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불정책’을 넘어서 ‘입시철폐’로

[진보논평] 신자유주의가 야기한 교육 불평등에 맞서야

진보전략회의(준)는 한국사회 주요 전략아젠다에 대한 진보적 정책생산을 목표로 모인 연구자, 활동가들의 전략네트워크이다. 사회운동의 통합적 활동이 가능하도록 운동과 운동을 이어주고 지역, 부문, 현장에서 운동기획을 자극하고 촉진하는 역할을 표방하고 있다. 진보전략회의(준) 회원들이 주요한 사안에 대해 발표하는 '진보논평'을 민중언론참세상에 게재한다.- [편집자 주]


대학본고사, 고교등급화, 기여입학을 금지하는 ‘3불정책’에 대한 보수진영의 공세가 만만치 않다. 장호완 서울대장기발전위원장이 “3불정책이 대학 발전과 대학의 경쟁력 확보에 암초”라고 하자, 사립대총장협의회장인 손병두 서강대 총장이 얼른 그 말을 받아서 ‘3불정책’의 폐지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 지난 3월21일과 22일이다. 그 이후는 보수 세력의 발호 그것이었다. 장호완 교수, 손병두 총장의 말을 고대라도 하고 있었던 듯 이명박 박근혜 정운찬 등 대권 후보 물망에 오른 보수적 정치인들이 3불정책을 헐뜯는 발언을 하고, 한나라당은 논평을 통해 3불은 ‘불신’, ‘불편’, ‘불만’의 정책이라고 비아냥거리고, 보수 언론 역시 얼씨구나 하고 3불정책을 없애야 할 것으로 몰아붙였다. 3월30일 이장무 총장이 서울대 총장으로는 처음으로 “해외 유수 대학 중 내신 위주로 선발하는 곳이 없으며 이 시대에 맞는 특별한 인재를 죽이는 제도”라며 3불 정책을 비판하고, 같은 날 김영정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장이 대학의 자율성을 위해서는 3불정책과 같은 규제는 없애는 게 옳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이런 보수적 분위기에서 힘을 얻은 때문이다.

물론 다른 흐름도 있었다. 3불정책 폐지 요구가 나오자마자 22일 노무현 대통령은 “3불정책을 폐기하고 획일적인 입시 교육에 모든 학생들을 줄 세움으로써 공교육을 무너뜨리고 사교육비 부담과 지나친 학업 부담으로 내몰아야 하느냐”며 폐지를 요구하는 대학들을 비판하였고, 교육부 역시 3불정책 유지라는 종전의 입장을 확인하고 나섰다. 나아가서 3월 27일에는 전교조, 전국교수노조, 민교협, 민주노총,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참교육학부모회, 문화연대 등 교육운동 및 사회운동 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3불정책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 공교육의 버팀목이라며 폐지를 주장하는 보수세력들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3불정책’이란 대학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라는 세 가지 제도를 수용 ‘불가’로 규정한 정책이다. 3불정책은 27일 기자회견을 연 단체들의 주장처럼 스러지는 한국 공교육의 버팀목이요 “교육기회 형평성 보장의 마지노선”이다. ‘대학본고사’가 되살아나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유독 대학본고사에 집착하는 서울대는 자연대계열과 공대계열 학생들의 학력 저하를 이유로 들어서 본고사의 복원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대를 위시한 명문대학들이 입학시험을 직접 주관하면 중고등학교는 이들 대학의 입시 경향에 얽매인 교육을 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은 ‘고려대반’, ‘서울대반’, ‘연세대반’, ‘이화여대반’ 등으로, 또는 성적에 따라 우열반으로 갈려서 어린 나이에 ‘일류’와 ‘삼류’의 구분, 나아가서 사회적 불평등을 당연시하는 교육을 받게 될 것이다.

고교등급제가 도입되면 또 어떻게 되겠는가? 고등학교의 차별화를 통해 선배들의 진학성적이 좋은 학교에서는 후배들이 혜택을 받게 하려는 것이 그 제도의 목적이다. 현실적으로 고교간 실력 차이가 있으니 그 점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진학 성적이 좋지 못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선배를 잘못 뒀다는 죄로 불이익을 받게 된다. 27일의 기자회견문이 밝히고 있듯이 고교등급제는 ‘신흥연좌제’로서 극복의 대상인 고교간 서열을 오히려 고착시키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고교등급제와 본고사제도가 결합될 경우 끔찍한 결과가 예상된다. 대학에서의 본고사는 기본적으로 초·중등교육의 서열을 만들어낼 것이므로 중등학교 본고사, 나아가서 초등학교 본고사까지 초래할 것이다. 이는 단순한 예상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기도 하다. 대학교,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가 개별적으로 본고사를 직접 주관하던 시절이 있었다. 서울대, 경기고, 경기중, 덕수초등으로 이어지는 한국교육의 ‘선골(仙骨)’제도가 작동하던 때, 그때에는 끔찍하게도 대여섯 살밖에 먹지 않은 어린아이들에게도 입시과외가 강요되었다. 고교등급제와 본고사가 결합되면 그런 끔찍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그러잖아도 이미 유치원 과정의 아동들까지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기여입학제’는 여기에 더하여 ‘가진 자’에게 또 다른 특혜를 주려고 한다. 본고사와 고교등급제가 실시되면 사교육의 성행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하지만 기여입학제는 이런 사교육 풍조를 넘어서서 노력이나 능력이 아닌 경제권력에 의한 교육의 사유화를 허용하게 만든다. 가난한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고액의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그 자체로 특혜이다. 그런데 기여입학제는 한 술 더 떠서 돈 많은 집 자제에게 학력을 살 수 있는 기회까지 제공한다. ‘가진 자’에게 교육의 사적 소유를 허용하는 것이다. ‘명문대학’이 활용할 공산이 큰 이 제도가 도입되면 ‘일류대학’의 졸업장도 돈만 있으면 살 수 있게 된다. 재산만이 아니라 학력까지 세습되는 세상이 되는 셈이다.

사회의 불평등을 더욱더 조장할 대학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를 수용할 것을 요구하는 세력은 물론 보수세력이다. 한국 대학들의 정점에 선 서울대, 일부 명문 사립대학들, 이들을 지지하는 대권주자들, 그리고 ‘조중동’이 그들이다. 그러나 ‘3불정책’을 둘러싸고 형성된 ‘전선’에 대한 오해가 있어서는 안 되겠다. ‘3불정책’을 옹호하고 나섰지만 노무현 정부는 그 정책의 진정한 옹호자가 아니다. 1995년 김영삼 정부가 수립한 ‘5·31 교육개혁안’에 깃들은 신자유주의 정신, 다시 말해 “승자에게 모든 것을 주라”는 교육에 대한 철저한 시장주의 관점을 충실하게 수행해온 것이 노무현 정부이다. 본고사와 고교등급제와 기여입학제는 기본적으로 대학간, 고교간의 경쟁을 부추기려 한다. 3불정책은 이 세 제도를 ‘불가’로 규정하여 교육기회의 형평성을 지키려는 것이나 노무현 정부는 그동안 교육의 평등을 짓밟는 정책을 일관되게 펼쳐왔다. 일부 대학들이 특목고 등에 가산점을 부여해온 관행을 봐 넘기고 서울대가 본고사 수용 입장을 밝혀도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음으로써 3불정책의 실질적 무력화를 허용해온 것도 노무현 정부의 교육부이다. 노무현 정권이 지금 공교육 와해의 책임을 회피하려 3불정책을 두둔하지만, 그 정책의 폐지를 주장하는 보수세력의 발호를 야기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최근의 논란을 살펴보면 보수세력의 기세가 등등하고, 일부 개인들이 3불정책 폐지 요구를 기만과 완력으로 밀어붙이는 형세이다. 지난 21일 장호완 서울대발전위원장의 발언도 일방적이었다. 서울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당초 발표와는 달리 그의 발표는 위원회 구성원들간 충분한 논의나 동의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고 한다. “3불정책은 대학 성장과 경쟁력 확보에 암초 같은 존재라는 데 위원 71명 모두 동의했다”고 밝힌 것과는 달리 그런 동의 절차는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단의 ‘3불 정책’ 폐지 또한 일부 상위권 대학들의 주장을 일부 보수 언론들이 주된 의제로 삼아 부풀리면서 나온 것으로, 대다수 대학들의 뜻과는 무관하다는 지적이 있다. “해외 유수 대학 중 내신 위주로 선발하는 곳이 없”다는 이장무 서울대 총장의 발언도 사실이 아니다. 이런 점들은 그동안 잠자코 있던 보수세력이 노무현 정부가 실시해온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성과’에 힘입어 노골적으로 공교육의 골간을 유지시켜온 대학입시정책의 틀을 깨려 나서고, 이 흐름을 일부 보수적 개인들이 주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3불정책은 당연히 지켜야 한다.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는 한국의 교육을 사적 소유로 전환시키고 교육에 의한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 뻔하다. 문제는 어떻게 3불정책을 지키느냐는 것이다. 지금의 정세에서 그것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교육운동 진영에서 원하건 원하지 않건 3불정책 폐지는 사회적 쟁점이 되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운찬 등 보수적 대선 주자들이 폐지를 주장하고 나선 것을 보면 2007년 대선에서도 3불정책은 주요 선거 쟁점이 될 공산이 크다. 이 과정에서 3불정책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 것인가?

교육운동 진영은 새로운 전략을 구사하고 그동안의 수세적 운동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다. 수세적 운동이라 함은 보수세력이 공세적으로 만들어낸 쟁점에 대해 반응만 드러내는 운동을 가리킨다. 그동안 한국의 교육운동은 1989년 전교조가 ‘참교육’의 구호로써 대안적 교육을 제시한 이래로 한국교육의 방향을 진보적으로 바꿀 대안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 적이 별로 없다. 3불정책만 놓고 보더라도 보수세력의 공격이 개시된 뒤에 비로소 대응을 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왜 아무 대안이 없었으랴마는 대개 국가와 자본의 공격을 받고 난 뒤에야 그에 대응하며 허둥지둥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교육운동의 모습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방식의 운동에서 벗어나야겠다.

먼저 우리의 상대가 누구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미 말한 대로 교육 불평등을 조장하는 것은 보수세력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조장하는 주된 원천은 신자유주의 세력이며, 이 세력은 한나라당만이 아니라 개혁을 표방하는 노무현 정권과 이를 지지하는 자유주의 세력을 포함한다. 이들은 서로 경쟁하고 비방할는지 몰라도 신자유주의라는 하나의 전선에서는 뭉쳐 있다. 교육운동은 이 전선을 무너뜨릴 전략이 필요하고, 이는 3불정책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3불정책을 구하려면 3불정책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사실 3불정책은 일부 대학과 교육부의 입시정책에서 부분적으로 이미 해체되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3불정책의 정신이라 할 ‘교육기회의 형평성’, 나아가서 교육의 평등과 사회화를 이루려면 3불정책 ‘수호’를 넘어서는 구호가 필요하다. ‘입시철폐’가 그것이다. 한국의 초·중등교육은 지금 입시의 노예가 되어 있고, 대학은 입시를 고리로 삼아서 서열화가 이루어져 있다. 대학의 서열화와 입시의 노예가 된 초·중등 교육을 바로 잡으려면 입시를 철폐하고, 한편으로는 초·중등 교육을 입시지옥에서 해방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부만 명문대학으로 군림하는 대학 구도를 바꿔야 한다. 이런 변화를 가져오려면 이제 3불정책을 뛰어넘는 대안이 요구된다. 그 대안의 하나가 ‘입시철폐’이다. [진보전략회의(준) 07.04.06]

덧붙이는 말

강내희님은 문화연대 공동대표로, 진보전략회의 회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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