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으로 눈 가린 복수노조...‘비정규직 공장’ 오나

[복수노조 기획](7) 노조 무력화, 인사권 강화 등 집단적 노사관계 후퇴

민주노조를 무력화하는 과정에서 결성된 복수노조는 노사협력적 관계를 통한 고용조건 증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임단협을 통한 임금인상 등 단기적 성과 이면에는 비정규직 확대, 고용불안, 노조 무력화 등의 장기적인 위험이 있다. 실제로 ‘정규직 공장’이었던 일부 사업장은, 복수노조가 들어선 후 단협을 통해 외주화와 비정규직 사용제한 조항을 삭제시켰다.

전임자 축소와 노동조합 활동시간 단축 등 사실상의 노조 무력화 추세는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징계와 부당노동행위 관련조항 개정, 인사권 강화 등으로 사용자 지배개입 가능성은 확대됐다. 이같은 양상은 그간 ‘안전지대’로 인식됐던 정규직 공장 역시 불안정 노동현장으로 재편될 가능성을 안고 있어 불안감이 심화되고 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복수노조, ‘비정규직 공장’확대시키나...‘신 노사문화’ 공염불

구 만도사업장인 보쉬전장은 지난 2월 복수노조가 설립된 이후 각 노조와 개별교섭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사측과 제2노조는 기존 ‘고용안정’부문에 포함돼 있던 ‘외주 또는 하도급’, ‘회사의 분할, 합병, 양도’ 조항을 삭제하고, 임시직 사원 채용과 근로조건 부분을 개정했다.

금속노조 소속 보쉬전장지회는 그간 회사와 단협을 통해 ‘임시직 사원의 최대 고용기간은 3개월 이내로 하며, 계속 고용하고자 할 때는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조항에 합의해 왔다. 하지만 과반수노조인 제2노조는 단협 체결 과정에서 이 문구를 삭제했다.


이에 따라 회사는 기간에 제한 없이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게 됐으며, 강제적 정규직 전환 역시 피해갈 수 있게 됐다. 보쉬전장지회 관계자는 “지금은 여론상 비정규직을 크게 확대하지는 못하겠지만, 이후 현장 재편이 공고해지면 외주화나 비정규직 사용이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발레오전장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제2노조와 회사는 단협을 통해 ‘용역 또는 하도급’, ‘법인체 분리 및 별도법인’, ‘회사의 분할, 합병, 양도’, ‘적정인원’ 등의 조항을 통째로 삭제했다.


앞서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는 회사와 생산부문 일부를 용역, 외주, 하도급으로 전환할 때 노조와 협의, 합의하기로 단협에 명시해 왔다. 하지만 이 조항이 삭제되면서, 회사는 자유롭게 외주, 하도급화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별도법인 설립 시에도 정규직 채용을 원칙으로 했던 조항이 삭제되면서, 비정규직 공장이 들어설 가능성도 높아졌다. 회사의 분할, 합병, 양도 등도 노조와의 합의 없이 진행할 수 있으며, 배치전환과 공장간 이동 역시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전임자 축소, 인사권 강화 등 집단적 노사관계 후퇴

제2노조와 회사가 단협을 통해 전임자 축소, 회사의 인사권 강화, 노조활동 시간 축소, 해고요건 완화 등 노조를 무력화하는 과정은 각 사업장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성기업 제2노조와 사측은 단협 체결을 통해 조합원의 라인이동 및 변경 등 근로조건 변화를 회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사측의 인사권을 강화했다. 또한 징계위원회에서 2/3이상의 의결로 해고를 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을 삭제하고 과반수만으로도 해고가 가능토록 했다.

아울러 조합원 교육, 상집회의, 대의원회의 등 노동조합 활동을 모두 반 이상 축소시켰다. 유성기업지회 관계자는 “개별 노사관계보다는 집단적 노사관계가 후퇴되고 있다”며 “인사권을 후퇴시키고, 전임자 축소와 조합활동 축소 등을 통해 노조 무력화를 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발레오전장은 전임자 축소, 조합활동시간 축소와 더불어 인사원칙, 부당노동행위 금지, 고용안정위원회 조항을 모두 삭제했다.

사측과 제2노조는 부당 인사에 대한 조합의 이의제기와 노사협의, 공개채용 등을 원칙으로 하는 인사원칙 조항을 삭제해 회사의 막강한 인사권을 보장했다. 또한 부당노동행위 판정 시 구제 절차 등을 포함한 부당노동행위 금지 조항을 삭제했다. 노사 각각 5인 동수로 구성돼 왔던 징계위원회 구성 조항 역시 삭제했다.

게다가 발레오전장의 경우, 타 사업장과는 달리 임금과 복리후생 역시 크게 후퇴했다. 제2노조와 사측은 임금과 근속수당, 직책수당, 상여금 등을 대폭 축소했다. 성과급 차등지급을 도입해 전 직원의 등급을 S~D까지 7등급으로 나눠, S등급은 2,400만원의 성과급을 지급한 반면 D등급은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D등급으로 분류될 경우 학자금 지원조차 되지 않는다. 복수노조 설립 이후 개별노사관계와 집단노사관계가 동시에 후퇴한 셈이다.

현재 민주노조가 무력화된 사업장에서는 회사가 기존노조와의 단협을 회피하거나 지연시키며 과반수를 차지한 제2노조와 현장 재편 흐름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반면 만도와 보쉬전장, 유성기업 등에서는 회사와 제2노조가 임금과 성과급 인상, 특별 격려금, 무쟁의 기금 등에 발 빠르게 합의하며 가시적인 성과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개별적 노사관계의 상향 조정 뒤에서 집단적 노사관계 후퇴와 고용유연화, 노조 무력화의 단초가 생성되며 ‘신 노사문화’의 이면이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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