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에 두 번 쫓겨나는 수모를 겪다니!"

팽성읍 대추리 여든아홉 조선례 할머니의 기구한 인생을 듣다

정월대보름, 평택시 팽성읍 대추분교에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제는 작은 시골마을이 아니다. 한반도 평화의 들불이 훨훨 타오르는 팽성읍 대추리. 평화의 달집이 황새울 들녘을 뜨겁게 달구며 타오르고 있다.

  대추분교 집회장으로 들어오는 트랙터. 구호가 선명하다.

  집회장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조선례 할머니

정월대보름을 맞아 대추분교에서는 평택미군기지확장 반대를 외치는 3차 평화대행진 집회가 열리고 있다. 대추분교 뒤쪽 언덕에 전봇대에 기대어 집회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신다.

“할머니 여기서 뭐 하세요?”
“난 저기 무서워서 못 내려가?”

할머니는 경찰과 충돌이 생겨 다칠까봐 이 곳에서 집회를 보신다고 한다. 오늘은 경찰들이 가로막지 않는다고 했더니, “당연히 그래야지” 한다. “내가 빨리 죽어야지. 오래 사니 미군한테 두 번 째겨(쫓겨)나는 수모를 겪어.”라는 할머니의 눈가에는 주름이 깊다.

할머니의 나이는 여든 아홉. 하지만 할머니의 마음은 저 집회장의 황색깃발과 함께 하고 있다. 이름을 묻자, “조. 선. 례. 여”라고 또박또박 말을 한다.

  조선례 할머니

  마을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신다

미군에 두 번 쫓겨나는 수모

"저기 미군 활주로 생긴 곳에 내가 열아홉에 시집을 왔어. 일제 36년 살다 해방되니, 이젠 미군이 들어온 거야. 54년 전에 미군이 활주로 만든다고 이곳(대추리)으로 째겨났어. 시월이었지. 한밤중에 째겨났어.”

지금 미군기지 활주로가 있는 곳에 살던 할머니는 영문도 모르고 쫓겨났다. 세간도 버리고 몸만 빠져나왔다고 한다. 지금 할머니가 살고 있는 대추리는 산이었다고 한다. 집도 없는 산에 주민들을 몰아넣었다. 한국전쟁 뒤라 아무 말도 못하고 쫓겨 와야 했다.

“시월에 째겨났는데, 곧 겨울이잖아. 병들어 죽고 추워서 죽었어. 어린 애들과 노인들이 그 해에 많이 죽었지.”

박정희정권이 들어서자 갯벌을 막아 논을 만들었다. 황새울 들녘에서 나오는 쌀은 그래서 맛이 좋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옥토 황새울이 있기까지 조선례 할머니가 겪어야 했던 고통은 점점 기억에서 사라져 간다.

“바다를 막아 만든 논이라 간기가 많아. 짠물이니 어데 농사가 제대로 될 리가 있나. 이걸 손가락 휘도록 몇 해를 걸쳐 논으로 만등 거여. 이제 논도 조코 밭도 조은디, 지금 와서 미군이 또 내 노으라 하는 거여. 이젠 살만하니 또 달라고 하면 어찌 댄 거여. 이런 억울한 꼴이 어딨어.”

“나이 서른에 째겨났는데, 죽지 않아 또 험한 꼴을 본다”는 할머니의 눈은 적어 있다. 보상 받으신 돈으로 자식들한테 가셔서 살면 안 되냐고 묻자, 할머니는 손사래를 친다.

  미군기지 안에 한국경찰이 지키고 있다. 저 너머 활주로에서 처음 조선례 할머니가 미군한테 쫓겨났다.

  조선례 할머니

이렇게 억울한 꼴이 어딨어

“내가 왜 나가. 한 번 째겨났으면 됐지. 보상도 그래. 어떤 놈 한 놈 와서 이러저러하니 땅을 좀 내노아야겠다고 말 한마디 없었어. 통장에 돈 얼마 너노코 찾아가라 하는 거야. 그게 어디 말이대.”

할머니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주민들의 동의도 없이 보상금 몇 푼 주고 나가라는 게 너무 억울하다고 한다. 50년이 지나도 미군문제에 대한 한국정부가 주민에게 한 행동은 똑같다는 거다.

“왜 미군에 내줘야 하는 거야. 이제 아흔인데, 내가 어디로 가서 살아야 해. 내 지금 사는 곳에서 그냥 살고 싶어. 우리 영감이랑 산으로 째겨나 논 일구고, 밭 일군 이 땅에 살고 싶어. 영감 묻은 땅에 나도 묻혀야지, 어데로 가.”

대추리에 평화촌을 만들려고 들어 온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하자, 할머니는 “고맙지유”한다.

“이젠 땅을 빼앗기면 안 돼요. 일제 36년 빼앗기고, 54년 전에 미군에게 빼앗기고, 이제와 또 빼앗긴다는 게 말도 안 되지. 저기 비행기 나는 활주로도 찾아야지, 왜 더 내줘.”

“나는 오늘 경찰들이 나오는 줄 알았어.” 할머니는 대추분교 집회장에서 한 시도 눈을 떼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깃발을 들고, 구호는 외치지 않지만, 땅을 지키려는 마음은 어느 누구보다도 간절하신 조선례 할머니. 한 생을 살며 미군에게 두 번 쫓겨나야하는 기구한 운명을 맞이하는 할머니, “오래 오래 사시고, 꼭 이 땅에 묻히세요.”

  할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황새울 들녘의 쥐불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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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바람

    할머니 성함은 조선녀가 아니라 조선례 이십니다.
    수정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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