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교수는 ‘희대의 과학자’인가 ‘희대의 사기꾼’인가? 일단 '사이언스'에 실린 ‘2005년 논문’은 조작이라는 사실이 명확히 밝혀졌다. 또한 그가 만들었다는 ‘환자맞춤형 체세포 배아줄기세포’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도 명확히 밝혀졌다. 심지어 황우석 교수도 ‘자기 눈으로 보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열흘 정도 안에 만들어 보이겠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이렇듯 ‘2005년 논문’이 조작으로 밝혀지면서 그의 연구성과가 모조리 심각한 의심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당연한 일이다. 그 동안 그의 연구성과는 한번도 엄격한 검증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는 ‘맹신의 구조’가 작동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초는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해에 황우석 교수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복제동물의 실험에 성공했다고 밝히고 나섰다. ‘영롱이’라는 이름의 소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이로써 황우석 교수는 일약 세계적 과학자로 떠오르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언터처블’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소에 관한 어떤 자료도 남아 있지 않다. 황우석 교수는 이 소에 관해 논문을 쓰지도 않았고, DNA 검사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사진조차 제대로 찍어두지 않았다. 그러니까 황우석 교수가 ‘영롱이’라는 복제소를 만들었다는 주장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세상은 설마 서울대 교수가 거짓말을 하랴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과학계에서는 분명히 의심을 품고 있었던 것 같지만 세상 분위기 때문에 따지고 나서지 못했던 모양이다.
1999년은 IMF 관리를 지나 한국 경제가 되살아나기 시작하던 시점이다. 김대중 정권은 벤처육성을 통해 한국 경제를 되살리겠다고 했다. 황우석 교수같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좋은 시기였다. 언론은 그가 복제소를 만들었다고 하자 과학적 검증에 대한 요청은 제쳐두고 경제적 기대효과만을 뜨겁게 다루었다.
정치인들에게 황우석 교수는 너무나 좋은 지지대였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황우석 교수가 있다, 황우석 교수는 BT시대를 선도할 것이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황우석 교수를 지지한다! 언론과 정치가 손을 맞잡고 ‘황우석 신화 만들기’에 나섰다. 연구성과에 관한 그의 주장이 거짓말일 수도 있는데. 이런 아우성이 몇 년이나 이어졌으니 ‘황우석교’가 만들어진 것은 그저 당연한 결과일 뿐이 아니겠는가?
황우석은 조선일보와 노무현이 동시에 열렬히 지지한 유일한 사람이다. 그 바탕에는 현대 과학기술의 놀라운 힘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점에서도 우리는 현대 과학기술의 문제에 주목하고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 적대하는 정치세력들조차 경배하도록 하는 ‘맹신의 구조’를 현대 과학기술은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 ‘맹신의 구조’를 통해 과학자의 탈을 쓴 사기꾼은 혈세를 탕진하고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 과학의 문제는 당연히 과학으로 입증되고 해결되어야 하지만, 그 과정은 언제나 시민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며, 시민은 누구나 과학의 문제에 대한 의혹을 제기할 수 있다. 황우석 교수는 과학민주화운동의 중요성을 새삼스레 일깨워주었다.
황우석 교수는 연구과정과 연구성과의 모든 면에서 큰 잘못을 저질렀으며, 그것을 감추기 위해 계속해서 거짓말을 했다. 역사에는 많은 ‘배신의 과학자’들이 있다. 황우석 교수는 최근에 그 대열에 끼어든 신참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가 저지른 ‘배신’의 크기는 엄청난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맹신의 구조’를 만들고 이끈 사람들이 있었다.
황우석 교수를 사랑한다는 사람들은 크게 네 부류로 나뉠 수 있다. 첫째, 그의 연구에 기대를 걸고 있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다. 둘째, 일방적 보도에 현혹되어 큰 기대를 품고 그를 무조건 지지하게 된 선량한 시민들이다. 세째, 그를 내세워 기득권구조를 지키고자 한 조선일보식 보수파들이다. 네째, 그를 ‘민족의 영웅’으로 제시해서 ‘미제의 음모’를 고발하고자 한 NL파들이다.
이런 여러 세력이 황우석 교수를 지키기 위해 나섰던 것이다. 이처럼 황우석 파동의 정치지형은 기존의 이념과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복잡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정치지형의 복잡성이 황우석 파동을 통제하기 어렵게 만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역시 가장 큰 책임은 정치권에서 져야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맹신의 구조’에 편승해서 정치적 지지를 얻고자 했다. 황우석 교수가 연구윤리를 어겼다는 심각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도 정치권은 그저 황우석 교수를 두둔하기에 바빴다.
여기서 나아가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연구성과에 관한 황우석 교수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면서 PD수첩과 문화방송과 민주노동당과 시민사회를 비난했다. 황우석 파동은 한국의 정치가 얼마나 후진적인 상태에 있는가를 전세계에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주었다. 또 다른 황우석 파동을 막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처럼 후진적인 한국의 정치를 발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정치의 개혁과 함께 우리가 시급히 추구해야 하는 것은 제도의 개혁이다. 좀더 정확히 말해서, 제도 자체보다는 그 운영의 개혁이다. 11월 28일에 민주노동당이 개최한 황우석 파동 관련 긴급토론회에서 사회를 맡은 나는 황우석 파동에서 10년 전의 삼풍붕괴사고를 떠올리게 된다고 말했다.
그 무참한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제도들은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단 하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황우석 파동에서 우리는 똑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대와 한양대에 연구윤리의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기구는 있었으나 가짜 서류조차 만들어 놓지 않을 정도로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이나 오명 과학기술부 장관은 황우석 교수를 옹호하는 데 급급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설익은 주장을 밝혀서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말았다.
천문학적 금액의 혈세를 황우석 교수의 연구에 쏟아부은 결과, 이 나라의 가치는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이 황당한 사태는 과학의 이름으로 과학을 신화화한 결과이다. 잘못을 저지른 자가 누구이며,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가는 이미 대체로 밝혀졌다.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미 대략 알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하고 즉각 박기영 보좌관과 오명 장관을 해임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도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조선일보와 YTN은 앞으로 황우석 교수는 물론이고 과학에 관해서는 보도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황우석 교수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진보세력의 발목잡기’라니, 색깔세력에게 과학이며 진실은 그저 ‘공론’일 뿐이다. 그리고 세상에 ‘황우석을 죽이러 왔다’니, PD수첩 취재진이 무슨 테러집단인가?
물론 황우석 파동의 가장 큰 주체는 바로 황우석 교수 자신이다. 아마도 그는 정신분석을 받게 될 것 같다. 세계를 상대로 한 그의 거짓말은 정상인이라면 결코 쉽게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과학이 새로운 종교가 될 수 있으며, 과학자가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지적해왔다. 돈 때문에, 명성 때문에, 권력 때문에 과학은 쉽게 타락할 수 있다. 황우석 파동의 교훈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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