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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를 늦춰야 보이는 도깨비 바늘

[강우근의 들꽃이야기](63) - 도깨비 바늘

새를 보러 잎이 다 져 버린 숲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숲에 가서 여느 때처럼 보고 듣고 걸어서는 새를 한 마리도 보지 못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숲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다르게 보고 듣고 걷는 연습을 했다. 평소에는 좁은 시야로 한곳만을 보는데, 새를 보려면 좁은 시야를 넓혀야 한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풍경을 한눈에 다 보는 거다. 두 팔을 벌리고 두 손 사이에 있는 모든 풍경을 한 번에 다 볼 수 있도록 넓게 보기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작은 움직임도 알아챌 수 있다. 소리를 잘 듣기 위해서는 두 손을 귀 뒤에 대고 손바닥을 세워 커다란 귀처럼 만든 다음 눈을 감고 들어야 한다. 또 몸을 낮추고 소리가 나지 않도록 천천히 걷는 연습도 해야 한다.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것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게 쉽지 않다. 신자유주의 아래서 삶은 불안하다. 달리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처지고 만다. 비정규직으로, 노숙자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니 지쳐 쓰러질 때까지 빨리빨리 달리고 또 달리고 쭉 달려야 한다. 쫓기듯 살아가다 기껏 짬이 나면 텔레비전이나 컴퓨터에 넋을 놓고 빠져들고 만다. 이렇게 허겁지겁 달리다 보면 둘레를 둘러 볼 수 없다. 속도를 늦추어야 들리는 소리가 있다. 멈추어서 한참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이웃의 삶이 보이고, 이웃의 살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숲속 오목눈이가 보이고, 나무를 쪼는 쇠딱따구리 소리가 들린다. 길가에 자란 도깨비바늘이 보이고, 마른 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른 가을에 도깨비바늘 꽃 피는 것을 보면 재미있다. 어떤 것은 노란 꽃잎을 세 장 달고 있는데, 어떤 것은 한 장만 달랑 달고 있다. 어떤 것은 다섯 장까지 달고 있어서 제법 꽃다운 모양을 하고 있기도 하다. 꽃잎을 두 장 달고 있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혹시 꽃잎 한 장이 떨어진 게 아닐까 해서이다. 그런데 도깨비바늘은 국화과에 속하는 풀이지 않은가. 국화과 꽃은 입술 모양의 꽃(설상화) 한 장 한 장이 다 꽃 한 송이이고, 가운데 꽃잎이 없는 것(관상화)도 하나하나가 다 꽃 한 송인 것이다. 그러니 도깨비바늘은 가지 꽃에 뭉쳐난 꽃묶음 가운데 설상화가 한 개에서 다섯 개 섞여 있는 것이다. 설상화 꽃이 한 장 달려 있는 것을 보면 처음에는 어색하다가 그 소박한 모습에 슬그머니 웃음 짓게 된다.

도깨비바늘 열매는 길쭉한 바늘 꼴인데 그 끝에 꽃받침이 변하여 된 갓털이 달린다. 열매가 여물면 그 갓털이 날카로운 가시로 바뀌어 털이나 옷 따위에 잘 들러붙는다. 도깨비바늘이란 이름은 이 열매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어린 시절 도깨비바늘을 붙이며 놀았던 어떤 이는 요즘 도깨비바늘이 다 없어졌다고 푸념했다. 도깨비바늘은 둘레에 여전히 많이 자라고 있는데도 말이다. 정작 없어진 것은 도깨비바늘을 돌아볼 여유일 것이다.

아이들은 새를 보러 간다니까 신이 나서 쫓아왔지만, 막상 새를 보기 위해 연습을 하니까 시시해하고 못마땅해했다. 금세 지루해하더니 웃고 소리 지르고 숲속을 뛰어다녔다. 아이들 옷은 온통 도깨비바늘과 미국가막살이 풀씨 투성이가 되었다. 아이들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도깨비바늘을 붙이며 놀았다. 결국 새는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아이들을 많이 몰고 가서 새를 보려고 한 게 잘못이었나? 이런 것을 억지로 가르친다고 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스스로 알아가도록 여유를 갖고 한참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숲길에 자란 도깨비바늘 같은 흥미로운 것들을 던져 주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숲에서는 한 마리도 보지 못했던 새를 다시 아파트 단지에 돌아와 보았다. 박새도 보고 오목눈이도 보았다. 아이들은 박새가 날아간 곳으로 우르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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