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민중재판 릴레이 인터뷰 2] 박래군 인권활동가

전범민중재판은 운동사에서 새로운 운동을 만들어가고 있다!
국가폭력체계의 역전을 꿈꾸며

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쉼 없이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지금도 인권활동을 하고 있다.

그 말은 오래 전부터 인권운동을 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아마 모르기는 몰라도 ‘인권’을 더불어 평생을 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인권’이라는 말에 가장 소외되어 있는 어떤 이들, 가장 보호받지 못하는 그 어떤 사람들과 더불어.

나보다 열두 살이 위인 박래군 형을 처음 만난 건 열두 해 전이었다. 그 때 래군이 형은 내게 인권활동가라는 것보다는 열사의 친 형이라는 기억이 더 앞섰다. 88년 “광주는 살아있다”고 외치고 몸에 불을 사른 박래전 열사의 둘째 형. 박래전은 내가 막 새내기가 되어 들어간 학교의 학과 선배였다. 그게 내가 박래군, 박래전을 안 인연이다. 벌써 내가 그 때 처음 보던 약간 무섭던 아저씨이던 래군 형의 나이가 되었다니. 나는 사실 형보다 시골에 있는 형들의 부모님과 더 가까이 지냈고, 내가 한참 못나게 굴던 (흔히 방황이라고 말할 만한) 어느 시절에는 옷 보따리만 챙겨 들고 두 노인네만 사는 시골집으로 무턱대고 찾아가기도 했다. 비록 반편짜리 일꾼밖에 못될 테지만 그래도 재워주고 밥만 주면 밭일을 배우며 모시고 지내고 싶다 하며 말이다.

내가 그렇게 시골집에서 지낼 때, 래군 형은 거의 빼먹지 않고 주말마다 시골에 내려왔다. (무엇보다 내가 래군 형에게 감동, 존경… 하여튼 형을 가장 멋지게 생각하는 게 이 부분이다. 형은 금요일 밤, 토요일 저녁까지 밤샘 회의를 하는 날에도 시골에 내려와 아버지께 구박을 받으면서 로터리를 쳤다. 물론 잠깐 쉬자 하고는 밭고랑에 누워 코를 골기도 일쑤였지만.) 그렇게 해서 나는 그 동안 래군 형을 주로 시골집의 밭에서 만나거나, 래전 형의 추모제 자리에서 만나곤 했다. 따로 형이 하는 활동의 공간이나 그 관련된 자리에서 만나는 일은 많지 않았다. 가끔 집회에서 만나는 일이 있기도 했지만, (아, 지난해부터는 반전 집회에서 그래도 꽤 자주 만나고 있는 편이네.) 형이 하는 활동에 대한 것들이야 형에게 듣는 것 보다는 차라리 어떤 뉴스 기사나 ‘사랑방’의 <쪽지>에서 만나는 게 더 많았을 거고

형은 자주 인터넷 신문에서 굵은 제목으로 된 기사에 이름이 떴다. 어느 겨울에는 혹한기 노숙 단식 투쟁을 한다는 기사가 있더니 또 며칠 뒤에는 위독해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고도 했고, 또 어느 해에는 에바다 장애인 시설에서 싸우고 있다고 하더니 그곳에서 원장 측 직원들에게 똥물을 뒤집어쓰기도 했다는 기사가 뜨기도 했다.

또 어느 해에는 국가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들어가 일을 한다는 소식이 보이기도 했고, 또 언제부터는 그것을 정리하고 다시 인권활동의 현장에서 이름을 보곤 했다. 그러니 내가 형의 활동에 대해 안다면 그런 기사가 보여주는 정보 정도를 겨우 아는 수준인 거다. 그런 기사를 본다 해도 그저 읽고 지나칠 다름이었다. 꼭 한 번, 혹한기 단식 노숙 투쟁으로 쓰러져서 실려 갔다는 속보기사를 봤을 때는 기사를 보자마자 당장 전철을 타고 당시 형이 실려 갔다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기사만 보아서는 당장 사람이 어떻게 될 것처럼 써 있기에, 아주 흥분을 하고 조마조마해하며 병원을 찾아간 거였다. 병원에 실려 간 형도 형이었지만, 어머니 얼굴이 눈앞에 어른 거렸다. 아들 하나를 그렇게 잃게 한 것도 모자라 둘째까지 또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을 하며 말이다.

그러니 나는 형이 해온 활동에 대해서는 잘 안다고 할 것도, 깊이 나누고 있다고 할 것도 거의 없다. 그저 신문 기사 같은 걸로만 치면 내가 잘 아는 이름이 나오니까 영 모르는 이들보다야 조금은 더 눈을 기울여 기사를 보는 정도였을까. 그랬다 해도 역시 나는 형의 활동에 대해서 자세하게는 잘 몰랐다. 어떤 때는 나름으로 내가 꽤 잘 아는 어떤 사람에 대해 얘기를 하려는데, 내가 그이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고 인정해야 한다는 게 참 내키지가 않는다. 그래도 처음 몇 번은 자꾸만 ‘내가 아는’ 박래군을 묘사하면서 이 글의 시작을 풀어가려 해 보았는데, 그렇게 해서는 오히려 인권활동가로서 갖는 형의 면모를 제대로 보이기 어렵다는 걸 알았다. 차라리 깨끗이 인정해야지, 나는 형의 활동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다시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을 대하듯 관련 자료들을 찾아 살폈고, 인터뷰를 준비했다. 그리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국민연대> 정책실장으로 일을 하는, 인권운동사랑방의 오래된 상임활동가 박래군 씨를 만났다. 하지만 역시 얼굴을 다시 맞대고 있으려니까 자꾸 장난이 툭툭 튀어나오고, 쑥스럽기도 짝이 없다. 그래서 내가 그나마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편안한 쪽으로 가게 하고 싶어서 형에게 제안했다. 형, 나도 뭐 선생님이니 뭐니 하고 안 하고 그냥 형, 형 할 테니까 형도 그냥 반말로 얘기해주고 그래요. 어휴, 이랬어요, 저랬어요 한다고 해 봐, 어색해서 하고 싶은 말 다 못하게 되고 그런다니까요.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내는 팩스 신문 <인권하루소식>과 그 밖의 여러 단체에서 내는 소식지들.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의 전사와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 재발족의 배경

시작할게요, 시간도 없잖아요, 그쵸? 쑥스러워서 말을 못하겠네. 하여튼 지난번에 어디더라, 이강헌 씨하고 대담 식으로 나눈 글을 저는 되게 인상 깊게 봤거든요. (아는 사람 나온다고 그런 거지?) 그쵸, 저 형 어디에 나오면 좋아하잖아요. (웃음) 막 자랑하고, 나 저 사람하고 친하다 그러면서 (웃음). 그런데 저는 그 대담에서 이 말이 정말 인상에 남았던 게, 어떻게 보면 별 말 아닌데, 되게 절실함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요. 형이 이런 말을 했거든요, ‘16년 째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데 인권위도 만들고, 부패방지법도 만들고, 이것저것 다 해봤지만 국가보안법만 글자 하나 못 바꿨다. 이번에는 꼭 폐지할 것이다.’ 이 짧고 단호한 한 마디에서 얼마나 결연한 의지가 숨어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절박한 마음인지 하는 게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제 형을 만나러 오면서 가장 먼저 나누고 싶은 것이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과 관련한 거고 해서 나름대로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와 관련한 내용들을 찾아봤거든요. 이 국민연대는 8월에 재발족을 한 거더라고요, 그러면 이전 시기에 활동을 하다가 어느 때부터 끊기고 그런 과정이 있었나 봐요? 그래서 그런 과정에 대해서 얘기 좀 해 주시고요, 그리고 1차 활동이 왜 멈췄는지, 멈추게 됐던 배경이나 그 까닭, 그리고 당시의 활동은 어떤 성과나 한계가 있었는지.


박>“거 아까 맨 처음에 그 16년 째 뭐 하면서 뭐 뭣도 만들고, 뭣도 만들고 이랬다 그러는 거는 맥락이 어떻게 되는 거냐면 이제, 혹한기 단식 농성을 할 때 3대 입법, 마지막에 이제 3대 입법으로 모아졌거든, 그런데 이제 그 때 3대 입법이 국가인권위원회법, 부패방지법, 그리고 국가보안법 페지, 이 세 개 가지고 걸었는데 그 중에서 국가인권위법 만들어졌고, 부패방지법도 만들었는데 국가보안법은 아예 한 글자도 못 건들었다 이런 얘기, 맥락은 이렇게 되는 건데…….”

그 때, 형 인터넷 뉴스에 나온 거 보고… 그 때가 사당 의원에 입원했을 때, 그 때 아니에요? (어, 어.) 그래갖고 보자마자 찾아갔잖아. 생각 안 나죠? (어, 어. 근데 니가 그 때 왜 왔냐?) 아유, 그 때야 사람 어떻게 되는 줄 알고 찾아갔지… 그런데 국민연대는요?

박>“아, 그 국민연대는 이제 98년도에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국가보안법에 대한 논의들이 진행됐었고, 그래서 98년도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움직임들이 그런 있었거든. 그래서 ‘국가보안법 철폐 국민연대’가 있었고, ‘국가보안법 반대 국민연대’가 있었고, 두 가지 조직이 있었고, 그것이 1999년도에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로 모아진 상황이었는데 그 때 2000년까지 정치권에서 국가보안법 관련한 논의들이 진행이 되다가 중단이 돼버렸어. 그래서 중단이 되면서 어떻게 국가보안법 문제를 제기하려고 해도 제기할 수 없는 이런 조건들이 있었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는 그냥 일상적인 어떤 문제의식을 놓지 않고 간다 하는 정도로 해서 본격적인 활동 이런 것보다는 이제 틀만 유지해가는 이런 식으로 있다가 올해 들어와서 다시 재발족, 국가보안법 폐지 국면을 맞아서 재발족 하는 상황이 있었던 거지.”

그럼 이전에는 뭐랄까 주도적으로 운동을 이끌어 갔다기 보다 어느 정도는 정치권 논의에 따라서……

박>“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이 이게 모든 사람들이 다 국가보안법 폐지, 아, 모든 사람이 다는 아니겠지. 수구들이야 물론 아니겠지. 뭐 다는 아니고,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서 운동하는 사람치고 이게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부정하는 사람 없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력군이 없는 싸움이라고. 노동운동 같은 경우 노동자들이 주력군이고 그런데, 이건 사활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직접적인 자기 이해를 가진 사람들이 없는 싸움이기 때문에, 이런 남북 관계가 진전한다던지, 그래서 뭐 2000년도에 615 선언 나온다던지, 뭐 그 때도 별로 못했지, 그래도 하여튼 남북 관계 진전이나 새롭게 정권이 바뀌면서 뭔가 개혁적인 어떤 분위기가 인다던지 할 때 이렇게 이제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에 쫙 모여지지만 다른 때에는 힘이 실리기 어려운 이런 점들이 있는 거지. 그래서 그 때는 뭐 피해자들 중심으로 문제제기하고 석방투쟁하고 아니면 다른 여건들을 만드는 싸움들을 하고, 이렇게 하는 거라고 볼 수 있는 거겠지.”

아, 이렇게 들으니까 정리가 쫙 되네.

박>“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의 역사를 보면은 뭐 80년대부터 해왔다고 그러지만, 87년 이후로 놓고 왔을 때 90년대 초반에 국가보안법 철폐 운동본부 ‘국보철’이라고 그래가지고 ‘국가보안법 철폐 운동본부’가 만들어, 아 범국민투쟁본부가 만들어졌어. 그니까 ‘국보철 범투본’이라는 게 만들어졌고, 그 때도 한 번 하다가, 그 때 남북합의서가 만들어지고 이러던 시기에 당분간 모였다가 다시 또 가라앉고, 90년대 중반에 한 번 또 하다가 가라앉고, 뭐 이런 진폭이 굉장히 심한 운동이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지속적으로 가지 못하는 운동이었던, 그게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이었고, 근데 그게 이제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건 아니고, 국가보안법을 없애지는 못했지만 국가보안법의 문제를 확산시켜내는 역할을 굉장히 많이 했고, 국가보안법의 위력 자체를 약화시키는, 무력화 시켜가는 이런 역할들을 해왔던 거지. 그것조차 없었으면 요즘에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사람들 같은 경우 옛날 같으면 실형으로 뭐 몇 년씩 살아야 했을 거거든. 그거가 이제 1심에서 집행유예로 나온다는 자체가 국가보안법이 그만큼 무력화되었다는 거, 또 구속자 수가 확 줄어들고 뭐 이런 것들로 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이 그런 게 성과가 있었다고 봐야지.”

국가보안법 폐지 도보순례.

각계각층에서 꿈틀대는 운동이 되어야

지금 8월에 재발족한 ‘국민연대’는 이전 시기 운동에 견줄 때 전 시기 활동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려고 하고 있으며 어떤 방식이나 내용에 방점을 두고서 준비하고 기획하고 있는지.

박>“올 해 총선하기 전에 올해 분명 국가보안법 문제가 총선 이후에 대두될 것이다 이렇게 예상을 하고 준비를 했단 말이야. 그래서 사실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 말고 별도로 이런 전략팀 비슷하게 만들어서 준비를 했어. 그런데 거기서 우리가 예전의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을 반성하면 그런 폐지 운동이 굉장히 상투적이야. 그래서 뭐 기자회견하고, 정치권 로비하고, 뭐 집회 한 번 박고, 그러고선 할 거 없는, 뭐 이런 것들이 반복되는 이런 거였고, 또 이게 연대기구로 만들어지면 연대기구로 몰리기만 하고 다양하게 각계각층에서 꿈틀꿈틀대서 움직이는 이런 운동이 안 되더라고. 그래서 이제 그런 거 보다는, 정치적 역할에서 대표성을 갖고 있는 거는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로 모아지겠지만 각계각층이 각자 자신들의 특성에 맞게, 자기의 활동 내용에 맞게 발화된, 특성화된 어떤 이런 운동들이 전개되야 된다, 그래서 그런 게 모여지고 흩어지고 이런 것들이 될 수 있는 운동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 그래서 애초에 6월에 재발족 선언을 하자고 했던 거를 국가보안법 폐지하라는 밖으로 선언만 내고 두 달 뒤에, 8월 달에 재발족 선언을 하게 되고 그런 거지. 그런데 이게 생각만큼 잘 안 돼. (잘 안 돼요?) 잘 안 되고,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이라고 하는 것에 모여드는 사람들이 기존에 해왔던 단체들 중심으로 모여드는 거고, 예전에 했던 방식으로 뭐 기자회견하고, 뭐 성명서 내고, 정치권 로비하고, 뭐 대중투쟁하고 이렇게 되는 정도… 는 거의 외형적으로 비슷하다,

그런데 올 해에는 달라진 거는 특성화된 이런 부분들에서 자기에 맞는 이런 것들을 계발해 내고 있다. 가령 전교조의 이번에 골든벨 행사, ‘도전 골든벨 행사’ 이런 게 나온다던지, 문화계가 문화 전시회 쭉 하면서 문화 쪽으로 한다던지, 뭐 학계는 학계 나름에 맞는 어떤 심포지움 같은 걸 준비한다던지, 그걸 여태까지 법률적인 문제로만 갖고 얘기했지만 학계에서는 인문 사회적으로, 철학적으로 접근해보자, 여성 입장에서는 어떠냐, 뭐 이론적으로 이렇게 만들어가는 것들은 완전히 이렇게 우리가 대세를 장악하는 것은 못하고 있지만 상당히 바람직한 운동의 모습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

국보법 이야기가 올 해 막 물 위로 떠오를 때, 처음에는 뭐 총선 여파도 그랬지만 한나라당 내에서도 개정이나 어떤 어떤 조항 삭제 얘기도 있고, 조선일보에서도 그런 얘기가 있고 해서 야, 정말 시대가 바뀌긴 바뀌었나 보다, 의식이 바뀌기는 바뀐 건가 싶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정말 한참 순진했던 건지, 뭔가 심각한 상황 변화의 계기가 있어서 그런 건지 막상 논쟁이 본격적으로 일자마자 국보법을 지키고야 말겠다는 세력들의 결집이 놀라울 정도였잖아요? 그냥 고집스럽게 뻣뻣이 구는 정도가 아니라 무서울 정도로 행동에까지 나서고 있기도 하고요. 이런 모습을 선생님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박>“그런데 갑자기 왜 선생님이야? (웃음)”

(당황해서) 나도 헷갈렸어. (웃음) 여기 질문지에다가 선생님이라고 내가 썼거든. (웃음)

박>“총선 직후 아무래도 저거가, 의석 과반수를 열우당이 먹고 뭐 이러다 보니까 그 영향이 이제 컸던 거 같애. 그런데 조선일보 같은 경우는 자체 여론조사, 거기서 위탁해 갖고 어디 연구소에서 2년에 한 번씩 ‘국민 이념 성향 조사’ 이런 걸 하거든. 거기에서 굉장히 높게 나왔어.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의견이 39%인가 이렇게 나왔다고, 굉장히 그 쪽에서 충격을 먹은 거 같애. (개정도 아니고 폐지였어요?) 어, 폐지가. 굉장히 높은 건데, 요즘에 여론 조사를 하면 그 정도 나오거든, 완전 폐지 더하기 형법 보완 요런 정도가 이제 40% 정도 돼. 그래서 최소 30%가 완전 폐지, 또 한 30%가 우리 사회에서, 사수 이런 입장을 가진 거고,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개정에서부터 다른 어떤 대체 입법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있는 거지. 그래서 이제 총선 직후의 개혁 분위기가 살고 그러면서 조선일보도 애초부터 개정이라고 잡아놨다고, 조선일보가 개정이라고 잡아논 거는 어차피 이거는 손 안 대고 갈 수는 없다 라고 하는 것을 인정을 하고 그런 속에서 최소한의 개정, 문제가 되는 최소한의 개정, 요렇게 최소 폭의 개정을 전제해 놓은 것으로 해서 걔들은 굉장히 빨리 움직인 거지. 그래서 거기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도 지금 수구보수, 수구꼴통이라고 하는, 수구 세력이라고 하는 요런 것으로부터 탈피해 보고, 그래서 자신이 제기했던 게 건전 보수 요런 얘기를 했었던 거잖아?

그런데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남북관계에 대한, 여태까지는 한나라당은 남북관계에 반대만,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계속 해 왔고, 여기서 이게 만약 박근혜 대표가 대통령을 노린다 라고 한다면 남북문제를 풀지 않으면 안 될 거 아니야. 그러려면 그런 걸 탈피한다는 의미에서 국가보안법의 대폭적인 개정, 그래서 이제 북한을 적국으로 규정하고 있는 2조 정부참칭 조항을 삭제할 수 있다 까지 나갔던 거지. 근데 이제 이후에 열린우리당이나 노무현 정부가 제대로 못해왔고, 개혁분위기를 상승시켜가는 것들이 아니라 자중지란에 빠져들면서 그런 분위기가 흩어져 버리고 그러다 보니 수구 쪽에서 다시 힘을 결집해서 대오를 유지할 수 있는 상황에 있는 이런 게 아닌가 싶고, 그러다 보니까 한나라당에서는 박근혜 지도부 이쪽이 다시 수구 쪽 이 쪽에 발목 잡혀 있는 요런 상황에 있는 거지, 이제.”

저는 솔직히 국보법 폐지 반대, 혹은 국보법 사수를 외치는 사람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보지 못했거든요. 이번에 10만이 모였다는 집회 기사를 보면서 이걸 어떻게 봐야 하나 한 편으로는 어이가 없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무섭기까지 하고 그랬는데요. 사실 저번에 탄핵 때에도 탄핵 찬성 집회를 볼 때는, 이렇게 말해도 되나 모르겠지만 저는 솔직히 그걸 보면서 우습기도 했거든요. 물론 그 때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모인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주장이나 논리 자체가 너무 황당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요즘 열리는 몇 차례 집회를 보면서는 그 느낌이 아주 달랐어요. 저는 나름대로 그 분들한테서도 어떤 진정성 같은 걸 느꼈거든요. 물론 거기에는 뭐 동원된 사람들부터 해서, 무슨 자기 기득권 때문에 나온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무 것도 지킬 것 없는 노인네들도 나와서 국보법이 폐지되면 세상이 어떻게 될 거라는 공포나 불안, 이걸 정말 자기 가슴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모습을 봤을 때, 그런 분들을 함부로 ‘수구꼴통 노인네’라 할 것이 아니라 그 분들도 우리와 똑같은 냉전의 피해자, 국보법의 피해자다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평생을 독재 정권 아래에서 정권 유지를 위한 거짓 교육과 거짓 사회 환경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가 뼛속까지 스며든 결과로 그 공포와 불안을 느끼는 거라면요. 어쨌든 앞으로 국보법 논쟁을 하는 동안 한 동안은 꽤 커다란 충돌이 이어질 건데요, 적어도 언제까지나 평행선을 가면서 그쪽 사람들을 쳐 내며 가거나 싸워 이기며 갈 것이 아니라 끌어안고 품어 안으며 가야 한다고 한다면, 국보법 폐지를 바라는 이들이 그이들을 대할 때 어떤 자세와 논리를 갖추어야 좋을지 이야기해 주세요.

박>“국가보안법 문제는 이게 참, 아무리 조심해도 이렇게 되는 거 같애. 이게 자기의 그 정체성을 드러내는 걸, 이게 국가보안법에 대한 태도를 묻는 거가 자기가 어떤 입장이다 하는 거를 강요받는 어떤 이런 상황으로 가고 있어. 대결 국면을 자꾸 만들어가는 거야. 그래서 존속 또는 폐지 이런 식으로 나눠지게 돼 있고, 그거는 자기는 어떤 이념에 서 있다 뭐 이렇게 되는 식으로 이게 참 이분법적인 어떤 사고가 가능한 이게 국가보안법이야. 그래서 이제 국회의원들하고 만나면서 보면은 분명히 자기 생각이 있는데 얘기를 안 해. 그렇게 됐을 경우에, 자기가 이제 만약에 폐지 입장인데 그거를 얘기했다가는, 특히 한나라당 의원인 같은 경우는 그거 갖다가 자기가 또 공격을 받을 거니까 그걸 두려워하는 거고, 그러니까 바깥으로는 적당히 개정이라고 얘기를 하는 거고, 또 올해 와서 국회의원들을 만나면서 희한한 건 뭐냐 하면 사실은 자기가 존속 입장이야, 그런데 존속 입장이라고 했다가는, 또 수구에서… 지금은 수구 더 작아졌잖아, 한나라당 안에서도… 거기에서나 지지를 받지, 그러니까 자시 본색을 드러내지 못하고 자기가 개정이라고 얘기를 하는 이런 일들이 나오는 거라고. 국민들 속에서도 또 이렇게 되는 거라고. 대부분 사람들은 뭐 국가보안법이 사실 뭔지도 모르고. 이거 없어도 뭐 불편할 게 없는 이런 사람들인 거야. 근데 이제 극단의 어떤 양 쪽이 문제인 거고, 한 쪽의 극단 쪽이 이제 극우 쪽에 볼모가 잡혀 있는 이런 거지. 그래서 한기총 같은 곳에 볼모가 잡혀 있고, 아니면 극우 집단들에 의해서 볼모가 잡혀 있고 그런 건데 그게 이제 바로 국가보안법이 낳은 우리 사회의 어떤 그런, 참, 뭐랄까, 앞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이런 지형들인 거고, 또 앞으로 우리가 또 품어서 또, 국가보안법 없어도 아무 불안이 없다는 걸 보여줘야 하는 그런 과제인 거지.

근데 그게 뭐 한 순간에 우리가 아무리 주장한다고 해봤자 안되는 거라서, 이번에 이제 10만 명 집회할 때 그럼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방침을 어떻게 정했냐면은 무대응으로 정했다고, 무대응. 어떤 저기로 하던 간에 그거는 뭐 언론이나 아니면 기독교 쪽에서 자체적으로 비판하게 하고 대응하지는 말자. 왜냐하면 대결하는 순간, 어떻게든 대결하는 순간 그게 이제 맞대결 형상으로 벌어지게 되고, 그러다보면 저쪽이 노리는 이런 것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예 대응하지 말자고 그래 갖고, 속은 상하고 화는 나지만 10월 4일 날 그렇게 막 해봤지만, 근데 그게 그렇게 오래 못가잖아? 내일 모레 14일 날, 아 오늘이 14일인가? (내일 모레요.) 14일 날 그 쪽에서 하는 대구 집회가 얼마나 모아 낼 수 있으냐가 관건이고. 이제 지난 번 7일 날 집회는 실패했고, (부산에서 한 거요?) 어, 부산에서 3천 5백 명밖에 안 모였거든. 주최 측에서는 한 3만 명 정도 모일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3천 5백 명 밖에 안 모여 갖고 그 쪽 집회 준비한 신혜식이라든지 그런 사람들이 상당히 초조해했다고 그러더라고. 나는 뭐 그게 그렇게, 사실 여론에 크게 여론에 영향을 못준다, 그것 자체로는, 그런데 요게 정치적 힘으로 전화시켜가는 요런 것들이 이제 무서운 거지. 그

러니까 한나라당이 극우를 눈치를 보게 되고, 또 열우당이 또 그런 걸 의식하게 되고 이런 것들이 무서운 건데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거 같애. 그건 그 사람들 나름대로 그 사람들의 자유고, 대신 이제 우리는 좀 더 자발적인 사람들이 정말 국가보안법이 뭔지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고, 그런 거에 기초해서 해 볼 수 있는, 열어 놓은 문화제를 한 번 가보자 이런 정도로 해 놓고 있는 거지. 그니까 대중 투쟁이 우리는 문화제 하나 있는 거고, 10월 23일, 그리고 11월 초에 한 번 대중 집회 크게 계획하고 있어. 하나는 솔직히 이제 돈이 없고, 우리는 (웃음) 지금 그 한기총 지금, 거기 큰 교회에서 다 동원한 거거든, 거 돈도 없고 또 우리가 순복음교회만큼 대중 동원력이 없단 말이야. (웃음)"

8월 17일 서울 여의도에서 있던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집회를 마친 뒤.

그들에게 국가보안법이란 하나의 ’체제’와 같은 것

형, 좀 전에 말한 것처럼 전에 어디에서도 그런 말을 했더라고요. ‘솔직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가보안법이 뭔지 잘 모른다. 국회의원 중에서도 국가보안법 다 읽어본 사람들 많지 않다’. 근데 그 말을 보니까 나도 한 번도 안 읽어 본 거 같애. 그래서 거기 국민연대 홈페이지에서 전문 분석해 놓은 걸 찾아봤는데 이거 몇 개 되지도 않는 조항 가지고 한국 사회를 틀어쥐고 있었구나. 요 몇 줄 요거 때문에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잡히고 죽고 탄압받고 이렇게 살았다는 게 정말 끔찍하기도 하고. …… 그리고 형이 6월에 쓴 칼럼 중에 이런 문장이 있었어요.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은 세상을 바꾸는 운동이다. 그래서 이제는 국가보안법이 없는 세상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대목을 읽으니까 정말 그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너무나 당연한 데도 그게 마치 불가능한 거라고 믿게 만드는 것에 대해서 그게 왜 가능한가를 미리 경험하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상상력인 거고, 그 상상력은 구체적일 수록 설득력을 갖게 될 텐데요. 아, 근데 그 상상이 다른 거죠. 그 10만명은 너무나도 암울하게 상상을 하는 거고, 우리 사회가 붉은 사회가 되는 거라고 상상을 하는 거고, 그래서 그니까 국가보안법이 없는 세상을 형이 정말 상상해서 보여준다면 뭐라고… 그니까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삶에서도 구체적으로 달라지는 게 있을까요? 국가보안법이 없어졌을 때, 일상으로.

박>“나도 그런 생각을 하면, 국가보안법이 없어진 세상에 뭐가 달라질까? 크게 달라질 게 없는 거라, 근데 대신 예전에 걸릴 수 있는 게 안 걸리는 정도가 된다는 거, 이 정도인 거지, 사실은, 국가보안법이 없다고 한다면. 저 쪽 사람들은 이제 국가보안법이 없어지면 굉장히 달라진 세상, 완전히 좌파, 빨갱이들이 판을 치는 세상, 이렇게 될 거라고 하는데 그게 아니다, 그 자체로 평온한 일상이 지속될 거다 누가 이제 그렇게 얘기를 하잖아? 그 때 80년도 그 때 전두환이 들어서가지고, 요거 별로 좋은 예가 아니지만, 그거 왜 뭐지? 통행금지, 야간 통행금지 그거 없앤다고 할 때, 뭔가 야간 통행금지를 없애면 세상이 막 범죄가 판을 치고 막 불안할 거 같은데 막상 해 놓고 나니까 그렇지 않다는 거야.

폐지를 했을 때 맨 처음에 젊은 애들, 젊은 사람들이 야간에 나와서 막 돌아다니고 해서 뭐 시끄러웠다 이런 정도였지 금방 잠잠해졌거든. 이제 곧 익숙해지니까. 맨 처음에 이제 그렇게 국가보안법이 폐지가 된다면 처음에는 이제 사람들이, 그 극우 쪽에 있는 사람들 같은 경우는 정신적 공황에 빠질 거라고 생각해. 자기를 지키는 최후 수단이라고 봤던 거고, 자기의 어떤 신념이고 또 이런 거였는데 그게 없어지니까 굉장히 정신적인 공황에 시달릴 거 같애. 그렇지만 얼마 한 달 두 달 지났는데도 역시 빨갱이 세상이 안 되고, 적화가 안 되고 이런 것들을 보면서 국가보안법이 없어도 별 문제가 없다 하는 걸 인식하는 게 되게 중요할 것 같애. 그래서 나도 우리 쪽 같은 경우 보다는 그 쪽에 변화가 더 클 거다, 그런 게 사실은 이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유민주주의가 그 때부터 시작이 되는 거지. 그래서 이제 국가보안법이 없어지면 저쪽에서 선동을 그렇게 해서 그러는 건데, 국가보안법이 없어지면 좌파 세상이 되는 게 아니라, 적화 세상이 되는 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뭐 진보 진영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자유민주주의도 부정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거 아니야? 근데 그 자유민주주의가 비로소 시작이 된다는 거라고. 자유민주주의의 기초는 사상이 다른 부분들을 서로 인정하고, 그걸 허용하고 그걸 표현할 수 있게 하고 하는 게 자유민주주의인데 우린 그걸 갖다가 힘으로, 폭력으로 눌러왔던, 공포로 눌러왔던 이런 거였다는 거지. 그런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엷어진 상태에서 법으로 강제하고 있는 외피 자체를 깨는 이런 거라고 봐야 되는 거겠지.”

근데 자유민주주의라는 것 자체를 그 쪽 사람들은 공산주의가 없는 게 자유민주주의다 (웃음) 이러잖아요. 형이 말하는 거는 상대의 사상을 존중할 수 있고…….

박>“어, 그래서 이제 우리가 민주주의 논쟁을 해봐야 되는데, 자유민주주의가 뭐냐, 도대체 당신들이 얘기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게 뭐냐 라고 논쟁을 해봐야 되거든. 그래서 당신들이 얘기하는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는 게, 사실은 그 사람들의 이론적 근거가 될 수 있는 게 뻔해. ‘전투적 민주주의’, ‘방어적 민주주의’ 이런 거거든 그게. 독일에서 이제 2차대전 직후에 나찌 문제도 있고 뭐, 동독 문제도 있고 해서 그 때 잠시 써 먹었던 개념이 ‘전투적 민주주의’, ‘방어적 민주주의’ 그래서 ‘자유의 적에 대해서 자유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이런 아주 몰상식한 논리인데 이런 것을 아마 갖고 들고나올 거라고. 그러면서 이제 북한이 어떤 뭐 이러쿵 저렁쿵 하면서, 북한이 변화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항상 입에 달고 다니니까, 그럴 건데 그게 분명 자유민주주의의 어떤 그런 건 아니다. 그런 ‘전투적 민주주의’, ‘방어적 민주주의’ 잘못된 어떤 자유민주주의의 개념이 우리 어떤 국가기관이나 수구세력들에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는 거지.

특히 대법원이나 헌재가 그렇게 판결할 수 있었던 거에는 자유민주주의 이콜 방어적 민주주의, 전투적 민주주의라고 등치시키는 요런 인식의 토대 위에 있던 것이라서 그것 자체가 수정되어야 하는 그런 거지. 하면은… 이제 민주주의와 인권의 관계, 한 사람이라도 인권을 탄압받는 이런 사람들이 있는 거를 두고 그걸 과연 제대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겠느냐, 라고 하는 거를 우리는 제기를 할 수 있을 거고, 당신들도 그러면 그런 점에 대해서 인권을 무시하고, 인권보다도 국가 안보가 우선이다 이런 걸 주장하는 건데, 그럼 그걸 민주주의라고 당신들은 생각하느냐 라고 우리가 다시 물어봐야지. 그런 속에서 이제 우리가 생각할 때 그런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 자체가 깊어지고, 넓어지고 그래야 되지 않을까……. 그런데 이제 문제는, 사실은 이제 거기(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집회)에 동원되는, 우리가 사람들이 가서 물어보고 그러거든 일부러, 여기 하루 소식 사람들도 나가서 물어보고. 거기 온 아줌마들, 주로 아줌마들 이런 분들한테 물어보고 그러는데. 왜 왔는지 일단 모르고, 국가보안법이 뭔지 모르고 이러고 와. (왜 왔는지도?) 목사님이 가자고 하니까 가는 거, 이게 굉장히 큰 거야. 그리고 이제 나는 보면, 이게 국가보안법은 사실 진보주의자들이라거나 이런 사람들이 먼저 나서서 폐지하라고 그래서는 안 되는 거거든. 우리 사회에 있는 보수주의자들이 사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보수주의자들이 우리 사회의 어떤 지켜야할 가치로서 민주주의 이런 거, 이런 것들이 있고, 그런 질서가 있으니까 근데 그런 것들을 억압해왔고, 그것들이 발현되지 못하게 해온 게 국가보안법이니까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자기들이 나서서 사실은 이걸 만들어야 되거든. 그러니까 박근혜나 이런 사람들이 진짜 건전한 보수가 돼야겠다고 한다면 국가보안법을 먼저 자기 손으로 없애야 되는 거야. 그러면서 어떤 자기의 정체성을 확립을 하면서 ‘이게 진정한 보수다’ 라고 해줘야 되는 건데 그러질 못하더라고. 사실 우리나라 보수들한테는 저 국가보안법이 있음으로 해서 자기들의 지위가 보장되고 있었고, 출세가 될 수 있었고, 마음 놓고 부정부패를 저지를 수 있었던 거거든. 그런 거를 한꺼번에 이렇게 없앤다고 하니까 자기들은 사활적인 문제거든.

조갑제가 이걸 아주 정확하게 얘기를 했던 게, <<미래 한국>>이라고 하는, 저 김상철 변호사, 그 사람도 민주 진영에서 깝작깝작 대다가 87년 이후에 전향한 사람인데, 그 변호사가 내는 신문이 있어. <<미래 한국>>이라고 하는 거에 거기 컬럼, 10월 4일자 거기 집회 현장에 뿌려놓은 걸 보면은, 조갑제가 정확하게 얘기를 한다고. ‘예전에는 세금만 내면 우리를 지켜줬다, 정권이’ 그런데 지금은 다 먹혔단 말이야. 경찰도 우리 편이 아니고, 군대도 우리 편이 아니고, 다 아니고, 그래서 이제는 ‘행동하는 애국 세력’이 나서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좀 자기의 어떤 그런 생존권을 자기들 스스로 지켜야 된다고 이런 식으로 주장을 하는 거거든. 이 생존권적인 문제로 자기들은 봐. 자기의 어떤 기득권의 이런 게 부서지고, 부정되는 것에 대해서 참을 수가 없는 거지. 자기들은 이 사회의 주체라고 보는 거고, 아마 아직도 많이 그럴 수 있겠지, 자기를 주체라고 보는 거고, 주체인 자기들이 자기들을 위협하는 이런 세력들을 적대시 하고 이렇게 가는… 그래서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지켜야 된다 이런 식으로 논리를 만들어 가면서.”

"얼마 한 달 두 달 지났는데도 역시 빨갱이 세상이 안 되고, 적화가 안 되고 이런 것들을 보면서 국가보안법이 없어도 별 문제가 없다 하는 걸 인식하는 게 되게 중요할 것 같애. 그래서 나도 우리 쪽 같은 경우 보다는 그 쪽에 변화가 더 클 거다, 그런 게 사실은 이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유민주주의가 그 때부터 시작이 되는 거지."

국가보안법 철폐 운동을 하면서 동시에 이라크 철군 운동을 해야 하는 상황

그럼요, 이제 앞으로 국보법 논쟁이 앞으로 계속 쟁점이 되고 그러면서, 한 가지 몰라요… 제가 기우인지는 모르겠는데, 국보법이 쟁점이 되면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여러 가지 영역의 이해와 요구들이 또 국보법 폐지와 찬성이라는 어떤 이분법 안에 가두어지는 게 아닌가. 이를 테면 폐지하면 또 친노, 찬성하면 또 한나라당 내지는 뭐 이렇게, 그래서 예전에 탄핵 때도 탄핵 반대하면 친노, 찬성하면 뭐 한나라당 이렇게 된 것처럼 해서 그 탄핵 정국 속에서도 뭐 노동자들 계속 탄압받는 문제라거나 파병 문제도 그렇고 그 안에서 희석화가 되거나 아니면 정권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되는, 그저 탄핵 반대냐 찬성이냐 하는 문제로 여타의 모든 문제가 수렴되는 모습이 없지 않았는데 저는 국보법 이 시기에도 좀 그런 면이 없지 않지 않나… 그럼 이 부분들은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박>“아니 근데 저, 분명 그런 게 있거든. 노무현이 그 때 언제야, 9월 5일 날인가? MBC 2580에 나와서 이제 국가보안법 폐지 이거를 얘기하면서 저 열우당이, 혼란스럽던 열우당이 폐지로 당론이 모아지고 그랬던… 그 전에 이제 헌재에서 맞고, 헌재에서 한 번 때리고, 대법원이 때리고 이래서 막 몰리고 있었던 이게 노무현이 이렇게 폐지 딱 얘기 하면서 이거를 어느 정도 국면을 넘게 해 준 측면으로 긍정성은 있이. 그런데 이게 지나놓고 보면 노무현이 그렇게 함으로써 이게 줄 세우기를 한 거거든. 폐지 쪽이냐 아니면 존속이냐, 이 쪽에 줄 서라 라고 해 놓은 이 측면들이 있고, 여기에서 참 억울하게도 우리 운동 세력들은 어쩔 수 없이 줄서는, 폐지를 주장하는 게 사실은 노무현 정부를 지지하기 때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정치 지형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으니까. 그래서 이걸 우리 힘으로 이렇게 우리가 딱 주도권을 갖고 갈 수 있는 거라면 얼마나 좋겠냐 이거야. 만약에 이제 예를 들자면 민노당이 뭐 의석 과반수를 낸 상태에서 민노당이 우리 의견을 무시하지 못하고 이런 상황이면 얼마나 좋겠어?

그러나 이제 그러지 못한 게 이제 현실이고, 그래서 일부 이런 개혁적인 과제 이런 거 같은 것은 어쩔 수 없이 노무현 정부 내지는 열우당하고 협력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 그 외 부분에서는 또 다시 비판해서 들어가야 하는 어떤 아주 모순적이기도 하고 굉장히 복잡하기도 한 어떤 이런 전선 상황이 그려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도리어 이제 저쪽에 극우들이 얘기하는 것 같이 노무현 정부나 열우당이 좌파였으면 얼마나 좋았겠냐고. 그랬으면 이렇게 안 할 거 아니야. 힘을 합해서 좌파 정책들을 쫙 만들어 갈 건데, 그러면 전혀 고민할 거리가 없지… 당장 우리가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을 하면서도 이라크 파병 반대에, 이라크 철군 운동도 해야 하는 이러한, 또 그래서 상당히 이런 우리 자체가 정체성이 혼란스러운 (웃음) 이렇게 만들어지는 건데, 지금 이 과도기적 국면에서는 어쩔 수 없는 거지. 이게 요거를 좀 지나야지 좀 정리가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서도 국가보안법 문제가 상당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국가보안법이 있는 속에서는 이게 이제 당장 색깔론이 나오는 것처럼 마타도어가 먹힐 수밖에 없는 그런, 뭐 문화적인 정서적인 기반들을 국가보안법이 형성하고 있는 거기 때문에 다른 어떤 다양한 스펙트럼의 이런 부분들이 허용이 안 돼 우리 사회에서는.

국가보안법이 없어지면 그런 어떤 이분법적으로, 획일적으로 나뉘는 이런 것들이 이제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이런 것들이 이제 개혁입법들 같은 것까지 처리되고 그래야지 이제 뭐 이게 노무현 편이냐 아니냐 이런 것들도 좀 넘어서고, 아니면 친북이냐 아니냐 이런 것도 좀 넘어서고 이래야 하지 않을까… 국가보안법이 갖고 있는 게, 사실 이제 나는 우리보다 극우 세력들이 국가보안법을 더 정확하게 인식을 하고 있다고 보거든. 그 사람들은 국가보안법을 하나의 법으로 보는 게 아니라 국가보안법을 체제로 인식을 하고, 국가보안법을 자신의 그런 생존권을 보장해주는, 기득권을 보장해주는 어떤 안전판으로 보고 그렇게 인식을 하고 있거든. 그럼 우리는 반대로 인식을 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국가보안법을 법으로만 인식을 하는 측면들이 좀 있어. 그래서 우리가 반성하고 있는 게 올 해에도 국가보안법 문제를 역시 법 문제로만 우리가 접근을 하고 있다, 그래서 국가보안법이 무엇이다 라고 하는 거 이런 종합적인 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거, 이런 게 우리 한계라고 보여지고, 저 사람들은 이게 이제 국가안보를 지키는 무슨 안전판 뭐 이런 식으로 되는 거에 비해서 우리는 이제 상당히 그거보다 더 추상적인, 그러니까 뭐 저 쪽에서는 국가보안법이 없어지면 마치 북한이 넘어올 것 같은 공포 분위기,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거잖아,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선동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뭐 민권 인권의 자유, 뭐 통일의 세계로 뭐 (쑥스러운 웃음) 이런 식으로 뭐 얼마나 추상적이야? 다가오지가 않잖아.

그리고 또 뭐 표현의 자유 얘기를 하는데 이것도 인식하는 사람들이나 인식하지, 보통 뭐 표현하려고 할 생각도 않는 사람들, 이것도 뭐 부딪힐 일이 없는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는 이렇게 다가오는 게 아니거든. 인권 운동하는 사람들이나 예술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야 표현의 자유가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위에서 국가보안법의 폐지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게 사실은 쉽지 않은, 설득력을 갖지 못할 이런 측면들이 있어서 좀 답답한 거지. 그래서 구체적인 어떤 것을 제시를 하자. 그래서 국가보안법은 사실은 폭력 체계다, 공포의 체계고 폭력의 체계고, 이 공포와 폭력으로 국민들을 억압한 체계고, 현재로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억압하지 못하지만, 과거에 그랬지만, 앞으로 이게 있는 한 그것이 언제든지 가능성이 있다, 이런 거 재고해야 하는 거 아니냐, 우리가 새 세상으로 가려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렇게 좀 얘기를 해야 되는데 벌써 이렇게 말이 길잖아, 이게 안 된다고, 한 마디로 정리해서 가줘야 하는데, 그걸 못 만들어 내고 있는 거지. (웃음)”

"그 사람들은 국가보안법을 하나의 법으로 보는 게 아니라 국가보안법을 체제로 인식을 하고, 국가보안법을 자신의 그런 생존권을 보장해주는, 기득권을 보장해주는 어떤 안전판으로 보고 그렇게 인식을 하고 있거든. 그럼 우리는 반대로 인식을 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국가보안법을 법으로만 인식을 하는 측면들이 좀 있어."


이번에 폐지하지 못하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는다, 한 동안 오지 않는다.

정권과 관련해서는 지금 이 정권이, 열린 우리당이 국보법 폐지에 과연 정말 진정성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또다시 다 등을 돌려버린 지지 세력 결집을 위해서 또 어떤 카드를 쓰는 건 아닌가? 결국에 가서는 대체 입법이라거나 형법보완 같은 걸로 해서 알맹이는 그대로 남길 거면서 (그게 지금 오늘 상황이야.) 그니까 오늘 뭐 천정배가 지금 네 개, 다섯 개 법안을 (네 개, 네 개 안을 지금 내 놓은 거지.) 국가안보법이라나? (‘국가안전보장에 관한 특별법안’ 이래 갖고.) 그래서 줄이니까 ‘국가안보법’이래 갖고 ‘보안’만 ‘안보’로 두 글자만 삭 바꿔 놓은 거가 되던데 (웃음). 이런 상황이라는 게, 지난 탄핵 때에도 그런 것처럼 정권 초기에 어느 정도 기대와 지지를 가진 세력들이 다 돌아서고 나니까 이 때 탄핵 카드로 해서 다시 지지세력 결집시키고, 그 뒤에도 다시 파병 문제나 노동 문제 같은 것들로 해서 다시 다 돌아서고 있을 때 또 이 국보법 폐지로 해서 어느 정도 결집 시키고 있는 것 같거든요. 이게 정말 우연한 타이밍이 그렇게 되는 건지, 아니면 정말 대통령 머리가 좋은 것도 같고 승부사적 기질이 탁월한 것 같기도 하고. (탁월하지.)

박>“나는 그런 거야. 사실 우리가 그만큼 힘이 없기 때문에 대통령이 어떤 수를 두냐에 따라서 이 상황이 바뀌고 그 상황에 끌려가고 이렇게 되는 거거든. 이게 참 예전부터 운동했던 세력들이 쭉 보존이 되고, 또 힘이 더 모아지고 이래서… 예전에 이제 87년도 이런 때를 보면은 사회 영향력이 있는 집단 이러면 운동 집단이 10프로 이상 넘어갔다고, 지금은 뭐 미미하잖아, (웃음) 한 10위정도 되더라고, 그런 것들 자체가 일단 문제가 있는 거고. 하나는 이제 정치경제적인 기반으로 본다면은 사실 노무현 정부는 반동적인 정부야. 그렇잖아. 그래서 사회경제적인 어떤 계속 성장주의적인 어떤 이런 것만 계속 가고, 신자유주의적인 정책들을 강요하고 고통을 강요하는 거잖아. 돈 있는 놈들 뺏어갖고 분배도 하고, 내지는 이렇게 뭐 평등한 이런 관계로 가도록… 이게 성장으로 경제문제는 풀릴 수 없는 거거든. 사회경제적인 어떤 이런 개혁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이전 정부와 전혀 다를 바 없는 것들을 항상 가져가는, 그럴 수밖에 없는 정부. 그게, 그게 노무현 정부의 본질인 거라. 근데 이 사람들이 이전의 정부와 좀 다른 거는 좀 자유주의적인 어떤 거를 좀 지향하는 정부라는 거야. 그리고 또 그 지지자들도 그렇다는 거고.

그래서 30대, 40대 이런 사람들이 그렇다는 거야. 그래서 사회경제적 지반에서는 자유주의적인 어떤 이런 것들을 제대로 구현시켜내고 그러지 못하지만, 또 그러면서 상당히 빈약하지만 정치개혁이나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그런 의지를 갖고 있는 거라고 나는 보는 거야.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일정 정도 개혁성을 가질 수밖에, 진보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느냐. 그런데 국가보안법 싸움들이 참, 일각에서, 좌파 진영 쪽에서는 다시 또 이제, 노무현이 자신의 지지기반을 만들, 확보하기 위한 그런 거라고 이러는데, 나는 충분히 그런 것도 예상할 수 있다고 봐. 그렇지만 그거를 노무현의 입장이 아니라 우리의 입장에서 그러면 국가보안법 폐지 하지 말아야 하는 거냐? 현실 지형이라고 하는 거는, 정치 지형이라고 하는 거는 어차피 그렇게 존재하고 있는 건데, 그러면 노무현이가 그걸 하겠다고 나서니까 우리가 하지 말자 이렇게 갈 수 없는 거잖아. 그래서 이제 우리는 계속 국가보안법 폐지도 해야 되는 거고, 한 편에서는 또 그 비정규직 그런, 확산시키려고 하는 노동법 개악 반대 투쟁 이런 것도 해야 되는 거고, 이렇게 하여튼 모순적인 이럴 수밖에 없는 거가 아까 얘기했던 그런 거라는 거지. 하여튼 국가보안법 폐지 부분을 어떻게든 열우당이나 청와대에서는 하려고 해, 하려고는 하는데 그다음에 자꾸 단서를 두니까 그게 문제가 되는 거지. 그래서 오늘 나온 게 이제 네 가지 안인데, 네 가지 안 자체가 1, 2, 3안은 형법을 보완하는 안, 그리고 하나가 ‘국가안전보장에 관한 특별법안’ 해가지고 대체입법안 이런 거지. 1, 2, 3 같은 경우는 나름대로 긍정성이 있어. 그래서 1안, 2안들이 쪼끔씩만 보완되면, 어차피 우리나라 형법 자체가 바뀌어야 하기 때문에,

한데 문제는 뭐냐 하면은 1, 2, 3안 이 어디에도 다 국가보안법의 독소조항들이 옮겨져 와 있는 것들이 있어. 그걸 가지고 국가 안보 문제로 불안해하는 이런 것들을 잠재우려 하는, 그니까 한나라당하고 타협하려고 하는 이런 여지들이 있어서 문제다. 근데 이게 현실적으로 어떻게 바꿔내야 되는지 지금 그걸 고민해야 되는 거고, 대체입법안은 예전에 나온 대체입법안보다 상당히 좋아졌어.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도 문제가 있는… 그래도 대체입법안은 어떻게 만들건 간에, 국가보안법은 수십 년 동안의 어떤 악행 뭐 또 그런 것들을 폭로해가는 과정 속에서 나쁘다는 거를 다 알고 있는 건데, 이 법은, 그러니까 이 대체입법은 아무리 잘 만든다 하더라도 이 문제점이 드러나고 이러는데 이게 상당히 걸리고 그럴 거라는 거지. 그래서 이제 대체입법안에 대해서는 그런 부분에 대해 아예 상관하지 말자 생각하면서도 내용을 보면 상당히 괜찮은 부분이 또 있어, 그래서 참 이걸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인지… 이게 문제가 있는 거라. 그리고 이번에 국가보안법 폐지 부분을 실제로 국회에서 통과시키지 않으면 다시 그 기회가 오지 않는다, 한 동안 오지 않는다, 진짜 4년, 5년 에는 오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니까 현실적인 선택은 어떻게 할 것이냐, 원칙적으로는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다, 형법 보완이나 대체입법 이런 걸 고려하지 않고 단서 없이, 또 형법도 개정을 하려면 제대로 개정을 해야 하는 거거든. 전시 형법의 내용이 그대로 유지되어오고 있기 때문에, 그게 53년도에 만들어졌기, 전쟁 시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형법을 개정하려면 제대로 그거를 새로운 안보 패러다임에 맞게 고쳐가야 되는 게 아닌가 싶은데, 그래서 그걸 분리하라고 요구는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게 먹힐 것 같지 않고 해서 지금 상당히 고민이 있는 거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난 뒤의 과제

엊그제 마이클 버그 얘기를 듣다가 든 생각인데요. 미국에서도 계속 기득권 우익들은 어떤 공포의 대상들을 만들고 있다. (만드는 거지.) 처음에는 마녀였고, 그 다음에는 소련하고 냉전 때 매카시의 빨갱이였고, 지금에 와서는 테러주의자, 테러리스트. 지금은 소련이 붕괴한 뒤로 누구도 자기네를 건드리거나 위협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또 가상의 공포의 대상을 만든 게 테러리스트다. 이게 우리나라에서도 ‘빨갱이’가 해방 뒤부터 적어도 지금까지는 엄청난 딱지가 되어왔지만 앞으로 2~30년 지나면 지금의 십대가 커나갔을 때는 빨갱이 딱지는 그렇게 효력이 없지 않을까. (그렇겠지.) 작년이었던가요? 테러방지법안? 이제 점차 우리나라에서도 그 공포의 대상을 ‘빨갱이’에서 ‘테러리스트’라는 새로운 가상의 공포를 만들어 내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 테러방지법안 관련해서는 어떻게 됐죠?

박>“응, 그 이전에 보면 존 쿠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라는 책 있잖아, 소설. (저는 안 읽었어요.) 못 읽었어? 노벨 문학상 받은, 작년에 노벨 문학상인가? (아으, 쪽팔리게(웃음), 야만인을 기다리며요?) 야만인을 기다리며, 존 쿠시. 거기도 보면 이제 ‘야만인’이라고 하는 게 공포의 대상이라고. 언제든지 야만인이 쳐들어올 수 있다 라고 하는 이런 것들을 그 식민지 그 나라에서 막 이렇게 퍼뜨리는 그런 거라고. 그러면서 이제, 그걸 통해서 이제 군대가 진주하고, 군대가 거기서 폭압적인 이런 것들을 하고, 실제로 또 야만인을 아주 한 명 정도를 데리고 가서 시범적으로 대중들 앞에서 처형도 하고, 공포를 느끼게 해서 분노도 일으키게 하고 막, 이렇게 하는데 실제 야만인이 쳐들어오지 않았다고. 이러면서 군대가 떠나버리고 그 다음에 황량한 어떤 모습들을 보여주는 게 나는 바로 지금 우리 국가보안법이라는 게 어떤 상징처럼 보이는 것 같았는데 그래서 그거 꼭 한 번 보면 좋을 것 같애.

테러방지법은 지난번에 두 차례 시도하다가 인권단체와 시민단체, 시민사회진영이 반대를 해서 일단은 막아 냈어, 테러방지법 시도를. 김대중 정부에서 한 번 했고,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서 작년에 한 번 했고 그래서 두 차례 시도를 했는데 막은 거지. 막은 거는 큰 성과인 거 같애. 근데 한 번 막은 게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도 테러방지법 내지는 국가보안법의 성격을 갖고 있는 이런 법은 언제든지 시도가 될 수 있다. 심지어 국가보안법도 이번에 폐지를 한다 하더라도 내년에 보궐 선거 결과에 따라서 의석수가 바뀌게 되고 이러면 한나라당은 국가보안법 같은 거 다시 제정할 거라는 게 보이잖아, 그게. 뭐 이런 거라서 사실 국가보안법을 없앤다라고 하는 게, 워낙 56년 동안, 또 아니면 치안유지법까지 따지면 25년도부터 쭉 되는 거니까 그건 뭐 80년 동안 우리 사회를 억눌러왔던 법체계를 없앤다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큰 의미가 있고, 그건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데, 그런데 우리가 경계해야 할 거는 그렇다고 해서 국가보안법이 완전히 없어지는 게 아니다, 국가보안법적 성격을 갖고 있는 이런 것들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이런 거를 인식을 할 필요가 있는 거지. 그래서 그걸 어떻게 막아내느냐, 그건 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그런 어떤 민주주의의 수준이라든지, 표현의 수준이라든지, 민주와 인권 수준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미국의 매카시 선풍 그걸 이겨내는 것들이 표현의 자유에 관련된 사회의 합의나 담론 자체를 높여가는, 수준 자체를 높여가는 이런 과정들 속에서 극복이 되는 거지. 그런데도 또다시 테러문제를 가지고, 911 테러를 계기로 해서 다시 이제 뭐 새로운 법을 만들고 이런 거거든. 그래서 이제 우리가 우리 사회의 민주적인 어떤 기운 이런 것들을 훨씬 더 북돋고, 또 향상시키고 이런 것들이 무언가, 그래서 나는 국가보안법 문제의 이후에 어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나서 해야 될 일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보안관찰법을 폐지해야 하는 거, 지금 전혀 국가보안법 폐지하자 하면서 보안관찰법 폐지하자는 얘기 안 하고 있는 거거든, 일부러 얘기 안하고 있는 거거든. 결국 이걸 폐지해야 하는 거. 그리고 쓸데없이 비대해지고 있는 공안 기구들을 축소하거나 개편하는 거, 없앨 건 없애는 거. 뭐 이런 문제. 이런 거는 연결되는 게, 권력의 민주화 이런 거하고 연결이 되는 거지.

뭐 이런 작업들이 같이 병행되어 가면서 우리 사회의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고 있는 뭐 인터넷 검열제라든지 뭐… 하여튼 개인정보에 대한 어떤 문제라든지 이런 저거들을 우리가 계속 문제 제기를 해 나가면서 사회적 담론을 형성해놔야지 이런 어떤 제2의 국가보안법을 만들려고 하는 시도들을 막아낼 수 있다 라고 생각을 좀 하는 거지. 국가가 있는 한 국가는 자기 자신들의 어떤 그런 권력을 강화하려고 하는 이런 속성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을 전 사회적인 차원에서 좀 높이는 거 이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 계속 일만 많아지는 거지 뭐. (한숨) 그니까 보면은 지금 국가보안법 가지고 잘 규율이 안 되잖아, 왜 집시법이 강화되고 경찰력 그런 걸 강화하고 있냐는 거지. 예전에는 이제 국정원이나 이런 거 가지고 중정, 안기부 이런 기관이 감시하고 억압하고 이랬으면 되는데 이제는 그게 불가능해지니까 이제 다른 방식의 어떤 통치, 통제 장치 이런 것들을 자꾸 만들려고 하는 거, 그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그 정보감시체계를 구축해 가는 거, 뭐 전자정부 이런 걸 만들어가는 거지, 이런 것들이 있는 거고, 합법적인 기구인데 뭐 경찰 이런 거 가지고 통제를 강화해가는 거, 집시법 강화하는 것도 그 맥락에서 같이 얘기할 수 있고, 또 경찰… 그 이번에 10월 4일 극우 집회 그걸 계기로 해서 ‘현장검거반’ 뭐 이런 것도 만들어 강화시킨다 이렇게 간다고 하고, 이런 것도 우리가 주목해서 봐야 한다고.”

'전범민중재판'과 같은 새로운 방식의 운동은 운동사적으로도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이제 앞으로 국가보안법 문제를 비롯해서 하반기에 또 여러 가지 투쟁이 집중돼 있잖아요. 노동계 투쟁이 그렇고, 또 10월 말 교육계에서 사립학교법으로 총력 투쟁이 있고, 지금 농민들은 쌀 개방을 앞두고서 논을 갈아엎으면서까지 싸움을 준비하고 있고, 또 여기에 철군 투쟁도 계속적으로 해 나가고 있는 거고요. 게다가 파병 연장동의안이 11월 정기국회에 올라가기도 할 거고요. 그래서 생각하면 되게 갑갑하고 막, 산 넘어 산이고 막, 산이 막 이렇게 막 놓인 거 같아서 그런데. 처음에는 그래서 막 이리 되면 어, 우리 역량도 한 줌인데 역량이 분산되는 게 아닌가, 싸움이 분산되는 거 아닌가 (모든 투쟁에 다 쫓아다녀야지 (웃음)), 그런데 또 생각을 바꾸면 그렇게 싸움의 영역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같이 싸울 부대들이 많아지는 건 아닌가. 국보법 싸움에 가서 함께 싸우고, 쌀 개방 싸움에 가서 같이 싸우고, 그러면 그 영역으로 모이는 대중들이 있으면 그런 자리에서 서로 다른 주제의 싸움을 공동의 싸움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될 수도 있을 거다, 그러면 전체 싸움의 힘이 크게 해 갈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은데요. 하여튼 산 넘어 있는 산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숨을 골라야 할 것 같아요.

이제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서 들어 봤으면 하는 얘기 좀 할게요. 형이 국가보안법 관련 칼럼에서 이런 표현의 글을 썼거든요. ‘말은 세게 하면서도 실제 속마음으로는 해봤자 하는 패배의식을 걷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큰 폭의 개정에도 다다르지 못할 것은 뻔한 일이지 않은가.’ 이 대목을 읽다가 나는 솔직히 지난 파병철회 운동이 떠올랐거든요. 말은 세게 하지만, 여느 단상 위에서나 성명서에서나 그런 데에서는 모든 걸 다 걸고, 목숨이라도 다 내걸고 싸울 것처럼 말을 하지만 이미 패배의식에, 파병하는 것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한 것 아닌가, 실제로 파병반대 국민행동 평가하는 자리에서도 지도부 스스로가 ‘항의하는 차원의 싸움이었다’ 이렇게 반성하기도 하고 그랬다 하는데요, 그래서 촛불읍소형 운동이었네, 어떤 운동이었네 이런 비판적인 평가도 참 많았는데, 형이 볼 때 일 년 넘게 해 온 반전운동, 파병철회 운동이 어땠는지.


박>“우리나라에서 반전운동이라고 하는 게 사실 시작된 게 얼마야, 3년? 기껏 아프가니스탄 전쟁 직후라고 본다면 그 전에도 뭐 산발적으로야 있었지만, 흐름으로 이렇게 되는 거는 그 때부터라고 하면은 기껏해야 3년인데, 3년에 이 정도까지 온 거는 되게 많이 온 거다. 되게 빨리 성장하고 있는 운동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거고. 그리고 이제 지난 파병반대 운동을 해 온 걸 보면은 사실 자기들이 처해 있는, 자기이 서 있는 입지에 따라서 상황을 보는 게 다 달랐기 때문에 그게 문제가 생겼지. 시민단체 입장에서는, 최민희… 뭐 그 날 사람들이 얘기했던 거 같이, 최민희 사무총장 같은 경우는 노무현을 퇴진하라고 하면 대안이 있느냐, 이런 식으로 가는 건데 사실은 솔직한 표현인 거거든. 그런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곧바로 노무현 퇴진을, 전범으로 규정하는 것에 부담스러운 부분들이 있었던 거고, 또 아니면 이쪽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가야 되지 않느냐 하고 하는 측면들이 있었는데 똑같은 사실을 놓고도 서로 자신의 입장에 따라서 서로 다른 이해를 하고 다른 주장을 하고 있던 거지.

근데, 뭐 우리 운동이 그 정도인 거 같애. 그 정도인 거 같고, 그리고 최대한 서로가 존중하면서 책임지는 모습들 속에서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어떤 때 싸우기도 하고 그런 거고, 그런 건데 가급적 그런 게 서로 이렇게 분열되고, 우리가 작아지고 이런 모습을 좀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게 내 솔직한 얘기고……. 그 파병반대 운동에서 나름대로 굉장히 이 성과가 있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 보면은 우리나라에서 계속 대결의식만 조장해 오고, 반북의식 그런 거지, 국가의 대결의식, 또 불안의식, 이런 거만 계속 조장해왔던 그런 것 속에서, ‘현대사’, 우리 ‘대한민국사’는 그런 거잖아, 그런 거 속에서 찢어져 있던 사람들 속에 ‘전쟁이 나쁘다’, ‘파병하는 게 나쁘다.’, ‘미국이 하더라도 우리는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었던 거는 굉장히 큰 성과가 있는 거라고 봐. 그런데 김선일 씨 사건 나고 나서 투쟁에 불이 붙은 것 같지만 뭐 한 만 명 정도 모이다가 흐지부지되고 이런 것 같은 경우에는 아직도 이제 우리 국민들 속에 있는, 찌든 그런… 찌들어 있는, 마치 레드 콤플렉스 같이, 국가주의적인 어떤, 민족주의적인 어떤 이런 것이 있기 때문에 그랬던 거라는 거지. 그래서 민족적인 어떤 이런 것과 부합해서 나가는 경우는 상승할 수 있던 거라고. 그래서 효순이 미선이 싸움 같은 경우는 그 민족주의 적인, 민족적 분노나 이런 것들하고 결합이 되어서 그게 상승할 수 있었던 거란 말이야.

그런데 김선일 씨 같은 경우는 민족적 분노하고 연결시키려면 어떻게 되냐면 ‘김선일 죽인 놈, 우리 동포를 죽인 놈, 쳐부수자’ 라고 하면 이게 싹 가는 거잖아. 그런데 도리어 김선일 씨 사건이 나고 나서 여론조사에서는 파병반대 여론이 죽고, 파병찬성 여론이 더 높아졌다고. 민족적인 이런, 단순한 어떤 그… 이게 있는 거거든. 그걸 극복하지 못하면서 이후에 이제 김선일 씨 투쟁, 파병투쟁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있었던 거라고 사실 나는 보고 있어. 근데 그 민족적인 감정대로 우리가 가자고 할 수는 없는 거잖아. 그건 문제 있는 거고. 우리는 그 부분에 대해서 정확히 제기하고 가 줄 수밖에 없는 거 아니냐. 그거는 대중의 힘들을 세게, 크게 집결시켜내고 이럴 수 있는 투쟁이 아니었다는 게 근본적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어. 그런데 이후 투쟁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데, 그래서 뭐 비상국민행동도 다시 움직인다고 하고, 그래서 예전의 어떤 이런 판이 벌어진다고 하고, 한 편에서는 또 이제 <전범민중재판> 이런 부분들이 다른 흐름으로 형성이 되는 거지. 그래서 비상국민행동의 어떤 것들도 이제 대중적 힘들을 모아내고 이런 것들을 해 가는 데에서 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것도 이제, 한 편으로는 비판할 점도 있고 하지만 그걸 완전히 뭐 부정하고 갈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느냐, 그 쪽에서 가도록 격려하고, <전범민중재판> 같은 경우는 제대로 되도록, 성사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전범민중재판이 갖고 있는 의미는 이게 정말 운동사의… 새로운, 어떤 새로운 운동을 만들어가는 거다 하는 거지. 시민운동이나 이런 것들이 시민들을 대변하는 운동, 대변인 역할을 하는 거로써의 운동이었다 하는 거를, 그게 한계에 봉착해있다는 것도 시민단체들도 알거든. 이제 더 이상 그렇게 가는 것에 대해서는, 참여연대식의 어떤 이런 운동이 한계에 있다는 것을 안다고. 그러기 때문에 자기네들도 이런 것들을 분산을 시켜서, 독립시켜서, 전문화시키고, 또 지역 속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라고 하는 거를 아는 거거든. 근데 이제 전범민중재판은 그거를 앞서가는 거거든. 그래서 뭐 잘 나가는 단체, 뭐 유명한 단체 이런 거 중심이 아니라 실제 풀뿌리 조직들을, 이렇게 건강한 조직들을 갖다가 묶어 내겠다고 하는 거고, 그 사람들로 실제 기소인을 조직을 하겠다고 하는 거고 법정을 세우겠다 하는 거기 때문에 이거는 절반만 성공해도 상당히 큰 운동사적인 의미가 있다. 그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의 권리로써 평화의 권리 이런 것들을 주장을 한다고 하면 우리의 평화 운동도 한 발짝 발전시키고, 우리 운동도 발전시키는 어떤 이런 역할이 되지 않겠느냐. 나는 운동이 아까도 뭐 표현할 때 뭐, 앞에서 나갈 때 따라가는 주의, 절대 그렇게 해서 운동이 성공하지 않는다. 대중들 속에서 나오고, 대중들 속에서 그런 문제의식을 갖는 있는 사람들이, 그룹들이 생기고, 그 사람들 스스로 실천을 꾸려 내고, 담론도 형성해 가고, 이렇게 가 줘야지 민주주의도 되는 거고, 운동도 발전하는 것이다. 이거가 어려우니까 자꾸 그러지 못하는 운동 형태로 존재를 하는 거지. 거기에 머물러 있는 거지. 우리도 이제 그런 게 진짜 진정한 대중화의 어떤 이런 운동으로 가야지 지금 있는 운동적 한계들을 극복하는 게 아닌가 하고 있고.”

그니까 이 <전범민중재판> 운동이 이전까지 해온 시민을 대변하는 식의 운동에서 한 걸음 나아가서 시민 대중들이 스스로 독립된 주체가 되고, 무슨 일을 하면 그 독립된 주체들이 모여 함께 논의하고, 자기의 행동의 방식 또한 자기가 결정해가는 그런 거로써 의미가 크다는 거죠? 저는 그 이전에 <만민공동회>도 같은 맥락에 있었지 않았나 하고 생각이 되거든요. 시민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시민들이 자기 의사표현을 통해서 자기가 자기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어떤 것도… 논의 테이블도 이제 큰 운동단체 중심, 대표자 중심으로 결정하고 집행하고 이런 것들이 아니라 각각의 시민 개인과 크고 작은 풀뿌리 모임들이 누구나 같이 논의하고, 결정해가는 그런 거.

박>“그게 민주주의인데,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훈련을 받을 기회가 없었고, 시민들이 그럴 기회가 없었거든. 그래서 누군가 나를 대신해주는 거에 너무 익숙해 있어. 그러다 이제 자기가 직접적으로 당하고 그러면 그 때서 이제, 부안주민들 같은 경우 직접적으로 당하면서 막 일어나고 이런 것들이 있는 거지만, 앞으로의 어떤 운동은 시민들을 민주주의적으로 훈련을 시키고, 그러면서 그들이 운동의 주체, 실질적으로,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그들이 주체가 되게끔 만들어야 되는 거지. 그니까 초기에는 이런 지금의 한계를 갖고 있는 운동조직이나 이런 사람들이 그것을 위한 어떤 밑거름을 만들어야 돼.

그래서 기획을 좀 하고 이런 거를 해 들어가야 되거든. 그래서 <전범민중재판>이 그런 것들을 조직해 내는, 현재에 있는 그런 것들을, 쭉 밑으로부터 모아 내는 그런 것들이 가능하다면, 그것을 이뤄낸다면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는 거지. 그리고 밑에서부터 쭉 이런 평화바람을 불어오게 할 수 있게 된다는 거지.”

"<전범민중재판> 같은 경우는 제대로 되도록, 성사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전범민중재판이 갖고 있는 의미는 이게 정말 운동사의… 새로운, 어떤 새로운 운동을 만들어가는 거다 하는 거지."

전쟁범죄는 전쟁 중의 범죄로만 끝나지 않는다.

이라크에서는 지금도, 아니 오히려 작년 3월 20일 이후로 계속 전쟁은 더 심해져 가고만 있고, 날이 갈수록 잔악해지고 있고, 더 잔혹하고 끔찍한 학살을 벌이고 있는데요. 내년 1월로 예정한 총선을 앞두고는 점령군들이 점점 더 발악을 하듯이 가진 물량을 다 쏟아 붓고 있는 모양을 보이고 있고요. 그 발악 아래에 죽어가는 이라크 민중들 앞에서 ‘인권활동가’로 치열하게 살고 있는 형이 느끼는 건 또 다를 것 같아요. 지금 이라크 민중들에게 인권이란 어떤 걸까요? (인권은 뭐. 꿈같은 얘기지.) 그니까 그 침략 행위, 점령 행위 아래에서 짓밟히고 있는 인권들 뭐 헤아릴 수 없겠지만, 이런 것들이 사실은 다 낱낱의 전쟁 범죄 행위들로써 재판에 서게 될 것들이기도 할 테고요. 그리고 또 하나는 이라크에 있는, 이라크에서 학살당하고 있고 학대받는 이라크 민중들뿐만 아니라 침략군을 보낸 나라, 여기 한국 사람들의 인권, 미국 사람들의 인권, 그 사람들의 인권들은 어떻게 짓밟힌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박>“전쟁 범죄는 그게 전쟁 중에만 범죄가, 전쟁 중의 범죄로만 끝나지 않는다. 전쟁 범죄는 환경을 파괴시키고, 그 환경이 파괴된 속에서 사람이 살아야 되는데, 그 환경이 복구가 되려면 또 한참 오랜 세월이 걸려야 하고, 그 때 전쟁 때 받은 영향으로 사람들이 막 부상자도 많고, 죽는 사람들은 뭐 기본적으로 많고, 여러 가지 각종 후유증에 시달리게 되고, 심리적인, 육체적인 이런 것들인 거라서 진짜 있어서는 안 되는 건데……. 근데 원래 전쟁이라는 게 사람을 죽이는 거잖아,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무력으로 항복시키는, 비인간적인 이런 극단화 된 어떤 그런 폭력 형태라는 게 전쟁이라는 건데, 거기서 인권이라고 하는 게 뭐 아무리 제네바 협약을 존중하자, 뭘 하자 해봤자 그 현장에서는 뭐 실종될 수밖에 없는, 이라크 민중들에게는 그래서 인권이라고 하는 게 사실 그… 사치스러운 남의 나라 얘기 같은 거겠지. 그리고 침략군을 보낸 미국 같은 경우에서는 자기들, 기득권 세력의, 지배 세력의 이익에 봉사하는 거겠지만 나머지 저기는 또 희생자가, 다른 또 희생자가 되는 거지. 그 때 그, 참수당한, 이번에 왔던 누구지? 그… (닉 버그), 어 닉 버그 그 사람이 무슨 죄가 있어. 또 여기에도 또 언제 김선일 씨 같은 사람이 언제 또 나타날지 모르는 이런 상황들이고 이런 거지. 그러다보니까 또 그 나라에서는, 이 나라에서는 또 테러의 위협을 받게 되니까 그것을 막는다고, 테러 방지법을 만든다고 하면서 민주주의를 또 후퇴시키는 조치를 취하고 그런 거라서, 전쟁 자체가 뭐 총체적인 어떤 이런, 전체적으로 어떤 그런 인권 침해 내지는 인권 상황을 후퇴시키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거, 그러면서 소수의 사람들만 이득을 챙겨가는 이런 거라서 이건 뭐 민중들의 입장에서 보면은 어떤 전쟁도 동의할 수 없는 이런 거 아니겠는가.”

얼마 전에 인터넷 블로그라고 개인들 게시판에서 (나도 블로그 알어, 그냥 블로그라고 말하면 돼.) 재미있는 걸 봤는데, 누가 그런 글을 올렸더라고요. 지하철에 쓰레기통 막아 놓은 거 이거 사진을 딱 찍어서 올려놓으면서, 이 전쟁 때문에 자기는 쓰레기를 버릴 자유, 권리를 빼앗겼다. 아주 구체적으로 찾자면 이런 부분까지 이 전쟁이 우리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 사례들이 되지 않나 싶더라고요. (웃음) 이거는 미리 준비한 질문은 아닌데요 그래도 형 만나러 오면서 물어 보고 싶어서요. 어머니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박>“잘 지내셔. (웃음)”

"전쟁 자체가 뭐 총체적인 어떤 이런, 전체적으로 어떤 그런 인권 침해 내지는 인권 상황을 후퇴시키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거, 그러면서 소수의 사람들만 이득을 챙겨가는 이런 거라서 이건 뭐 민중들의 입장에서 보면은 어떤 전쟁도 동의할 수 없는 이런 거 아니겠는가.”


마이클 버그, 민가협, 그리고 어머니

그니까 어머니가 생각난 게 사실, 평소 서신에 계신 어머니 생각 잘 못하고 지내는데 토요일에 마이클 버그 씨 만나 얘기듣고, 일요일날 가서 잠깐 인터뷰도 하고 그랬는데 아들 얘기를 할 때 정말로 힘들어하고 슬퍼했어요. (어느 부모가 그러면 죽은 자식 얘기를 하는데 즐겁게 얘기를 해?) 그러면서 이제 시골에 있는 어머니 아버지 생각나고 그러더라고요. 요새 또 이제, 작년부터 한참 텔레비전에 전쟁 얘기 나오고, 김선일 씨 죽는 거 보고, 시골에 사는 어머니 아버지 전쟁 얘기하고 그러지 않아요? 형 내려가고 그러면? 그런 거 볼 때마다 또 마음이 얼마나 그러실까 싶은데.

박>“그러시지. 어머니 같은 경우에는 특히 전쟁 날 때 가슴 아파하고, 김선일 씨 죽고 그랬을 때도 어머니가 남의 일 같지 않아 하면서 저 부모들 어떻게 하냐 하면서 그런 거 보면서 힘들어하고 그러셨지. 근데 워낙 시골에 계시다 보니까 정치적인 반응들은 크게 없는데, 안타까운 거지 그 모든 게 다. 이라크에서 죽는 사람들 나오면 저 끔찍한 것을 왜 저렇게 하나 하고 막 그러시고, 우리 아버지야 그런 거 말씀 안 하시고.”

국보법 폐지 국민연대가 8월에 재발족을 했으니, 그 때가 시골에서는 제일 바쁠 때잖아요. 형 같은 경우는 아무리 활동이 바빠도 주말에는 꼬박꼬박 시골에 내려가 일을 하고 오는데, 게다가 8월, 9월 한참 포도를 딸 때는 여유가 더욱 없는데 올 해 8, 9월은 국보법 일에 포도 따는 일에 정말 정신없었겠다. 에이, 나는 올해에 한 번 가보지도 못하고… 올 해는 포도 수매 다 잘 됐어요? (올 해 포도 잘 됐어.) 아, 잘 됐어요? 잘 되면 더 힘든 거잖아. (아니 수월하게 잘 팔리고.) 나는 형이 제일 멋있는 게 딴 거보다 정말 내가 알기로는 한국에서 제일 바쁜 사람 중에 한 사람인데, 주말마다 안 거르고 시골에 가서 거의, 과장해서 말하면 반은 형이 농사를 짓고 있다는 게 (무슨 반을 농사 짓냐? 우리 아버지를 모욕하는 얘기지. (웃음)) 그게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그래요, 그리고 지난 번 마이클 버그 씨 활동하는 거 보니까 또 생각나는 게 우리 유가협 분들, 어머니 어머니들 또 생각이 나더라고요. 처음에는 그렇게 연결해서 생각을 잘 못했는데… 형도 유가협 일을 계속 보시는 거죠? (아니, 잊을 때마다 한 번씩 부르고 그래.) 저는 유가협 쪽으로는 지속적인 관심 같은 거 잘 못 갖고 그래서 모르는데 유가협은 어떻게 활동해요, 보통.

박>“요즘은 그렇게 활동, 그 분들이 이제 뭐야, 연세가 많아지고 그러니까 활동이 많이 줄어들고 그랬지, 예전에 비하면. 오늘도 뭐 서울대에서 장터 한다고 하는데 가보기는 해야 하는데… 평소에는, 예전에 같으면 투쟁 현장을 민가협 어머니들하고 유가협 어머니들이 진짜 모든 곳에 다 쫓아다니다 시피 했거든. 노동자들 투쟁하는 데도, 학생들 투쟁하는 데도, 법정까지. 뭐 기자회견장에도 다 쫓아가고. 진짜 몸으로 그렇게 했거든. 그러니까 우리 나이 가 좀 많기는 하지만, 정말 활동가, 현장 활동가처럼 활동했던, 아주 정열적으로 활동했던 이런 분들이시거든. 그리고 누구보다 자기 자식들, 죽은 자식들과 연결시켜서 이렇게 운동하는 사람들을 자기 자식처럼 생각을 하는 거잖아. 그래서 누구보다도 경찰들한테 뚜들겨 맞는 일이 있으면, 누구보다도 가장 분노하고 앞장서서 그냥 경찰들하고 싸우고 뭐 이러셨는데, 그런 분들이 한 분 두 분 돌아가시기도 하고 아프시고 이렇게 활동도 못하시고 이렇게 되니까 최소한의 활동을 하는 거 같애. 그래서 그 뭐 추모제나 이런 거 있으면 같이 챙겨주고, 뭐 중요한 일이 있을 때나 이렇게 뭐, 기자회견 같은 데 나오시라 하면 나가시고, 이런 정도를 하는 것 같고…

그래서 내가 16년 동안 지켜보는 건데, 그 분들을, 그렇게 보면 안타까워. 이 분들도 돌아가실 날이 얼마 안 남았다, 그래서. 이분들이 아니라 2세대, 유가족 2세들을 묶어내야 되는데, 그걸 누가 할 거냐, 이 분들 돌아가시면 유가족 저거도 끊어지는 거 아닌가 싶고, 뭐 그래서 참 안타깝고, 한 편에서는 부담도 느끼고…….”

국가폭력체계의 역전을 꿈꾸며

‘의문사 진상규명위’에는 형이 작년까지 거기 있었나? (아니, 나는 거기에는 8개월 정도만 거기에 있었지.) 생각해 보면 정말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죽어간 사람들이나 의문사로 죽어간 사람들이나 또 지금 이렇게 전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까지 해서 국가폭력이라는 걸로 해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면서…… 정말… (국가폭력 없애자.)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국가폭력 없애야지.) 그런데 형이 볼 때는, 생각하면 정말 갑갑하기만 한데 오히려 뭐랄까 직접적인 폭력보다는 유연하고 뭐랄까 (눈에 안 보이는) 응, 눈에 안 보이는, 전체적으로 이렇게 숨을 조여들어오는… 그리고 또 하나는 오히려 우리가 스스로 그 속에 안주하게끔 만드는, 우리 의식을 막 마비하고 조종하는, 우리가 그걸 폭력이라고 느끼지도 못하면서 그 폭력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이렇게 되고 있는 세상을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고 그런데 이 안에서 그래도 형이 희망을 찾고 있는 데가 있다면, 거의 마지막 질문이다 싶은데 (없어! (웃음)), 그 희망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박>“우리가 이제 참 이게 오랜 동안 잘못된 교육, 잘못된 사회의 질서 속에 살아와 가지고, 내가 보기에는 다 이게 국가 폭력이야, 국가라는 이 시스템이 폭력이야. 그런데 나도 이게 이렇게 젖어 있고, 사람들도 젖어 있고 그래서 모른다고. 근데 이게 저 나는 좀 과격하게라도 이걸 좀 바꿔야 돼. 이래서 ‘국가와 국민의 관계’, ‘국가와 인권의 관계’ 이걸 바꿔야 돼, 역전 시켜야 돼. 근대 시민 형법에서는 얘기되는 게 인권이 목적이고 국가가 수단이거든, 인권이라고 하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 국가가 존재하는 거고, 그래서 이제 인권을 억압하거나 인권을 어떤 후퇴시키는 조치를 취하게 되면 국민이 저항할 수 있는 거거든.

그래서 ‘저항권’의 논리가 거기에서 나오는 건데. 근데 우리는 그게 아니라 국가가 있어야지 국민이 있다고 생각을 해. 거꾸로거든, 이게. 국민이 있어야지 국가가 있고, 국가 권력이 있는 건데 이게 이제 워낙 오랜 그 독재 정권 속에서 잘못된 그런 자유민주주의 사상에서 찌들어 살다 보니까 이렇게 돼 버린 건데, 이걸 빨리 역전을 시켜 줘야 된다. 그리고 국가 폭력 체계가 있는 것들을 하나 하나 집요하게 그걸 갖다 해체시켜 가야 하는 것 아니냐. 이게 과거청산 운동이야. 과거청산을 자꾸 얘기하는 게, 자꾸 사건으로만 얘기하는데 사건으로만 가면 안 돼, 사건은 뭐 구체적인 사건들을 조사해가면서 방향도 그쪽으로 가야 되는 거고, 또 그것과는 별도로 과거에 국가폭력이 가능하게 했던 시스템 자체를 아예 건드리고 들어가야 되는 거거든. 예를 들자면 경찰의 뭐 과거 청산 이런 거 얘기할 때 무슨 사건 무슨 사건 얘기하고, 국정원의 무슨 사건 얘기하고 이것도 중요하고 그것에 대한 의혹 사건을 파헤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시 그렇게 전 국가적인 어떤 시스템이 돌아가게 만든, 늘 억압적인 체제를 만들어가게 했던 게 어떻게 가능하게 했느냐, 관계 기관 대책 회의가 어떤 역할을 했느냐, 이런 것들을 밝히는 게 필요하다는 거지. 그런 방안들에 대해 얘기를 해야 되고, 또 그런 국가 폭력을 없애는 부분들이 과거의 것들을 진실을 규명하고, 또 시스템을 바꾸는, 이런 것뿐만 아니라 사실은 책임자 처벌로 들어가 줘야 되는 거지. 책임자 처벌로 들어가 줘야 되는 건데 우리는 책임자 처벌로 안 가겠다는 것을 전제를 해 놓고서 하는 거라고 그 한계를 넘기 위한, 이런 게 진상 규명 투쟁 다음 진행을 하면서 계속 제기를 해서 넘어가줘야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하는 거지.

그리고 지금 이제 우리 사랑방에서 하고 있는 거는 경찰감시팀을 운영하고 있지만은, 다시 이제 제대로 해서 경찰감시팀을 만들려고 하는데, 국가권력은 감시돼야 되고 통제가 돼야 되고 해야 하거든. 시민들의 자발적인 어떤 제어가 있어야지 이게 민주화가 되고, 국가권력이 억압적으로 가는 것들을 막을 수가 있는 건데, 우린 지금 그런 게 없는 상태여서, 그런 게 곳곳에서 국가권력을 감시하고, 민주화시키려고 하고, 인권화시키려고 하는 노력들이 어떤 노력들이 일어나야겠다. 그래야 이제 국가에 의한 폭력들이 근본적으로 바뀌어 나간다, 거기에 이제 뒷받침 되는 법 제도야 당연히 바꿔야 하는 거고. 그래서 아까 국가보안법 폐지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당장 보안관찰법부터 폐지돼야 되고 우선 이런 치안 관계, 공안 관계 기관들 이런 것들을 축소 내지는 개편하는 이런 것들이 있어야 한다 하는 얘기지.”

자 이제 다 됐구요, 이제 또 어디로 간다구요? 아직 하나 또 남았어요. 하나는 기소장. (아, 기소장.) 기소 이유를 딱 밝혀주시고 이렇게, 그래서 나중에 법정을 열면 증언자가 되는 건데, 형 잘 아시잖아요. 형이 생각하기에 부시, 블레어, 노무현이 이 전쟁에서 저지르는 전쟁범죄들 가운데 형에게 가장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 가장 아프게 하고 분노하게 하는 것부터 해서 말씀해 주시면 될 거 같아요. 형이 말하는 이 얘기들이 전범 재판법정에서는 구체적인 기소 자료가 되고, 증언 자료가 되기도 할 거구요. 자, 그럼 시작하세요.

박>“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제 발생했던,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한국전쟁으로 인해서 우리사회가 아직도 고통을 받고 있단 말이에요. 당시 민간인 학살당했던 사람들이 지금도 억울한 심정들, 풀리지 않는 진상들, 이런 것들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고, 그리고 이제 남과 북이 대결 구도 속에서 첨예한 대립들을 아직도 하고 있는… 그래서 우리가 아직도 국가보안법 같은 것에 의해서 짓눌려 살고 있는,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 이라크 전쟁이라고 하는 건, 단순히 고… 요 시기, 2003년에서 2004년 요 시기에 일어나는 범죄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래서 이게 몇 년이고 몇십 년이고 후세대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민중들한테 계속 악영향을 미치는 지속되는 범죄다, 라고 하는 거. 그래서 그런 어떤 지속적인 범죄를 통해서 결국 뭐… 자기의 기득권이나 자기의 이득을 취하려고 했던 자들이기 때문에 그런 부시라든지, 블레어라든지, 노무현 같은 경우가 재판을 받아야하는, 당연히 전범으로써 기소가 되어야 되는 것 아니냐… 이게 인제 단지 지금 죽어가는 사람, 지금 부상당한 사람 이런 문제가 아니고, 이게 그 이라크 민중들한테, 전 세계 사람들한테 미치는 악영향을 생각을 하면 사실 뭐 어떤 벌로도 다스릴 수 없는, 이런 게 아니겠느냐, 그래서 정식으로 재판을 해서 처벌을 해야겠지만 그러기 전에 우리가, 민중들의 손으로 전범으로 기소를 해서 재판을 제대로 해서 정의를 세워보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억압하는 사회구조와 법제도를 인간적으로 혁신시키는 일에 헌신하는 인권활동가들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바꿀 것입니다.”

그는 묵묵히 일한다, …… 바꿀 것이다.

긴 인터뷰를 마쳤다. 이 날 인터뷰를 하면서 보니까 이 사람 정말 정신이 없게 바쁘다.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인권운동사랑방 건물 1층에서 만난 뒤 3층에 올라가 기다리는데, 이리저리 다니며 계속 전화에서 귀를 떼지 못한다. 30분이나 지나 인터뷰할 회의실에 올라와서도 계속 전화다. 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계속 전화다. 하긴 이 날이 더 급하게 연락할 일이 많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 날 오전 열린우리당 천정배 의장이 형법 개정과 대체입법안을 내놓았으니 말이다. 아니, 꼭 오늘 같은 날이 있었다. 지난겨울 한참 노동자들의 죽음이 이어질 때였다. 나는 이번 순례와 함께 한 단식 말고 지난겨울 16대 국회의 파병 안 통과 전에도 단식 농성을 한 일이 있는데 나는 이 때 단식 농성이라는 걸 처음 하는 거라 래군 형을 찾아가 여러 가지 얘기를 들으려 했다.

그런데 그 약속을 잡자마자 또다시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자인 이용석 열사의 죽음이 이어졌고, 우리는 약속 장소도 이용석 열사의 영안실이 있던 영등포의 한 병원 마당으로 옮겼다. 그 날도 형의 전화통에는 불이 났다. 형의 전화기에 불이 나기는 그 날이나 이 날이나 비슷했다. 더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자 하기에 미안할 지경이었다. 다행히 형은 이 우매한 질문자를 위해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차근차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로서는 이 인터뷰가 여러 모로 참 많은 공부가 되었다. 전범민중재판 운동으로 하고 있는 운동이 커다랗게는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훈련이 되고 있는 거라며, 대리인 운동식 시민운동의 한계를 넘어서는 운동사적인 실험이 되고 있다는 그 말에서 나는 이 운동을 함께 하고 있는 그 많은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가슴으로 따뜻한 어떤 것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이 날 나는 한 운동가를 만났다. 운동 가운데에서도 가장 빛이 없는 자리, 아무도 돌보아주지 않는 밑돌이 되는 자리에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해온, 어느새 중년에 접어든 인권 운동가를 만났다. 얼마 전 시민단체의 활동가들 가운데 부문별로 해서 앞날을 이끌어갈 사람을 선정하는 일이 있었는데, 시민사회부분의 선정자로 뽑힌 이가 바로 이 날 내가 만난 운동가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운동가는 이것에 뽑히는 걸 가장 강력하게 고사했다고 한다.

그이는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도 “인권운동의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일하는 인권운동가들은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 단체나 개인을 선정하는 일은 매우 부적절합니다. 갈수록 심화되는 불평등은 기본적인 생존권마저 위협하고, 인간적 차별도 엄연합니다.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억압하는 사회구조와 법제도를 인간적으로 혁신시키는 일에 헌신하는 인권활동가들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바꿀 것입니다.” 하고 말해 그이의 활동이 언제나 어디를 향해 있는지, 그이의 활동을 하는 마음의 바닥이 어디에서 비롯하는지가 그대로 느껴졌다. 그는 ‘운동’을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결코 ‘운동’이 목적이 되지 않는다, 굳이 목적을 말하자면 그건 ‘인권’이고, ‘인간’이겠지.

형 사진이라도 몇 컷 더 찍으려고 따라 내려가 보니까 벌써 사무실에서 자료 뭉치들을 어지럽게 챙기고 있다. 도무지 미안해서 사진 찍자고 폼 좀 잡아 달라 소리를 못하겠다. 이제 형과 나눈 이야기들을 종이로 옮겨 정리하고 있으려니까 이 인터뷰에는 조금 엇나가더라도 몇 가지 질문을 더 할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두 살 지기 형제인 래군, 래전 형제는 대학을 다니면서 래군은 노동 운동, 래전은 농민 운동을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했다. 둘 다 학생 운동을 하면서 누구 하나가 구치소에 들어가면 시골 아낙이던 어머니는 그 먼 길을 오가며 옥바라지를 했다. 하나가 나오면 나머지가 또 유치장에 들어갔다. 그런가 하면 형이 먼저 강제 징집으로 끌려갔고, 훗날 막내가 끌려갔다. 래군 형이 그렇게 지치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혹시 래전 형의 몫까지 해야 한다는 그런 마음, 책임감 내지는 어떤 부채감 같은 게 있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야말로 주말마다 내려가 흙을 밟으며 일해서 얻은 그 땅심으로 그토록 일을 할 수 있는 걸까? 나는 래군 형이 우는 걸 본 일이 없다. 잘 상상이 가지도 않는다. 우는 건커녕 우울해하는 기색도 본 일이 없다. 하다못해 술에 취해 조금 망가지면서 속내를 내보이는, 그런 것도 본 일이 없다. 그런데 왜 여태 그걸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았을까. 다음에 형을 만나면 꼭 한 번 물어봐야겠다. ‘형은 언제가 힘들어?’, ‘형은 하기 싫을 때 없어?’, ‘형을 끝내 붙잡고 있는 게 있어? 그거 있잖아, ‘그래도 내가 떠날 수 없는 건, 내 발에 묶인 사슬 때문이지요’에 나오는 그런 사슬 같은 거, 그런 거.’

형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이상하게 몸에 막 힘이 솟았다.

[전범민중재판 릴레이 인터뷰Ⅰ] 최병수 현장 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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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려간다

    읽는데 정말로 기네요.
    반정도 읽다가 포기했슴다.

  • 달려간다

    읽는데 정말로 기네요.
    반정도 읽다가 포기했슴다.

  • 반(半)독자

    운동판(?)에서 유명한 분들 말고, 기소인 신청서를 쓰신 평범한(?) 시민들을 찾아가 인터뷰하는 게 더 흥미로울 것 같은데...
    물론 쓰시는 분은 매우 어렵겠지만요. ^^;

    그리고 기사로 보기에는 너무 길어요.
    저도 반(半)만 읽었습니다.

  • 반(半)독자

    운동판(?)에서 유명한 분들 말고, 기소인 신청서를 쓰신 평범한(?) 시민들을 찾아가 인터뷰하는 게 더 흥미로울 것 같은데...
    물론 쓰시는 분은 매우 어렵겠지만요. ^^;

    그리고 기사로 보기에는 너무 길어요.
    저도 반(半)만 읽었습니다.

  • 관전자

    개인정보가 노출되어 있네요.

  • 관전자

    개인정보가 노출되어 있네요.

  • 미디어참세상

    꼼꼼히 살피질 못했네요. 큰일 날 뻔 했습니다^^;;
    '관전자'님 제보 감사합니다.

  • 미디어참세상

    꼼꼼히 살피질 못했네요. 큰일 날 뻔 했습니다^^;;
    '관전자'님 제보 감사합니다.

  • 현장노동자

    이름은 그럴듯한 인권활동가?

    에바다 이사회에서는 사측이 되어서 노동자를 탄압하고도 현재까지 아무런 사과도 없이 무슨 인권활동을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던 노동자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 현장노동자

    이름은 그럴듯한 인권활동가?

    에바다 이사회에서는 사측이 되어서 노동자를 탄압하고도 현재까지 아무런 사과도 없이 무슨 인권활동을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던 노동자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 윤찬식

    박 선배님, 칠레의 윤찬식입니다.
    래군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니 역시 시원합니다.
    운동을 사랑으로 응원하고, 힘을 주고 싶은 사람이 지구 반대편 칠레에도 많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길.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 뜨거운 여름으로 질주하는 파블로 네루다 고향 칠레에서 -

  • 윤찬식

    박 선배님, 칠레의 윤찬식입니다.
    래군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니 역시 시원합니다.
    운동을 사랑으로 응원하고, 힘을 주고 싶은 사람이 지구 반대편 칠레에도 많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길.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 뜨거운 여름으로 질주하는 파블로 네루다 고향 칠레에서 -

  • 노동자

    박래군 이사님이 계시는 에바다복지관에는 인권이 없습니다.노동자 탄압만이 잇을 뿐이죠... 이곳 에바다에서는 노동자 탄압가이고 그곳에서는 인권운동가이신 모양이죠?
    단면만을 바라보고 그사람 전체를 평가하는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 아닌가 생각 되어지는군요.
    이러한 기사를 쓰실때에는 개인의 감정이 아닌 냉철하고 객관적이며, 사실에 근거하여 다방면에서 세부적인 조사가 필요하며, 그에 따른 평가가 이루어질때에 그것이 이세상을 올곧게 만들어가는 힘의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생각되어 집니다.

  • 노동자

    박래군 이사님이 계시는 에바다복지관에는 인권이 없습니다.노동자 탄압만이 잇을 뿐이죠... 이곳 에바다에서는 노동자 탄압가이고 그곳에서는 인권운동가이신 모양이죠?
    단면만을 바라보고 그사람 전체를 평가하는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 아닌가 생각 되어지는군요.
    이러한 기사를 쓰실때에는 개인의 감정이 아닌 냉철하고 객관적이며, 사실에 근거하여 다방면에서 세부적인 조사가 필요하며, 그에 따른 평가가 이루어질때에 그것이 이세상을 올곧게 만들어가는 힘의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생각되어 집니다.

  • 혜화법정

    오늘 아침 6시 50분 부터 1시간이 걸려 글을 다 보았다. 44일 동안의 밥굶기를 마친지 한 달 남짓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애쓰는 박기범 님께 고마움으로 큰 절을 올린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박래군 님께 동지의 사랑을 깊게 느낀다.
    긴 글이지만 지루하지 않게 읽었다. 왜 그럴까. 그것은 댓거리에 나온 말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나오는 말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는 인권활동가이기에 그냥 흘려 들리지 않았다. 다소 말이 논리가 없고 어눌해 보이기도 하지만 바로 그런 소박한 말투에 진실이 묻어난다.
    아마 박기범 님은 이라크 아이들의 맑은 눈빛을 생각하며 한국군 철군을 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박래군 님은 지금 국가보안법을 없애는 일에 더 매달려 있다 보니 그 쪽 말이 길어졌을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없애는 운동은 이라크에 간 한국군을 철군 시키는 전범민중재판기소인운동과 같이 가는 운동이다.
    그것 모두는 살아있는 것을 살아있게끔 만드는 싸움이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평화의 씨앗을 심는 운동이다.
    우리가 만들려는 평화는 돈을 위해 사람과 자연을 죽이는 그런 평화가 아니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맑고 밝은 마음으로 서로를 아끼고 보듬으며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잘사는 그런 평화다.
    좋은 글 잘 읽었다. 우리가 가는 길이 쉽다면 이 길을 걷지 않았을 것이다. 이라크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국가보안법의 발톱에 숨을 못 쉬는 착한 인민들을 위해 천천히 길을 걷자. 하지만 쉼없이.
    우리는 누구나 마음에 순수를 갖고 있다. 우리는 그 순수를 찾으러 이 길을 나섰다. 우리는 이기는 싸움을 하고 있다.
    진보의 삶을 사는 모든 일꾼들 조금씩 더 힘내고 서로 북돋아 주자.

    아침해가 환희 떠오른 날 풀무질 일꾼 은종복 씀.

  • 혜화법정

    오늘 아침 6시 50분 부터 1시간이 걸려 글을 다 보았다. 44일 동안의 밥굶기를 마친지 한 달 남짓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애쓰는 박기범 님께 고마움으로 큰 절을 올린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박래군 님께 동지의 사랑을 깊게 느낀다.
    긴 글이지만 지루하지 않게 읽었다. 왜 그럴까. 그것은 댓거리에 나온 말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나오는 말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는 인권활동가이기에 그냥 흘려 들리지 않았다. 다소 말이 논리가 없고 어눌해 보이기도 하지만 바로 그런 소박한 말투에 진실이 묻어난다.
    아마 박기범 님은 이라크 아이들의 맑은 눈빛을 생각하며 한국군 철군을 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박래군 님은 지금 국가보안법을 없애는 일에 더 매달려 있다 보니 그 쪽 말이 길어졌을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없애는 운동은 이라크에 간 한국군을 철군 시키는 전범민중재판기소인운동과 같이 가는 운동이다.
    그것 모두는 살아있는 것을 살아있게끔 만드는 싸움이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평화의 씨앗을 심는 운동이다.
    우리가 만들려는 평화는 돈을 위해 사람과 자연을 죽이는 그런 평화가 아니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맑고 밝은 마음으로 서로를 아끼고 보듬으며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잘사는 그런 평화다.
    좋은 글 잘 읽었다. 우리가 가는 길이 쉽다면 이 길을 걷지 않았을 것이다. 이라크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국가보안법의 발톱에 숨을 못 쉬는 착한 인민들을 위해 천천히 길을 걷자. 하지만 쉼없이.
    우리는 누구나 마음에 순수를 갖고 있다. 우리는 그 순수를 찾으러 이 길을 나섰다. 우리는 이기는 싸움을 하고 있다.
    진보의 삶을 사는 모든 일꾼들 조금씩 더 힘내고 서로 북돋아 주자.

    아침해가 환희 떠오른 날 풀무질 일꾼 은종복 씀.

  • 대홍

    반가워요

  • 대홍

    반가워요

  • 궁금

    잘 몰라서 질문드립니다.
    박래군님이 에바다 이사회에 있는 것이 정말이며,
    에바다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였는지 궁금하군요.

    잘 아시는 분은 알려주시길..

  • 궁금

    잘 몰라서 질문드립니다.
    박래군님이 에바다 이사회에 있는 것이 정말이며,
    에바다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였는지 궁금하군요.

    잘 아시는 분은 알려주시길..

  • 궁금한이에게

    정직6개월을 결정하는 에바다징계위원회에 이사로 참석한것도 사실이며 징계위원회에서 징계안건에 대하여 소명을 하였음에도 징계안건의 사실여부를 가리지 않고 6개월정직의 사실상의 해고 결정을 한 징계를 결정하였습니다. 징계안건은 각 사건 발생시기가 네달이나 차이가 나는 5가지로 어느것은 정확한 사실확인이 안된 안건이었으며 징계상정기간도 어느것은 징계안건발생시점 다섯달이 지난것들이었습니다.

  • 궁금한이에게

    정직6개월을 결정하는 에바다징계위원회에 이사로 참석한것도 사실이며 징계위원회에서 징계안건에 대하여 소명을 하였음에도 징계안건의 사실여부를 가리지 않고 6개월정직의 사실상의 해고 결정을 한 징계를 결정하였습니다. 징계안건은 각 사건 발생시기가 네달이나 차이가 나는 5가지로 어느것은 정확한 사실확인이 안된 안건이었으며 징계상정기간도 어느것은 징계안건발생시점 다섯달이 지난것들이었습니다.

  • 진실과객관

    글을 잘 읽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그래도 희망이 있고 억눌리고 힘없는 사람들에게도 살만한 사회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은 바로 박래군씨와 같은 분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개인적으로 박래군씨에 대해 누구보다도 존경하고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분이라고 해서 잘못은 전혀하지 않는 완벽한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50억이 넘는 사람들 중에 잘못을 전혀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테니까요.
    그러나 여기 게시판에 에바다와 관련하여 박래군이란 사람에 대한 근거없는 악의적인 왜곡과 명예훼손을 하는 부분이 있는데 참 어이가 없습니다.

    정직6개월을 받은 에바다복지관 직원에 대한 이야기는 길게 하지 않겠습니다.
    부인에게 흉기를 사용하여 폭력을 휘둘러 출동한 경찰에 의해 구속되었다가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이 건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만 거론하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 적반하장이란 말이 딱 맞는 같습니다.
    측은한 생각마저 드는군요.

  • 진실과객관

    글을 잘 읽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그래도 희망이 있고 억눌리고 힘없는 사람들에게도 살만한 사회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은 바로 박래군씨와 같은 분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개인적으로 박래군씨에 대해 누구보다도 존경하고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분이라고 해서 잘못은 전혀하지 않는 완벽한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50억이 넘는 사람들 중에 잘못을 전혀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테니까요.
    그러나 여기 게시판에 에바다와 관련하여 박래군이란 사람에 대한 근거없는 악의적인 왜곡과 명예훼손을 하는 부분이 있는데 참 어이가 없습니다.

    정직6개월을 받은 에바다복지관 직원에 대한 이야기는 길게 하지 않겠습니다.
    부인에게 흉기를 사용하여 폭력을 휘둘러 출동한 경찰에 의해 구속되었다가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이 건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만 거론하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 적반하장이란 말이 딱 맞는 같습니다.
    측은한 생각마저 드는군요.

  • 권오일

    안녕하십니까?
    저는 에바다학교 권오일입니다.
    이자리를 빌어서 지난 7년 동안의 긴 투쟁을 통해서 많은 분들로부터 받은 사랑과 은혜를 다시한번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돌이켜보면 불가능할 것 같던 투쟁이 승리하여 기적을 이룬 것은 수많은 양심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힘이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투쟁에 있어서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인 싸움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물론 수많은 동지들의 뜨거운 연대가 없었다면 이런 기적을 이루어 내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힘을 모아주셨습니다.
    그 중에서 박래군 이사님의 역할은 너무나 컸습니다.
    정상화된 지금에도 마찬가집니다.
    에바다정상화를 위한 연대회의를 실질적으로 조직하고 이끌었고, 저희들이 미쳐 생각해 내지 못한 부분들까지도 꼼꼼히 챙기면서 투쟁주체들에게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지금 에바다는 힘찬 도약을 위한 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학교 건물이 안전진단에서 위험하다고 평가되어 폐쇄하고 넓은 곳으로 이전하기 위해 매각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기존의 학교 부지가 약 4690평입니다.
    최소 10000평 이상의 부지에 충분한 시설을 갖추어서 학생교육 뿐아니라 지역사회에 개방하여 지역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 되도록 모든 시설과 프로그램을 개방할 계획입니다.
    에바다는 지역뿐 아니라 전국 어느 곳이나 단체들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시설로 발전시킬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운영의 모델을 만들겠다는 것이 이사회의 목표이고 저희들의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고 있습니다.

    현재 학교는 복지관 3층에 임시로 이전해 있습니다.
    학교가 완공되고 이전할 때까지 임시로 복지관에서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에바다학교에서는 내년 1월 5일부터 호주 맬버른에서 개최되는 제20회 세계농아인올림픽대회에 탁구국가대표로 3명이 선발되어 강도높은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1년 로마 올림픽에서 단체전 동매달을 획득하여 국민훈장 기린장을 수여받고 체육연금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에는 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새벽6시부터 밤10시까지 땀흘리고 있습니다.

    참고로 다음달 11월 27일 에바다투쟁 8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여 그동안 함께한 동지들이 한자리에 모여 즐겁게 먹고 마시며 지난 8년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자리를 만들까 하는 생각입니다.
    내용이 최종적으로 결정되면 공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자리를 빌어서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투쟁할 때보다 투쟁을 승리하여 정상화된 이후가 오히려 더 많은 연대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투쟁하여 승리하도록 해 주셨으면 그 이후도 책임져 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격려하고 혹시라도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끊이없이 사랑으로 감시자 역할을 할 때만이 진정으로 정의롭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고 에바다투쟁의 근본 정신이 이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정상화가 되었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잘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떨어져 있지 마시고 더 강한 연대를 해 주십시오.

    투쟁할 때보다 정상화가 된 이후가 더 힘든 투쟁이라 생각합니다.
    투쟁할 때는 내가 받는 고통을 인내하면서 열심히 싸우면 되지만 정상화 이후는 운영에 대한 책임까지 함께 져야 하기 때문에 투쟁할 때보다 더 강한 투쟁정신으로 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언부언 한 것 같아 죄송합니다.
    다시한번 동지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 권오일

    안녕하십니까?
    저는 에바다학교 권오일입니다.
    이자리를 빌어서 지난 7년 동안의 긴 투쟁을 통해서 많은 분들로부터 받은 사랑과 은혜를 다시한번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돌이켜보면 불가능할 것 같던 투쟁이 승리하여 기적을 이룬 것은 수많은 양심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힘이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투쟁에 있어서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인 싸움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물론 수많은 동지들의 뜨거운 연대가 없었다면 이런 기적을 이루어 내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힘을 모아주셨습니다.
    그 중에서 박래군 이사님의 역할은 너무나 컸습니다.
    정상화된 지금에도 마찬가집니다.
    에바다정상화를 위한 연대회의를 실질적으로 조직하고 이끌었고, 저희들이 미쳐 생각해 내지 못한 부분들까지도 꼼꼼히 챙기면서 투쟁주체들에게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지금 에바다는 힘찬 도약을 위한 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학교 건물이 안전진단에서 위험하다고 평가되어 폐쇄하고 넓은 곳으로 이전하기 위해 매각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기존의 학교 부지가 약 4690평입니다.
    최소 10000평 이상의 부지에 충분한 시설을 갖추어서 학생교육 뿐아니라 지역사회에 개방하여 지역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 되도록 모든 시설과 프로그램을 개방할 계획입니다.
    에바다는 지역뿐 아니라 전국 어느 곳이나 단체들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시설로 발전시킬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운영의 모델을 만들겠다는 것이 이사회의 목표이고 저희들의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고 있습니다.

    현재 학교는 복지관 3층에 임시로 이전해 있습니다.
    학교가 완공되고 이전할 때까지 임시로 복지관에서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에바다학교에서는 내년 1월 5일부터 호주 맬버른에서 개최되는 제20회 세계농아인올림픽대회에 탁구국가대표로 3명이 선발되어 강도높은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1년 로마 올림픽에서 단체전 동매달을 획득하여 국민훈장 기린장을 수여받고 체육연금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에는 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새벽6시부터 밤10시까지 땀흘리고 있습니다.

    참고로 다음달 11월 27일 에바다투쟁 8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여 그동안 함께한 동지들이 한자리에 모여 즐겁게 먹고 마시며 지난 8년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자리를 만들까 하는 생각입니다.
    내용이 최종적으로 결정되면 공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자리를 빌어서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투쟁할 때보다 투쟁을 승리하여 정상화된 이후가 오히려 더 많은 연대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투쟁하여 승리하도록 해 주셨으면 그 이후도 책임져 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격려하고 혹시라도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끊이없이 사랑으로 감시자 역할을 할 때만이 진정으로 정의롭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고 에바다투쟁의 근본 정신이 이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정상화가 되었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잘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떨어져 있지 마시고 더 강한 연대를 해 주십시오.

    투쟁할 때보다 정상화가 된 이후가 더 힘든 투쟁이라 생각합니다.
    투쟁할 때는 내가 받는 고통을 인내하면서 열심히 싸우면 되지만 정상화 이후는 운영에 대한 책임까지 함께 져야 하기 때문에 투쟁할 때보다 더 강한 투쟁정신으로 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언부언 한 것 같아 죄송합니다.
    다시한번 동지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 기가막힌 이

    투쟁에 있어서 포기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승리 한다고 하였습니까? 권 선생님의 말씀에 동감 하면서 진실 역시도 포기만 않는다면 꼭 밝혀질 것입니다.
    우리들은 법정에서나 경찰서에서나 진술을 할때보면 '예' 나 '아니오'로 간결한 대답을 원하는 판사나 검사 혹은 경찰관을 볼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말이 길어지다 보면 양념이 섞여서 그 행위에 대해 왜곡될수 있고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판단의 혼란을 야기 시킬 수 있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죠.
    저는 제가 직접 사실확인 했던 일들만을 그대로 말씀드리고자 이 글을 올립니다.
    먼저 권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대한민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운영의 모델을 만들겠다는 것이 이사회의 목표이자 저희 들의 목표'라 하셨습니다. 그런데....근데 말이죠 이사님들 중에 어떤 이사님은 복지관 직원에 대한 정직6개월의 징계사실 과 징계를 받은 직원이 불복하여 노동위원회에 제소한 사실, 이로 인해 부당징계로 밝혀 졌고, 그 직원이 다시 원직복직 되어 그동안 받지 못했던 급여를 모두 수령한 사실, 복지관 직원3명이 에바다 직원 단합대회 참석 안했다는 이유로 직위해제 당한 사실 등 이러한 사실들을 전혀 모르고 계셨습니다.
    이렇게 에바다에 전혀 관심이 없으신분도 이사님으로 계시더이다,
    이러한 마당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사회 이사님은 그분만 빼고 말씀하시는 건지........또 말씀하신 여기서 '저희'는 에바다의 운영 주체인 직원들을 말씀하시는 건지,,, 그렇다면 부당징계 받았던 직원들은 빼고 말씀을 하시는 건지,,, 도대체 누굴 의미하시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 진실과 객관님께서는 말씀이 좀 지나치십니다. 아래에 글을 올려 놓으신 분들은 있는 사실만을 이야기 하였음에도 '근거없는 악의적인 명예훼손'이라 하셨는데, 있는 사실에 대해 왜 그 같은 표현을 하셨는지 참으로 어이가 없고 마음또한 아픕니다.
    시간나시면 직접 현장에 방문하시어 직접 사실 확인을 해 보심은 어떠하올는지요.
    부부싸움을 한것 가지고 흉기를 휘둘렀다 함은 본인이 직접 보신겁니까? 좀 있으면 총으로 쏴죽였다는 말도 나오겠군요....
    전 얼마전 그 두사람을 만났습니다. 지금은 알콩달콩 잘 살고 있는 그 부부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험악하게 떠들지 맙시다. 남의 부부일을 가지고.....그건 사람으로써 할짓이 아니라 생각 됩니다.
    에바다 투쟁 6년 7년 하시는데 60년 하면 뭐하고 70년 하면 뭐하겠습니까. 에바다 내부에선 아직까지도 이렇게 어지러운데....있는 사실만 가지고 이야기 합시다. 자꾸 본인들 스스로의 감정에 몰입하지 맙시다. 안그래도 혼란 스러우니까요.
    에바다가 이제는 이지역에서 제 역할을 다 할수 있도록 서로서로 협력하고 도웁시다.

  • 기가막힌 이

    투쟁에 있어서 포기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승리 한다고 하였습니까? 권 선생님의 말씀에 동감 하면서 진실 역시도 포기만 않는다면 꼭 밝혀질 것입니다.
    우리들은 법정에서나 경찰서에서나 진술을 할때보면 '예' 나 '아니오'로 간결한 대답을 원하는 판사나 검사 혹은 경찰관을 볼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말이 길어지다 보면 양념이 섞여서 그 행위에 대해 왜곡될수 있고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판단의 혼란을 야기 시킬 수 있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죠.
    저는 제가 직접 사실확인 했던 일들만을 그대로 말씀드리고자 이 글을 올립니다.
    먼저 권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대한민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운영의 모델을 만들겠다는 것이 이사회의 목표이자 저희 들의 목표'라 하셨습니다. 그런데....근데 말이죠 이사님들 중에 어떤 이사님은 복지관 직원에 대한 정직6개월의 징계사실 과 징계를 받은 직원이 불복하여 노동위원회에 제소한 사실, 이로 인해 부당징계로 밝혀 졌고, 그 직원이 다시 원직복직 되어 그동안 받지 못했던 급여를 모두 수령한 사실, 복지관 직원3명이 에바다 직원 단합대회 참석 안했다는 이유로 직위해제 당한 사실 등 이러한 사실들을 전혀 모르고 계셨습니다.
    이렇게 에바다에 전혀 관심이 없으신분도 이사님으로 계시더이다,
    이러한 마당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사회 이사님은 그분만 빼고 말씀하시는 건지........또 말씀하신 여기서 '저희'는 에바다의 운영 주체인 직원들을 말씀하시는 건지,,, 그렇다면 부당징계 받았던 직원들은 빼고 말씀을 하시는 건지,,, 도대체 누굴 의미하시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 진실과 객관님께서는 말씀이 좀 지나치십니다. 아래에 글을 올려 놓으신 분들은 있는 사실만을 이야기 하였음에도 '근거없는 악의적인 명예훼손'이라 하셨는데, 있는 사실에 대해 왜 그 같은 표현을 하셨는지 참으로 어이가 없고 마음또한 아픕니다.
    시간나시면 직접 현장에 방문하시어 직접 사실 확인을 해 보심은 어떠하올는지요.
    부부싸움을 한것 가지고 흉기를 휘둘렀다 함은 본인이 직접 보신겁니까? 좀 있으면 총으로 쏴죽였다는 말도 나오겠군요....
    전 얼마전 그 두사람을 만났습니다. 지금은 알콩달콩 잘 살고 있는 그 부부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험악하게 떠들지 맙시다. 남의 부부일을 가지고.....그건 사람으로써 할짓이 아니라 생각 됩니다.
    에바다 투쟁 6년 7년 하시는데 60년 하면 뭐하고 70년 하면 뭐하겠습니까. 에바다 내부에선 아직까지도 이렇게 어지러운데....있는 사실만 가지고 이야기 합시다. 자꾸 본인들 스스로의 감정에 몰입하지 맙시다. 안그래도 혼란 스러우니까요.
    에바다가 이제는 이지역에서 제 역할을 다 할수 있도록 서로서로 협력하고 도웁시다.

  • 복지관노동자

    저는 복지관노동자이며,지금까지 전개된 여러가지 사건들을 지켜본 당사자라 입니다.

    복지관에서는 작년(03)에 부부싸움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을 떠벌려 무려 6개월이라는 기간동안 정직을 시킨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체육대회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위해제를 3명의 직원에게 3주동안 주었고, 한 직원은 경고라는 징계를 주었습니다.

    더욱더 유감인 것은 에바다이사회에서는 상식에 어긋난 비 인격적인 결과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없었습니다.

    법인 이사회의 무책임과 무관심속에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몇마디 충고를 드리자면 이런 대외적인 글을 쓸때 눈으로 직접 보지 않은 남의 사적인 일에대해 과장된 지나친 표현을 삼가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밝혀 둘 것은 에바다의 운영주체는 무관심한 이사회가 아닙니다. 복지관에서 일하는 직원과 이용자입니다.

    앞으로 소망하기는 관심에 열정이 있는 이사회의 활동을 기대해 봅니다.

  • 복지관노동자

    저는 복지관노동자이며,지금까지 전개된 여러가지 사건들을 지켜본 당사자라 입니다.

    복지관에서는 작년(03)에 부부싸움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을 떠벌려 무려 6개월이라는 기간동안 정직을 시킨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체육대회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위해제를 3명의 직원에게 3주동안 주었고, 한 직원은 경고라는 징계를 주었습니다.

    더욱더 유감인 것은 에바다이사회에서는 상식에 어긋난 비 인격적인 결과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없었습니다.

    법인 이사회의 무책임과 무관심속에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몇마디 충고를 드리자면 이런 대외적인 글을 쓸때 눈으로 직접 보지 않은 남의 사적인 일에대해 과장된 지나친 표현을 삼가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밝혀 둘 것은 에바다의 운영주체는 무관심한 이사회가 아닙니다. 복지관에서 일하는 직원과 이용자입니다.

    앞으로 소망하기는 관심에 열정이 있는 이사회의 활동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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