었던 SPÖ가 이제 얼마나 행동력을 상실했는지만 보여줄 뿐이다. "우파에 반대한다"는 입장은 내부 지지층의 동의를 얻는 데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정치적 다수를 형성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나라에는 좌파 정치가 자신의 삶을 더 나아지게 했다는 경험을 한 적이 없는 유권자들이 있다. 브루노 크라이스키(Bruno Kreisky) 전 총리 시절의 노동시간 단축이나 진보적인 여성 정책을 체감한 세대는 이제 50대 이상일 뿐이다. 젊은 세대는 "우파-국민당 연정을 막는 것"이 유일한 정치적 프로젝트였던 세계만을 알고 있다. 2016년에 노버트 호퍼(Norbert Hofer)가 FPÖ 출신으로 첫 연방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았지만, 그 결과 1년 후 하인츠-크리스티안 슈트라헤(Heinz-Christian Strache)와 제바스티안 쿠르츠(Sebastian Kurz)의 FPÖ-ÖVP 연정으로 이어진 세상이다. 2019년 이비자 스캔들로 FPÖ가 스스로 몰락했지만, 5년 뒤 다시 이 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 된 세상이다.
이런 "반대를 위한 반대"는 문제의 일부다. 좌파의 목표는 항상 사람들의 일상에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야 한다. KPÖ는 지역 수준에서는 이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냈지만, 전국적으로는 더 큰 증명을 해야 한다. 반면 SPÖ는 자신을 행동력 있는 세력으로 다시 보여주기 위해 가장 큰 장애물이 바로 자당의 조직 구조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오스트리아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으려면, 이 두 정당 모두가 필요하다.
[출처] Es reicht nicht, gegen rechts zu sein | JACOBIN Magazin
[번역] 하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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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달레나 베르거(Magdalena Berger)는 Jacobin.de(자코뱅 독일)의 부편집자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