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여성행진
한국에도 세계 여성들의 연대의 의지를 담은 '퀼트'와 '세계여성헌장'이 도착했다. 이는 7월 3일 일본에서 넘어왔으며 이후 필리핀으로 전달되었다. 이러한 '2005여성행진'을 맞아 한국에서는 3일과 4일 각각 다른 행사가 진행되었다. 3일 5시 대학로 마로니에에서 '빈곤과폭력에저항하는여성행진'이 주최하여 '여성들의 연대와 저항'이라는 주제로 열린 행사와 4일 오전 11시 세종문화회관 뒷 뜰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 주최로 열린 '여성폭력과 빈곤 추방, 그리고 일상에서의 평화실현'이라는 주제로 열린 행사가 그것이다.
▲ 3일에 열린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 |
'세계여성행진'에서는 참가국들 마다 그 나라의 행사를 준비하는 코디네이터를 선임하여 행진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코디네이터로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선정되었다. 이와는 다른 흐름으로 '성주류화 전략'에 의한 여성정책을 반대하며 광주민중행동,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문화연대, 노동자의힘 여성활동가모임, 세계화반대여성연대,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인천사회진보연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국학생연대회의 등 시민사회학생 단체들이 모여 '세계여성행진과 함께, 빈곤과폭력을반대하는여성행진'을 구성하고 전국순례단 활동 등을 진행하며 '2005여성행진'을 알렸다.
두 개의 퀼트
이 과정에서 준비 단체들은 집회는 각자 진행하더라도 한국에서 퀼트를 공동제작하고, 전 세계를 돌고 있는 퀼트에 한국의 퀼트를 연결하는 행사를 공동으로 진행할 것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하지만 '빈곤과폭력에저항하는여성행진' 측에서 '성노동자 운동, 가능한가'라는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기존 한국에서 진행되었던 성매매 근절 논의와는 다른 방식의 논의를 진행하자 한국여성단체연합 측은 퀼트를 공동제작할 수 없음을 전달해 왔다. 전 세계를 돌고 있는 '퀼트'는 세계 여성들의 연대와 공동의 의제들을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그 상징성이 있다.
이런 내용을 전달받은 '빈곤과폭력에저항하는여성행진' 측은 6월 29일 오전 11시 조영숙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총장과 공식면담을 진행하고, 공문을 통해 퀼트를 공동제작할 것을 다시한번 요구했다. 공식면담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 측은 "성매매와 관련 성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결국 여성인권 쟁취라는 여성운동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점, 그리고 세계여성행진의 권리헌장과 위배된다는 점을 근거로 빈곤과폭력에저항하는여성행진 측이 퀼트를 사용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가부장적 문화와 억압이 여전히 강하게 자리잡은 한국에서, 성매매를 둘러싼 보수계층과 언론의 왜곡이 심한 지금 성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위험하다"라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성노동자 논의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빈곤과폭력에저항하는여성행진 측은 "세계여성행진 내에서 지난 몇 년 간 성매매에 관해 진행된 논쟁을 조사해 보았으며, 세계여성행진 내에서 '성매매가 노동이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다만 △성매매 여성들에게 주택, 재정 및 법적 지원 보장 △유입국에서 사회보장과 주택에 대한 권리 보장 △인신매매범에 대한 법적 절차가 진행되는 중 (여성에 대한) 보호 보장 △성매매 여성과 인신매매 피해자의 비범죄화 △조직화할 권리 보장 △인신매매의 현실에 대한 공공교육을 포함해 인신매매범에 특히 노출되어 있는 나라의 여성들에 대한 사전방지 프로그램 도입 정도의 합의가 있었음을 발견하였다"며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제시한 "성노동자로서의 권리보장이라는 입장이 세계여성행진의 정신, 또는 이를 표명한 권리헌장에 위배한다"는 판단을 비판하였다. 현재 빈곤과폭력에저항하는여성행진 측은 '세계여성행진'에 이에 대한 의견을 물은 상태이며, 한국여성단체연합에 보낸 공문은 답이 없는 상황이다.
▲ 4일에 열린 '여성폭력과 빈곤 추방, 그리고 일상에서의 평화실현' 행사 |
한편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한 4일 '여성폭력과 빈곤 추방, 그리고 일상에서의 평화실현' 행사에서 발표된 선언문에는 "선불금과 빚의 굴레를 통해 성매매 여성들을 찾취해 오던 포주들은 적반하장으로 자신들이 억압했던 여성들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주장하며, '성매매 합법화'와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의 구조화'를 꾀하고 있다"며 현재의 논쟁 중인 '성노동자 운동'을 비판하고 "이러한 반여성적이자 반인권적인 포주들의 불법적인 주장을 성매매 여성들의 목소리로 둔갑시키고 있는 무분별한 언론의 행태 역시 성매매 근절을 위해 노력하는 우리의 힘겨운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이에 우리는 공동체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착취를 구조화하면서, 자신들의 사적 이윤만을 추구하고 있는 불법적 이익집단의 반인권적 주장을 단호히 거부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기자는 상황을 물어보기 위해 조영숙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총장과의 전화인터뷰를 진행하려 했으나 "성매매와 관련한 쟁점을 언론이 왜곡하고 있다"며 인터뷰를 거절하였다. '빈곤과폭력에저항하는여성행진'을 준비했던 김정은 활동가는 "여성행진 측에서 성노동자 입장을 전체의 입장으로 지지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성매매 여성들이 생존권을 요구하고 있는 발언을 무시하고 갈 것이 아니라면, 이 여성들의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노동자 관련해서는 세계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쟁점이다"고 밝혔다.
말레아 무네스, "중앙화 된 체계는 페미니스트들의 자율적 활동에 도움 안되"
'세계여성행진'은 여러 가지 의제들 중에 '탈중심화'를 핵심의제로 선택하고 있다. 말레아 무네스 아시아코디네이터는 지난 1일 빈곤과폭력에저항하는여성행진에서 주최한 '세계여성행진을 통해 본 세계화 반대 국제연대 방향과 전망'이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세계적으로, 일국적으로 많은 쟁점들이 존재하고 이것들을 자율적으로 논의하고, 조직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여 '세계여성행진'에서는 탈중심화, 자율적 활동을 중요시 여긴다. 중앙화 된 체계는 특정한 상황에서는 용인될 수 있지만 페미니스트들의 자율적 활동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어떻게 조화롭게 만들어 갈 것인가가 문제이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에서 이러한 페미니스트들의 자율적인 논의와 활동이 어떻게 구연되었는지 돌아봐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