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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평화를 부르는 히말라야시다

[강우근의 들꽃이야기](60) - 히말라야시다

히말라야시다는 보기만 해도 마음까지 시원하게 하는 나무다. 원뿔 모양으로 하늘을 향해 치솟은 우람한 모습이 시원시원하다. 이름에 원산지인 '히말라야'가 들어 있어 더 시원한 느낌이 든다.


무더운 여름, 히말라야시다만 보고 있어도 절로 시원하다. 히말라야시다는 하늘을 향해 치솟은 늘 푸른 바늘잎나무지만 그렇다고 잔뜩 힘이 들어간 모습은 아니다. 꼭대기 가지 끝이 슬쩍 쳐지고 아래로 갈수록 넓게 퍼지는 가지들도 능청능청 늘어져 있다.

짙푸른 묵은 잎과 연초록 새잎이 대비되어 싱그러운 느낌을 주는 히말아야시다의 우리 이름은 개잎갈나무다. 잎갈나무와 닮았지만 잎갈나무와는 달리 가을에 잎이 지지 않는 늘 푸른 나무라서 개잎갈나무라 불리게 된 것이다. 히말라야시다라는 이름은 크고 묵직한 느낌을 주고 개잎갈나무라는 이름은 친근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데, 이 두 가지 느낌 '꼿꼿함'과 '부드러움'이 어우러진 나무가 바로 히말라야시다, 개잎갈나무다. 히말라야시다는 금송, 아라우카리아와 함께 세계 3대 공원수로 꼽힌다고 하는데 그 기준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충분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말라야시다는 추위에 약해 중부 지방보다는 경상도나 전라도 등지에서 더 흔히 볼 수 있다. 대구나 광주에서는 히말라야시다 가로수를 볼 수 있다. 대구의 히말라야시다 가로수는 가지를 자르지 않고 그대로 두어 자라게 한 것인데, 가지가 땅바닥까지 축 쳐지고 그 품이 넓어서 이제는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다. 광주의 히말라야시다 가로수는 가지를 싹둑싹둑 잘라 버려 전혀 다른 나무처럼 만들어 버려 하늘로 치솟은 히말라야시다의 시원한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공해에도 약한 이 나무를 왜 가로수로 심었을까? 이 나무를 박정희가 좋아했다고 하는데 그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박정희는 히말라야시다를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데 작년 어느 지방 대학에서는 단지 박정희가 좋아했던 나무라는 이유만으로 아름드리 히말라야시다를 베어버린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다. 문화재청장인 유홍준 말 한 마디에 대학 총장은 단숨에 나무를 베어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히말라야시다는 독재자 박정희보다는 레바논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나무다. 요즘 레바논 사태로 레바논 국기가 자주 방송을 탄다. 그 국기에 그려진 나무가 레바논시다이다. '학자들은 히말라야시다와 레바논시다는 원래 같은 종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같은 것이 오랜 지질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지리적으로 멀리 격리되었기 때문에 성질이 서로 다르게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나무 백과 2」, 임경빈) 말하자면 히말라야시다와 레바논시다는 형제 나무인 셈이다. 레바논에서는 해마다 레바논시다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그 나라 동전에도 레바논시다가 새겨져 있다.

레바논시다가 레바논의 상징이 된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였던 것 같다. '그의 모습은 레바논 같아 / 송백나무처럼 훤칠하다오 / 그 늠름하고 멋진 모습에 그만 반해 버렸지요'(아가 5장 15절) 아가서에 나오는 이 송백나무가 바로 레바논시다이다.

지금 레바논은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부서지고 있다. 레바논시다가 자라던 땅에서는 이제 슬픔과 분노가 자라나고 있다. 레바논시다처럼 그 싱싱한 평화가 다시 레바논에 자라나길 마음 속 깊이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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