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통운택배노동자들이 작성한 평균적인 일과표. 이들은 점심시간에 따뜻한 밥을 먹고, 퇴근 후엔 동료와 술 한잔 할 수 있는, 가족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소원을 품고 있었다. [출처: 미디어충청] |
새벽 6시 출근, 7시 까지 택배 집화 벨트에 차량 대는 것으로 하루 시작
알람소리에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제설작업이 한창이라 말하는 뉴스 앵커의 머리위로 보이는 5와 30이란 숫자가 참으로 얄밉게 보인다. 아내는 빨리 한 수저라도 뜨라고 재촉한다. “내가 나가서 차 유리에 쌓인 건 치웠는데, 오늘 배달 가능하겠어?” 아내는 양말을 챙겨주며 자꾸만 문 밖을 쳐다봤다.
가만, 아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이의 학원비일지도 모른다. 내가 지난달에 얼마를 받았더라, 그러고보니 지난 달 대한통운에서 까인 수수료가 60만원이 넘는다. 차가 고장나서, 배달이 늦어서, PDA가 고장나서 까였으니까 한 150만원이나 갖다 줬을라나? 우리도 다른 직장처럼 매달 월급을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두 세 달치 월급이 대한통운에 묶여 있지만 않더라도 참 좋을텐데.
이놈의 차가 또 말썽이다. 30분 동안 시동이 걸리지 않고 있다. 헐레벌떡 달려온 서비스센터 직원이 차를 바꾸라고 한다. “차사고 대한통운 넘버 구입하는데 우리 가족 전 재산인 1,200만원이 들어갔다 아입니까? 거기다가 대한통운이 구닥다리 PDA까지 70만원에 사라고 해서 사고, 도색까지 다 우리가 했는데. 거진 2,00만원이 들어갔어요. 이래봬도 이 놈 아직 쓸만해요. 허허”라며 말해보지만, 센터 직원의 표정은 좋지 않다. 다행히 시동이 걸렸다. 6시 30분, 지각이다.
“힘내라, 내 새끼. 우리 둘 다 아직 더 달릴 수 있잖아.” 괜히 핸들을 탁탁 쳐본다.
직영, 위탁 가리지 않고 한데 모여 교육. 교육 불참도 계약해지의 원인
대한통운 작업복 안 입고, 명찰 안 달면 지적당하고 감점 처리
대한통운 직영 명절 선물도 배달하는 택배노동자
여기저기서 욕지거리가 터져나온다. “김씨, 당신 땜에 이 사람들 다 20분 늦어진거 알지? 내가 분명 늦으면 수수료 깐다고 했지. 늦을거야, 안 늦을거야?” 단번에 나이어린 관리자의 구박이 쏟아졌다. 벨트를 열고 들어가 차량을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간선차량이 도착하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눈 때문에 간선차량이 평소보다 더 늦게 오는 것 같다고 수군거린다. 오전 10시, 대한통운이 서비스 교육을 한다고 모이란다. 갈까, 말까. 대한통운은 나보고 대한통운 소속이 아니라고 하면서 왜 자꾸 이것저것 교욱이다 뭐다해서 시키는 것인지. 안 가면 또 계약해지할 거라고 하겠지?
“안녕하세요, 대한통운입니다. 감사합니다, 또 뵙겠습니다.” 100여명의 사람들이 허리를 굽히며 함께 외쳤다. “김씨, 허리 더 굽히라고. 아니 왜 우리 택배 잠바 안 입었어요? 어라, 명찰도 안 달았네” 허리가 아파서 못 굽혔을 뿐인데, 관리자가 서류에 체크를 해갔다. 아니, 옷을 사주고 입으라고 하면 내가 입지, 안 입겠어.
늦게 도착한 간선 차량에서 어마어마한 물량들이 쏟아져 나왔다. 구역별로 나누는 손들이 분주했다. 벌써 12시가 넘었다. 오늘 점심은 붕어빵이 좋을까, 떡이 좋을까? 추운 날에는 따끈한 라면 국물이 너무 그립다.
“내가 이래서 명절이 싫은거야, 더러워서. 00" 분리작업이 끝났는지 출고스캔을 찍던 옆자리 형님 한 분이 내 앞에 뭔가를 불쑥 내민다. 사과 박스엔 아침에 내게 구박을 주던 관리자의 이름과 주소가 찍혀있다. 대한통운이 직원들에게 명절선물을 배달하나보다. 올해도 우리 것은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다. “형님, 한두 번도 아니잖아요. 대신 이따가 일 일찍 끝나면 소주한 잔 합시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 한 번이라도 모여 앉아 소주를 먹었던 적이 있었나, 점심 한 끼 사먹을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우리가.
“단 한번이라도 다른 사람들처럼 따끈한 점심밥 한번 먹고 싶다”
간선차량이 늦어 배달이 늦어도, 고객의 막무가내 화풀이도 모두 택배 노동자가
꽁꽁 언 길을 달려왔건만, 출발 전 통화한 고객이 집에 없었다. 다음 동네에 시간 맞춰 배달하려면 지금 가야하는데, 그냥 갈까. 하필 연립주택이라 경비실도 없다. “아저씨, 나도 바쁘니까 계속 전화하지 말고 그냥 1층에 던져 놓으라니까” 다짜고짜 고객이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 집이 5층인데 1층에 던져 놨다가 없어지면 어떻게 해요”, “아 없어지면 아저씨가 물어줘야지. 오늘 꼭 받아야하는 거니까 그냥 1층에 던져두쇼”, “그러지 말고 요 앞에 슈퍼있죠? 거기에 맡길게요. 이따가 꼭 찾으세요. 알았죠? 00슈퍼예요.”
얼른 차를 몰아 편의점으로 갔다. 택배물건이 많이 쌓여 있었다. 입고 스캔 찍으랴, 라면 집어넣으랴 정신이 없다. 홈쇼핑 반송 물품이 들어와 있다. 이건 그냥 받으면 안 되고 반품절차를 거쳤는지 확인해야 되는데. 매번 주의를 줘도 편의점 알바생이 자주 바뀌다보니 한달에 한 두 번꼴로 이런 일이 생긴다. 아니나 다를까 “야이, 000아 이리로 와. 안 오면 니네 회사에 신고할거야” 대뜸 욕을 한다. “아니요, 혹시 그쪽 회사와 연락해서 편의점에서 반송하는 걸로 얘기됐는지 물어보는 건데요.”
통화를 끝내기도 전에 전화벨이 울린다. “야 이호로 놈의 새끼야 개새끼야, 너 어디냐? 지금 일루와. 안와?” 슈퍼에 왜 택배를 맡겼냐는 거다. 오늘 일진이 사납다. 라면은 이미 퉁퉁 불어터졌다.
앞뒤 설명 없이 날아오는 욕, 결국엔 홈쇼핑에 전화를 걸어 배송 불친절을 신고한다. 슈퍼에 물건을 맡기라하던 고객 역시 대한통운에 전화를 걸었다. 오늘로 두 건의 고객 불만 패널티. 수수료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연신 허리를 꾸벅거리곤 다음 행선지로 향한다.
“한쪽 말만 듣지 말고 내 얘기도 듣고 수수료를 까란 말이예요.”
12시 넘어 집에 들어가면 밥 먹고 바로 쓰러져 자
“내일은 오늘처럼 당하지 않고 꼭 말할테다”
오후 8시, 대한통운 광주지사로 들어가니 수수료 내역서가 나왔다 한다. 오늘 배송한 것들 중 스캔을 못한 것들을 정리하고 사무실로 가보니, 언제나 그랬듯이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자기 구역에 왜 직영 사원을 투입해서 물량을 끌어가냐는 사람, 쓰지도 않은 PDA값을 왜 깠냐는 사람, 자기가 배송하지도 않은 물건에 왜 패널티를 매겨서 깠냐는 사람. 항상 이렇다. 수수료 내역서가 한두 달 뒤에 나오다보니 내역서가 잘못 되도 확인이 안 된다. 확인이 된다 해도 돌려받는 경우는 손에 꼽힌다. 그나마 목소리가 크거나 회사에 잘 보여야 돌려주니 나 같이 소심한 사람들은 기다리다 지쳐 포기한다.
“김 씨 일루와 봐. 아까 00동에 갔지? 거기서 클레임이 들어왔는데 본사까지 들어갔나봐. 왜 그랬어? 우리랑 일하기 싫어? 이러면 다음엔 우리랑 같이 못해. 알았지? 고객한테 30만원 변상해준 건 김 씨 수수료서 깐다. 똑바로 하라고.”
30대인 관리자는 50대인 내 어깨를 손으로 툭툭 치며 사무실을 나갔다. 대한통운은 고객의 입장만 듣고 내 수수료를 깠다. 고객과 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관심이 없다.
“김 형, 괜찮아요. 난 오늘 주인이 마당에 던져놓으라고 해서 던졌는데 개가 다 물어뜯었다고 변상처리 했어요. 참, 대영 형님 오늘 다시 입원했수다. 탈장 수술한 부위가 다시 터졌어요. 아까 물건 배달하고 송장 처리 한다고 왔는데 바지가 다 피로 범벅됐더라고요, 망할.”
그래 가봐야지, 가봐야지. 저녁 11시가 되어서야 일이 끝났다. 집에 오니 12시가 좀 안됐다. 아이들은 잠든 지 오래란다. 급하게 밥을 집어넣고 몸을 뉘였다. 아내가 무릎에 파스를 부쳐주며 뭐라 뭐라 하는데 나는 “응, 응”거리기만 한다. 아내가 허벅지를 찰싹 때린다.
그런데 암만 생각해도 억울하다. 내일은 사무실에 가서 오늘 까인 수수료에 대해 이야기 해야지, 내가 잘못한 게 아니고 고객이 슈퍼에 맡기라고 해서 맡긴 거고 반송물품은 확인 전화했다가 되레 욕만 먹은 거라고. 내 얘기도 제발 좀 들어달라고 말해야지.
누운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졸린 걸까. 몸이 꺼지는 것 같다. 그래, 내일은...대한통운이 대체차 안 내줄테니 대영이...병문안 가서...우리...가...물량...나...눠서...돌리겠다...고 말해 줘야지...그러니 걱...정...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