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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않고 믿을 수 있을까? 이 모습

[해방을향한인티파다](28) - 제이유스와 장벽

제이유스는 인구 3,200명의 작은 마을이고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생활을 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2002년 이스라엘이 제이유스 지역에 철조망 장벽을 쌓으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철조망 장벽

 
                                                  장벽이 가른 마을
 
사진1은 장벽이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보여 줍니다. 오른쪽부터 철조망을 쌓고, 그 다음에 비포장 도로를 만들고, 그 다음에 다시 철조망 장벽을 치고, 그 너머에 포장된 군사용 도로를 만듭니다. 이 모든 것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을 빼앗아 만든 것입니다.
 
사진2는 장벽이 어떤 식으로 지역을 갈라서 고립시키고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사진 가운데 장벽과 도로를 기준으로 오른쪽에 팔레스타인 마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왼쪽에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이 있고, 그 너머에 이스라엘 점령촌이 있고, 또 그 너머에 1948년 전쟁 때의 휴전선인 그린 라인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장벽을 쌓은 뒤 수 km마다 체크 포인트(검문소)를 세웠습니다. 우리는 제이유스에 있는 2개의 체크 포인트를 방문 했는데 한 곳은 하루 세 번, 각 15분씩 열리는 곳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7시30분에 열고 7시 45분에 닫고 하는 식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통행 시간을 제한했을 뿐만 아니라 통행 가능한 사람도 제한해서 특별 허가증이 없는 사람은 체크 포인트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장벽 너머에 농토를 가진 농민들도 허가증이 없는 사람은 농사를 지으러 갈 수 없게 되었고, 이스라엘은 자연스럽게(?) 그 땅을 몰수 해 버렸습니다.
 
우리는 상황을 보다 자세히 알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체크 포인트를 지나는 아침 시간에 북쪽 체크 포인트로 향했습니다.
 
1948년과 1967년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을 빼앗은 것은 둘째 치고, 이스라엘은 장벽을 지으면서 장벽이 통과하는 지역의 땅을 빼앗고, 장벽 너머에 있는 땅도 빼앗고 그나마 남아 있는 땅도 어떻게든 빼앗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체크 포인트를 통과하는 과정은 이랬습니다. 먼저 이스라엘 군인이 2명 또는 3명씩 오라고 손짓을 합니다. 그러면 기다리던 사람 가운데 두 어 명씩 앞으로 나가서 윗옷뿐만 아니라 허리띠까지 끌러서 이스라엘 군인에게 맨살을 보여 줘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이스라엘 군인에게 가서 신분증과 특별 허가증을 보여 줍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군인이 큰 소리로 신분증 번호를 다른 군인에게 외쳐서 적게 만들고 나서 사람들을 통과 시킵니다.
 
 
                       체크 포인트에서 이스라엘 군인에게 옷을 들어 보이는 사람들
 
장벽 너머로 농사를 지으러가는 사람이든 이스라엘 공장으로 일을 하러 가는 사람이든 매일 아침마다 체크 포인트를 통과하기 위해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합니다.
 
누구라고 상상할 수 있을까요? 아침마다 일을 하러 가기 위해 허리띠까지 끌러 보여야하는 기분을.......
 
그리고 가끔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장벽 이 편으로 와서 총을 들고 주민들을 위협하기도 한답니다. 근무하다 지루할 때 병정놀이를 하는 거죠.
 
아침에 체크 포인트에 갔다 온 얘기를 우리를 안내해 주고 있는 아흐메드의 어머니에게 하니깐 어머니가 군인들과 별 일 없었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만약 이스라엘 군인들이 여러분들에게 무슨 짓이라도 벌이면 내가 가서 죽여 버릴 테야.”
어머니의 말씀에 적지 않게 놀란 제가 말씀 드렸습니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아무 일 없을 거에요. 우린 외국인이잖아요.”
 
어머니가 해 주신 닭고기 요리를 먹으며 생각했습니다. 얼굴도 낯선 뜨내기 한국인을 걱정해 주는 어머니의 마음을 고마워해야 할지, 뭐보고 놀란 가슴 뭐보고도 놀란다고 살인, 폭력, 학대가 일상이 된 어머니의 마음을 아파해야할지......
 
 
                                 신분증과 특별 허가증을 확인하고 있는 군인들
 
저녁에는 제이유스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쉐리프 오마르씨를 만나 지역 상황과 장벽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나이가 60이 넘었지만 다른 가족들이 그의 일을 도울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특별 허가증이 없기 때문에 혼자서 일을 하러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매일 아침 체크 포인트를 통과하기 위해 온갖 모욕을 겪으면서 말입니다.
 
또 2000년 알 아크사 인티파다(민중항쟁)가 시작되기 전에는 제이유스 농민들이 나블루스로 가서 농산물을 팔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티파다가 시작되자 이스라엘이 나블루스로 들어가는 모든 팔레스타인 트럭의 통행을 금지시켰고, 농산물 판로는 완전히 막혀 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15kg짜리 토마토 한 상자를 팔아 세금, 운송비 등을 떼고 나면 손에 남는 것이 한국 돈으로 800원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스운 사실은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산 토마토를 나블루스에 팔아먹고 있다는 겁니다.
 
 
쉐리프 오마르씨가 보여준 사진 한 장.
2002년에 이스라엘이 장벽을 쌓기 위해 올리브 나무를 뽑아내고 있는 모습.
 
지금 이스라엘은 점령촌을 확대하기 위해 그나마 장벽 너머에 남아 있는 땅들도 몰수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쉐리프 오마르씨와의 얘기 끝에 제가 땅을 지킬 희망을 가지고 있냐고 물었더니 아주 힘을 줘서 말했습니다.
 
“선택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저는 48년이나 67년 전쟁에서 난민이 되어 떠난 사람들처럼 난민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만약 제 땅을 지킬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제 땅에서 죽을 겁니다.”
 
농민이 농사를 지어 사는 것이야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언제 빼앗길지 모르는 땅, 그리고 그 땅과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며 죽음을 떠올리는 사람 앞에서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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