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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17일 자해를 시도하는 최일배 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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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7일 투쟁선포식에서 활짝 웃는 최일배 위원장 |
그날을 잊지 못한다.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날. 겨울 햇살이 머리 위로 내려앉은 날. 2월 16일 과천에 있는 코오롱 본사 앞에서 진행된 코오롱정리해고자들의 투쟁선포식 날.
그 날 최일배 코오롱노조 위원장은 삭발을 하였다. 복직투쟁 361일이 되는 날이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뚝뚝 바닥에 떨어지던 순간 최일배 위원장의 꼭 다문 입과 예사롭지 못한 눈빛을 잊지 못한다.
칼을 꺼낸 순간
그리고 한 달 뒤인 3월 17일, 코오롱본사 1층 로비에서 농성을 하던 해고자들은 회장면담을 요구하며 17층 회장실로 올라가려고 했다. 하지만 용역경비가 가로막았다. 경찰들은 해고자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순간 최일배 위원장은 조끼에서 칼을 꺼내고 자신의 손목을 그으려고 했다.
합법적으로 노조위원장으로 당선된 지 8개월 만에 첫 면담 자리가 열린 것이다. 구미공장 고압송전탑 농성 13일째다.
면담을 마치고 내려온 최일배 위원장은 인터뷰에서 "동맥을 끊지 못한 게 아쉽다. 더 강하게 투쟁하지 않으면 돌파구가 열리지 않을 것 같다"고 하였다. 회사와 면담은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열흘 뒤인 3월 27일 코오롱해고자들은 새벽 5시 이웅렬 코오롱 회장 집을 찾아갔다. 회장과 이야기 하고 싶다던 해고자들을 경찰은 연행을 시도했고, 이에 맞서 최일배 위원장은 자신의 손목을 칼로 그었다. 유서에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죽음 밖에 없습니다.’라는 유서를 써 두었다.
그리고 꼬박 6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최일배 위원장은 지난 9월 15일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한달음에 달려가 그를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죽는 것 말고는 해 볼 것 다 해봤다”는 코오롱해고자들은 지쳐있었다. 구미공장에서는 노조위원장 보궐 선거가 시작되었다. 말이 선거지 선거관리위원회는 후보 신청조차 받지 않았다. 지난 10대 노조집행부 선거에서 회사에서 밀었으나 최일배 위원장한테 진 김홍렬 집행부를 조합원에게 찬반투표를 묻는 것이었다.
죽는 것 말고 다 해봤다
이상진 코오롱정리해고분쇄투쟁위 대표는 “선거의 기본적 절차가 무시되고, 조합원들은 강압에 의해 찬성표를 찍을 것을 강요받았다”며 선거의 무효를 주장하였다.
3보1배, 고압송전탑 농성, 단식농성, 크레인 농성, 회장집 진격투쟁, 한강다리 기습시위, 동아일보사 점거농성 등 그야말로 할 수 있는 투쟁을 완강히 진행했던 해고자들은 중노위 패소에 이어 노동조합마저 ‘부당선거’로 인해 잃어버리자 지칠 대로 지쳤다.
8월, 정리해고자의 투쟁은 주춤했다. 절차가 무시된 채 위원장이 된 노동조합 집행부는 ‘노사화합 선언’, ‘임금 백지 위임’ 등을 전개하며 더 이상 코오롱에 노사갈등은 없는 것처럼 언론에 선전을 하였다.
지쳤다...포기하자
9월 초, 정리해고자들은 다시 투쟁을 하겠다고 상경투쟁단을 꾸렸다. 하지만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패배감이 가슴 속에 깃들어 있었고, 얼굴에는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취재를 하였지만 차마 기사를 쓰지 못하였다. 아, 이렇게 끝나는 구나.
9월 27일, ‘코오롱 규탄 해고자 복직 촉구 투쟁 선포식’을 한다는 연락이 왔다. 이제는 길이 익숙해진 성북동 이웅렬 회장 집 입구인 성북초등학교 앞으로 갔다. 9월 4일 취재 때만 하더라도 기운이 쏙 빠진 것 같던 해고자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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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구미에서 코오롱 해고자를 비롯하여 한국합섬, 오리온전기 노동자들이 함께 올라와 성북동에서 집회를 가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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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뚝엔 힘, 얼굴엔 웃음 |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전제로 코오롱노조는 2004년 회사와 임금동결을 합의했다. 2005년에는 임금 15% 삭감을 받아들이며 정리해고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노조는 회사로부터 받았다. 그러나 회사는 노조와 합의를 무참히 짓밟고 2005년 2월 정리해고를 감행했다. 두 해를 넘긴 복직투쟁의 시작이었다.
2005년 10대 노조집행부 선거에서 회사가 내세운 김홍렬 후보에 맞서 해고자인 최일배 후보를 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에서 출마시켰다. 회사의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 조합원은 해고자를 노조위원장으로 선택했다.
중노위 심판에서도 밝혀졌듯이 해고자 선별의 기준도 제멋대로였다. 한 조합원은 “내 점수가 낮았는데, 나보다 점수가 높은 이가 해고가 되었다”며 해고자 선정의 부당함을 고발하기도 했다. 회사는 끝내 논쟁이 되었던 정리해고자 선별 기준을 밝히지 않았다. 심판을 지켜 본 사람들 누구나 정리해고자의 손이 올라가리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무참히 기각이었다.
중노위에서 버림받고, 노동조합마저 빼앗긴 정리해고자. 그들이 다시 뭉쳤다. 최일배 위원장은 이야기 한다.
다시 뭉쳤다
“끝장 투쟁을 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우리들의 마음이었다. 코오롱 자본이 끝장이라고 느껴야 하는데, 우리 스스로 자위하며 끝장투쟁을 하였다고 생각한 것이다. 코오롱정리해고자는 할 수 있는 투쟁은 다했다고 말하고 남들도 인정을 한다.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우리의 생각일 뿐이다.”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노동조합을 가지고 싸워왔다. 이제는 노조도 빼앗기고 정말 배곯아가며 싸워야 한다.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라고 한다.
“이제 1라운드가 끝났을 뿐이다. 그리고 1라운드에서는 우리가 졌다. 이걸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2라운드는 기댈 곳 없는 진짜 해고자가 되어 싸우는 것이다. 코오롱 자본을 압박하는 치밀한 계획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 더 이상 스스로만 만족하는 싸움, 무조건 머리 밀고 박는 싸움을 해서는 끝장을 낼 수 없다.”
우리끼리 끝장이라 생각했다
"이 정도 싸우면 끝나겠지 라고 우리 스스로 판단하고 싸웠다"며 최 위원장은 반성한다. 최일배 위원장의 반성은 2라운드의 승리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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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라운드는 졌다, 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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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라운드는 각오하라 |
“멀리 보고 싸울 겁니다. 더 이상 조합원의 생계를 무시하고, 가정에 어려움을 감수하라고 강요할 시간은 지났습니다. 생계와 투쟁을 병행하며 중장기 계획을 가지고 복직투쟁을 할 겁니다.”
위원장이 나오자 많은 해고자들은 이제 싸움을 접자고 제안을 했다. 더 이상 가정을 외면하기가 힘들다고 고백을 했다. 죽는 것 말고 안 해본 투쟁이 뭐냐고 따졌다.
생계도 공동 투쟁으로
“당연한 이야기죠. 생계를 무시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개인에게 생계의 문제를 맡길 경우 싸움은 끝나고 맙니다. 생계의 문제도 공동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을 겁니다. 흩어져 생계를 해결할 경우 싸움은 끝나기 때문이죠. 생계 해결도 함께 해결하는 투쟁의 일환이 될 겁니다.”
절차를 무시한 보궐선거에 대해서도 최 위원장은 낙관적이다. “현장이 무너진 게 아니에요. 조합원들이 때를 기다리는 거죠. 탄압이 극심한데 의리로 달려드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거예요. 제가 해고자 신분으로 위원장에 당선될 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때를 기다리고 준비하던 조합원들은 과감히 선택을 하며 나섰어요. 때가 되면 다시 일어서리라 믿습니다.”
코오롱자본 2라운드 각오해야
절차를 무시하며 후보등록 절차도 없이 위원장 선거를 서둘러 강행한 것도 "작년 선거처럼 회사가 내세운 후보가 당선되지 못할까봐 두려워한 것이다"고 최 위원장은 말을 한다.
구속 전에 늘 긴장된 얼굴만 보이던 최 위원장의 얼굴은 활짝 개어있다. 9월 27일 투쟁선포식은 1라운드의 패배를 인정하고 시작하는, 그래서 더욱 눈물겹고, 아름다운 순간이다.
“이제 위원장이 결단을 내려라, 투쟁을 접자고 하던 동료들이 다시 일어섰습니다. 언제 그런 생각을 가졌냐는 듯 힘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코오롱 자본, 2라운드는 조심해야할 겁니다.”
이제 최일배 위원장의 직함 앞에 안타깝지만 '전前'이라고 쓴다. 하지만 이것도 1라운드의 결과일 뿐이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