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73호] 반자본주의 투쟁만이 노동자 계급의 생존권 투쟁을 엄호할 수 있다

사회주의 정치신문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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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 불파투쟁은 시대정신과 결합하고 있는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을 분쇄하기 위한 끝장 투쟁을 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현대자동차 1차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8천명 전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사측의 폭력을 뚫고 전진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자동차는 작년에만 BMW에 이어 영업이익율 세계 2위를 기록했고 그 금액은 무려 4조가 넘는다. 한편 정규직화에 드는 돈은 한 해 2,000억, 영업이익의 1/20 남짓이고, 정규직화를 통한 한해 법인세 감면효과가 이를 넘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자본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매수(?)하는데 생각보다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갖는 절박함과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 전체가 사실상 자본에게 위협이 되지 않고 때문이다. 자본에겐 노동부의 조사나 법원의 판결 정도가 좀 신경 쓰이는 수준이다. 사회적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때 심각한 체제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면 현대차 자본이 3,000명 우선 전환을 말하며 여유를 부릴 수 있겠는가? 비정규직 철폐라는 시대의 과제가 보다 급진적인 시대정신과 결합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막판으로 내 몰리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


  남한사회는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되어 있고, 그 고도화의 속도도 미친 듯하다. 여기서 고도화는 발전, 혹은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몸을 불려가면서 노동력이 산업현장에서 내 몰리는 속도, 자본주의가 썩어가는 속도를 의미한다. 자본은 고도화될수록 기계화와 상하분업이 진전되어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를 쫓아내거나 정규직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운다. 그렇게 해서 과잉축적 된 자본은 이자 받는 자본이나 투기자본이 되어 여기저기 떠돈다. 반면 노동자 대중은 낮은 소득을 가계부채로 메우면서까지 호주머니를 털린다. 이 땅에서는 특히 교육과 의료 복지가 엉망이니, 대학등록금, 의료 사보험 등으로 호주머니가 털린다. 게다가 아이들의 입시경쟁에 부모까지 끼어들어 사교육비로 통장이 거덜 나고, 용감하게 자기 집을 장만하려는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소득까지 금융자본에 헌납해야 한다.
  이런 사태가 어설프게 조세정책을 바꾸거나 몇가지 정부규제를 통해 해결될 전망은 없다. 당장 정부의 정책을 뒷받침할 총알이 바닥났다. 2008년 세계공황을 맞아 정부가 빚내서 돈 푼 것은 세상이 다 안다. 한국경제에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재벌들의 이윤을 수탈하지 않고는 분배는 언감생심이다. 지금은 과실의 분배든 고통의 분배든 자본주의 소유관계를 사회적 소유로 바꾸어 사회구성원의 생존을 추구하는 과격한 조치를 취할 때다. 이렇게 안하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은 입을 봉해야 한다. 아니 그런 말을 믿는 척하는 우리자신부터 찬물을 뒤집어쓰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역량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9월 1일 울산에서 열리기로 했던 포위의 날이 취소되었다. 거의 같은 시기에 현대차는 자동차 완성차 업체 중 처음으로 주간 2교대 실시에 합의를 하였다. 물론 추가고용 없는 노동강도 강화 대가로 이루어져 노동자들을 매수하기는커녕 매사 더럽게 짜게 구는 현대자본의 속성을 보여주었다. 여러 정황으로 정규직 노조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타협적 태도는 이미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으나, 가장 비타협적인 전선에 있어야 할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태도변화는 매우 실망스럽다.
  그 동안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헌신적인 투쟁이 정규직 전환의 계기를 마련한 것이 사실이지만 비정규직 노조의 대자본 교섭력, 혹은 투쟁력은 높은 조직율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조합원들의 투쟁으로만 구성된 것도 아니다. 불파투쟁은 그 투쟁의 정당성, 대의 자체가 투쟁력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그것이 현대차 자본에 대한 주요한 압박을 형성하고 있다. 파견노동자의 부당한 처우에 대한 사회적 공분과 지배계급의 우려(아직 공포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가 그런 압박이다. 그리고 이러한 압박을 더욱 강화한 것은 투쟁주체가 보여주었던 당당함이었다. 특히 현대차 불파투쟁 당사자들은 이 투쟁이 갖는 보편성, 즉 전국의 파견노동자들의 운명이 자신들의 투쟁결과에 달려 있다는 자각을 가감 없이 드러내왔다. 그런데 최근 비정규직 노조 유인물을 통해 확인된 사실상의 선별, 단계별 정규직 전환 동의는 이러한 자신들의 강점을 잊고 조합원들의 투쟁동력 저하에 위축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것을 투쟁하는 노동자 당사자들에게만 책임지울 문제는 아니다. 정치, 사회적 압박 수준을 반자본주의 투쟁 수준으로 끌어올리지 못한 책임은 사회주의자들이 온전히 저야 할 몫이다. 불법파견 판정을 받고도 버티기로 일관하는 현대자본에 대한 분노를 자본주의 전체에 대한 반대투쟁으로 끌어올리지 못한 것은 경제투쟁의 성과를 내는 데도 한계로 작용했던 것이다.

  우리시대 깨여 있는 의식의 정수, 반자본주의


  안타까운 건 투쟁의 현장이 투쟁현장 바깥보다 더 의식이 지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전직 장관의 입에서조차 자본주의는 끝났다라는 한탄이 나오는 지경이고 유로존의 난리를 보면서 많은 사람이 자본주의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다. 그런데, 자본이 고용한 용역깡패에 두들겨 맞고 자본의 무자비한 이윤논리에 내침을 당하고 있는 현장에서 자본주의와 맞장을 떠야 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이 파탄 나고 객관적으로 사회주의 정당이 나와야 한다는 객관적 요구, 혹은 상식이 존재함에도 대중들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노동자계급정당 타령만하고 있는 사람들이 현장활동가고 사회주의자라니 그런 현상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지금 반자본주의 투쟁을 선도하지 못하는 노동운동은 사회에 뒤쳐진 것이고 반자본주의 투쟁 없이는 대중의 생존권투쟁도 한계에 봉착한다는 자각이 확산되어야 한다. 불황과 공황의 시대, 역사는 노동자들이 격렬히 투쟁했고 그 투쟁은 체제를 바꾸는 상상력과 결합했을 때 힘이 배가 되었다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곳간에 불 지른다고 해야 곳간에 넘쳐나는 곡식이라도 내놓는 게 가진 놈들의 속성이지 않은가?

김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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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 현대자동차 , 반자본주의 , 시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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