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원 이광수는 1949년 2월 7일 세검정 은신처에서 반민특위 조사관 서정황에게 체포됐다. 이광수는 마포형무소에서 2주일 이상 밤을 새워 <나의 고백>을 썼다. “12월 8일 대동아전쟁이 일어나자 나는 조선민족의 대위기를 느끼고 일부인사라도 일본에 협력하는 태도를 보여줌이 민족의 목전에 임박한 위기를 모면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기왕 버린 몸이니 희생되기를 스스로 결심했다”고 자신의 친일동기를 변호했다.
이광수를 따르던 문학청년 이항녕(93)씨가 엊그제 죽었다. 한겨레신문 1단 부음기사로 달라붙은 그의 삶은 그리 간단치 않다.
1915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식민지 청년학도 이항녕은 1934년 경성제국대학 예과 1학년때 동아일보가 주최한 농촌계몽을 주제로 한 장편소설 공모에 <일륜차>라는 소설로 응모했다가 낙방했다. 대신 심훈의 <상록수>가 당선됐다. 문학의 꿈을 버리지 못한 이항녕은 1937년 봄, 심혈을 기울여 쓴 단편소설을 들고 자하문 밖 이광수의 집을 찾았다. 이광수는 이항녕에게 “문학을 가지고 호구하기 어려우니 법학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이항녕은 눈물을 머금고 법학과로 진학했다. 함께 경성제국대학 법학과에 들어온 이들은 홍진기(중앙일보 설립자), 문홍주(전 문교부장관) 등이다.
당시 법학과의 조선인 학생은 두 부류로 갈렸다. 민족주의에서 나아가 사회주의 색채를 띤 사람들과 민족주의에서 후퇴해 인문주의 색채를 띤 사람들이다. 앞 사람들은 마르크스 레닌의 책을 읽고, 뒷 사람들은 관념철학과 문학서적을 읽었다. 이항녕은 자전적 수필집 <작은 언덕에 서서>(1978)에서 그때를 회상하며 “자랑스럽지 못하지만 나는 뒷사람들에 속한다. 민족을 위해 투쟁하다가 학업을 포기한 (앞의) 학우들을 낙오자라고 비웃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고백한다.
이항녕은 1939년 일본의 국가고시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해 태평양전쟁기 1941년 경남 하동군수가 됐다. 50년이 지난 1991년 이항녕은 바르게살기운동 하동군협의회 초청강연에서 “출세와 보신에 눈이 어두워 군민들을 죽창으로 위협”했던 자신의 친일행적을 사죄했다.
해방이 되자 민족을 배반한 부끄러움에 공직을 뒤로 하고 부산 범어사 밑 청룡초등학교에 들어가 교사가 됐다. 식민지의 수재 청년은 그때 처음 한글 맞춤법을 배웠다. 배우면서 가르치는 생활은 46년 마산중학교, 48년 양산중학교, 49년 동아대 교수를 거쳐 72~80년 홍익대 총장 때까지 이어졌다.
80년 3월 홍익대 이사회의 중임결정을 사양하고 물러나면서 “10.26 사태 이후 풀려 나온 교수와 학생들을 보니 혼자 편하게 산 데 대한 양심의 가책을 금할 수 없었다”며 유신시절을 회고했다.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실렸지만 변함없이 자신의 과오를 반성했다. 같은 해 KBS가 방영한 8.15 특집 프로그램에도 아흔의 노구를 끌고 직접 나와 자신을 되돌아 반성했다. 또 다른 자전 수필집 <낙엽의 자화상>에서는 해방 직후 이광수를 찾아가 친일행적을 사죄하시라고 권했던 일화까지 소개했다.
60년 민주당 집권 때 잠시 문교부 차관까지 역임했던 법철학자 이항녕은 자신의 친일행적을 죽을 때까지 반성하고 살았던 선비다. 그 자신이 교육에 들어선 계기를 “해방 되면서 나의 과거 행적이 부끄러워 세상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어 교육기관에 피신했다”고 표현했다. 35년의 교육계를 되돌아보면서도 “어줍잖은 지식 쪼가리를 잘라 팔며 호구해 오면서 겉으로는 학자연했다. 하고 싶은 말을 보신을 위해 참았고, 하기 싫은 말이라도 일신의 안전을 위해서 거침없이 말했다”고 반성했다.
매일신보 1944년 1월 1일자에 <새해>라는 자작시로 “씩씩한 우리 아들들은 총을 메고 전장으로 나가고 / 어여쁜 우리 딸들은 몸뻬를 입고 공장으로 농장으로 나서네 / 이날 설날에 반도 삼천리도 기쁨의 일장기 바다 / 무한한 영광과 희망의 위대한 새해여“라고 노래했던 이광수는 이항녕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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