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쯤. 이씨의 차는 한강 다리 하나를 건너고 있었다.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나 회포를 풀고 새벽의 강바람을 맞으며 기분좋게 달리는 중이었다. 다리에 올라서 중간쯤 다다랐을 때 경찰들이 불심검문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음주운전검문이라고 생각했다. 이씨는 술을 전혀 못하기 때문에 별 걱정이 없었다. 물론 이것도 예고없이, 마음대로 행해지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지만 경찰의 정차명령에 차를 세우고 차창을 좀 더 내리며 음주측정기를 불 요량으로 입을 오물이며 얼굴을 내미는 중이었다.
이씨의 기대를 깨고 의경은 차에 대한 불심검문을 하고자 했다. 이씨의 차는 12년이 넘은 중고차였다. 창피했다. 그리고 기분이 나빴다.‘내 차가 고급차거나 외제차였어도 과연 트렁크를 보자고 했을까?’ 이씨의 경험상 평소 길거리에서도 양복을 쫙 빼 입은 사람들은 불심검문을 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농수산물시장에서 일하느라 평소에 허름한 점퍼 차림인 이씨는 다닐 때마다 불심검문을 당했지만...
이씨는 화가나는 것을 참으며 이유를 물었다. 대낮의 불심검문 그러하듯이 이 새벽에도 '기소중지자 어쩌구~' 라고 말하며 트렁크를 열어달라고 한다. 이씨는 자신에게 거부할 권리가 있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당황했는지 의경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한번 협조해달라고 말했다. 이씨는 낮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거부하오."
의경은 어정쩡하게 이씨의 차를 막고서서 저만치 있는 사복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사복은 무언가 한 건 올린 줄 알고 달려왔다가 의경의 설명을 듣더니 이씨의 차로 가까이 왔다. 능숙하고 틀에 짜인 예의를 갖춘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협조해주십시오. 트렁크를 열어주십시오."
이씨는 다시 완곡하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내가 협조를 부탁드립시다. 왜 트렁크를 보자는 거요? 내가 그래야할 무슨 구체적인 근거가 있습니까?"
사복은 약간 언짢은 기운을 섞어 다시 말했다.
"아니... 꼭 그런 건 아닙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협조를 부탁드리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협조를 못하겠다니까 왜 길을 안 열어주는 겁니까? 이게 협조를 부탁하는 겁니까? 강제로 열라는 거 아닙니까? 나 갈테니 길을 비켜주시오!"
이씨도 짜증을 섞어 대꾸했다.
"선생님, 대한민국 국민 아닙니까?!"
드디어 사복이 본색을 드러내고 언성을 높였다. 사복의 황당한 질문에 이씨는 되받아 반박했다.
"당신은 대한민국 경찰 맞소? 당신 신분증좀 먼저 확인합시다. 요즘 가짜 경찰도 많은 세상이니!"
"뭐요?! 못보여줍니다! 나를 못믿겠습니까?!"
사복은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감정이 상한 목소리였다. 이씨도 감정이 상해 법을 따져 물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당신이 나를 못믿는데 나는 당신을 어떻게 믿소?! 그리고 불심검문을 하려면 소속을 먼저 밝혀야 되는 법 아니오??"
사복은 이씨의 반발을 미처 예상을 못했는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며 콧김만 내뿜고 있었다. 이씨는 그 콧김을 뒤로하고 차를 몰고 검문을 빠져나와 한강 다리 위를 마저 달려갔다. 쿠데타군들이 이 다리를 건널 때는 제대로 막지도 못하면서 여전히 시민들에게만 불편을 감수하라고 강요하는 시대가 서글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