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회포럼과 한국의 이주노동자 투쟁

[1.26세계행동의날] '전쟁과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투쟁의 의미는 동등하다'

세계 사회운동 진영의 전략적 소통 공간으로 성장한 세계사회포럼(WSF). 2009년 아마존 대회을 앞두고 2008년에는 1월 26일 '세계행동의 날'을 기점으로 각국에서 분산 개최될 예정이다.

'민중언론 참세상'은 2008년 세계사회포럼, 1.26세계행동의 날 행사와 관련한 국내외 소식과 기고 글들을 집중이슈로 묶었다. 지난 8일 한국에서도 '2008년 세계사회포럼(WSF) 1.26 세계행동의 날'을 준비할 (한국) 조직위원회가 공식 출범했고, 22일 부터 26일 간 진행 될 행사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민중언론 참세상'은 1.26 조직위원회와 공동 기획을 통해 세계행동의 날을 함께 준비한다.
-[편집자 주]

세계사회포럼 세계행동의 날('열린 공간'이라고 알려진 세계사회포럼이 더 성장하기 위한 최초의 구체적인 국제 행동)이 다가오고 있다. 1월 21~26일 한국과 전 세계 민중들은 "다른 세상을 위해 함께 행동하자"는 슬로건 하에 결집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FTA 중단, 미군 철수, 비정규직 철폐, 식량주권 쟁취 등 다양한 요구들로 표현된다. 이러한 많은 요구 가운데 "이주민의 완전한 노동권, 정치적 시민적 권리 쟁취, 이주노동자 탄압 중단!"도 있다.

국제적인 행동에 부합하는, 세계적 반향을 가지기에 충분한 이 슬로건은 한국에서 이주민의 구체적인 상태와 이주운동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완전한 정치적 시민적 권리에 대한 요구는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구체적 요구이기 보다는 이상적 당위 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대한 요구는 이주와 장기간의 정착(이주보다는 이민이라는 용어가 통용되는)이라는 오랜 역사를 가진 서구 국가들의 상황에서 더 현실적으로 들어맞는다.

이 국가들에서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조건이 실질적인 영주와 등록 이민자에 대한 시민권까지 허용하는 이민 및 시민법에 관한 법률을 만들게 했다. 예컨대, 2006년 메이데이에 미국의 도시들을 휩쓴 대규모 이민권 운동의 주요 요구 가운데 하나는 "우리도 미국인이다"라는 슬로건으로 뒷받침되는,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시민권 요구였다.

  지난 해 12월 18일 세계이주민의 날 맞이 이주노조와 노동, 사회, 시민단가 공동 주최한 기자회견 참가자 모습/ 이정원 기자 [참세상 자료사진]
시민권에 대한 요구가 현재 한국 이주노동자 운동의 구체적 요구가 아니라고 해서 미국이나 몇몇 유럽 국가들의 이주운동보다 한국 운동이 덜 발전했다고 볼 수는 없다. 미국에서 시민권 허가 방식-시민권을 일부('착한 이주민')에게 부여해 다른 이들('불법 이주민')의 배제를 정당화하는 것-은 특정한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다.

이 과정은 노예무역으로 인해 강제된 이주로 시작된 수세기에 걸친 이민의 역사, 정치적 시민적 편입이 사회적 (경제적) 권리 투쟁보다 우선순위를 점했던 운동 역사를 포함하는 것이다. 실제로 어떤 이들은 현재의 이민자 권리 운동을 인종적 배제에 저항하는 시민권 운동의 투쟁과 비교하기도 했다. 미등록 이민자에 대한 공격은 동일한 현상의 새로운 표현이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현재 상태와 이주민의 요구를 만든 역사적 과정은 훨씬 짧은 이주 노동의 역사와 매우 제한적인 이민정책과 연관되지만, 또한 전통적으로 강력하고 전투적인 노동운동으로부터 새로운 이주민 운동의 형태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이에 따라 노동권 요구가 앞에 놓이는 것은 한국적 맥락에서 더 구체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정치적 시민적 권리가 궁극적으로나 이론적으로 후순위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한국 이주노동자 투쟁의 특성

한국 이주민의 상황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말레이시아, 홍콩, 일본)과 매우 유사하다. 이들 나라 역시 최근에 이주민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장기 거주와 시민권에 대한 일반적인 제한정책을 갖고 있다. 한국과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서 단기 이주노동자들은 외국인구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한국에서 대략 90만의 외국인 가운데 적어도 40만이 이주노동자들이다). 서구의 이민자 권리운동과는 달리 아시아 이주민들의 투쟁은 주로 현장의 권리에 집중하는데, 예컨대 임금과 노동조건이 고용주가 약속하거나 계약서에 있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게 열악한 말레이시아의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지난 10월에 전개한 저항이 그러하다.

많은 나라들에서와 같이, 조직된 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 조직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말레이시아노동조합회의(Malaysian Trade Union Congress), 일본의 젠토이츠(전통일)노조, 홍콩노총(Hong Kong Confederation of Trade Unions)은 최근 몇 년간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해오고 있다. 홍콩에서는 홍콩노총에 가입된 이주노동조합들이 있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가사노동자들, 네팔 건설노동자들로 구성된 이들 노동조합들은 이주노동자, 스스로의 동력으로 시작되었다. 이런 측면을 비교해 볼때, 한국의 이주노동자 투쟁은 매우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조직화와 노동권을 요구하는 싸움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바로,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조합이 그 성과물이다.

서구 이민자 권리운동이 노동권에 대한 직접적 요구를 종종 비켜가거나 부차화하고, 이주민이 조합을 만들거나 조합으로 조직화되고 있는 나라들에서 미등록 이주민에 집중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여기는 것에 반해, 한국에서 이주노동자 투쟁은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포함하는 모든 이주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요구를 명확히 해왔다.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강내희 중앙대 교수의 모습. [출처: 비상대책위]
시민권, 배제가 아닌 통합을 위해 투쟁 하는 나라에서는 시민권 획득이 가능한 방안을 주요하게 요구하지만, 한국의 경우, 노동운동의 역사적 힘과 성과물이 이주노동자들로 하여금 단결권을 주장하며, 사회운동조직과 조직된 노동자의 일부로부터 실질적인 지원(만족스럽거나 충분치 않을지라도)을 받을 수 있었다. 노동권에 대한 이러한 요구는 출입국관리사무소의 강제 단속과 추방에 저항하는 단호한 싸움과 모든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합법화 요구와 함께 만들어졌다.

한국의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단결권을 그리고 이를 위해 투쟁한다는 것은 이것이 승리하기 쉬운 싸움이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상당히 어렵다. 정부는 이주노동자 운동, 특히 서울경인이주노동조합(MTU)에 대해 가혹한 탄압을 해왔다. 2005년에 노동부가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반려한 이후, 이주노조는 법적 싸움을 시작했고 이는 2007년 2월 고등법원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결권 옹호 판결이라는 성과를 낳았다. 노동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이 결정을 대법원까지 끌고 갔지만 아직 최종 판결은 나오지 않았다. 한편 법무부 출입국 당국은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공장과 주거지에 대한 강제 단속, 특히 이주노조 간부를 겨냥하는 단속을 벌였고 이는 11월 27일 서울의 각기 다른 장소에서 위원장, 수석부위원장, 사무국장을 동시에 체포하여 보름 뒤 비밀리에 추방시키는 것으로 절정에 달했다.

한국 노동사회운동, 이주노동자 투쟁을 자신의 투쟁 받아들지 않는 한계

이주노조와 연대단위의 투쟁은 ‘야만적 강제추방중단 출입국관리법 개악저지, 이주노동조합 표적탄압 분쇄 비상대책위원회’로 결집했고 위와 같은 요구를 포함하여 '세계사회포럼 세계 행동의 날'에 이주노동자 운동이 시의 적절하게 참여하게 되었다. 지도부 체포 직후부터 이주노조의 새로운 지도부와 중앙 간부들, 비대위 단체들은 농성투쟁에 돌입하여 거리 캠페인과 선전전, 집회 등을 진행하였고 이제 40일이 지났다.

이주민 조직화와 이주노동자 전반에 대한 탄압 분쇄를 위한 이 투쟁은 단지 지도부 3인 단속 추방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 투쟁은 이주노조의 정당성과 합법성뿐만 아니라 한국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나아가 아시아와 세계의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합법화 및 노조로 단결할 권리, 노동권을 주장하는 투쟁이다. 이는 아시아 노동조합들과 시민사회단체들에 의해 이미 인정된 것이다. 또한 지도부 체포가 이주노조에 대한 공격일 뿐만 아니라 민주노조운동 전체에 대한 공격이라는 민주노총 성명에도 나와 있듯이 이 투쟁은 전반적인 노조탄압에 대항하는 투쟁이다.

한편 선언과 실천이 같지는 않다는 사실도 인식되어야 한다. 한국의 노동운동과 주류 사회운동은 이주노동자 투쟁을 그들 자신의 투쟁으로 아직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 이는 이주노동자 운동 전반과 특히 현재의 투쟁에도 그러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 권리가 한국 노동자들에게 가지는 중요성에 대해 부분적으로 다른 의견이 있고, 사회구조의 밑바닥에서 그러한 권리 획득이 한국의 노동운동과 광범위한 진보운동에 있어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과 이해 역시 부족하다.

따라서 비대위가 농성투쟁 장소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 민주노총 건물로 옮기는 이유 중 하나는 민주노총, 산별노조 지도부들과 이주노동자들과의 접촉면을 넓히기 위함이다. 매일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이주노동자 조직화를 노동운동의 최우선 과제로 상정하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진지하게 토론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시 세계사회포럼 세계행동의 날로 돌아와 보자. 탄압에 저항하고 노동권을 쟁취하고자 하는 한국 이주노동자 투쟁이 그 일부라는 것은 명확하다. 일국적 수준에서 세계행동의 날은 적어도 이주노동자 운동이 전쟁과 신자유주의에 저항하여 ‘다른 세계’를 위해 싸우는 다른 많은 중요한 투쟁과 동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적 수준에서 그것은 아시아와 국제적 차원에서 이주노동자 투쟁의 상징적 의미를 드러내는 하나의 기회를 제공한다. 세계행동의 날을 한국과 전 세계에서 이주노동자 권리를 위한 싸움을 한걸음 전진시키는 계기로 만들자.
덧붙이는 말

이 글은 임월산 서울경인이주노동조합 국제연대 담당자님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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