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2일(금) 금융투자협회 11층 제2강의실에서 ‘비정규직법의 올바른 개정을 위한 법률단체 토론회’가 열렸다.
이 날 토론회 참가자들은 비정규직법을 둘러싼 공방이 주로 “현행 비정규직법 유지냐 VS 비정규직법의 적용유예냐”라는 왜곡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또 현행 비정규직법의 문제점을 현실의 실태에 근거하여 분석하고 그에 대한 입법적 대안을 제시했다.
이날 토론회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회 공동주최로 열렸다.
‘기간제법의 올바른 개정방향’에 대한 발제를 한 조경배 교수(순천향대 법학과, 민주주의법학연구회)는 “기업이 기간제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기간제 노동자를 계약해지하고 다른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는 움직임은 이미 기간제법 제정 당시부터 예견되었던 문제”라며 “근본적 원인은 기간제에 대한 사용사유 제한 없이 사용기간 제한만을 규정한 잘못된 입법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했다.
조경배 교수는 “현행 기간제법은 기간제 노동자의 고용보장을 위한 장치를 갖추고 있지 못하고, 고용안정에 대한 뒷받침 없이 개별 노동자가 차별 시정을 요구한다거나 노동조합에 참여하는 등 노동기본권을 행사하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법리적으로 기간제 노동자를 전혀 보호할 수 없는 허점투성이의 법이라는 설명이다.
조 교수는 “사용기간제한이 4년으로 연장된다 하더라도 4년동안 기간제 노동자의 고용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은 언제든지 계약해지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진실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경배 교수는 입법적 대안으로 “기업의 통상적이고 영속적인 업무에는 비정규직의 사용을 금지하고 일시적·임시적 수요에 대하여만 기간제를 허용하는 사용사유 및 사용기간 제한이 가장 시급히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 기간제 남용을 실효성있게 규제하기 위해 △사실상 해고나 다름없는 기간제 갱신 거절시에도 객관적으로 정당한 이유가 있을 것을 요건으로 하고 △기간제 사용에 대해 노동자대표와의 협의의무 등을 신설하며 △정규직 자리가 빌 경우 기존의 기간제 노동자를 우선 고용할 의무 부과 등을 제시했다.
몇몇 야당이 제안하고 있는 ‘정규직 전환 지원 기금’ 조성을 두고는 “기업은 인건비 절감·노무관리의 용이함 등 중장기적 측면에서 비정규직을 활용하는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시 일시적으로 지원한다고 해서 기업이 정규직 전환을 선택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프랑스·스페인·영국의 사례와 같이 기간제 사용 비율에 따라 사용자부담 고용보험료를 차등화하는 등 비정규직 사용에 따른 부담을 기업에 부과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제안했다.
두 번째 발제에 나선 김철희 노무사(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는 ‘비정규직 차별시정제도의 개선방향’을 다뤘다. 김철희 노무사는 “현행 제도에서는 기간제·파견제 노동자와 동종·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비교대상자가 차별이 일어난 시기에 현존하고 있을 때에만 차별 여부를 판단하고 있는데, 차별시정제도 도입을 전후하여 이미 상당수 기업이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직군․업무를 분리하고 있는 상황이라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김철희 노무사는 “지난 2년여의 운영실태를 보았을 때 상당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이나 사용자가 차별시정신청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재계약을 제시했을 때 차별시정신청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김 노무사는 법개정방향으로 ‘노동조합에 대한 신청권 인정, 차별판단기준의 재정비, 차별에 대한 보상기간의 확대’ 등을 제시했다.
‘정부의 파견법 확대방안에 대한 비판 및 간접고용에 대한 규제방향’을 발제한 윤애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법학박사)은 “2006년 말 파견법 개정시나 현재 정부의 파견법 확대안은 파견제가 고용창출에 도움이 된다고 가정하고 있지만, 실제 파견법 시행 11년 동안 만들어진 일자리는 제조업과 사무서비스업에서 상시적으로 필요한 업무 중 일부가 보다 열악한 파견직으로 전환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윤애림 정책위원은 “노동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현행 파견법 허용대상업무의 기준인 ‘전문적인 지식·기술·경험이 필요한 업무’나 ‘일시적·간헐적으로 인력 확보가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 실제로는 사무지원, 자동차 운전원, 텔레마케터, 간병인, 제조업 단순노무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파견근로의 70~90%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윤애림 정책위원은 “불법파견으로 확인된 경우에도 12.7%만이 직접고용으로 전환되었을 뿐이고 고발조치된 경우에도 경미한 벌금이나 기소유예 정도로 처벌되었다”고 밝혔다. 불법파견을 사용한 사용사업주의 직접고용 의제조항이 의무조항으로 약화되면서 현행 파견법은 사실상 위법한 간접고용에 대한 규제를 전혀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애림 정책위원은 “입법방향으로 입법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현행 파견법을 폐지하고 직업안정법에 간접고용에 대한 금지 원칙을 재천명하고 위법한 간접고용에 대한 판단기준 및 위법한 간접고용을 사용하였을 때 사용사업주와의 직접고용관계를 간주하는 규정을 두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방안’을 발제한 김선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는 “특수고용 노동자는 외형상 자영업자 또는 개인사업자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특정 사용자에게 경제적·조직적으로 종속된 지위에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2000년 이후 사회적 논의 과정에서나 국제노동기준 등으로 이미 답이 나와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선수 변호사는 “현재 박종태 열사의 자결로 드러난 특수고용 노동자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특정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종속적 지위에 있는 이들에게 노동3권을 보장하여 대등성을 확보하고 단체교섭을 통해 자주적으로 노동조건을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지정토론자로 나선 김재윤 민주당 의원(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은 “현행 비정규법 문제점의 많은 부분에 관해 지난 17대 국회에서 다수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책임이 없지 않다”고 인정하고 “이번 국회에서 정부․여당의 일방적인 비정규법 개악을 막기 위해 여타의 야당들과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재윤 의원은 “정규직 전환기금 조성 및 특수고용 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용길 진보신당 부대표는 “전사회적으로 문제시되고 있는 4대강 유역 정비사업만 중단해도 해당 예산 23조를 활용하여 비정규직을 지원할 수 있고, 정규직 전환기업에는 인센티브를 비정규직 남용기업에는 패널티를 주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기간제법으로 인해 해고당한 대학노조 명지대 지부, 불법파견 인정을 받고도 집단해고를 당한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 등 다양한 비정규직 노조가 참석했다. 4개 법률단체 회원 30여명도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법률가 공동행동은 이날 입법제안을 골자로 ‘비정규직법의 올바른 개정을 위한 법률가 공동선언’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날 토론을 주최한 4개 단체는 ‘비정규직법의 올바른 개정과 근로권 실현을 위한 법률가 공동행동’을 구성해 지난 4월 27일부터 릴레이 하루단식 및 국회앞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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