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인들의 목동예술인회관 점거 장면 [출처: 오아시스프로젝트 http://www.squartist.org] |
별볼일 없는 공약조차 그리워지는 대통령 선거가 요란하게 흘러가고 있다. 낡디 낡은 보수정치, 그리고 그 보수정치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대통령 선거에서 정책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순진한 발상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그래도 역시 놀라울 따름이다. 역시 지배권력에게 정치는 게임이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플레이, 룰을 지키지 않는 불량 매너 등으로 관객이 게임 자체로부터 스스로 멀어지게 하는 지배 권력과 보수정치의 놀라운 기술!
그래서 우리는 이 게임에서 눈을 떼서는 안되는지도 모른다. 질기게 지켜봐야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의 게임과 무관하게 우리의 미래는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끊임없이 우리의 정치를 상상하고 실천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고, 가끔씩 “쟤들도 잘 놀고 있나?”하며 그들만의 리그에 대한 관심과 감시의 시선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 선거의 문화정책을, 그것도 예술정책을 제안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거다. 이 와중에...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고 미래적 대안을 제시할 상상력
지배권력이, 보수정치가 예술정책에 관심이 없다고 투덜거리는 것이야 말로 오늘날 예술가, 예술정책 전문가, 예술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이 매일 같이 하는 놀이이다. 이제는 놀이라는 사실도 까먹고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예술의 어원과 기원, 그리고 인류의 궤적을 되돌아보았을 때, 예술은 산업화, 기계화의 거대한 파도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다. 그래서 근대 산업화를 비롯하여 지금 이 순간에도 놀라운 속도로 밀려가고 있는 기술혁명은 예술의 위상을 끊임없이 변화시켜왔다. 엄밀하게 말해서 현대 사회에서 예술은 능동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온 것이 아니라 산업화, 기계화가 되고 남은 것들로 예술의 영역은 규정되어 왔다. 언제나 반복되어 온 “예술의 위기”라는 담론은 사실 그런거다. 물론 사진, 영화에서부터 미디어 아트, 웹아트에 이르기까지 기술을 통해 새로운 예술의 위상을 획득하는 경우도 있지만, (미학적 측면이 아닌 사회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이 역시 기술과 자본의 욕망이 이루어 낸 성과에 가깝다.
그런 면에서 초국적 자본과 디지털 기술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심지어 초국적 자본권력이 국가권력을 위협하고 활용하는 시대에서, 민주공화국이 아닌 삼성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예술정책을 챙겨달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귀여운(!) 발상임에 분명하다. 언제나 예술정책이 쪼그라들고, 배제되고, 유배되는 것은 운이 없어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경제우선주의 국가정책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일 뿐이다. 대통령과 관료들이 예술적 교양이 없어서... 사회적으로 예술에 대해 무관심해서... 그건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다. 원인과 결과를 혼돈해서는 안된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문화와 예술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경제우선주의 문화정책 구조 속에서 우리가 더욱 더 주목해야 할 공간이다. 지금 정치꾼들이 경제제일주의의 판타지를 유포하는 것이야 말로 낡은 정치가 사회적 비전과 전망을 상실한 채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존 게임”이라는 경제제일주의와 공포정치로 무장한 낡은 세력에게는 결코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고 미래적 대안을 제시할 상상력이 없기 때문이다.
예술은 지극히 정치적이며 경제적이고 이데올로기적
대통령 선거를 비롯하여 낡은 지배계급에게 예술은 부차적인 영역이지만, 수탈과 착취를 쥐어짜기 위한 상징체계에 불과하지만, 예술이야말로 구조화된 지배체계에서 끊임없이(최악의 경우에도)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고 실천하는 영역이다.
산업화, 기계화 과정에서 예술이 도태되고 배제된 이유, 역설적이게도 자본이 이윤율 유지를 위한 마지막 희망으로(창조산업, 신성장동력 따위의 이름으로) 예술에 주목하는 이유 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술은 자본주의의 산업화 전략이 팽창되는 곳, 경제우선주의의 경쟁과 착취가 만발하는 사회가 아니라 인간의 삶이 존중되는 곳, 삶을 둘러 싼 상상력과 꿈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빛을 발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을 통한 사회 개입, 예술을 향한 사회적 저항은 자본주의에게 지극히 위협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더 이상 신자유주의 지배권력에게 예술을 이해해 달라구... 예술가들을 도와달라구... 예술적 권리를 존중해 달라구... 조르는 것은 무의미하다. 예술은 지극히 정치적이며 경제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다. 예술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예술정책”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새로운 대안을 상상하는 “다른 예술, 다른 예술정책”에 대한 기획과 실천이 필요할 뿐이다. 적극적인 예술적 권리를 주장하고 획득하는 것, 인간의 감수성과 욕망의 영역까지 민주주의를 상상하고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급진적인 진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래에 제안된 예술정책들은 이러한 맥락에서, 지금의 대통령 후보들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찾아가야 할 “다음 정부”(차기 정부가 아니라!)에서 해결해야 할 당면한 과제들이다. 현재의 비상식적인 정치문화 속에서 차기 정부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대도 없지만, 우리의 미래는 계속될 것이니까...
주목해야할 7가지 예술정책
○ 예술가를 위한 <(가칭)예술 창작공간 지원 활성화 대책> 수립
문화부를 비롯하여 중앙 정부 전반의 공간 조성 정책에 있어 적용될 수 있는 <(가칭)예술 창작공간 지원 활성화 대책> 수립이 시급하다. 정부 주도의 예술가 작업실 확충 정책을 수립 및 추진하는 것은 물론, 제도적으로 대규모 개발사업, 일상적인 토지, 건물 임대 등에 있어 예술가들이 창작공간을 수월하게 확보할 수 있는 지원, 보호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 국가 개발사업 및 공공기관에 대한 <(가칭)예술 창작공간 쿼터제> 도입
정부는 각종 국토개발 계획을 비롯하여 국가 주도의 대규모 개발사업에 있어 <(가칭)예술 창작 공간 쿼터제>를 도입함으로써,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예술 창작공간의 사회화를 추진해야 한다. <(가칭)예술 창작공간 쿼터제>는 신규로 조성되는 도시, 공간의 예술적 가치, 문화예술의 창조성 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일 뿐만이 아니라 지역주민, 차세대 예술가 등을 지원하는 중요한 문화예술 공공영역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다. 또한 현행 운영되고 있는 주요 공공기관, 공공문화기반시설 등에도 <(가칭)예술 창작공간 쿼터제>를 적용함으로써, 일상 공공공간에 대한 문화예술 공공서비스의 확대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 예술가 작업실 임대 지원 제도 도입
공간 임대에 있어 예술가 작업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신규 공간의 조성, 공공공간에 대한 예술 창작 공간화는 예산 및 지원 제도에 있어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상적인 민간 영역에서 예술가들의 창작 환경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토지, 건물 임대 등에 있어 예술가들이 저렴하게 창작 공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예술가 작업실 임대 지원 제도는 비현실적인 문화지구 선정 제도와 달리 일상적이고 현실적으로 예술 창작 환경의 확대를 추진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사회적 창조성은 물론 문화예술진흥 정책의 지속적인 발전을 모색할 수 있다. 예술가 작업실 임대 지원 제도는 임대주에 대한 세금혜택 등 지원제도에서부터 예술가에 대한 다양한 직간접 지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하다.
○ 예술가 사회보장 제도를 위한 정책 비전 수립
정책별, 프로그램별 지원을 넘어 국가의 지속가능한 창조성 확대를 위해 예술가 사회보장 제도 전반에 대한 정책 비전과 추진체계 등을 수립해야 한다. 예술의 특성상 예술가에 대한 지원은 단순한 인력지원의 성격을 넘는다. 예술은 다른 산업화 정책과는 달리 예술가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술의 특이성 및 사회성, 예술가의 전문성 등을 적극적으로 고려한 예술가 사회보장 제도가 수립돼야 한다.
○ 예술가 4대 보험제도 도입
현재 예술가들은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복지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으며 퇴직금, 상여금, 수당 등 일반 노동자의 혜택과는 거리가 먼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해져 있다. 우선적으로 예술가의 기본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예술가에게 4대 보험 제도를 적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도입돼야 한다. 예술가복지기금, 예술인실업급여제도 등 이미 해외에서 진행되고 있는 예술가 지원정책을 고려한다면, 예술가들을 위한 사회보험제도 도입 등 생존권 지원 정책은 충분히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 <(가칭)예술가지원센터> 설립
예술가의 창작활동 지원은 물론 예술가의 생활 환경 개선 등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지원하는 기구로서 <(가칭)예술가지원센터>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 <(가칭)예술가지원센터>는 예술가의 복지 등 예술가 자체에 대한 지원을 목적으로 하며, 예술가에 대한 국가의 다양한 인적 지원 제도 적용에 있어 허브 기관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 정부의 문화예술진흥기금 “민간 기금화” 정책 폐지 및 적립 목표액 1조 5000억원 조성
문화부를 비롯하여 중앙 정부는 문화예술진흥 정책의 책임을 회피하고, 문화예술진흥 정책의 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민간 기금화” 정책을 즉각 폐지해야 한다. 지금의 민간 기금화 정책은 민간 자율이라는 참여민주주의와는 무관한 신자유주의 민영화, 무책임한 시장 논리에 불과하다. 또한 향후 문화예술진흥기금의 적극적인 운용이 가능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적립 목표액이 달성돼야 한다. 이는 민간의 몫이 아니라 문화예술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의 의무임에 분명하다. 실질적인 추진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이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